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명은과 은미, 정열과 채민>
해마루: 여기는 그 뒤가 있더라고요
* 인터뷰이: 박정열, 정채민, 이은미, 이명은
* 인터뷰어 : 혜진, 충현
* 인터뷰 편집: 혜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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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어떤 경험은 후속편을 남긴다. 강렬한 여운을 이어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여름 날, 해마루 1기 활동을 마무리 짓는 발표회에 초대받았다. 중년의 여성들이 무대에 올랐다.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가 아닌 배우의 얼굴을 하고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타인의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용감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해마루는 깊이 들어가더라고요.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그 깊이까지 내려가기 힘들지 않을까, 저는 내심 조바심도 났어요. 그런데 그렇게 깊이 내려가니까, 그 깊이에서 오는 뒤가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만났던 사업에서는 그 뒤, 그 이후가 없었거든요. 여기는 그 뒤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마음을 내놓고 어떤 떨림으로 뭔가를 이루어내고, 내가 하는데 한번 해봐? 옆에서 부추기니까 해보고. 그런 것에서부터  일상에서는 쉽게 용기 내서 이룰 없는 것들을 여기서 해낸 거예요. 그러고 나니 남짓한 만남에도 서로 너무 친해져서 이후에도 만나려고 자꾸 뭔가를 만들고요"  -채민-


해마루는 사람들을 깊은 곳까지 데려다 놓았고, 그들은 이제 뒷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해마루의 끝이 만든 이야기들은 앞으로 어느 시작과 닿게 될까.    

                                                                                                                                                       -혜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해마루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정열

해마루가 생긴 지는 좀 오래됐어요. 90년대 후반 교육 연극이 한창 붐이 일기 시작할 때 주로 마당극을 했던 극단이나 그 주변에서 교육연극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어요. 교육 연극이라는 것이 저희가 극단에서 이미 하고 있었던 활동과 닮은 면이 많아서 놀랐어요. 우리가 하던 건대? (웃음) 라는 자부심도 가지게 됐고요. 아무래도 서양에서 들어 온 것이다 보니 온전히 수용하기에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고, 부족한 우리 문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개선하는데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동의했거든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과천에 자리 잡으면서부터였어요.

 

혜진

과천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정열

과천 축제가 있잖아요? 제가 몸담고 있던 극단의 대표님께서 과천 축제의 예술 감독님으로 계셨어요. 그분을 따라 하나, 둘 여기 와서 작업을 하게 됐고, 다양한 시민들과 공연 만들기 작업을 하면서 마당극제에 참가했죠. 처음에는 과천이 낯설었어요. ‘아니, 이렇게 조용하고 촌스러운 동네가 있나?’ 했는데, 작고 예쁜 매력에 빠졌어요. 이런 작은 소도시에서 그렇게 큰 축제를 한다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그때는 축제 때가 되면 전국에 있는 예술가들이 다 모였어요. 늦은 밤까지 술 마시고 노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던 때였죠. 그렇게 자리를 잡은 후에는 공연보다는 문화예술교육을 해왔고요. 과천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등지에서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놀이, 연극 만들기, 참여형 공연, 지역특성화 사업을 해왔습니다. 꿈다락 사업은 잘 안 했어요. 토요일에 일하기 싫어서. (웃음)

 

혜진

선생님의 소개도 짧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열

다 안되었나요? (웃음)

 

혜진

단체의 소개였던 것 같아서요.

 

정열

저는 박정열입니다.

 

일동

(웃음)

 

충현

방금까지 말씀 하신 것이 박정열 선생님의 정체성이신가요?

 

정열

뭐, 거의 그럴 것 같아요.

 

충현

훌륭한 대표님이시네요.

 

은미

네, 그런 여자예요, 그런 여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여자죠.

 

채민

저는 해마루를 좋아하고 이번 프로그램을 같이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단체의 대표이기도 해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고, 전에는 무대 디자인 쪽 일을 했었는데 몸이 받쳐주지를 않아서 그만두고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미술 전공자분들과 저희가 받아온 미술 교육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게 됐고, ‘우리는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타이틀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게 됐어요. 다들 창작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한번은 자비로 과천 시민회관을 빌려서 대범하게 전시를 했었어요. 저희의 작품, 아이들의 작품들을 같이 전시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고, 과천에서 어린이 축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부리나케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죠. 그 후로 서울권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경기도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요. 

 

정열

하다 보니까 공통점을 발견했어. 단체 대표이다 보니 자기 소개가 아니라 단체 얘기만 해. 자기 얘기를 해, 자기 얘기. 누구야!

 

채민

그게 나더라고. 그 안에서 사니까 그 일이, 나야.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면 그 단체가 나는 아니겠지만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까 단체가 나인 거야.

 

정열

맞아요. 진짜, 단체가 나야. (웃음) 평화와 환경에 관심이 많으시고요. 어린이를 사랑합니다. 제가 아는 정채민입니다.

<단체가 곧 나인 정열과 채민> 

명은

저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은 입니다. 90년대생이고요. 우리 박정열 대표님이 계셨던 극단이 아주 컸었고, 그 중에 문화예술교육 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으세요. 저도 배우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시간 강사나 보조강사 일을 많이 하면서 선생님의 후배분을 만나게 된 거죠. 그 인연으로 제가 정열 선생님한테 치대가지고. (웃음) 같이 작업한 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공연을 같이 하기도 하고요. 정열 선생님 저렇게 조용하시지만 공연에서는 춤추시면서 펄쩍펄쩍펄쩍 뛰어다니세요.

 

일동

(웃음)

 

명은

매일 너무 신기해하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저도같이 펄쩍펄쩍 뛰면서요. 전통 연희는 몸짓이랑 호흡이 참 다르고 어렵더라고요.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또 같이하시는 분들과 나이 차이가 20년 넘게 나다 보니 생활의 지혜나 삶의 지혜도 얻어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은미

네, 저는 이은미라고 하고요. 문화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스물네 살에 소극장 기획실에서 일하면서부터였어요. 거기서 만났던 선생님들을 존경했고, 많이 배웠고,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지만, 저도 몸이 받쳐주지 않아서 더 오래 할 수가 없었어요. 그 후에 꿈이었던 무용을 뒤늦게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삶을 다급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빨리, 열심히, 잘 해야 돼’를 30년 동안 되뇌면서요. 그게 지금까지 습관이 되어서 피곤하고, 아프고, 힘들어도 잘 쉬지 못해요. 아직도 그 연결된 삶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정말 일하기가 싫고, 놀고 싶어요. 언제 시골에 내려가나, 그 생각만 하고 있어요. 아파트 대출은 갚아야 되고 애들도 키워야 하니까 7년만 딱 이렇게 살자, 7년 후에 후회가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모든 걸 다 쏟고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자연인으로 살자, 이런 마음이에요.

 

혜진

어떻게 해마루를 만나게 되셨나요?

 

은미

예전에는 제가 안무가이자 대표이자 기획자로 모든 것을 하는 1인 시스템으로 일했었는데, 해마루 연출하시는 분을 만나서 안무만 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작품이 다 너무 좋아서 만족하기도 했고,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하니까 내 작업이 아니더라도 재밌더라고요. 그러면서 정열 언니와도 오랜 시간 이어오게 됐어요. 이제 저는 무용인이나 안무가라는 말도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런 건 다 내려놓았으니까요. 그래서 누가 직업이 뭐세요? 라고 말하면 답하기가 힘들어요.

 

정열

그냥 예술가, 그러면 되잖아.

 

은미

예술가, 아 그렇게? 근데 또 예술가는 너무 거창한 거야. 그 옛날에 치열했던 나와는 너무 많이 달라져서 예술가라는 말이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에요. 어쨌든 지금은 생활인이에요. 예술을 조금 하는 생활인.

  
💭 과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여러분께서 요즘 관심을 두고 있으신 과천의 이슈는 무엇이 있나요?
<과천의 한 숲 속에서> 

명은

저는 인천 출신이라 과천이라는 지역은 3년 전에 처음 와보게 되었어요. 여기는 뭔가 소박하고 아담했어요. 산에 둘러싸여 있는 조그마한 동네여서 <웰컴 투 동막골>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하루는 제가 양재천을 한 30분을 걷다가 뙤약볕에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아니, 과천 주변에는 산도 많은데 양재천에는 나무가 너무 없더라고요. 자연경관은 아름다운데 사람 사는 곳은 자연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그런 것들을 요즘 유심히 보고 있어요.

 

충현

자연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명은

네. 나무도 그렇고 들꽃도 좋아해요. 이거 말하고 싶었는데. 제가 예쁜 편은 아니잖아요.

 

일동

(웃음)

 

명은

전 제가 지금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제가 김태희처럼 예쁘진 않잖아요. 저다운 예쁨은 있는데. 근데 어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세상에는 많은 배우가 있다, 장미나 백합 같은 배우도 있지만 그냥 지나가다가 어, 너무 예쁜 들꽃이다! 하면서 보게 되는 매력적인 배우들이 있다고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들꽃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누군가

(딸꾹)

 

명은

오글거려요. 선생님? 끊으신 거죠? 그만하라고.

 

일동

하하하.

 

은미

잘했어, 잘했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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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하는 생활인 은미와 들꽃 명은> 

정열

저도 양재천에는 왜 나무가 없을까 궁금하긴 했었어요. 예전의 과천처럼 고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주목했던 이슈는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문화나 시민 네트워크들도 같이 파괴되었다는 거였어요. 공동체들이 거의 와해되었죠. 여러 가지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시민 정치에 관심을 뒀던 분들도 많이 떠났고요. 문화예술과 관련해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앞으로 구 주민보다 신 주민들이 많이 유입될 과천에서 어떤 식의 자기 문화 정체성을 가져가야 하는가, 공동체는 어떻게 다시 만들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요. 그냥 알음알음 또 만남을 시작해야지 뭐,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밑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어요. 예전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열심히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요.

 

채민

제 입장에서 요새 과천의 이슈는 2년 동안 하지 못했던, 26년의 역사를 가진 과천 축제라고 생각해요. 공백이 된 2년 동안 여러 가지 일도 있었고, 새로 이사 온 주민들 많아져서 여러모로 달라졌거든요. 과천 주민들이 신축 아파트 문제가 아니라 과천 축제로 다시 모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또 축제라는 문화예술의 장에서 서로 어떤 모습들을 보게 될까 궁금해요.

💭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떤 순간에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발길 따라 피어나는 수다> 

정열

과천이라는 지역이 이전과 많이 다르고, 오래 살던 사람들은 너무 빨리빨리 변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사실 제 얘기예요. (웃음) 예전에 살던 사람들과 새로 이주해 오신 분들이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그리고 이게 어우러져서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과천은 이런 곳이야, 하면서 같이 공간들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예술 작업을 했고요. 그 장소와 과거, 현재의 삶을 연결해서 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했어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내용은 제목 그 자체예요. ‘발길 따라 피어나는 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 

혜진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정열

저는 다른 분들이 제가 듣기에 힘든 이야기를 해 주실 때 저를 많이 수정해요. 그걸 통해 제가 간과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고, 제가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과정으로 삼고요. 인생에서도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나한테 왔을까, 당시에는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릴지언정, 그걸 다시 봤을 때는 아, 이래서 나한테 왔고 나는 또 이런 걸 알게 되었구나 싶어요. 그래서 나이 드는 게 성숙해 지는 과정이 되니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명은

저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참여자분들이 보통 5, 60대이셨고, 젊은 분들이 40대셨어요. 그분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저의 시선과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저를 꼬박꼬박 명은쌤이라고 불러주시기도 하고, 젊은이들이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넓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어요. 저와 제 친구들만 봐도 당장 내일이 급급한데, 청년들을 많이 생각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사랑을 배운 것 같아요.

 

채민

저는 예술이 일반인을 상대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힘들게 하지 않고 즐겁게 하려면 가볍게 가야 하는데, 그 가벼움이 가지는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이 프로그램은 깊이 들어가더라고요.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그 깊이까지 내려가기 힘들지 않을까, 저는 내심 조바심도 났어요. 그런데 그렇게 깊이 내려가니까, 그 깊이에서 오는 뒤가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만났던 사업에서는 그 뒤, 그 이후가 없었거든요. 여기는 뒤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마음을 내놓고 어떤 떨림으로 뭔가를 이루어내고, 내가 못 하는데 한번 해봐? 옆에서 부추기니까 한 번 해보고. 그런 것에서부터 일상에서는 쉽게 용기 내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여기서 해낸 거예요. 그러고 나니 열 번 남짓한 만남에도 서로 너무 친해져서 그 이후에도 만나려고 자꾸 뭔가를 만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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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꽃 1기를 마친 분들은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그 모임의 첫날>

명은

마지막 날 서로 악수하면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한 사람 보고 넘어가서 다음 사람 보면서요. 저도 울고, 다 엉엉 울고 그랬어요.


충현

그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었나요?

 

채민

아니, 짜내시더라고요.


명은

(웃음) 아니, 아니, 아니에요~

 

충현

뒤에서 막 꼬집고 놀리고 그런 거예요? (웃음)

 

명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참여자분께 물어봤는데 그냥 해보면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채민

프로그램을 함께한 강사님들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하면 내 일은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분들이 모여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웃음) 다들 너무 깊고, 열정적이고, 마음이 예쁜 사람들이 모여버렸죠. 그래서 이 감정과 에너지와 창작열을 끌고 가신 것 같아요. 저는 아, 힘들다 이 과잉. (웃음)

 

정열

그래서 많이 배웠다는 얘기죠? (웃음)

 

명은

누구에게는 힘들다.

 

일동

(웃음)

 

은미

저도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참여자분들의 역량에 놀랐어요. 그럴 만한 분들이 와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게 열두 명이 모두 감동스러울 건 아니었을 거잖아요. 개중에는 별로인 사람도, 그냥 그렇네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매회 너무 감동해서 일주일 내내 완전히 빠져서, 그다음 주를 기다리면서 불타오르는 자기 정열과 에너지를 관리하다 오시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제가 알기로는 최소 세 분? 일주일을 이것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요. 그런 걸 보면서 예술의 힘이 참 크구나. 사람들을 오롯이 빠지게 해서 다른 것도 안 보이게 하고요. 이 감흥을 잊기 싫은 거죠. 매일 생각하고 그림 걸어놓고 매일 보면서요. 이게 체험으로 끝났다면 절대 이렇게 못 갔을 거예요. 창작의 고통까지 겪어보고 그걸 해내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그 압박 속에서도 같이 온 거죠. 긴 시간 해마루에서 일을 했지만 정말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서 감사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동료들과 선배님께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고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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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소개해주세요.

은미

자기다운 옷을 입고 와라, 이런 표현을 보면서 참 젊은이들이구나. 어우 나 진짜. 인터뷰하러 오는 이들이 20대야! 딱 느꼈어요. 50대한테 무슨 나다운 옷을 입고 오래, 가당치 않은 질문을. 이러면서. (웃음)

 

일동

(웃음)

 

혜진

같잖은, 가당치도 않은 질문을 저희가 만들었어요. (웃음)

 

명은

멋있어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이건 플라스틱을 재사용해서 만든 비건 바게트백이예요. 남자친구가 선물 해줬어요. 제가 관심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너무 흔쾌히 따라주고 선물해줘서 마음이 따뜻해지고는 해요. 이 손뜨개 옷은 친구가 한 달을 걸려서 떠준 거고, 이 바지도 당근 마켓에서 샀어요. 샀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수선을 했어요.

<환경을 생각하는 명은의 사랑둥이 룩>

은미

저한테 옷이 왜 가당찮은 질문처럼 느껴졌냐 면요. 저는 어떻게 하면 옷을 안 사고 일생을 마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자신 다운 옷이 뭐지? 라는 질문에 제가 잘 도달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1년에 정말 옷 한 벌, 두 벌? 속옷은 사야 하니까 할 수 없이 사는데 그것 말고는 산 기억이 없네요. 이 바지는 제가 손바느질 한 건데요. 동네에 손바느질하는 분이 기술을 알려주셔서 만든 거예요. 재료비는 6천 원 냈던 것 같아요. 제가 화장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명은 선생님처럼 환경 운동 때문이에요. 화장도 그렇고 선크림도 잘 쓰지 않아야 하는데, 얼굴이 너무 까매지니까 선크림까지는 좀 어렵더라고요. 환경을 생각하는 샴푸와 린스 쓰기, 일회용품 안 쓰기, 음식 쓰레기 안 만들기, 나온다면 텃밭에 버리기. 이런 소소한 실천들을 하고 있어요.

 

충현

저도 최근에 조선 히피들이 모여있는 지속 가능한 옷을 위한 페스티벌에 다녀왔는데, 저만 기성복을 입고 있어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때 서로의 옷에 관해 얘기하면서 나도 올해까지는 새 옷을 좀 안 사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은미

이렇게 바지 하나 만들어 입어보세요.

<소소한 실천가 은미의 멋진 바지>

충현

그런 워크숍도 참여했었는데, 저는 긴 치마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근데 못 했어요. 귀찮기도 하고, 셔츠를 자르는 게 잘 안되더라고요. 이거 언제 또 입지 않을까 싶은 미련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요.

 

혜진

저도 옷을 정말 안 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오늘 입고 온 이 옷이 저희 어머니가 저 어렸을 때 입으셨던 옷이에요. 잠깐 입었다가 장롱에 넣어 놓으셨겠죠. 저는 엄마 옷장 뒤지는 걸 좋아해요.

 

채민

사람마다 옷에 대한 생각이 다를 텐데, 저는 옷을 좋아합니다. 아이들하고 만날 때, 좀 더 밝고 예쁜 옷을 입고 있으면 더 좋은 수업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에게도 밝은색이 테라피가 되기도 하고요. 오늘 입고 온 옷은 아주 편한 옷이에요. 이 옷의 특징은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바람이 불면 펄럭거리면서 풍향계처럼 바람의 방향을 알려줘요.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이 옷이 저 대신 바람을 느껴주는 것 같아서 좋아해요.

<채민의 풍향계, 원피스>

정열

저도 뭐가 잘 어울릴까 고민했어요. 이 옷은 한 15년 정도 전에 샀는데 유행을 안 타서 계속 입고 있어요. 하늘하늘하고 부드럽고, 배도 가려주고. (웃음) 개량한복 같은 이 바지는 누군가에게 받은 옷이에요. 이 스카프는 예전에 생활문화 플랫폼 사업하면서 염색한 거고요. 저도 옷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어서 잘 안 사기는 하는데 가끔씩 지를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어울리는 옷이 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서요. 몇 년 동안 안 샀으니까 나를 위해 한 번쯤 사보자, 할 때 한 번씩 사는 것 같아요. 근데 주로 입던 옷을 입게 되긴 하더라고요.

<한 마리 나비 같은 정열>
💭 여러분은 예술을 통해 먹고살만 하셨나요?
<해마루가 나누어 준 따뜻한 음식과 차>

정열

그냥 목숨만 연명합니다. 하하. 먹고살 만한지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저는 도시 영세민보다 더 가난하거든요. 근데 저는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 가난에 대해 절망했던 때가 있었는데, 제가 아들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자각했을 때였어요. 너무 목돈이 들어가는 거죠. 그럴 때 나 진짜 가난하고 가진 거 하나도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살고 있니? 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채민

저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열

돈 잘 벌어요! (웃음)

 

채민

서울대 학생 운동을 하던 남편을 만나서 제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정열

가장이 됐습니다. (웃음)

 

채민

저는 책임감이 좀 강한 것 같아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돈을 잘 법니다. 그게 저의 예술적인 어떤 것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어서 협동조합 활동을 해요. 제가 가진 열정을 표현하고 싶어서요. 아이들 교육만 했으면 저는 못 살았을 거예요. 거기서 오는 일의 고통이나 힘듦을 협동조합에서 덜어내죠. 조합 활동이 저의 생계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사는 방식은 그렇습니다. 돈 벌 때는 확실히 벌고, 하고 싶은 일은 또 확실히 하는. 욕심쟁이 같네요.

 

은미

젊었을 때는 힘들게 바짝 벌어 보기도 했어요. 근데 그렇게 살면 죽어요. 몇 년을 하겠어.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가볍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같은 일을 20년 이상 해오니까 직업을 바꾸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가끔 꿈을 꾸면 제가 식당을 차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요리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제 일이 춤을 추면서 누군가에게 영적 양식을 주는 일이라는 상징이 아닐까 해요. 이 일을 완전히 때려 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어떻게 더 생산적으로, 즐겁게, 행복하게 하느냐에는 여전히 질문이 있어요. 돈의 액수 같은 건 다 의미 없고,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명은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들었던 말은, 순탄치 않다는 거였어요.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는데 돈 못 버는 게 무슨 어려움이냐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라왔고요. 아버지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제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예술 창구도 많이 생겨서 이렇게 선생님들 따라다니고 예술 강사 하면서 먹고 살 정도는 돼요. 예전에는 방송 출연으로 한 달에 600만 원을 벌어 보기도 했는데, 제 인생에서 제일 큰 액수였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1년에 연극 공연을 서너 개 하는데 연봉을 따져보니 120만 원 정도 되더라고요.

 

정열

미안하다. (웃음)

 

명은

작품료로만요. 예술 강사로 번 돈을 빼면.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행복하고, 잘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정열

아까 은미 선생님이 말씀하신 영적 양식 이야기에 공감해요. 무엇으로 먹고사니? 라고 한다면 눈에 보이는 어떤 경제적인 물질로써가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라든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먹고 살아요. 같이 성장하는 거죠. 그런 보이지 않는 양식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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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행복합니다, 그래도.

 

정열

어쨌든 경제적인 건 국가가 책임져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빨리 예술인 기본 소득, 기본 주택들이 시행돼서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해요.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저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명은

밸런스 게임 이런 거?

 

충현

밸런스 게임을 하면 뭐랑 뭐가 비교되나요? 돈 vs 재미 이런 건가요?

 

명은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안전하게 1억 받기, 도박으로 30% 확률로 100억 받기, 뭐 이런 거요. 저는 그냥 안전하게 1억 받아서 비빔밥이나 사 먹고 그럴 것 같아요. 그런 게 궁금해요.

 

은미

저는 그냥 소감 말해도 돼요? 사실 오늘 청년들이 오는지 저는 몰랐어요. 인터뷰 질문지를 읽어보는데 어? 하면서 놀랐어요. 젊은이들이 오니까 신선하기도, 편안하기도 했고요. 먹고 사는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대놓고 같이 이야기 나눠 보니까 좋았고요. 호호

 

충현

감사합니다. 저희도 인터뷰하러 다니면서 그냥 동료를 만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같이 이야기하면서 저희가 위로받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요.

 

혜진

저희보다 선배님들의 이야기니까요.

 

정열

저희가 너무 절망을 드린 건 아니죠? 먹고 살기 힘들다는 둥.

 

충현

먹고 살기 힘든 거는 이미 저희가 작년부터 30팀 넘게 만나면서 잘 알고 있어요. 저희도 역시 그렇고요.

 

채민

애들하고 수업할 때 이 이야기를 자주 해요. 지구 망해. 곧 망하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삶이 길다고 생각하지 마, 즐겁게 살아, 라고요.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 즐거운 거, 열심히 하는 거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어쨌든 지구는 점점 망해가고 있으니까요. (웃음)

 

정열

심상치 않죠.

💭 해마루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정열

이런 걸 할 거야 보다는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고 싶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물질만 쫓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영혼, 정신적인 측면도 함께 가꾸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면서요. 그런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쏟아지는 햇빛 아래 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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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이충현, 해마루
  • 녹취록 작성: 김도연
  • 장소: 사단법인연극놀이터 해마루
  • 인터뷰 발행일: 202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