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 수업 사진>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 인터뷰: 마을, 사람, 돌고래
* 인터뷰이: 미정, 지나, 다혜, 민지
* 인터뷰어 : 충현, 소똥
* 인터뷰 편집: 충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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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응답하라 1997부터 1988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했다. 열광자의 나이대도 다양했는데, 그 시대를 경험했던 연령층이야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까지 드라마에서 어떠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닌데 그래서 더 왤까 궁금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의 미정, 지나, 다혜, 민지에게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물었고, 그들 모두 반짝이고 강렬했던 과거의 사건을 털어놓았다. 미정은 마을 사람들이 매일 저녁 제주도 바다 앞의 집에 삼삼오오 모여 하루를 나누고 춤추던 어린 시절을, 지나는 연극과 노래, 장기자랑 같은 행사가 매일 같이 열리던 시골의 추억을, 다혜는 반짝이고 가슴뛰었던 연극 뮤지컬을 보았던 경험을, 민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공연을 즐겨주던 관객의 모습을 떠올리며 예술을 시작하고 지속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문화기획자를 꿈꾸게 된 것도 하나의 강렬한 기억 덕분인데, 이제는 머릿 속에만 남아있는 그 오래된 기억들이 뭐라고 이렇게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건지 참 알 수가 없다. 그저 기억 속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이 너무나 반짝거리고 감동적이어서 맹목적으로 쫓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꼭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나만의 반짝거리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순간이 드라마의 장면에 투영되어 보여진다. 누가 뭐래도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그 사소하고 하찮은 기억들. 탐은 그 기억들을 마을의 주민들과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문화예술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충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미정

문미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양주에서 터를 잡고 안식년을 취해봐야지, 생각했지만 은연중에 주민 모임에서 시작해서 또 문화예술을 하고 있고요. (웃음) 나의 무의식이 그쪽으로 이끌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양주에 잠깐 있으려고 했는데 살다 보니 18년을 산거 예요. 2의 고향이 됐으니 마을의 주민으로서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돌아봤을 때, 경기 북부가 교육이나 문화예술 쪽으로 되게 열악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을과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는 주민들의 소소한 모임을 시작하게 됐죠. 탐은 정해진 멤버가 있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공동체에요. 구속되고 부담감을 주는 게 아니고 넘나들며 그때그때 프로젝트 단위로 참여할 수 있고, 오늘 오신 분들도 그렇게 함께하고 있어요.

 

소똥

탐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미정

처음에 단체 이름을 정할 때 여러 가지 후보가 있었어요.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걸 탐색하고 탐구하고 탐내는 단체가 되자 해서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이라고 짓게 됐어요. 처음에는 너무 유치한 거 아닌가 했는데 부르다 보니 정감 있고, 이름에 맞게 나아가고 있더라고요. 지역의 자원을 찾아서 마을 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작업들도 하고 있고, 그 아이들이 이 과정을 매개로 현장에서 저희 같은 예술에 종사하기도 하고요. 꼭 예술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청소년기를 건강하게 보내서 20세 이후 성인으로서의 삶이 좀 더 원만해지는 과정들을 겪으며 문화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됐죠. 공동체는 그런 활동을 하면서, 제가 추구하는 좀 더 심도 있고 깊숙한 활동을 지역특성화사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어요. 지나 선생님, 다혜 선생님, 민지 선생님과 함께요.

 

충현

세 분도 탐의 멤버이기보다는 프로젝트에 합류하셨다고 했죠? 그러면 탐은 대표님 외에는 멤버로서 활동하고 계신 분은 없으신가요?

 

미정

정주해 있는 분들이 몇 분 있긴 해요. 그분들과는 같은 공통의 관심사들을 마을에서 찾아내서 마을에 문제들을 문화를 매개로 풀어내는 일들을 하고 있고, 여기 오지나 선생님이랑은 문화예술 교육을 여기 양주에 온 뒤로 거의 매년 함께하고 있죠.

 

지나

안녕하세요. 저는 문미정 선생님하고 10여년간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을 예술 공동체 사업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마을의 이야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스로 대본을 만들고 연극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고요. 지금은 연극 연출도 하고 있습니다.

 

다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서른 살 박다혜이고요. 대학로에 있는 작은 신화라는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이번에 탐에서 처음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지

국악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지입니다. 노래 민요, 경기 민요를 전공하고 있어요. 탐에서는 작년부터 연극과 민요를 결합한 작업을 함께하고 있고요. 원래는 탐과 공연을 더 많이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요즘은 교육을 많이 하고 있어요.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어서요. 국악 하면은 사람들이 사실 잘 구분을 못하더라고요. 판소리랑 민요의 차이점 이런 거를요. 어릴 때부터 국악 교육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줌으로 진행된 탐 인터뷰>
 
🌍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이 꿈꾸는 공동체, 마을은 어떤 모습인가요?

미정

저는 고향이 제주도인데, 20살 때까지 살았어요. 지금의 마을은 행정 단위를 나타내는 구역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마을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정서상의 따뜻함, 안정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젠 그냥 행정구역상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고, 공동체는 제가 생각하는 고향의 정서적인 것들을 함유하고 있는 심리적인 거리까지 포함된 단어인 것 같아요. 지금의 변화되어가는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유년기를 풍부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줬던 마을의 모습들을 양주에서도 만들어내고 싶다 생각이 들고, 그걸 함께하는 주민들과 하고 싶죠.

 

소똥

유년기에는 어떠셨어요?

 

미정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주민들이 누구네 집 할 거 없이 삼삼오오 몰려서 노는 거예요. 거기서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지면 술도 한잔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하루 일과를 공유하는 거죠. 지금은 밖에 나가면 분명 같은 아파트 단지 동네 어귀에 만났는데도 인사를 안 하고 지내는데,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충현

미정 선생님이 미리 보내주신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글이 저는 감동적이었거든요. “끝없는 수평선 아래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으며 푸른 바다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그 순간에 돌고래 무리가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장관을 매일 보면서도 매번 넋을 잃고 바라보며 자라났던 그 어린 시절이라고 써 주셨는데, (웃음) 진짜 낭만적이죠.

 

미정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굉장히 영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아요. 상상력과 창작의 근원이 돼요. 제가 예술을 전공하지 않고도 극단에서 예술을 전공한 동료들과 같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런 것 같아요. 바로 학교 후문이 태평양이고 오름에 어려 있는 전설들을 듣고, 멸종 위기에 있는 돌고래를 늘 보고 자랐던 것들이 너무 행복했죠. 제가 어려울 때마다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근원이었던 것 같아요.

<작년 제주에서 충현이 직접 찍은 돌고래 사진. 여전히 제주 남쪽에서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 무리를 볼 수 있다.>
 
🔍 지역특성화사업 통해 진행하시는 수업을 소개해주세요.
미정
몇 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느덧 양주에서 산지 20년 가까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에서의 예술교육과 예술활동에 관심이 커졌죠. 그렇게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신청하게 됐어요. 양주는 구도심과 개발택지 구역이 공존하고 있고, 신도시 개발로 이주민의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원주민과 이주민 간 소통이 어려운 폐쇄적인 생활환경이 점점 심해지고 있구요. 동네마다 많은 세대와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만들어진 마을은 옆집과도 이웃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에요. 양주에서 주로 진행하는 수업들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보니 중장년층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일상, 예술로 담다>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소똥
어떻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인가요?

미정
마을 주민들과 예술 활동을 통해 평소에 들여다보지 못했던 개인의 삶과 지역과의 연결점을 예술적 감각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이에요. 참여자들의 삶의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 일상의 공간을 무대로 재창조하여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심의 교육입니다.

소똥
수업을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미정

양주2동 주민센터에서 6070어르신들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때가 기억이 나요. 참여자 분들 중 유독 소녀 같은 어머님께서 자신이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는데요. 고등학교 스승님과 결혼해서 평생 제자처럼 보살핌과 이쁨을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남편이 갑자기 곁을 떠나면서 상실감이 너무 컸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심해져서 죽으려고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서기도 했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우울증이 심해져 가던 중에 tv에서 들려온 노래가 자신을 살렸대요. 생명의 은인은 미스터 트롯에 김호중님이라고 했고, 그 뒤로 김호중이 나오는 미스터 트롯을 빼놓지 않고 보기 시작하고 팬카페에 가입해서 빠순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여고생마냥 웃으시는 거예요. 다른 어머님들께서 아유 얼마나 힘들었어! 얘기 잘했어 앞으론 이 언니한테 다 얘기해도 돼!” “미스터 트롯이 대단한 프로였네” “곱게 사는 줄만 알았지 맘이 맘이 아니었네! 등등 친구처럼 호응으로, 유머로,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를 하시더라고요.


충현

우와, 미스터트롯 짱인데요.


미정

그쵸? 초반 동안은 서로 모르는 사이셨던 어르신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하거나 어려운 여건을 말하는 걸 꺼려하셨는데 이 날 이후로 어머님들이 봇물처럼 자신의 인생사를 꺼내놓으시더라고요. 한 마디로 어느 유행가 가사의 "연극 같은 인생사" 를 듣는 듯 했어요. 그렇게 어머님들의 무대 발표 타이틀도 "연극 같은 인생사"가 되었죠.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 인물 캐릭터를 부채탈로 만들어 들고 있다.>
 
🐬 미정의 돌고래와 오름처럼 여러분을 예술(교육)가로 만들게 된 기억이나 계기가 있나요? 또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지나

저도 미정 쌤이랑 비슷한데,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장기 자랑을 한다든지 연극도 올리고 노래자랑도 하고 이런 환경에서 자랐거든요. 도시는 명확한 접점이 없이는 소통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예술이나 문화가 즐겁게 소통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돼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저는 어렸을 때 태평양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음)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충분히 소통하면서 살았던 것 같고, 여기서도 활동하다 보니 소소하게 그런 무리들이 많아져서 사람들 간의 연계가 좀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런 게 도시형 두레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혜

저는 그냥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보게 된 연극 뮤지컬이 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모르게 엄마 핸드폰으로 그 노래를 녹음했어요. 너무 빛나 보이고 심장이 뛰어서요. 그걸 집에 와서 계속 들었죠. 반짝거렸던 심장 뛰는 그 순간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전공을 하고 극단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마냥 즐겁고 재밌어서 시작한 활동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대에서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닿지 않고 너무 일방적이라고 느껴져서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술 교육에도 관심이 생겼죠.

 

충현

근데 그게 신기한 것 같아요. 하나의 장면이, 사실 몇 시간 뮤지컬 본 게 뭐라고 몇십 년 동안 예술을 하게 되는지. 그 기억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같아요. 민지님도 그런 기억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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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저는 국악을 초등학교 때 시작을 했고, 무대에 어릴 때부터 서 와서 사실 설렘이나 소중함을 잘 몰랐어요. 그러다 스무 살 초반 때 지방을 갔는데, 거기가 이제 하필 농번기 때라 공연을 보러 오실 수 있는 분들이 없는 거예요. 3명인가 4명을 큰 체육관에 모시고 관객보다 공연하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이 됐는데, 그분들이 진짜 너무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공연을 또 잘 봐주시고 같이 노래를 하고 무대를 같이 만들고 이래 주셨거든요. 그간 관객이 많은 공연들도 해왔지만 그 공연이 가장 좋았어요. “, 맞아 민요랑 판소리 이런 우리 문화는 이렇게 같이 하는 거였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민요 노래 전공해요. 소리 전공해요.” 하면 아 판소리요?” 백이면 백 다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판소리 아니고 경기 민요예요.” 이러면 똑같은 거 아니에요? 뭐가 달라요?” 이렇게들 많이 얘기하세요. 베토벤이랑 슈베르트는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지? 생각이 많이 들어서 국악에 대한 교육은 더 있어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충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잘 모르거든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민지

우선 판소리는 아시다시피 춘향전, 심청전처럼 이야기가 있는 노래에요. 근데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들을 때는 전체 내용을 듣지 않고 눈대목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판소리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 사랑가라든지 이런 걸 짧게 짧게 듣다 보니 이게 큰 하나의 이야기의 일부라는 걸 인지를 잘 못 하죠. 어쨌든 판소리는 이야기가 있고 민요는 이야기가 없어요. 보통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노래다 보니까 대부분이 사랑 노래, 일상 노래, 일하면서 하는 노래 이런 차이가 있고, 두 번째는 판소리는 일단 이야기이기 때문에 노래도 하지만 아니리라고 해서 내용을 말로 설명을 해줘요. “그때 춘향이가 이몽룡과 함께 업고 노는데~!” 그거를 하는 게 판소리고 민요는 그게 없이 절과 노래 절과 후렴만 있는 거죠.

 

충현

이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여러분이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인물이나 순간이 있나요?

지나

저는 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추억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을 공간 자체로 보자면 지금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넓은 곳으로 가기 위한 이동 수단이 되기도 하고, 잠시 머무는 곳이 되어 버렸는데 사실 그게 좀 안타깝죠. 저는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곳? 돌아갔을 때 무엇을 추억하고 충전이 되는 공간? 그런 개념으로 있는데, 요새 어린 친구들한테 집은 뭐지? 그냥 몇 단지 아파트인가? 제가 생각하는 집, 동네는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물리적인 공간 자체에다 크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시간적으로 얼마 머물지 않았어도 그곳이 내 고향이라고 생각되고 내 집이라고 생각되는 공간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는 집이라고 생각이 돼요. 그런 마을에 사는 게, 이동이 많지 않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같이 있는, 함께 꿈꾸고 생활하면서 사는 동네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제 앞으로 꿈이에요.

 

소똥

혹시 그럼 지금 집도 집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지나

저보다는 아이를 위해서 지금 집에는 머물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동을 하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난 우리 동네가 좋은데. 나는 우리 집이 좋은데.”라는 말을 했고, 그 얘기에 정말 크게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이 아이의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을 뺏을 뻔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머물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혜

저에게 집은 거주하는 공간의 집도 있지만, 나다울 수 있는 곳.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곳. 그러다 보니까 소속된 집단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큰 안정감을 느끼고 삶의 원동력을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공동체 활동이 저에게는 마음속의 집의 개념입니다.

 

충현

지금 그러한 공동체나 공간이 있으세요?

 

다혜

아까 말씀드린 극단이 항상 그렇고, 또 요번에 탐을 하면서도 마을 지역 주민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연을 올린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하니까 진짜 큰 뿌듯함을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공동체 활동정말 가치가 있다! (웃음)

<대본을 열심히 손보는 다혜. 이런 활동... 정말 가치가 있다!>

미정

감동이네~

 

충현

되게 좋네요. 탐나는 곳이네요! (웃음)

 

지나

오우, 라임 쩔어.

 

미정

어우, 센스 있으시네요~

 

충현

이렇게 칭찬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머쓱하네요... (웃음) 다혜님이 극단에서 가장 자신답다고 느낀다고 한 게 재밌는데, 그러니까 극이라는 건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가장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으셨다는 게 신기하네요. 다른 분들도 집이 있으신가요?

 

미정

저는 집이 범주가 넓은 거예요. 마을? 지구? 이렇게 넓은 범주를 생각해서, 어릴 때는 별로 집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그냥 떠돌아다니는 삶이 더 좋겠다. 여기저기 발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렇게 살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드는지 자꾸 돌고래도 생각나고, (웃음)

 

지나

그렇다니까!

 

미정

엄마 아빠와 있던 아주 어린 시절, 그 시절이 생각나면서 그간은 집이 중요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무의식중에 굉장히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 집이라는 건 유형의 존재도 있지만 내 마음에 있구나.’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내 아이에게도 주고 싶고 우리 마을의 아이들,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민지

저는 공연 생활을 하고 이러면서 꿈의 집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거든요. 연습을 하다 보면, 제가 스무 살 때는 의정부에 살고 연습실이 과천이라 이동 거리가 너무 멀고 힘이 들었어요. 그냥 집 주변에 연습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이곳이 나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와서 공연도 만들고, 밥 먹으면서 노래 부르고 싶으면 노래도 하고, 공연 프로필 사진이나 이런 거 찍어야 되면 굳이 다른 스튜디오 안 가고 여기서 찍고 이런 공간을 진짜 많이 생각했어요. 진짜 이거는 만들고 싶은데 6~70대가 되어도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웃음)

 

충현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마을과 공동체가 필요한가 봐요. 같이 만들면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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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하고, 같이 건물을 올려야죠.

 

충현

거기에는 돌고래 사진을 좀 넣어도 좋겠어요. (웃음)

 

민지

이제 돌고래 사진 찍어주시는 분도 계셔야 되고.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다혜

안녕하냐고 물어주시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은 하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확실히 어려운 면이 있다. 그렇지만 식사는 정말 아끼지 않고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웃음) 그래야 행복한 예술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라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식은 정말 잘 챙겨 먹고 있고요. 예술은 정당하게 노동한 시간만큼의 보수를 받기가 어렵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이 있잖아요. 문화예술종사자로서 잘 먹고 잘살고 싶어요.

 

민지

저는 사실 밥, 음식 먹는다는 거는 노래를 하려면 진짜 배가 너무 많이 고프거든요. (웃음) 노래를 하고 나면. 정말 다른 운동할 때랑 비슷하게 너무 배가 고파요 정말.

 

충현

에너지를 써서요?

 

민지

그렇기도 하고, 성악은 두성으로 하고 가요 같은 거는 그렇게 배에 힘을 많이 안 주는데, 민요는 노래를 앞으로 계속 뽑아내야 되거든요. 배에 힘이 온몸에 힘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약간 러닝머신 걸으면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 그 정도의 힘이 들어요. (웃음) 정말 밥을 먹고서 한 시간만 노래를 하면 배가 고파져요. 근데 또 그렇게 먹게 되면 살이 찌니까, (웃음) 조금씩만 먹고 노래를 힘내서 부를 수 있도록 조정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먹고 싶은 거는 다 먹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코로나가 좀 이렇게 안정되어 가면서 식사가 안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안녕합니다.

 

충현

다행이네요. 6~70대 때 공간 조성 가능하세요?

 

민지

그때까지 왜 생애 첫 대출 있잖아요. 그거를 그때까지 안 받는다면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지나

예술가에게 먹는 것은 약간 책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느낌이지? 좀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먹는 건 뭐지? 예술 활동 자체가 먹는 행위로 인식되지 않나? 그러니까 나는 사실 사람들한테 좋은 걸 먹게끔 해주는 걸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뭔가 이렇게 마음에 따뜻하게 채워지는 음식을 주는 게 예술가, 마을 예술공동체 사업이라든지 그런 걸 했을 때 그런 마음으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활동을 통해서 양식을 먹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 같다. 학생들한테는 좋은 어른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아이들한테 제공해서 좋은 걸 먹고 자란 아이들이 좀 좋은 걸 세상에 흩뿌리지 않을까라는 사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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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

엄청난데요?

 

지나

그런 엄청난 사명감 같은 거를 가지고 해도 의지가 약해서 그런지 되게 금방 욱하는 마음도 생기고 흐지부지해지는 마음도 생기지만요. 매번 그런 생각은 해요.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 주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저한테 예술가로서의 은 그런 의미가 좀 큰 것 같아요. 그런 걸 먹여주는 사람?

 

충현

아까 집에 관련해서 얘기했을 때도 그렇고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이 진짜 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

아마 문미정 선생님도 저랑 같은 기조일 것 같은데 우리는 그게 되게 중요했어요. 같이 사업을 시작하고 만들어 갈 때 어렸을 때 그런 기억들이 참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그래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세상 살다 보면 그런 거 없이 그냥 살기는 좀 힘들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은 해요.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지나>
 
👥 여러분의 본캐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본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캐들이 있나요?

다혜

저의 본캐는 연극배우이고요. 부캐는 지금 예술 강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고 강남에 있는 복합문화 공간에서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의식주생을 유지하기 위한 부캐들이에요. 문화예술종사자로 살아가면서 나를 어떻게 이미지메이킹 하고 표현할 것인가는 늘 하는 고민인 것 같아요. 여러 관계와 상황 속에서 진짜 나도 있었고 가짜 나도 있었죠. 또 진짜와 가짜는 무엇인가? 근본이 되는 ‘나’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날들도 많았어요. 삶이 바빠지면서는 이런 생각에 닿지 않는 날들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꾸민 나를 보여주는 날도 있는 것 같아요. 정답은 없죠. 사람은 다면적이고 다 저니까요. 저는 쿨하고 프로패셔널하고 잘난 사람이 되고 싶은 조금은 소심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민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알아주는 음악 사이에서 괴리감이 되게 큰 요즘인데요. 본캐는 전통 공연을 좀 많이 하고, 부캐는 강의도 하고 아이들이나 학생들과 교육을 하고 있고, 요즘에는 제가 군부대에서 교육하는 회사에 또 이렇게 일을 하고 있어서 그게 가장 큰 부캐죠. 군인들하고 되게 많이 만나서 국악을 알려주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전역을 하고 나면 사회의 일원이 되고 군부대에서 들었던 국악을 사회에 나와서 기억하고 미래의 잠재 고객이 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나

저 같은 경우도 예술 교육 활동이 사실은 부캐였죠. 예술가들이 예술교육을 하는 경우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부캐에서 활동의 의미를 찾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케이스가 좀 그렇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부캐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연극 활동과 연극 교육 활동이 상호 보완적인 것 같아요. 부캐를 통해서 본캐를 잘할 수 있는 영감 내지는 활동에 대한 세계관이 생기고요. 세계관이 좀 분명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예술 활동도 그렇고 교육 활동도 그렇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상호 보완적인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제는 본캐와 부캐를 나눌 수 있나 이런 생각 해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민지

한복을 제일 많이 입긴 하는데요. 평소에는 캐주얼하게도 많이 입고 여성스럽게 입는 걸 되게 좋아해요. 원피스나 치마 입는 거 좋아하고, 옷에서 사람의 성격이 나오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을 하더라도 엄청 신나기보다는 좀 정적인 걸 좋아하긴 하거든요. 퓨전곡 중에서도 분위기 있고 차분한 곡 좋아하고, 노래할 때도 정적인 전통곡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가장 저다운 복장을 말하자면 여성스러우면서 선을 살리는 한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

전 딱히 가장 저다운 복장은 없고, 그냥 가끔 복장이 갑옷 같은 역할을 해줄 때는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수업을 위해서 아니면 뭔가 활동에 필요해서 갑옷처럼 장착을 하고 나갈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런 것들이 그날의 교육 활동이라든지 이런 것에 서브 역할을 해줄 때가 있거든요. 저는 정말 노말한 옷부터 개량한복이나 되게 이상한 옷까지 다양하게 입는 편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날씬해 보이는 옷을 제일 사랑합니다. (웃음)

 

소똥

가장 갑옷 같은 옷은 뭐예요? 가지고 계신 옷 중에.

 

지나

가장 갑옷 같은 느낌은어떤 때는 원피스? 어떤 때는 연습복! 누가 봐도 연습복!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아주 색감이 뚜렷한 느낌, 어떤 때는 계량 한복! 이런 네 종류 정도로 나뉘는 것 같아요.

 

소똥

때마다 다르시군요.

 

지나

네네네. 제 기분도 달라지기도 하고 그것을 장착하고 갔을 때 아이들이 굉장히 뭔가 이벤트로 느끼는 경우들이 많아요. 좀 이벤트성으로 하고 간 경우도 있어요. 재미있으라고요.

 

미정

저는 이렇게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울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사람들도 저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항상 편한 걸 입고, 사람들이 그런 거 입었을 때 가장 보기도 좋다고 하고 저도 그렇게 하고 그렇네요.

 
🙋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여러분은 어떨 때 행복을 느끼시나요? 혹은 불행하다고 느끼나요?

지나

의상으로 치자면 장착한 효과를 아주 백 퍼센트 발휘했을 때, 먹는 걸 통해서 일이 잘 완결이 됐을 때. 제일 행복할 때는 공연 준비할 때도 있고, 진행하는 사업들이 잘 마무리됐을 때죠. 연말에 가장 행복합니다.

 

미정

예전의 저는 늘 긍정적이고 그냥 해피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우울하면 저를 찾고 이랬거든요. 스스로도 그냥 삶 자체가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하루를 살아야 하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생애 전환기가 온다는 걸 느낀 게 살면서 이제 계속 뒤를 돌아보게 돼요. 나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내 안에 있는 스스로가 충족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살고 있나?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키워드가 문화와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해놓은 게 과연 뭘까. 이렇게 자꾸 뒤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더라고요. 아침마다 오늘도 이렇게 똑같은 하루를 살아야 하네.’라는 생각에 요즘은 좀 씁쓸해요!

 

소똥

아이고.

 

미정

예전에는 행복하신가요?” 그러면 저는 언제나! 행복하다고 그랬는데, 요새는 행복하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아요.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오묘한 기분 있잖아요. 뭔가 명쾌하지 않은 기분들을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행복함을 느끼는 건 사람한테서 얻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고, 이 중요함을 제가 하는 일에 녹여내고 싶어요. 주민들이 만드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마을의 공간을 발굴해서 그 안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가장 행복함을 느껴요. 그러면서 지나 쌤이랑, “! 이번에도 우리가 이런 가치 있는 교육에 함께했어! 하지만 내년엔 보지 말자!” 이러고 또 봐요. (웃음) 올해 이렇게 진을 뺐으니 내년에는 하지 말자 해도 이렇게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되게 좋은 관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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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이 만들어낸 시간 속에서 행복해보이는 주민 참여자들>
 
🕜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이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미정

제가 극단 활동할 때는 공연 창작과 제작 위주였다면, 여기 와서는 공동체로서 마을의 이야기를 주로 했던 것 같아요. 계속 마을을 탐색하고 마을의 이야기를 꼭 공연 예술이 아니고 영상이라든가 미술, 음악, 축제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주민분들과 만들어냈죠. 그때그때, 우리가 이 마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사회의 이슈 적인 것들을 어떻게 우리 마을 안에서 물어낼지에 대한 고민들을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다혜

앞으로 또 어떤 말들을 나눴으면 좋겠냐면, 개인의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더 낫고 행복한 의식주생을 할 수 있을까 토론을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직접적으로요.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지나

지금 활동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아니면 가장 어려운 것? 사실은 거점, 활동 공간에 대한 것이 예술가들이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에요. 저도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이고, 특히나 지역 활동이나 마을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거점은 되게 중요한 문제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어떤 식으로 해결돼야 되는지, 어떤 식의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지, 해결 방안에 대해서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은 있는지, 실질적인 고민을 한번 들어보고 싶기는 하네요.

 

충현

탐은 거점이 되는 공간이 있나요?

 

지나

문미정 선생님이 워낙에 능력자라서 여기저기 잘 찾아다니십니다. 근데 그건 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에너지를 좀 덜 쓰면 다른 데 더 올인해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정

지나 쌤이랑 계속 같이하면서 예술 활동을 할 때도 공간이 되게 중요했어요. 서울에서 한동안 공간이 없어서 진짜 전전긍긍하면서 남의 사무실 얹혀살던 적도 있어서 공간이 되게 중요하다 싶어요. 양주에 와서는 공동체 하면서 거의 사비로 공간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그거를 코로나가 오면서 운영하기가 힘들어서 닫게 됐거든요. 근데 저는 공간이라는 것보다도 각자의 마을에서 문화예술가로서, 문화예술 교육가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그걸 묻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하더라고요. 그걸 물어보고 싶어요.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 인터뷰: 마을, 사람, 돌고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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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소재용, 문화예술교육공동체 탐
  • 녹취록 작성 : 엄희은
  • 장소: Zoom
  • 인터뷰 발행일: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