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허실, 차차, 물방울, 다리>
두들 인터뷰: 내가 선택한 즐거운 일이 하필 좋은 일이라서
* 인터뷰이: 물방울, 차차, 다리, 허실
* 인터뷰어 : 소똥, 충현
* 인터뷰 편집: 소똥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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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뒷북 바로 옆 동네에 두들이 있다. 대안학교에서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담당했던 교사들이 모여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내가 학생 시절 만났던 스승이었고, 지금은 같은 동네에서 틈틈이 연대하는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두들은 발달장애 청년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두들에게 물어보았다. 주변 사람들 삶의 더 나은 변화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지. 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해왔더니 여기까지 왔고, 자신이 선택한 즐거운 일이 하필 좋은 일이었을 뿐이라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좋은 일이라는 단어 너머의 존재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스승과 제자의 경계도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소똥-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기는 두들!>

물방울

두들에서 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 외에 기타 등등의 잡일까지도 다 하고 있는 진영아고요. 별명은 물방울입니다.

 

차차

두들에서 이 일 저 일 하는 차차입니다.

 

다리

두들에서 조합원으로 함께 했지만, 활동을 같이한 지는 석 달째 되어가고 있는 다리라고 합니다.

 

허실

저는 두들 조합원은 아니고 꿈다락 사업을 통해 액션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예술 강사인 허실입니다.

 

소똥

두들이라는 단체는 어떤 단체인가요?

 

물방울

2010년부터 대안학교에서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담당하는 특수교사들이 모여서 공부 모임을 진행했어요. 학교에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한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장애/비장애 통합을 위해서 다양한 교육을 연구하는 연구 모임이었어요. 졸업 이후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고민했던 것만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다시 복지관이나 집으로 매몰되는 거예요. ‘우리는 학교 안에서의 변화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간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어요.

 

물방울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의 아이들의 삶을 위해 뭐라도 해보자.’ 그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범 사업을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많은 반응이 있었고, 누가 사회적 협동조합을 해보자고 해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어요.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고, 그 방법은 교육에 가깝게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 뭐라도 해보자’는 이야기를 통해 특수교사들과 사회복지사가 한데 모여 두들이라는 단체

를 만들었다고 소개해주셨는데요. 그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주변 사람들 삶의 더 나은 변화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리

아마 다 다를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이 모임을 통해 학교에서 친구들을 더 즐겁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일이었기 때문에 잘하고 싶었고, 더 잘하려고 그 일에 더 많은 관심과 고민을 한 사람들을 찾았어요.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내가 생각했던 한두 가지 정도는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떤 진정성을 쫓기 위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충현

저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내가 정말 그들을 위해서 하는 게 맞나? 싶거든요. 나를 위해서 하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차차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제일 재밌어서 하는 일인 것 같아. 대학은 미대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못 버티겠더라고. 집이 가난하기도 했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고, 나는 그냥 좋은 그림과 좋은 작품을 보는 게 훨씬 행복한 거야. 그래서 얼른 그만두고 다시 공부해서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때 생각했던 제일 낯선 일이 특수 교사였던 것 같아요. 장애인들이 주변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 없는 채로 20년을 살아왔던 것 같거든. 이들의 삶에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고. 그러다가 장애를 공부했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호기심이 발동해서 여기까지 오고 있는 것 같고.


차차

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면 여러 명의 선생님이 나의 동료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소수자가 되기도 해. 이 모임에 참여하면 같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해소됐던 것 같아. 지금 두들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인 것 같아. 30대 후반까지를 일반 학교, 대학교, 대안학교, 쭉 학교만 다녀온 삶이었는데 지금은 그 틀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있는 것 같아. 

<학교에서 해방된 차차>

물방울

희생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특수 교육을 전공하면서 많이 들었거든요. 이게 삶이라는 영역을 가지고 활동하는 거지, 내가 그 삶을 살진 않잖아요. 내가 사실 장애아이들의 부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니까. 수학이나 미술을 매개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으로 만나고 싶다는 게 있었던 것 같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정의로운 면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대놓고 정의롭지는 않아. 같이 싸워주지는 못하고 혼자 정의로워. (웃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동력은 아이들의 변화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것도 되게 꿀이에요. 애들은 크잖아요. 내가 잘하든 못하든 커. 제가 좋은 영향을 줬던 나쁜 영향을 줬던 아이들은 변화하고, 그 변화의 모습이 영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허실

10대나 20대 때 나를 지배했던 경험이 오래간다고 생각하는 게, 저는 20대 때 연극을 공부할 때는 예술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런데도 계속하다 보니까 회의적인 질문은 의미가 없어지고 그냥 삶이 된 거지. 비영리 쪽에서 활동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나는 듣기 싫거든. 그냥 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자기 분야마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계속 이어 나가고 있을 때는 진정성이나 가치에 대해 매일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하는 거지. 저한테 연극은 매력적인 일이 된 것 같아요. 놀고 있는 거 같아.

 

물방울

그래! 희생 안 해! 나 놀고 있어.

 

차차

그렇다고 희생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야. (웃음) 노력할 때도 많이 있는데 너무 안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내가 선택했고 재밌는 일이 하필 좋은 일이어서 칭찬받으면 “고맙습니다~”

 
👹 꿈다락을 통해 진행하시는 생활연극워크숍 액션가면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허실

장애 청소년 포함해서 다양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극 수업을 하고 있어요. 이건 경기 꿈의 학교 때부터 진행된 2년의 기반이 있었고, 그전부터 생각하면 사실 대안학교에서 진행했던 10년의 경험을 옮겨 온 거죠. 이번에는 장애인 청소년들의 참여 비중을 더 늘린 거죠. 연극 놀이 워크숍과 연극 작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현

장애 학생의 비중을 높인 수업을 하려면 대안학교에서 하던 것과 다른 방식을 고민했을 것 같아요.

 

허실

사실 그대로 했어요. 속도만 늦췄을 뿐이죠. 저는 장애인을 위한 예술과 비장애인을 위한 예술이 구분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장애에 관련된 예술은 항상 치료가 목적인 경우밖에 없을까? 전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똑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비장애 청소년과 이야기하면 과연 이해하고 연극을 할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소똥

나는 이해 못 했어.

 

차차

다 알고 있었어. (웃음)

 

허실

그냥 읊조렸잖아요. 그 읊조림은 모두 할 수 있다. 예술적 경험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있지만, 무대에 서고, 관객을 만나고, 관객과 호흡하는 그 자체가 진한 경험이잖아요. 그 경험을 주고 싶은 거라서 그렇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물방울

액션가면은 20회 가까운 차시로 구성되어있고, 차시마다 3시간씩 진행해요. 다들 그렇게 길게 수업하는 게 가능하냐고들 해요. 1시간 안에 하려고 아이들을 쪼는 것보다, 3시간의 시간 동안 놀면서 하는 게 아이들한테 더 흡수된다고 생각해요. 액션가면의 좋은 점은 차시마다 공연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느 공간을 무대로 세팅해놓고 인사만 해도 좋으니 무대에 올라가라고 하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죠. 올해는 아이들이 대본을 썼어요. 주제부터 아이들이 함께 정했죠. 장애가 있어도 우리가 대본도 쓸 수 있고, 무대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무대 뒤에서 열일 하는 물방울과 차차>

차차

매주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대 앞에 나가는 것부터가 미션인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과 선생님을 합치면 대략 30명 정도 되는데 그 앞에 나가는 것만으로 두려운 일이죠. 한 친구가 처음에는 무대 앞에 나와서 “아”하고, 다음 주에는 괴성을 지른다든지, 대사를 뱉는 게 어려우면 시원하게 춤 한 번 추기도 하고, 갑자기 노래자랑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러려면 긴 회차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리

20명 정도의 친구들이 초반에는 모래알처럼 있었는데 9월이 되고 나니까 다 친해져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하고, 이곳에서 친구를 만난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수업 외에도 따로 만나서 놀러 가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만약에 내가 성인으로 어느 직장인 연극단에 들어갔을 때 내가 이 정도까지 이 시간과 이 사람들을 좋아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액션가면 수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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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출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허실

대안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부터 차차랑 많이 싸웠던 게, 나는 ‘예술은 이래야 해.’가 너무 강했어. 그거를 10년간 내려놓는 과정에서 예술이라는 관점을 넓힌 거지.

 

차차

10년 만에 서로에게 사과했어. (웃음)

<사과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허실과 차차>

허실

저는 뭘 하더라도 모든 걸 연극적으로 사고해요. 그게 평생 갈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연극을 공부했던 게 감사해요. 차차와 항상 ‘장애야? 연극이야?’ 이걸로 계속 부딪히는 거야.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놨는데, 결국에는 그 과정에서 내려놓게 되면서 많이 배웠어요.

 

차차

나의 지론은 “저 아이를 바꾸는 것보다 허실이 바뀌는 게 더 빨라. 이충현을 어떻게 바꿀 거야? 허실이 바뀌는 게 빠르지.” 이런 말만 매번 앵무새처럼 반복했어요. 얼마나 답답했을까.

 

물방울

저는 돈이 없는데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배워요. 예를 들면 내가 액션 가면 포스터를 멋들어지게 만들고 싶어. 근데 업체에다 맡기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보는 눈은 높으니까 잘하고 싶은 거예요. 돈이 없으니까 내가 작업하면서 능력치가 올라가.

<물방울의 능력치는 어디까지 올라갈까>

허실

비슷한 거 하나 있다. 마감이 있을 때. (웃음)

 

차차

인간을 배우게 하는 건 결국 규제에요?

 

허실

적절한 압박과 통제와 균형.

 

차차

거절하겠어요.

스무 살로 다시 돌아간다면 문화예술 교육을 하고 싶으신지, 지금 하는 일을 선택하실지 궁금합니다. 

허실

저는 어떤 부분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강력한 생각에 지배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주어진 것 중에서 제일 매력적이거나 고유해 보이는 걸 항상 선택했어요. 그게 10대 때는 풍물이었고, 그것이 연결돼서 연극을 하게 됐고. 대안학교 교사도 대안교육에 큰 가치를 두고 선택한 게 아니거든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돈 벌려고 왔어요. (웃음) 대안학교 교사를 하면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다시 돌아가면 경영을 해보고 싶어요.

 

충현

뭘 경영해보고 싶어요?

 

허실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경영이라는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고 하는 게 재미있어요. 나는 창작가로서의 재능은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건 재미있고 어떤 부분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리

저는 20살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미련이 남는 거는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한 경험을 일찍 쌓아서 지금의 내가 되었을 때 더 용기 있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는 제 직업이 누군가를 돌보거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충현

아니, 어떻게 느끼지? 저는 그걸 깨달을 수 있을까 싶어서.

 

차차

꼰대처럼 한 번 얘기해? 마흔 돼 봐!

 

다리

저는 원래 시민단체 활동가 하고 싶었고, 월 150만 원 이상의 돈을 벌 수 직업을 갖고 싶었거든요. 진보넷 게시판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입사했어요. 제가 넣을 수 있는 시민단체 연봉 중에는 가장 높은 곳이 대안학교였어요.

 

차차

난 대안학교도 내가 그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곳이어서 갔는데.

 

충현

돈 벌려고 간 곳이 대안학교인 게 너무 이상해. (웃음)

 
🏘️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자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러분이 꿈꾸는 자립의 모습과 더불어 무엇으로부터 자립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물방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도움이 필요한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게 자립인 거 같거든요. 장애인 당사자도 요리나 빨래를 다 혼자 하는 게 자립하는 게 아니라, 집에 살면서도 엄마가 해주는 거를 내 의지 없이 다 받는 게 아니라, 엄마가 요리할 때 내가 그 구성원으로서 같이 숟가락 하나 놓을 수 있는 삶의 기술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거를 늘리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 같고요.

 

물방울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자립하기 위해서는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만남이 자연스러운 만남이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우리 동네에서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면 우리도 판을 하나 까는 거죠. 그냥 그 자리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게 자립의 시작인 것 같아요. 요즘은 장애를 가졌다고 다짜고짜 무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단지 만나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지.

<새로운 만남, 그 시작>

충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으면 자기가 잘못 대할까 봐 무섭다고 말을 해요.

 

다리

그 두려움이 재밌는 것 같아요. 원래 타인을 만날 때는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같은 비장애인끼리 만날 때 “결혼 언제 하실 거예요? 애 안 낳아요?” 이런 무례함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잖아요. 인간이 타인을 만날 때에는 두려움 속에서 설렘을 갖고 자기 예의를 지켜가면서 만나는 건데, 장애인을 만날 때는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장애인 당사자분들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비장애인을 만나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비장애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다리

아까 자립 이야기하다가 떠오른 건 “안녕하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자립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어떤 일본 영화의 대사 중에 “왜 어른들은 진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안녕하세요? 밥은 잘 먹었나요? 이런 얘기로 하루를 시작할까?”라는 대사가 있어요.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그 대사가 중요하다는 거를 느끼게 되거든요. 장애/비장애를 떠나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자립의 상태이지 않을까. 자기 힘으로 절반 정도 서 있고, 타인을 향한 관심과 타인의 힘으로 절반 정도 서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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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두들은 오랫동안 요리 수업을 진행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두들에서 발견한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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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요리 수업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가장 다섯 개의 감각을 다 충실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에요. 한 가지 요리를 만드는 동안 할 수 있는 말도 많고,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 재미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고, 심지어 건강해지기도 하고.

 

다리

저는 대안학교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먹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먹는 거가 중요하다는 거를 대안학교와 두들에 와서 알게 된 것 같아요. 두들에 오는 친구들에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뭐 먹었어?”인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 어제 뭐 했어? 무슨 드라마 봤어?” 이런 질문은 어려운 질문인데, “아침 뭐 먹었어? 점심 뭐 먹었어? 이거 맛있지 않아?” 이런 질문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더라고요.


차차

어쨌든 사람들과 함께하는데 밥을 먹고 밥을 대접하는 것만큼 만만한 게 없는 거 같아. 하루에 세 번이나 먹어. 접근성이 너무 좋잖아.

 

다리

그만큼 최고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없는 거 같아.

👼 여러분의 본캐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본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캐들이 있나요?

차차

누워있는 사람.

 

충현

실제로 그렇겠죠?

 

차차

그렇겠죠야? (웃음) 잠깐 밖으로 나갈래?

 

소똥

차차는 누워있는 사람이 본캐인가요?

 

차차

방 밖에 나오는 순간 여러 가지 캐릭터로 사는 것 같아요. 큰 딸이기도 해야 하고, 며느리이기도 해야 하고. 가장 큰 부캐는 선생이라는 캐릭터겠지. 그게 나랑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굉장히 강한 편인데, 선생님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삶에 개입해야 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짐인 것 같아. 너무 잘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나의 한계가 매일매일 드러나는 어려움. 본캐는 누워있는 개인주의자, 부캐는 차차.

 

허실

저는 캐릭터를 나누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 내가 하는 일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게 다 나고. 가령 온라인만 보더라도 난 네이버 지식인에서 ‘김허실’이야. 나 잘나가. (웃음) 신 등급이야. 신이야. 채택 답변 수가 2,000개인가 그래. 태양신이 되는 게 목표고, 곧 바람신이 될 수 있어. 그리고 태양신도 멀지 않아서 5년 안에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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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신>

충현

그게 돼서 좋은 건 없죠?

 

허실

명예! 그리고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이 1년간 무료.

 

충현

그것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을 쏟아요?

 

허실

하루에 20~30분?

 

충현

허실은 매일 20~30분을 할애하면서 하는 게 많은 것 같아.

 

허실

블로그도 3개 정도 하니까. 대안학교를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이게 기반이 될지 몰랐는데, 그게 결국에는 하나의 작은 발판이 돼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이걸 다 종합한 정체성이라고 하면 나는 기획자. 재밌는 것들을 발견해서 연결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물방울

저는 본캐랑 부캐로 나누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적인 내가 있는데, 집에서는 꼼짝 안 하고 방 안에 있거든요. 뭐 시키면 짜증내는 하나도 안 멋진 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후진 내가 있고, 사람들이 있으면 멋진 내가 되고 싶어 하죠. 그게 내가 발전하는 거니까 좋은 거 같아.

다리

요새는 집에 있으면 저도 거의 누워만 있기는 한데 공상을 많이 해요. 기후 위기가 어떻게 될까부터 시작해서 이 문명의 끝은 어디일까. (웃음) 저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종말론자적인 고민을 많이 해서, 다른 사람 만날 때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행복한 기운을 주려는 측면이 있어요.


허실

아 본캐는 종말론자였어요?

<본캐를 드러낸 종말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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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

그건 종말은 아니네요?

 

다리

누군가에게는 종말이죠.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허실

예술이라는 작업, 예술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해요. 현장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회의적인 시선도 있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예술이라는 작업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차차

예체능 쪽에서 두각을 보이면 그때부터 그 길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어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냥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 크다고 생각하거든. 살면서 예술 경험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팀들은 예술 교육을 하면서 만나는 친구들이 예술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지 궁금해. 모두를 전문가로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공룡포즈로 마무리!>
두들 인터뷰:  내가 선택한 즐거운 일이 하필 좋은 일이라서. 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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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이충현, 두들
  • 녹취록 작성 : 조웅희
  • 장소: 두들
  • 인터뷰 발행일: 202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