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즐거워 보이는 경숙과 송민 그리고 재호>
극단지금: 300회차요? 너무 재밌겠다 
* 인터뷰이: 곽경숙, 이송민, 전재호
* 인터뷰어 : 혜진, 충현
* 인터뷰 편집: 혜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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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보이후드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수많은 성장 영화들 속에서도 이 영화는 특히 빛난다. 이유는 시간에 있다. 6살 소년이 청년이 되기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담는다. 감독은 분장과 캐스팅 대신 기나긴 촬영 기간을 택했고, 매년 한 살씩 나이 먹은 배우들과 만나며 12년 동안 찍었다.

 

카메라는 한 소년의 세계를 덤덤하게 쫓는다. 진한 시간의 기록은 긴 여운을 남긴다. 배우도, 감독도, 스태프도 오랜 기간 함께한 이 영화는 결코 한 사람만의 성장일기는 아닐 것이다.

 

“300회차요? 너무 재밌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이 성장하는 거죠. 평생은 아니더라도 300회차, 10년. 괜찮네요.” - 경숙

 

극단지금도 긴 호흡을 고집하고 있었다. 이보다 훨씬 길어진대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결국 같이 성장하는 것이기에. 그들이 빛나는 성장의 순간들과 더 오래 함께하게 되기를, 짙은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남기를 바라본다.  

-혜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극단지금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재호

, 저는 극단지금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전재호라고 하고요. 극단지금은 2017년에 태어났어요. 극단지금이 만들어진 이유는 문화예술 강사, 연극놀이 강사, 연극치료사인 우리도 결국엔 예술가이기 때문에 무대가 그리워서였어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욕구들이 있었고요. 저희 연극은 상업연극과는 결이 조금 달라요. 자전적인 이야기,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무대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극단지금은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화예술교육 또한 참여자들이 새로운 관점을 가지길 바라며 기획을 하고 있어요.

 

경숙

저는 곽경숙이예요. 처음에 극단지금을 만들 때 불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치유 공연을 했었어요. 극을 만들기 위해서 배우 선생님들의 이야기나 불안을 밖으로 꺼내 보이기 위한 심리 치료적인 방법들이 필요했고, 제가 그때 합류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들과 이제는 문화예술교육도 같이하고 있어요.

 

송민

저는 이송민입니다. 원래 연극을 하다가 연극 치료에 관심이 생겼어요. 여기(곽경숙) 선생님께 연극 치료를 배우고, 연극놀이까지 배우다가 이렇게 같이 일하게 됐어요.


💭 극단지금은 '누구나 자기 삶의 아티스트이며, 예술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극단지금이 생각하는 삶의 아티스트는 어떤 모습인가요? 또 예술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까요?
<극단지금이 생각하는 삶의 아티스트란?>

경숙

저희가 생각하는 삶의 아티스트는 나를 조금 더 심도 있게 생각하고, 나의 관계나 일상을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들이 예술을 통해서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하나 던져주고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라고 하면, 제가 무슨 소리를 하나 할 거예요. 근데 이걸 주제로 우리가 연극을 만들어 볼 건데 스토리를 만들어볼까? 하면 어렵다고는 할 수 있지만 무슨 소리야 까지는 아니겠죠. 이렇게 사소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시작이 예술이 될 수 있잖아요. 예술을 매개로 우리가 조금 더 사유하고 고민해서 그것들을 표현해낸다면 아티스트가 되는 게 아닐까 해요. 대단하게 멋있는 뭔가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요.

 

재호

일상에서 나오는 모습들인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 연극을 할 때, 저희가 발성을 알려드리거든요. 그런데 그냥 그들 본인의 목소리가 저희가 알려드린 것보다 훨씬 멋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목소리, 표정 그리고 몸짓들에 예술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굳이 그게 밖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인 거죠.

 

혜진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게 도와주시는 역할을 하고 계신 거죠.

 

재호

네. 원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끌어낼 수 있게 옆에서 그냥 도와주는 거죠.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건. 송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송민

저도 선생님들 이야기랑 크게 다른 이야기는 아닌데요. 아티스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나의 삶을 창조하려면 어쨌든 내 안에 있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건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활동은 나로부터 시작이 되고요.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 무언가 만들어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예술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 삶의 아티스트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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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생각을 숨겨왔던 송민>

경숙

멋있다. (웃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네요.

💭 꿈다락토요문화학교를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재호

우선 청소년들과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함께 봅니다. 거기서 이야기들을 끌어내서 아이들이 그 이야기들을 조금 바꿔보게 할 거예요. 그렇게 아이들의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들을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요. 스토리라인을 잡고, 대사를 만들고, 역할도 정하고, 소품도 준비해서 마지막에 창작극을 올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충현

예를 들어 주실 수 있나요?

 

경숙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한다면 오베론의 숲에 아이들이 갑자기 떨어지는 거예요. 원작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했다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들만의 문제를 해결해야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 빠져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원작에 있는 인물들의 성격을 바꾸기보다는, 그 상황이나 구조를 가져와서 아이들을 투입하는 형식인 거예요.

 

충현

세계관을 가져오는 거군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준비 과정> 

경숙

예. 그래서 긴 호흡으로 한 15회차까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을 계속해요.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작품을 가지고 오고, 그 세계관에 이야기를 담아서 공연을 올리는 거죠.

 

충현

총 몇 회차예요?

 

경숙

30회차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해서 6개월 정도 걸려요. 호흡이 길어요.

 

충현

진짜 엄청 긴 호흡이네요. 제가 만났던 팀 중에서 제일 길어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경숙

저희 심사할 때 첫 번째 질문이 “30회차가 흥미로운데요. 괜찮으신가요?” 였어요. (웃음)

 

재호

저희는 사실 모든 문화예술교육을 긴 호흡을 진행하고 있어요.

 

충현

나중에 막 300회차 이렇게 하고 싶어지시는 거 아닌가요? 약간 일생을 함께하는 교육으로..

 

경숙

너무 재밌겠다. 진짜 재밌겠어요. 제가 다른 데서 2년째 만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이 성장하는 거죠. 평생은 아니더라도 300회차 괜찮네요.


충현

이걸 이렇게 받아주실 줄은 몰랐네요. (웃음)

 

경숙

(웃음) 너무 좋은데요?

 

재호

300회차 의미 있네요. 10!

 

충현

보이후드라는 영화 아세요? 6? 8? 정도 아이의 이야기인데 실제로 12년 동안 영화를 찍어요. 1년에 3-4일씩 촬영을 하고, 그게 압축되어서 한 아이의 성장이 그려진 영화가 되거든요.

 

경숙

보이후드! 유명했어요. 맞아. 보고 싶었어요.

 

충현

되게 좋아해요. 그 영화. 회차가 길면 두렵지는 않으세요?

 

경숙

예전에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기수를 세 개로 나눠서 하기도 했거든요. 근데 기간이 짧으니 아이들한테 뭘 주고, 같이 호흡하고, 성장하는 느낌은 아닌 거죠. 그래서 차라리 그렇게 하느니 그냥 우리 거 고집하자. 이제는 희소성이 있기도 하고, 30회차 매력 있다고 힘을 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지금은 자부심을 갖고 있달까? (웃음) 같이 성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경숙

저희가 작년부터 만나는 친구들 중에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전까지 개인적으로는 장애 아동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에 코다라고 그들의 형제자매도 같이 들어와요. 근데 애들끼리 노는 걸 보니까 그 아이들도 그냥, 애들인 거예요. 그냥 애들인데 제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나친 친절함을 베풀려고 했던 거죠. ‘과잉 친절은 오지랖이다라는 말을 (웃음) 다시 한번 떠올렸어요. 오히려 그들에게 제가 불편함을 줄 수 있겠구나 하고요. 사람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맺을 때도 과잉 친절로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재호

저는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을 달고 살거든요. 수업을 할 때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어 라고요. 제가 원래 그랬던 건 아니라 참여자 친구 중 한 명이 ‘그럴 수 있어요’를 달고 사는 거예요. 저희가 그거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러면 ‘그럴 수 있죠, 왜요?’ 이렇게요. 20회차를 그러고 다니는 거예요. 근데 제가 맨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했는데.

 

충현

로봇 아니에요 로봇? 그럴 수 있죠 로봇?

 

일동

(웃음)

 

재호

그래서 그 친구가 왜 자꾸 그 말을 할까 고민을 해 봤는데, 정말 그럴 수 있더라고요.

 

경숙

으하하

 

재호

예를 들어서,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데, 제가 흔히 말하는 꼰대 마인드로 ‘아 어떻게 그게 돼~’ 이렇게 얘기를 했던 거죠.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는 상황들이 많다 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모든 수업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 그럴 수 있다고! 안 되는 게 어딨냐고, 어차피 연극이고 상상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요. 그러면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그 친구한테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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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늘을 나는 다람쥐가 보입니다. 그럴 수 있죠?>

혜진

그럴 수 있습니다.(웃음)

 

경숙

네, 그럴 수 있습니다.(웃음)

 

송민

저도 최근에 가장 크게 느꼈던게 청각장애 아동들을 만나면서였어요. 사실 저는 그런 친구들에 대한 편견조차도 없었어요. 아예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 친구들을 반 년동안 만나다 보니까 이제서야 제 주변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이라 던지, TV프로그램에서 수어로 통역하는 분들이요.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씩 새롭게 보일 때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누구나 ''적인 상황을 즐기고 표현할 수 있다는 인간의 유희 본능설을 믿는다고 하셨어요.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처음으로 극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한데요. ''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경숙

연극 치료나 놀이에는 정확한 단계가 있어요. 체현, 투사, 역할 단계요. 먼저 몸을 움직이면서 풀어주고, 투사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해요. 그리고 극적인 상황 속에서 역할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하죠. 이 예열을 위한 단계들은 정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이 30회이기도 해요. 이 단계를 다 거치려면 30회 정도는 만나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극적 상황에 몰입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혜진

체현에서 몸을 푼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몸을 푸는 건가요?

 

경숙

놀아요! 연극으로 말하면 마임적 요소겠죠? 어떤 대상이 되었든 몸놀이 활동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 극적인 상황을 추가해요. 예를 들면 전통놀이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극적 상황과 마임을 집어넣는 거예요. 강사가 무궁화꽃이 곰이 되었습니다하면 참여자들은 곰을 몸으로 표현해요. 그러면 강사들이 직접 가서 어떤 곰을 표현한건지? 곰은 무슨 색깔인지? 그 곰은 어디에 사는지? 이런 식으로 연극적인 요소들을 넣어주는 거죠. 그러면 참여자들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극적인 상황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죠.

<신문지 놀이로 몸을 풀고 있다>

경숙

연극 치료나 놀이에는 정확한 단계가 있어요. 체현, 투사, 역할 단계요. 먼저 몸을 움직이면서 풀어주고, 투사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해요. 그리고 극적인 상황 속에서 역할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하죠. 이 예열을 위한 단계들은 정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이 30회이기도 해요. 이 단계를 다 거치려면 30회 정도는 만나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극적 상황에 몰입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혜진

체현에서 몸을 푼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몸을 푸는 건가요?

 

경숙

놀아요! 연극으로 말하면 마임적 요소겠죠? 어떤 대상이 되었든 몸놀이 활동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 극적인 상황을 추가해요. 예를 들면 전통놀이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극적 상황과 마임을 집어넣는 거예요. 강사가 무궁화꽃이 곰이 되었습니다하면 참여자들은 곰을 몸으로 표현해요. 그러면 강사들이 직접 가서 어떤 곰을 표현한건지? 곰은 무슨 색깔인지? 그 곰은 어디에 사는지? 이런 식으로 연극적인 요소들을 넣어주는 거죠. 그러면 참여자들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극적인 상황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죠.

 

혜진

그렇군요. 재호 선생님은 10년 전에 경숙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군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로 처음 연극을 접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재호

(웃음)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 단계를 천천히 밟았던 것 같고, 어느새 저도 모르게 무대에 서 있더라고요. 저는 단계를 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사와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놀고 뛸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경숙

또 저희 선생님들끼리 늘 다짐하고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참여자에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공부가 되면 안 되고,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죠. 그래서 저희가 참여자들이 재미있을 수 있게 계속 유도해요. 수업 끝나면 진이 빠지죠. 하하하

 

충현

말이 쉽지 쉬운 일은 아니죠. 송민님은 연극을 하시다가 문화예술교육을 하게 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 연극도 이런 단계들을 거쳐서 준비하나요? 상업극과 문화예술교육에서의 연극의 차이들이 있을까요?

 

송민

일단 배우들끼리 하는 연극은 연습 기간이 굉장히 짧아요. 한 두 달 만에 올라가는 공연들도 많고요. 또 상업적인 연극에서는 관객이 중요해요. 관객 중심의 연극을 하기 때문에 사실 배우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연출이 연극을 만들어주니까요. 근데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철저히 배우(참여자) 중심이고 배우들끼리 즐겁고 재미있게 경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강사도 재미있다는 거예요. 상업극은 이렇게까지 재미있진 않아요. (웃음)

💭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인하여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 분 모두 문화예슐교육강사 혹은 심리치료전문가로서 타인의 마음을 밖으로 꺼내 보이고 치유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자신의 힘든 시간은 어떻게 통과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두운 마음에서 한 발짝 빠져나오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인가요?

경숙

예전에는 지도 교수님께 찾아가서 내담자 치료를 받으면서 대화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안 하게 되었어요. 중이 제 머리 깎고 있었던 거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싶으면 저 나름대로 해소할 수 있는 재밌는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게 교육에 관련된 문제라면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선생님들과 얘기를 많이 해요. 고인 물인 제 생각과 안고인 물인 선생님들의 생각들이 섞이면서 조금씩 해결해 가는 편인 것 같아요.

 

혜진

선생님만의 재밌는 방법 중 하나는 무엇이 있나요?

 

경숙

저는 한증막을 되게 좋아해요. (웃음)

<한증막을 되게 좋아하는 경숙>

혜진

한증막이요? (웃음) 한증막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경숙

여성 전용 한증막 안 가보셨어요?

 

혜진

네..

 

경숙

150도 정도가 넘는 불가마예요. 전기 말고 불을 때는. 그래서 쌀 포대를 쓰고 들어가야지 버틸 수 있어요. 쌀 포대 중에도 짚으로 만든 두꺼운 거 있잖아요. 그거를 2개 정도 덮고 들어가야 버틸 수 있는데, 그 시간이 1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왜 사람이 죽기 전에 필름이 스쳐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웃음)

 

혜진

너무 뜨거우니까..

 

충현

죽음 체험을.. (웃음)

 

경숙

그 순간 내장에 있는 땀까지 다 나오는 기분이에요. 뜨거운 데와 찬 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근육을 이완하고 수축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어요. 한증막을 가야 할 시기가 왔어요 지금.(웃음)

 

재호

저는 수업할 때 별명이 이거든요.

 

충현

어떤 색 곰이세요?

 

재호

(웃음) 아직 색깔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겨울잠을 자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방전되고, 의욕도 하나도 없어지면 동굴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골똘히 생각을 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잡생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다시 눈을 뜨고 나와요. 그래서 주변 사람이 힘들어할 때가 있어요.

 

혜진

(웃음) 경숙 선생님께서 절레절레하시는데요.

 

재호

(웃음)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고 생각을 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요. 차를 타고 나가서 찍고, 돌아와서 사진을 올려요. 제가 사진을 올리지 않을 때는 마음이 편안한 상태인 거예요. 근데 갑자기 사진이 올라간다? 그러면 마음이 안 좋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풀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송민

저는 오히려 동굴에 들어가는 것과 반대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뭐가 힘든지 이야기를 해야 돼요.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들을 많이 찾게 되고,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단순한 편이라서 힘든 일이 있어도 오래 가지 않거든요. 그렇게 빨리빨리 풀어내는 것 같아요.

 

경숙

건강한 것 같네요.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대상 또는 순간이 있나요?
<재호에겐 집처럼 편안한 자리>

재호

저는 저희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고 집 같아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전자기기부터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가 되어 있어요. 옆에 냉장고도 있어요.

충현

냉장고도 갖고 오셨어요? (웃음)

 

재호

. 거기에는 제 전용 음료수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카페이자 술집을 하는 것이 목표라 미리 한 번 해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더치 커피를 내리고 있어요.

<극단지금 카페 사장 재호의 냉장고>

경숙

덕분에 우리는 좋잖아. (웃음) 더치 커피 맛집이에요. 오시는 분들도 드리고, 저희도 주시고요.

 

송민

, 엄청 맛있어요.

 

충현

좋네요.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계신 거네요. (웃음)

 

송민

저는 집 안에서도 제 방이 제일 편한 것 같아요. 취미가 자수 놓는 거라, 문 닫아놓고 유튜브 보면서 자수를 놓는 시간이 항상 기다려져요. 밖에서도 힘든 일이 있으면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자수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웃음)

<송민은 자수 중독인 듯 하다>

충현

자수의 매력이 뭐예요?

 

송민

제가 하는 만큼 결과물이 빨리 나온다는 희열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공부가 막연하고 언제까지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런 불안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자수는 제가 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고 예쁘기도 하고요.

 

경숙

자수를 하는구나.. (웃음) 저도 원래 집에서도 제 방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차가 조금 더 편하기도 한 것 같아요. 멍때리고 널브러져 있는 장소면 집 침대겠지만 무언가를 사유하는 장소는 차 안이에요. 목적지 정하지 않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운전하면서 생각 정리를 많이 해요.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고요  

<머리가 복잡할 땐 드라이브를>

충현

요새 기름값이 좀 비싸잖아요.

 

경숙

네. 그게 제일 걱정이죠. 그래서 차가 안 막히는 새벽 시간에 다녀요. (웃음) 연비를 올려야 되니까요.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경숙

저는 한 끼를 먹어도 맛있는 걸 먹어야 일할 맛이 나요. 저희 일이 생각할 것도 많고 아이들과 수업하려면 체력도 강해야 하는데 컵라면에 삼각김밥 먹자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고, 연극쟁이들은 라면만 먹는다. 연극하려면 포스터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돈이 어딨느냐, 이런 얘기를 정말 안 좋아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데 있어서 나의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걸 당연시 여기는 그 문화가 꼴 보기 싫었고요. 재능기부라는 단어도 정말 별로예요. 그 재능 기부는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이 만든 말이 아니고 재능을 기부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만든 그럴싸한 말이잖아요. ‘너의 재능을 기부해줘’ 이거잖아요. ‘내 재능을 기부할게’가 아니라요. 그렇다 보니까 먹는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잘 먹어야 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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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

저도 잘 먹어야 하는데 살짝 강박이 있어요. 연기할 때 항상 다이어트를 강박적으로 하던 버릇이 있어서 맛있는 걸 먹어도 백 퍼센트 온전히 느끼기가 힘들어요. 예술을 통해서 먹고살 만하지 않죠. 제 동료들만 봐도 연극으로 무대에 서려면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니까요. 미국이나 브로드웨이에서는 앙상블만 해도 제대로 된 급여나 연습 페이를 받고, 그런 문화들이 정착되고 번지기 시작하는데. 한국은 굉장히 안타깝죠. 그래서 한국에서 그런 연극 예술이 제대로 정착하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재호

저는 그냥 배고프면 먹는 느낌이고, 혼자서는 잘 안 먹어요. 밥 먹는 행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까 동굴 이야기를 했듯이 프로그램하면서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한가해지는 12월에서 2월까지가 가장 힘들어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딱 그 비수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충현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진짜 슬픈 것 같아요. 예술은 자유롭게 표출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어떤 시스템에 맞춰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잖아요.

 

경숙

맞아요. 매년 불확실하고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셋>

충현

세 분 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시네요.

 

경숙

저는 정형화됐지만 편안한 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에티튜드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예의를 갖추면서도 그 안에 편안함이 있어야 하는 게 저는 제일 중요해요. (웃음) 사실 이렇게 치마는 잘 안 입기는 하지만 (작은 소리로) 오늘 사진 찍는다고 해가지고..

 

송민

저는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에요. 특히 새로운 사람들 만날 때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면 더 신경을 쓰고요. 집 앞에 편의점 갈 때도 웬만하면 화장하고 가고 싶어요. 옷도 밝고 화사한 걸 좋아해서 오늘 입은 옷이 저를 표현하는 복장이 아닌가 싶어요.

 

재호

저는 맨날 검은색 긴 바지에 남방을 입고 다녀요. 그리고 가방이 중요해요. (가방을 가리키며) 저 가방을 메면 힘이 나요. 처음으로 어디에 가거나, 첫 수업을 하거나,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무조건 저 가방을 메고 가거든요.

<재호의 애착 가방은 조금 무섭다>

혜진

애착 가방 같은 거네요?

 

재호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약간 당당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참여자 친구들은 가방으로 저를 기억해 주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 보고 싶나요?

재호

의식주 중에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요. 저는 주가 제일 중요하지만, 개인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니까요.

 

경숙

오늘 이야기하면서 다들 보릿고개에는 뭘 하고 지내시는지 궁금했어요. 그 시기에는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송민

저는 이 일을 왜 계속하고 계신지가 궁금해요.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요.  
<쉬는 시간의 극단지금>
극단지금 인터뷰:   300회차요? 너무 재밌겠다 .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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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이충현, 극단지금
  • 녹취록 작성: 엄희은
  • 장소: 의정부시 흥선 청소년문화의집
  • 인터뷰 발행일: 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