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춘화와 진희>
붕어빵가게: 팥도, 슈크림도 아닌
* 인터뷰이: 유진희, 한춘화 
* 인터뷰어 : 그리니, 충현
* 인터뷰 편집: 그리니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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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붕세권이란 단어가 몇 년 전 유행을 했다. 붕어빵에 진심인 이들이 붕어빵 가게 인근 지역을 붕세권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붕세권을 알려주는 앱까지 나오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나 역시 추운 겨울 우연히 발견한 붕어빵 가게는 못 본 척하기 힘들다. 붕어빵을 나눠 먹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더더욱. 앞으로 어떤 붕어빵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진희가 말했다.

“이렇게 막 반죽을 해서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 붕어빵은 겨울에 팔지만, 아이스 붕어빵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계절 내내 붕어빵가게를 열고 싶어요. 김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요.” -인터뷰 중 진희의 말-

누구나 부담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렇지만 당연하지는 않은 맛의 예술 교육을 '붕어빵가게'는 꿈꾼다. 전국이 붕어빵가게의 붕세권이 되는 그날까지 진희는 열심히 반죽을 하고, 춘화는 열심히 불을 때지 않을까.

                                                                                                                                                -그리니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다양한 문화예술인이 모여 붕어빵가게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서로를 만나게 되셨나요?

<진희와 춘화의 뒷모습> 

진희

단체는 2020년도에 결성이 되었지만, 작가님들은 그전부터 활동을 계속해오셨어요. 배우, 시인, 사진작가, 도예가, 국악을 하시는 분까지 다양하게 모여 있어요. 김포 월곶면 문수산 자락에 고막리라는 마을이 있거든요? 유일하게 김포에서 공장이나 축사가 없는 곳이에요. 마을 주민분들이 김포시와 싸워서 (웃음) 청정 마을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을 한 작가님께서 한 편의 글로 쓰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 많은 예술가분들이 소통하게 되었고요. 붕어빵가게도 고막리 부근에서 활동하시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예술 작업뿐만 아니라 예술가들끼리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그리니

‘붕어빵가게’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진희

우리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함께 먹었던 붕어빵처럼, 소소하게 삼삼오오 모여서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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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

저는 한춘화입니다. 도자기를 오래 해왔어요. 아이들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도 하고, 제 작업실에서 교육을 하기도 하고, 개인 작업으로 전시도 해요. 저는 ‘라꾸 소성’이라는 특이한 방법으로 불을 때요. 그래서 그쪽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고, 글을 쓰기도 해요.

<불을 때는 춘화의 멋진 모습> 

그리니

불을 때는 방법에 따라 작품의 느낌도 달라지나 봐요.

 

춘화

그렇죠. 라꾸 소성 작품은 거의 다 오브제예요. 화도가 낮아서 실생활에서 쓰기 힘들죠. 저화도에서 떼기 때문에 몸에 안 좋은 금속 산화물이 나오기도 하고,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라꾸 소성으로 만드는 크랙이나, 색깔을 내기가 힘들어요. 제가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충현

약간 마약 같네요. (웃음)

<마약 같은 라꾸의 매력> 

춘화

그렇죠. 맞아요! 작가들은 몸에 안 좋다고 안 하지는 않죠. (웃음)

 

진희

저는 유진희입니다. 원래는 배우로 계속 활동을 하다가 문화예술사를 공부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틀이 정해진 교안을 짜는 것은 맞지 않더라고요. 자유롭게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 쪽이 적성에 더 맞았어요. 문화기획자로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여기 계신 선생님들도 알게 되었고요. 이전에는 연기에 맹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연기뿐만 아니라 문화기획으로 다른 예술 분야, 예술가분들과 만나서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요즘은 준비하는 연극 공연이 있어서 배우로서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니

그러한 문화기획 활동이 배우로서 진희 님의 연기에도 영감을 주나요?

 

진희

그렇죠. 요즘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연결, 순환에 대한 거예요. 예전에는 그걸 몰랐거든요. 내가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는 영감들이 배우 활동에도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같아요. 반대로 제가 무대에서 하는 연기가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결국 예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재되어 있는 감각을 깨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을 있을지 알게 하는 것이 예술이 가진 힘인 같아요.

예술을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진희

저는 요즘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여기 오는 아이들을 보면 토요일 아침 10시가 되면 엄마, 아빠 손잡고 흙 만지러 오고, 끝나면 동화책 읽으러 가요. 이런 걸 경험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문화인 거예요.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문화예술 관련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겠죠. 문화예술교육 쪽은 굉장히 홍보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이런 것들을 마주치는 것에는 아직도 갈 길이 더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주변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더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춘화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단기성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2년, 3년 이렇게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입소문도 나서 이번에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사람들이 다음에 올 수도 있잖아요. 저희 수업도 뒤늦게 알고 오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데, 저희는 돌려보낼 수밖에 없죠. 다음에 하시게 되면 꼭 연락 달라고 하시는데, 다음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런 게 안타까워요. 꼭 우리 단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같은 곳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춘화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데요. 예쁘게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만드는 과정, 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저는 부모님들이 절대 아이들 작업에 손대지 못하게 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창작을 하게 해요. 아이들이 원할 때만 도와주게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깔끔하게, 깨끗하게 다시 만져주기 바쁘거든요. 아이들은 거친 면은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해요. 고정관념이 없어요. 예를 들어 집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보기에 아이가 만든 집은 집 같지 않은 거죠. 한 아이가 지붕 위에다 비행기 두 채를 얹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물어보면 저마다 자기의 사유가 있어요. 너무너무 기발해요. 그래서 저도 배우는 게 많아요.

 

진희

선생님께서 워낙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잘 끌어내 주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유로운 수업 방식이 너무 좋아요. 부모님들께 “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는 그냥 혼자 하게 놔두세요. 너 혼자 해.”라고 항상 이야기하시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눈치를 보시다가 나중에는 엄마, 아빠도 다들 자기 것만 하시더라고요. (웃음)

 

춘화

(진희를 등지고) 이러고 해요. 너무 웃겨요. 오늘도 도자기를 만들면서 “아빠 거가 더 높아” “내 거가 더 높아” 이러면서 가족끼리 경쟁을 하더라고요.

<치열했던 경쟁의 결과물> 

춘화

그리고 저희 프로그램은 그냥 만들기에서 끝내지 않아요. 끝날 무렵에 피드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요. 자기가 만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죠. 수업 내내 말없이 앉아 있던 애들이 그 시간이 되면 손을 들고 질문하고 그래요. 발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놀이처럼 해요. 예를 들면 A4용지에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비행기를 접어서 다 같이 한꺼번에 날리는 거예요. 그럼 그 비행기 중에 부모님들이 하나를 집어서 아이들의 생각을 유추해보는 거죠. 아이는 그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고요. 이런 식으로 소통을 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니

만든 작품들은 전시도 하시나요?

 

진희

네, 마지막에 전시회를 해요. 다들 1인 작가가 되는 거예요. 자기 작품을 직접 촬영해서 사진으로 전시하기도 하고, 인터뷰를 통해 작품 설명도 받아서 작품과 같이 전시해요. 그리고 꿈다락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상장을 수여하는 시간도 있는데, 아이들이 그걸 너무 좋아해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특징이려나요. (웃음)  

 

그리니

동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이유가 있으신가요?

 

진희

김포에는 축사지대나 공장지대가 많아요. 특히나 여기, 통진읍에 다문화 가정, 미혼모 가정, 이주 노동자분들이 많이 계시고요. 주말이 되면 마땅히 곳이 없어서 주민센터 , 시장 , 도서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을 많이 봤었어요. 수업은 가족이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가 소통할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서로 편견 없이 만날 있는 자리가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개인적인 예술 작업에서 나아가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시게 이유가 궁금합니다.

춘화

예전에 제가 소속되어 있던 한 도서관의 도예실에서 교육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교육 수업을 맡게 됐어요. 사실 문화예술교육 수업이 겉핥기식, 판에 박힌 수업들이 많잖아요. 마지막에 선생님들이 작품을 거의 다시 만드는 경우가 많고요. 그럼 다 똑같은 작품이 돼버리죠. 저는 아이들 작품의 고유성을 그대로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무료로 수업을 받더라도 저는 제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라도 아이들의 창의성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니까요.

<고유성을 그대로 두어요> 

춘화

예전에 수업으로 만났던 친구 중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어요. 다른 선생님은 그 아이가 굉장히 문제아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 수업에서는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동안 칭찬을 못 받았던 거지, 제가 관심을 많이 가져주니까 정말 잘하더라고요. 너무 잘하니까 다른 아이들보다 빨라요. (웃음) 그래서 말썽을 일으킬 준비를 하면, 저는 또 다른 과제를 주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그 아이가 있던 학교 수업을 마칠 때가 됐어요.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이제 끝났는데, 다음 주도 올게요.” 어휴,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너희 학교 (수업) 끝났어. 이제 .”했더니, 지금도 눈물 나오려고 해요. 아이 생각을 하면. “선생님, 그래도 그냥 오면 돼요?” 그래서 나도 왔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이 여기 계약직으로 있어서.. 선생님이 여기 . 그러니까 소중한 순간을 , 네가 기억했다가 이다음에 네가 훌륭한 도예가 돼라. 그림 그리는 소질도 있고, 만드는 소질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라. 선생님이랑 약속하자.” 제가 그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같아요. 1%라도 누군가가 변할 있다면.. 그렇죠? 그런 기회를 통해서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있다면, 그런 것이 얼마나 .. (값진가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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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맞아요. 선생님이 다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누군가의 인생에 나의 이 작은 경험과 실천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게 예술이 되었든 예술 교육이 되었든.. 저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던 것 같아요. 교과서에 나온 별주부전을 아이들끼리 직접 대화 형식으로 바꿔서 대사를 만들고, 녹음을 해서 학교에서 발표했었어요. 그게 예술이라는 걸 얘기해준 사람은 없었지만요.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 여러분은 일과 놀이가 일치된 삶을 살고 계시나요? 일과 놀이가 일치된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놀이터는 어디인가요?> 

춘화

저는 글도 쓰고, 도자기를 만드는 게 일이자 놀이예요. 작업실은 일터이면서 놀이터고요. 거기에 수강생분들이 오시면 교육을 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불도 같이 때요. 아까 말씀드린 라꾸 소성은 깨끗한 데서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실은 논바닥에 있어요. 거기 모여서 노는 게 그냥 즐겁고 만족스러워요. 괴로운 점이라면 무거운 흙을 수십 년 다루다 보니 팔꿈치도 아프고요, 무릎도 아파요. 손가락도 아프고요. 또 예술 활동을 하다 보면 돈이 많이 벌리지 않잖아요. 더 나은 작품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고정된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저는 가정에서 생계를 혼자 책임지지는 않기 때문에 즐기면서 할 수 있지만, 생계가 달린 작가 분들은 많이 어렵죠.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노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요.

진희

저는 일과 놀이가 일치되는 삶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요. 20대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배우인데 공연을 많이 못 하고 계속 그 언저리에만 있는 거예요. 무대 크루로 일을 한다거나, 기획 쪽으로 일을 하거나,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이게 다 뼈가 되고 살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니까 ‘도대체 나는 왜 이걸 붙잡고 있지?’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면서도 ‘나는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 왜 이걸 가르치고 있지?’하면서요. 20대 후반까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 도저히 안 되겠다. 그냥 다 안 하고 연기 할래. 분명히 실력이 쌓였을 거야. 내 안에 내재되고 억압되어 있던 것들이 언젠가는 무대 위에서 폭발할 거야!’ 근데.. 안 나오더라고요. (웃음)

 

춘화

(웃음)

 

진희

작품 활동을 너무 쉬었던 거죠. 연기 강사를 하면서 공백이 너무 생기는 바람에..

 

그리니

어떻게 다시 연기로 돌아오게 되셨나요?

 

진희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정말 페이 없이도 공연을 했어요. 1년 동안 여덟, 아홉 작품을 쭉 연달아서 했는데, 그렇게 몇 번 계속하다 보니까, 재밌고 신나고 하더라고요.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지금도 너무 괴롭지만요. 그러다가 최근에 저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한 편 올렸어요. ‘난 적성이 아닌가? 그럼 나는 어떤 게 적성이지?’하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아예 글로 써서 공연을 만들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해소가 됐어요. 오히려 저의 이야기를,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공연으로 하고 나니까, ‘아, 별거 아니네’라는 게 되는 거예요.

<이 공연이었을까?> 

춘화

자기 치료가 된 거지.

 

진희

, .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 나는 엄청난 값진 경험을 거구나.’라는 알았어요. 엄청나게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성장한 거였구나. (웃음) 그럼 이걸 이제 놓아줘도 되는구나. ‘, 힘들었어. 근데 힘듦은 내가 해소했어. 이제는 다른 걸로 채워야지.’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같아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춘화

저는 아무래도 흙일을 하다 보니까 예쁘게 입지는 못해요. 곱게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큰 작품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워커를 신어요. 여름에는 지퍼를 열고, 겨울에는 지퍼를 닫고.

<날이 추워 지퍼를 닫은 춘화와 진희> 

진희

(웃음)

 

춘화

그 차이만 있어요. 그리고 모자를 거의 매일 써요.

 

충현

아까 보여주신 사진에도 빵모자를 쓰고 계시던데, 빵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이신가요?

<춘화의 트레이드 마크, 빵모자> 

춘화

네, 맞아요. 머리를 감거나 안 감거나 상관없이. 아침에 드라이할 필요 없이 모자만 딱 쓰면 손댈 게 없잖아요. 물론 겨울에는 보온도 되고. 이 빵모자를 쓰면 조금 젊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해요. (웃음)

 

진희

저는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스타일이. 오늘은 너무 춥고, 먼 거리를 와야 해서 따뜻하게 빨리 나올 수 있는 복장으로 왔어요.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대상 또는 순간이 있나요?

<여러분에게 집이란?> 

춘화

저는 집 하면 엄마, 아버지가 떠올라요. 집이라는 게 꼭 하우스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마지막에 돌아가는 곳,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고향도 집이 될 수 있고요. 저한테는 엄마가 여태껏 저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어요. 지금도 엄마를 만나러 가면 항상 편안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너무 그리워요. 정말, 보고 싶고요.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는데도,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붙여 둔 스냅 사진 속 아버지는 참 괜찮아 보이는 거예요. (웃음)

 

진희

선생님 말씀처럼 집은 안식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에서만 이사를 여덟 번 했어요. 고시원부터 해서 다 겪어봤죠. 반지하에서 6년을 살다가 최근에 4층으로 이사를 왔는데, 8시면 눈이 딱 떠져요. 그것도 너무 상쾌하게. 반지하에서는 햇빛이 없으니까, 알람에 의지를 하고 깼었는데 말이에요.

 

춘화

선생님 승진했네요.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진희

네네. 반지하에서 한 계단 올라가는 게 엄청 힘들었거든요? 한층 올라가려면 금액이 굉장히 올라가니까요. 그 한 층 올라가는 게 되게 어려웠는데, 이번에 이사하고 나서 친구한테 그랬어요. “누가 계단을 천천히 하나씩 올라가? 원래 한 번에 올라가는 거야. 어? 뭐든지 상승은 한 번에 가는 거야.”라고 농담을 했는데. (웃음) 저한테 집은 그런 것 같아요.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오면 집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가만히 천장 보고 누워있고, 유튜브 틀어놓고 듣고, 틀어 둔 채로 자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루틴이에요. 지금은 이사하고 환경이 더 좋아져서 마음이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 붕어빵가게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진희

붕어빵가게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도예 수업, 캘리그라피 등의 예술 교육을 다양한 대상들과 만나서 진행하고 있거든요. 붕어빵가게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찾아가는 예술 교육, 확장되는 예술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춘화

붕어빵도 굽고, 잉어빵도 굽고.

 

충현

소금버터 붕어빵도.. 

 

춘화

소금버터도 있고, 앙버터도 있고. (웃음)

<붕어빵만큼 다양하게 구워진 도자기들> 

진희

네, 맞아요. 좀 새로운 것들을 하고 싶어요. 제가 연극을 전공했지만, 예술 교육에서 연극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근데 연극을 도자기나, 사진, 글과 섞으면 새롭고 재밌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해요. 한 예로 선생님이 만드시는 도자기 인형 있잖아요.

 

춘화

예. 토우 만들죠.

 

진희

그걸로 인형극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어요. 선생님의 작품들을 무대에 배치하고, 그 인형들과 아이들이 같이 나와서 공연을 하는 거죠. 이런 상상을 하고는 해요. 어떻게든 이것들을 막, 이렇게..

 

춘화

믹싱할까.

 

진희

네, 이렇게 막 반죽을 해서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 붕어빵은 겨울에 팔지만, 아이스 붕어빵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계절 내내 붕어빵가게를 열고 싶어요. 김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요.

<반죽왕 진희> 
💬 만약 당신이 언젠가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른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 보고 싶나요?

춘화

이런 꿈다락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보통 회차를 정하고 진행이 되잖아요. 10회 또는 20회, 이렇게요. 그런데 그러한 제약이 없다면 어떤 교육을 해 보고 싶은지가 궁금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죠.

 

충현

300회차를 하고 싶다고 한 팀도 있었어요. 실제 수업도 30회차로 길게 가져가고 계시고요. 나중에는 300회차를 꿈꾸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춘화

좋죠, 너무 좋죠.

 

진희

너무 좋죠.

 

춘화

다만 몇 년이라도 한 참여자와 같이하면서 처음 작품과 나중의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그런 교육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대상은 한 명이 아니라 그룹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고 싶어요.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하늘처럼> 
붕어빵가게 인터뷰: 팥도, 슈크림도 아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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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충현, 붕어빵가게
  • 녹취록 작성: 엄희은
  • 장소: 김포시 통진도서관
  • 인터뷰 발행일: 20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