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지 않는 나는 뭐가 되지? [쓰레기통 옆에 있는 셸리. 상단에는 "책장 위 고양이 season 2", "2w. 버리고 싶은"이라는 문구가 기입.] 언젠가 지금 여기에서 과거의 언젠가와 미래의 언젠가를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졌던 기억들과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는 훗날의 어떤 시간들을 공유합니다. #37. 노래하는 사람 11월이면 정든 우리집도 안녕이다. 한남동에 있는 아메바 공동 작업실에 입주하게 되면서 근처로 이사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우리집은 계약을 마쳤고, 내가 들어갈 집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지금껏 스무 군데는 더 본 것 같은데, 아직까지 ‘딱 이 집이다’ 하는 집은 없었다. 오늘도 두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아무래도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일 하세요?” 집주인이 대뜸 묻는다. “아, 음 - 그런 것도 중요한가요?” “그럼요. 저희 집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집 아니에요. 전에 계시던 분도 교수님이셨고, 이번에 살다 나가신 분들도 다 잘돼서 나가셨어요. 터가 좋아서 들어오시면 대박 나실 거에요.” “아, 그렇군요…. 참, 여기 애완동물은 가능한가요?” “동물이요? 동물은 안 돼요.” “아쉽네요. 저희 집은 세 마리가 있어서. 잘 봤습니다.” 다들 잘돼서 나가는 터라기에 내심 욕심도 났지만 할 수 없다. 니뇨, 아모, 봄비는 내겐 자식이다. 내가 살기 좋은 집인지 만큼 그들이 살기 좋은 집인지도 중요하다. 아쉽지만 다음 집. 퍽 마음에 드는 구조에 멋진 옥상을 가졌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오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또다시 집주인이 묻는다. “근데,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아, 저 음악 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희 지금 세입자분도 음악 하는 분인데.” “그러네요. 음악 장비들이 있어서 놀랐어요.” “저분도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근데, 혹시 유명한 분이신데 제가 몰라보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잘 모르실 거예요.” 원래 다 묻는 건가. 이전까진 묻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보니 월세인 경우는 집세가 밀릴 수도 있고 해서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 전에 본 집의 세입자는 모델이었는데, 몇 달씩 세가 밀려서 주인이 머리가 아팠다고, 그래서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고 한다. 나도 프리랜서인데 -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직업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데 편리한 정보가 된다. 조카 가영이는 막 말을 시작했을 때 이모 두 명의 이름이 “예은”인 것에 혼란을 느꼈고, 우리는 둘을 구분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가수 이모”가 되었다. 직업이 이름이 된 것이다. 그맘때쯤 나는 가영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간 적이 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저, 정말 팬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모!” 하고 가영이가 신이 나서 달려와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모는 노래하는 사람이야!” 노래하는 사람.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깨끗해지는 문장이었다. 노래하는 사람…. 한 번도 나는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이었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가영이는 이모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뿌듯해했다. 나 자신을 가수라고 소개하는 것에 언제나 부끄러웠던 나는 그날만큼은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야.’ 그것만큼은 진실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유명한 사람, 유명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 같은, 뭐가 더 필요한 문구가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 것이다. 그런데…. ‘노래하지 않는 나는 뭐가 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열아홉 살에 데뷔해서 13년이 지났고, 그 전에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도 없어서 내게는 유일하게 가져본 직업이다. 열두 살 때부터 가진 꿈이고, 내 전부다. 가영이 엄마인 고은 언니는 나를 “가수 이모”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했다. 예은이가 언제까지 가수 할지도 모르는데 왜 직업으로 사람을 부르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많은 가수들이 무대를 떠나고 새로운 길을 찾는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까지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가끔은 다 버리고 싶다. 양양 바닷가 어딘가에 조그만 집 한 채를 짓고 매일 서핑하며 살고 싶다.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자존감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고 싶다. 인스타그램도 버리고, 사랑받는 나도, 사랑받지 못하는 나도 다 버리고 내가 나를 좀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음악이 좋다. 노래하는 게 좋다. 노래하는 순간을 버릴 자신이 없다. 언젠가는 - 내가 버리고 싶지 않아도 버려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버려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때 미련 없이, 아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내려놓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날이 아주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아주, 아주, 천천히. 핫펠트 작가의 말 요즘 ‘신박한 정리’ 라는 프로그램에 빠져 있습니다. 원래 뭘 잘 못 버리는 성격인데 열심히 버리고 있어요. 참, 9월 10일에 제 새 싱글 “La Luna”가 발매되었습니다. 시간 날 때 한번 들어주세요. 꾸벅 [검은색 반팔티를 입고 웃고 있는 핫펠트 작가] 셸리의 말 재밌지 않소? 작일 《에세이》에서 박종현 작가의 기타를 사랑하는 《찐빵》은 《무대에서 기타에 마이크까지 다 치워버리고 홀로 남아 춤을 추는》 몽상을 하였소. 그런데 금일 서한에서 핫펠트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소. 가끔은 다 버리고 싶지만, 노래하는 순간을 버릴 자신이 없다고. 그래도 버려야만 할 때 미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만 그날이 《아주, 아주, 천천히》 오면 좋겠다고 말이오. 나 셸리, 그대에게 보내기에 앞서 두 사람의 《에세이》를 읽어보며 음악을 하는 이, 무대에 오르는 이의 심성은 서로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일지를 생각하였소. 그러나 다시금 생각건대 이는 핫펠트 작가나 박종현 작가 같은 이들만의 일이 아닐 것이오. 기실 버리기 위해서는 지니고 있어야 하고,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말의 애착이나마 품고 있다는 것이니,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고, 버리기 싫어도 버려야 하는 이치가 어찌 두 사람에게만 속하겠소? 각설, 위 《작가의 말》에서 보이듯 핫펠트 작가의 새 《싱글》이 발매되었다 하오. 그간 내 서신에서 그대는 주로 글을 통해 핫펠트 작가를 만나온 바, 이제는 음악으로도 만나보는 일이 어떻겠소? 《뮤비》를 동봉하며, 이만 총총. 추신. 핫펠트 작가가 《뮤비》 촬영과 글쓰기를 병행하느라 제법 고생을 했다는 듯싶던데, 게시판에 들러 응원의 말을 남겨주는 게 어떠하오? 아래 《오늘 편지 어땠어요?》라는 《링크》를 누르면 게시판으로 이동하오. [단안경을 끼고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는 셸리] [단안경을 낀 셸리] 북크루 shelley@bookcrew.net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로 114, 현죽빌딩 805호 025665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