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아람과 미경>
동서신악연구소 더나라: 저희도 몰라요. 이건 실험이니까.
* 인터뷰이: 송미경, 이아람
* 인터뷰어 : 혜진, 소똥
* 인터뷰 편집: 혜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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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다. 매 순간 모든 것은 변하기에.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완벽한 계획보다는 유연한 태도다.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며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 뻣뻣한 생각은 우리를 쉽게 멈춰 세운다.


처음의 계획에서 많은 것들이 벗어났지만 더나라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최초의 질문을 되뇌며 한발씩 전진하고 있었다. 


“가능할지는 저희도 몰라요. 왜냐면 이건 실험이니까. 이게 성과적이지 않다고 해서 망한 것이냐, 하면 전 아니라고 보거든요. 우리가 예측하는 것만이 성과적인 건 아니잖아요. 예측은 불분명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듯이. 저희의 끝은 매뉴얼 하나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렇게 기획이 됐고 실행해 봤더니 안되더라, 그래서 단계를 바꿨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더라.” - 미경


더나라는 앞으로도 여러 갈래의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움직인 흔적들이 뒤에 누군가에게 조용한 용기를 심어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실험이 아닐까.

                                                                                                                                                 -혜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미경

저는 송미경입니다. 한국과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공동체와 그 안의 삶을 들여다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영상과 소리, 문자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에서 기억의 순간을 재해석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람

육아와 예술을 병행하며 노동을 하고 있는 이아람입니다. 제 소개를 어떻게 할까 생각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내가 지금 예술가가 맞나, 라는 질문이었어요. 출산, 육아, 코로나로 인해 활동의 제약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저는 청년의 노동과 삶에 관심을 두고 드로잉과 설치 작업을 해왔어요. 제가 거주하는 ‘구’나 ‘동’ 단위의 한정된 지역을 중심으로요. 제 작업은 긴 시간 리서치를 하고 연구를 해서 도출해내는 건데, 지금은 그게 없이 작업을 하려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노동도 하는 사람이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제 소개를 하는 게 지금은 가장 적절한 것 같아요. 집안일과 작업의 갭 차이를 적응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거든요. 적응해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미경 선생님의 추진력 뒤에서 졸졸졸 쫓아다니면서요.


미경

단체를 소개하자면 더나라는 소리 얽힐 나(라) 囉의 한자와 그리스어로 행복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다양한 공간의 소리가 서로 얽히고 어우러지는 관계 속에서 예술적 활동이 주는 행복의 가치를 풀어내고자 해요. 아날로그적 예술 활동과 디지털 리터러시 등 여러 장르를 통해서요. 극장에서 선보이는 공연, 전시, 즉흥 음악, 퍼포먼스, 골목 반상회, 주차장 예술 장터 등 끊임없이 공간과 형식을 변형시켜가면서 소리의 울림과 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 온 아티스트 커뮤니티입니다. 아람 선생님과는 2012년도부터 2015년도까지 진행했던 커뮤니티 예술 프로젝트에서 만났는데, 이번에 이렇게 다시 만나서 재미난 일을 함께 만들어가게 되었어요.

<오랜 인연의 아람과 미경> 

혜진

더나라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미경

맨 처음에는 마포에서 음악과 관련된 활동으로 시작이 됐어요. 소리 밀도 작업이라는 게 제가 음악 작업을 했었기 때문이었죠. 이걸 베이스로 무언가를 더 하고 싶었고, 첫 번째 프로젝트는 국방부와 하는 거였어요. 아무것도 모를 때라 인터뷰에도 대표 한 명만 가면 될 것을 여덟 명의 멤버가 모두 차려입고 우르르 갔어요. 나이도 다들 어렸죠. 심의 보시는 분이 했던 처음 질문이 멀리 갈 수 있겠냐는 거였어요. 여자 멤버들은 어딘지도 모르고 할 수 있습니다! 했죠. (웃음) 그렇게 마포에서 땅끝마을인 진해까지 갔어요.

 

혜진

그렇게 멀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미경

해군이랑만 3년 정도 프로젝트를 계속했어요. 담당 부사관들이 이동하면 같이 따라갔죠. 진해에서 동해 그리고 평택까지. 그쯤 되니 안 해본 데를 가고 싶더라고요. 육군, 공군, 해병대까지 뚫어보자는 목표를 잡았어요. 이왕 시작한 거 다 돌아보자. 그다음이 공군이었는데 우리는 무조건 전투기가 있는 부대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아람

(웃음) 왜 전투기 있는 데로..

 

미경

아니, 그게 전투기가 보고 싶었어요. (웃음)

 

일동

와하하.

 

미경

(웃음) 이왕 하는 거 그런 재미가 있으면 좋잖아요. 해군에 가서도 이순신 함대부터 다양한 함대가 한 번씩 들어오는데 그걸 타는 게 세상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렇게 전국의 부대들을 돌았어요.

 

혜진

목표는 모두 달성하셨나요?

 

미경

해병대만 못 갔어요. 해병대까지 갔어야 끝맺음이 되는데. 보통 남자분들이 군대 얘기하시면 여자분들은 군대 얘기 또 한다, 그러는데 저는 군대 얘기하면 신나요. 어디 있었어요? 물어보고요.

<군대 얘기에 신난 미경> 

혜진

군인은 아니었지만 군대 얘기를 할 수 있는 여자.

 

미경

네,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안양의 한 동네에서 커뮤니티 예술 프로젝트를 오래 했어요. 더나라의 활동 범위는 굉장히 열려 있어요. 목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계속 듣는 작업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야 해요.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아요.  

✈️ 미경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잠시 마무리 짓고, 쉼을 찾아 독일로 떠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을 해 오신 것 같아요. 독일에서는 무엇을 하며 쉬셨는지, 쉼을 찾아 떠났던 곳에서 다시 미경님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똥

어떤 계기로 떠나게 되신 건가요?

 

미경

왜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게 되면 직업을 쓰라고 하잖아요. 직업란에. 어느 순간 그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저 자신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 거죠. 직함이라는 게 다 사라진 상태였어요.

 

혜진

그것에 대해 고민을 하러 떠나신 것도 있으셨군요.

 

미경

맞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열려 있었지만 그걸 계속 행하는게 벅찼던 시기였어요. 주변에선 아무도 몰랐지만. 그래서 그때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마무리하고 전시를 끝내자마자 그 주에 티켓을 사서 주말에 바로 독일에 갔어요. 베를린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3개월 안에 집이 구해지지 않으면 그냥 돌아오자. 그게 전제 조건이었죠. 그런데 3개월 되기 직전에 집을 구하게 되어 2년을 머물 수 있는 비자를 받았고 그게 1년,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6년이 되었어요. 정말 저한테 오롯이 집중했던 시간이었어요.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일들이 뭐가 있을까 처음으로 고민해봤고요.

 

혜진

베를린에서 무엇을 하셨나요?

 

미경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전시만 보러 다니고 공연만 보러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하도 돌아다니고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하니까 그다음 해에는 큐레이터나 디렉터들이랑 얘기하다가 이런 거 같이 해보자, 하나 두 개 해보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고요. 그때 당시 운이 잘 따라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제가 기자로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가서 볼 수 있는 선택권이 우연히 주어졌어요. 이런저런 일들의 초기 단계를 볼 수 있었죠.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돌아왔지만. 어딜 가나 사람들이 저한테 항상 물어봐요. ‘너 뭐해? 어떻게 지내?’ 그러면 저는 ‘저 놀고 있는데요?’ 하면 ‘뭐 하고 놀아?’ 그래요. 그러면 ‘놀 게 너무 많아요’라고 대답해요.

 

아람

부럽다. 놀 게 많다는 게. 요즘 놀 게 많다고 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미경

잘 놀다 왔고, 이제 여기서도 잘 놀아보려고 해요. 저는 20대, 30대가 다 즐거웠어요. 30대 중반까지도 즐거웠고,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가 40대 초반에 딱 돌아왔거든요. 그래서 40대를 또 다시 즐겁게 보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어요. 어느 시기로 돌아가든 다 돌아가고 싶어요. 10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른 건 다 좋았는데 입시 때문에.

 

혜진

아람 선생님의 20, 30대는 어떠신가요?

 

아람

저는 오히려 10대 때부터 열심히 놀아서 10대, 20대가 가장 행복했는데. 30대.. 결혼하고.. 하하하. 아.. 행복해요. 하하하. 아기를 낳아도 아기 때문에 행복한 게 뭔지 알겠고. 그 전과는 환경이 너무 다르니까 거기에 대한 갭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 행복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밖에서 예술가로서 커뮤니티 작업을 하고, 공동체를 꾸린다고 하지만 남과 인생을 같이 공유하면서 산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 그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어떠한 큰 문제가 와도 사실 그거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무난히 넘기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이 가정에서 배우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찾은 행복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그냥 지내고 있어요. 무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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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요. 하하하> 

미경

그게 되게 어려운 거예요.

 

아람

보통이라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아무튼 그걸 찾은 게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고, 그다음으로는 작업을 하는 거니까. 작업을 평생 하는 사람도 사실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제 작업을 지켜내려고 조바심 내지 않고 조금씩 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30대도 행복해요.  

👩‍🔬 신박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미경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점심시간에 산업단지 근로자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에요. 그 분들은 거기에 일을 하러 오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심이 많으세요. 처음에 들어갔을 때 딱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그 사람들이 원래 쉬고 있던 공간을 점유해 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저희가 점유해서 앉아 있으니 아예 못 넘어오시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한번 빠져보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이 꼭 대면의 형식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사탕하는 점심시간> 
미경  

그래서 다시 시작한 게 ‘사탕해요’라는 타이틀의 에피소드였어요. 테이블 위에 여러 종류의 사탕을 깔아 놓았어요. 1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의 근로자분들에게 어떤 사탕이 반응이 좋을지 궁금한 거예요. 생각보다 막대사탕을 좋아하세요. 그걸 가져가서 입에다가 이렇게 돌돌돌 돌리고 계실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저희는 그걸 상상하면서 아, 몇 분이 그걸 갖고 가셨으니 손가락 운동과 함께 저작운동을 하고 계시겠구나 하는 거죠. 저희와 함께. 저희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저희가 놓아둔 행위만으로도 함께 했다고 보는 거죠.


혜진

그럼 두 분은 어디에 계시나요?

 

미경

저희는 건너편 카페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누군가 사탕을 가져가면 벌떡 일어나서 ‘가져가셨어, 가져가셨어’ 하면서요. (웃음) 행위를 도와주는 서포터가 아니라, 한 발짝 뒤로 빠져서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이 된 거죠. 아람 쌤도 처음에 제안을 주셨던 부분이었고요.

<채소 심기 좋은 점심시간> 

미경

그때 사탕이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아서, 그다음에는 씨앗을 여러 가지 두고 화분에 심게 했어요. 어떤 씨앗 종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궁금해서요. 심어주신 씨앗은 저희가 열심히 물을 주어서 키우고 있고요. 이걸 다 키워서 사람들한테 다시 돌려줬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 등등 여러 실험을 하고 있어요. 원래 계획했던 프로젝트에서 많은 것들이 벗어났지만, 저희 스스로 ‘근로자의 취미가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는가?’, ‘점심시간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이 실행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계속 던지고 있어요. 프로젝트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채소들의 닉네임> 

혜진

비대면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색다르네요.

 

미경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단어에서 저는 ‘교육’의 앞에 있는 ‘예술’이, 더 주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예술’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전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근데 보통은 뒤에 있는 교육에만 목적을 두죠. 그래서 신박한 실험과 도전에서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산업단지에서 하는 문화예술교육, 쉽지 않은 거 알고 있거든요. 전에 해봤는데 이걸 또 해보는 거예요. 근데 안 한다고 해서, 예를 들면 못 한다고 해서, 망했다고 해서 그 대상자를 제외 시키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은 전체를 대상으로 가는 게 아닌 거예요. 특정 대상을 위한 거죠. 아동, 청소년 그리고 노년 대상. 이 두 대상으로 굉장히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 대상이 없어요. 근데 문화예술을 가장 활발하게 향유하는 건 결국은 20~30대, 그리고 40대 젊은 부모들이고, 그들이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가서 문화예술을 경험시켜주는 거잖아요. 결국은 다시 돌고 도는 순환의 구조라고 봐요. 처음에는 소수이지만 어느 순간 다수가 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 문화예술교육이 가야할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소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은 현재 많이 없나요?

 

미경

네, 거의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안 해야 하는 것인가? 왜? 좀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나? 우리가 맨날 하려는 방식대로 하니까 이들하고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30분, 15분, 10분 이렇게 시간을 나눠본 것도, 왜 문화예술교육은 무조건 3시간이어야 돼? 강사료 책정 때문이거든요. 근데 30분 수업이라고 해도 강사들은 3시간 동안 수업을 준비해야 돼요. 시간의 소요가 중요한 게 아니고, 대상자에 따라 각각에 맞는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 변화를 줄 수 있는 범위가 없어요. 현재 문화예술교육 사업들은. 그래서 우리가 한 번 (새로운 변화를) 던져보겠다 해서 던졌어요. 가능할지는 저희도 몰라요. 왜냐면 이건 실험이니까. 이게 성과적이지 않다고 해서 망한 것이냐, 하면 전 아니라고 보거든요. 우리가 예측하는 것만이 성과적인 건 아니잖아요. 예측은 불분명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듯이. 저희의 끝은 매뉴얼 하나를 만들어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렇게 기획이 됐고 실행해 봤더니 안되더라, 그래서 단계를 바꿨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더라.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 있는 산업단지의 근로자분들을 대상으로도 가능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해요. 물론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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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예술을 통해 먹고살 만 하셨나요?

아람

예술을 통해서? 너무 힘들어. 하하하

 

미경

이 질문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나요?

 

혜진

기본값이 아닙니다, 그냥 굶지는 않을 정도입니다, 였어요.

 

아람

예술과 먹고 살기는, 저는 따로 생각해요. 투잡을 뛰면서 예술을 한다. (웃음)

 

미경

(웃음)

 

아람

저는 그 두 가지를 연결하지 않아요. 작업도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다른 분야로 생각하고 있어요.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의 아람과 미경> 

미경

먹고 살 만한 정도가 되려면 거의 몸이 남아나지 않아야 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프로젝트를 많이 할 때는 1년에 10개를 넘게 했거든요. 그러면 사실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를 돌아볼 수밖에 없게 돼요. 저는 월, 화, 수, 목, 월, 화, 수로 살았어요. 그때. 이게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을 많이 힘들게 하더라고요.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타 장르에서 일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힘듦을 요구하죠. 그냥 요구예요, 강압적인 요구. 이걸 인지 못 하고 뛰어들었다가 공중 분해되듯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은.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대상 또는 순간이 있나요?

미경

집은 곧 사람이라 생각해요. 사람이 살아야만 집이고, 그렇지 않은 집은 결국은 죽어간다고 봐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하나의 큰 매개체가 집이죠. 그래서 그런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요. 전에 박달동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가족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사진관에서 연출된 것이 아닌 본인의 집, 가장 남기고 싶은 공간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거죠. 이 커뮤니티 작업을 했던 이유 중 하나도 사람이 살고 있는, 가족 공동체 구성원이 가장 작게 담겨져 있는 곳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였어요.

 

아람

저도 집에 대한 미경 선생님의 이야기에 공감해요. 요즘 저는 반경을 조금 넓혀서 제가 활동하는 동네까지를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데 살았으면 몰랐을 텐데, 저희 동네가 난개발이 심하고 환경이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외부를 유심히 관찰하게 돼요. 오늘은 어떤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그런 걸 항상 체크해요.

 

혜진

그 외에 집처럼 편한 장소가 있으신가요?

 

아람

저는 산. 등산을 되게 좋아해요. 산에 가면 집 같다는 생각을 해요. 마음이 좋든 안 좋든 산에 가면 편안해지고 좋아요.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고요.

 

미경

저는 물가. 산을 무서워해요.

 

아람

저랑 반대네요. 저는 물을 무서워해서 바다를 싫어해요.

 

미경

고1 때 수학여행으로 갔었던 설악산에서 내려오다 굴렀던 적이 있어요. (웃음) 비가 왔었는데, 보통 비가 오면 가지 말아야 하잖아요. 근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올려보냈어요. 흔들바위까지 잘 갔다가 내려오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서 굴렀어요. 그 순간부터 산이 확 무서워졌어요. 물가는 강, 호수, 바다 다 좋아해요.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게 좋아요. 특히 물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껴요.

🏘 더나라는 커뮤니티,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커뮤니티 예술 활동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미경

이번 프로젝트처럼, 저는 산업단지 근로자분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계속 확장 시키고 싶어요. 사실 저희가 이렇게 돌을 던진다고 해서 얼마나 큰 파장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다음에는 제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대상자들을 만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끝내 못 가봤던 해병대라던가. (웃음) 또 예전에 했었던 커뮤니티 예술 활동들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다시 해보고 싶기도 해요.

<산에서의 워크숍을 기획하는 이아람 대장> 
아람

저는 한 번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약간 분리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가족이 생기다 보니까,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도 마음먹기 쉽지 않은 엄마들이 많다는 거였어요. 동네 주변이 다 산지인데,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요. 길이 너무 많이 나 있어서 길 찾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그 길을 하나씩 다 가봤어요. 모르니까. 산길은 사실 구분하기가 되게 어렵거든요. 그런 것들을 알려주면서 함께 하는 워크숍을 항상 생각해 왔어요. 저희 동네가 난개발이 심하다고 했잖아요. 대부분 흙산인데 산꼭대기까지 집을 다 지어놨어요. 우리가 산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구나, 하는 처참한 광경을 볼 수 있죠.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관광 사업이랄까, 그런 워크숍을 해보고 싶어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소개해주세요.

미경

저는 무조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이요.

 

혜진

오늘도 모두 검정인가요?

 

미경

오늘은 청바지를 입었어요. 드문 일이에요. 아무래도 무대에 올라갈 때 항상 검정색 옷을 입다 보니 어느 새 익숙해진 것 같아요. 나를 표현하거나 드러내야 할 때는 언제나 검정색을 입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편안해요.  


아람

개인적으로 ‘의’는 최근 3년 정도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짐이 쌓여가면서 버리게 된 키워드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하다 보니 나를 설명하고 보이기 위한 것보다는 적당한 움직임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 ‘의’로 변했어요. 그래서 요즘 저의 ‘의’는 주위 환경에 적응해서 발견되기 어렵게 하는 보호색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호색이라기엔 멋진 아람의 복장과 검정옷이 편안한 미경> 
🎤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아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개개인의 삶의 패턴이나 사고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예술 쪽도 많이 바뀌었고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에 계신 분들은 코로나 이후로 어떤 일상을 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 그분들의 꿈에 관해 묻고 싶어요. 한 가지 질문으로 다양한 생각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미경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 또는 사업이 아예 없어진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가요? 이거 말고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 때문에 당장은 못 하고 있는 다른 관심사에 대해 질문을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 더나라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미경

사실 저희는 큰 계획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영역의 일들을 확장해나가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은 있지만요. 그냥 올해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 <점심시간:점점 마음을 여는 시간>이 잘 마무리되고, 재미있는 하나의 매뉴얼로 만들어져서 전국 각지에 뿌려지기를. 그래서 우리의 실험과 도전에 대해 ‘잘되었네, 그렇지 않네’가 논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우리도 이런 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들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산업단지는 전국 어디든 존재하니까요. 그런 바람 정도만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열무가 돌아왔어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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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소재용, 동서신악연구소 더나라
  • 녹취록 작성: 김도연
  • 장소: 안양창업지원센터 3층
  • 인터뷰 발행일: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