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라잎스페이퍼는 경기문화재단의 ‘난생처음꿈지’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18개 문화예술교육 단체의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18개 단체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7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매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아트팟의 현희와 보노.>
아트팟: 고전에는 늘 극단적인 비극과 극단적인 웃음이 공존하거든요.
  • 인터뷰이: 현희, 보노
  • 인터뷰어: 충현, 소똥
  • 인터뷰 편집: 충현
작년 7,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실패라고 느껴질 만한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고, 겪어본 적 없는 깊은 우울이 찾아왔다. 오랜 연애가 끝났고, 몇 달간 준비하던 축제는 코로나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회사를 퇴사했고,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각종 이유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슬프고 쓰라린 실패의 경험들이 해일처럼 동시에 나를 덮치자, 아무런 면역이 없던 나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렸을 때부터 실패해도 괜찮다는 멋진 어른들의 멋진 말을 참 많이 들어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실패 후 멋지게 도약한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도무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 누구에게도 진짜로 실패했을 때, 그 실패로 무너졌을 때, 오늘 당장 무엇을 할 힘이 없어 누워서 울기만 해야 했던 그때, 그 깊은 우울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반년의 시간이 지났고, 나 자신을 보살피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을 즈음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트팟의 현희, 보노는 예술이 힘든 순간을 버텨내는 방탄복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이기는 하지만, 예술을 통해 우리는 감정의 양극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감정을 잘 추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이러한 예술 교육을 즐겁게 참여하고 감정의 양극단을 느낀다면 그 경험이 나중에 어떠한 백신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그게 예술의 역할인 것 같다고도 말했다.
 
작년 한 해를 보내고 알게 된 건, 힘든 순간과 우울한 감정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그 우울로부터 나 자신을 잘 방어하고 무사히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돌아오는지이다. 그 실패를 발판 삼아 성공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다. 그 역할을 정말 예술이 해낼 수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예술의 존재 이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충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두 분이 만나게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현희
안녕하세요. 아트팟 장현희입니다. 아트팟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예술 교육을 하고 있어요.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활동과 워크샵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가 되고 싶답니다. 사실 꿈지에 참여해야겠다고 작년부터 검색을 해서 찾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신청 전에 급하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만들어진 단체에요. 팀원인 보노는 학교에서 과 후배로 만나서 20년 정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제가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해서 함께하게 됐어요. 보노의 이메일이 코튼팟인데, 거기서 따와 아트팟이라고 짓게 되었고 예술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보노
저는 연극영화과를 전공했는데 연극영화과 후배들이 진행하는 아동 연극에 영상 기록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극 놀이, 예술교육이 뭔지 처음 알게 되었어요.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였는데 그 시기가 예술교육에 연극, 영화라는 장르를 접목시킨 초창기였거든요. 기존의 미술, 음악 교육으로 국한되던 예술교육이 확장되던 시절에 연극 놀이라는 개념을 접한 거죠.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보니 그때 어려움이나 지금 어려움이나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바뀐 것이 있다면 코로나가 시작되며 디지털이 중요해졌다는 점이죠. 본업으로는 미디어 설치 관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똥
라잎스페이퍼를 통해 꿈지에 참여하는 여러 단체들을 만나고 있는데 연극영화과를 전공하신 분들이 정말 정말 많더라고요. 신기했어요.
 
현희
연극은 아니지만, 저도 어릴 적 꿈이 미술 대학을 가는 거였는데 점수 맞춰 인문학부와 영상 쪽을 졸업했어요. 졸업하고 직장생활, 프리랜서로 살다가 지치고 다시 예술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결국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작년에 졸업했어요. 제가 간 곳이 컨템포러리 아트라고 해서 시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에 너무 집중되어 있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의 성격이 큰 장르를 다루는 곳이었어요. 언어적인 부분, 활동과 퍼포먼스 적인 부분이 많은 학교였죠. 졸업하기까지 힘들었지만 나름 만족도가 있는 게, 보통은 미술을 전공하면 작가가 되고 조각가가 되고 화가가 되는데 제가 다닌 과에서는 활동가가 되자고 했어요. 삶의 모든 게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작업이라 생각하면 이게 예술인 거예요. 처음에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는데, 그걸 받아들이니까 다른 모든 것을 보는 자세가 바뀌며 열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여유로워지더라고요. 마음에 자신감과 안정감을 얻었어요. 그냥 살았다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서 좋은 것 같아요.

<작업 중인 현희.>
💭사전질문지를 통해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예술교육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자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배경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예술교육을 통해 어떻게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
보노
그냥 단순한 논리인데 고전적인 예술의 인물화, 풍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이라는 것이 인물과 자연을 관찰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하려고 하는 미디어 아트교육도 미술이라는 범주 아래 있기 때문에 자연과 사람, 자연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관찰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연을 다루려는 또 다른 이유는 미디어아트 자체가 워낙에 장비를 가지고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아동들과 교육할 때 그 반대 급부적인 무언가를 보충해주고 싶었어요. 그것이 자연이었던 거죠.
 
현희
보노가 말한 것처럼 자연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미술에서 오래된 전통의 과정이에요. 대표적인 게 세잔인데 한 달씩 같은 산을 바라보고 그랬대요. 저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이들이 산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내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게 다 자연이거든요. 길도 자연이고 벽도 자연이고 마주친 사람들도 다 자연이에요.
💭난생처음꿈지에서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현희
처음 제출했던 프로그램에서 살짝 수정을 했어요. 처음에는 미술, 미디어아트가 중심프로그램이었는데 고민을 하다 보니 너무 딱딱하고 기존에 나와 있는 미술 프로그램이랑 너무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멘토님이나 꿈지 심사 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고민을 많이 해서 바꿔봤는데, 첫 회차에 모여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세 가지 단어를 포스트잇에 쓰고 저희가 준비해간 못 쓰는 잡지나 동화책 수십 권 중에 그 단어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을 책에서 찢어서 커다란 종이에 콜라주처럼 붙여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걸로 자기소개를 하는 게 1회차에요. 산책이 2회차고 3회차가 산책을 통해 발견한 오브제로 드로잉을 하는 수업이에요. 그 외에도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면용 프로그램이라 비대면으로 진행하게 되었을 경우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소똥
무사히 잘 진행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희님은 언제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현희
원체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선생님을 되게 싫어했어요. 뭔가 가르치는 그 자체가 싫더라고요. (웃음) 직접 읽고 연구를 한 다음에 알아내는 그 어떤 시간을 들였을 때 찾는 거지 누가 알려줘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릴 때부터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못된 아이죠. 커도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예술 같은 경우는 창작이니까 아무리 좋은 작품, , 선생님을 만나도 제가 하면서 실패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할 때 진짜 배워요. 직접 작업을 하며 배울 때가 많고 그걸 공유했을 때 시선과 생각이 오가면서 배우는 게 많고 그런 것 같아요.

<현희의 작업실.>
보노
예술교육을 할 때는 배우고 가르치는 게 큰 의미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험을 치면 내 상식으로는 3번이더라도 실제로는 답이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배운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자기 상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상식을 따르는 것인 것 같아요. 그게 교육의 역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적어도 예술에 있어서는 그래서는 안 되거든요. 몸의 움직임과 반대되고 피교육자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걸 지식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전혀 즐겁지 않죠. 예술교육에 있어서는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되고 그것으로써 삶이 바뀔 때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교양이나 지식인들이 배웠다고 하는 경우는 나의 상식을 버리고 남의 상식을 따르는 건데 그게 예술가의 태도는 아니죠.
💭 의에 관련하여 예술이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는 방탄복의 역할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술이 두 분에게 방탄복이 되어주었던 순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방탄복이 되어줄 예술적 삶을 살 수 있을까?
보노
연극영화과를 다니면 고전 희곡을 배우잖아요. 고전을 배우다 보면 극단적인 비극과 극단적인 웃음이 공존하는 상태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일인데 고전극이다 보니 그런 상태가 매번 나오죠. 감정의 양극단이 공존하는 상태. 슬픔과 희망이 같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극단적인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게 되면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어려운 상태에 그 순간이 떠오르고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어릴 때부터 이러한 고전 예술 교육을 통해 감정의 극단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그 경험이 나중에 어떠한 백신의 역할을 해줄 것 같아요.
 
보노
또 직접 예술작품을 만들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르는 경험을 하게 돼요. 예술이라는 거짓말, 예술이라는 법칙 안에서만 가능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잘 균형 잡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고전 예술교육의 한 역할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방탄복이라는 표현을 한 거죠.
 
현희
요즘 근력운동, 헬스, 웨이트 같은 것이 유행이잖아요.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내 몸을 가꾸는 것,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마음의 스트레칭, 마음의 근력운동, 마음의 요가 이런 것들은 예술을 통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력운동이라는 것이 힘들게 근육을 괴롭혔다가 놔줬다가 그러면서 근육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안 해봤지만. (웃음) 근데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에서 주로 다루는 것들이 육체와 다른 부분이 강화되는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방탄복이라는 것에 동의를 했어요.
💭 현희님의 경우 직장생활,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로 살다가 지치고 다시 예술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들어가 현대미술을 전공하셨다고 했습니다. 직장,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며 각각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대학원에서 다시 현대미술을 전공한 뒤로 무언가 바뀌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현희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돈 있는 집안 애들처럼 돈을 벌지 않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직장에 들어갔죠. 인형 눈알 붙이는 직업이라고 예를 들고 얘기해보자면 처음에 들어가서 아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인형 눈을 잘 붙였어요. 인정을 받죠. 그러면 점점 더 내가 붙어야 할 인형 눈알이 많아져요. 2-3년은 그걸 잘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3년이 넘어가면, 사람이 당연히 지치게 되죠. 인형을 남들보다 많이 붙이면. 그래서 이제 중간관리자로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면, 회사 상부에서는 너는 이제 인형 눈알 그만 붙이고, 밑에 있는 애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인형 눈알을 붙일 수 있도록 시켜야 해. 애들이 느려지지 않도록.” 그 일을 잘하면 또 인정을 받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게 좀 싫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사장만 이익을 가져가고 하는 걸 왜 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했어요. 근데 고민을 하면 다른 중간 관리자보다 그 순간부터 못 한 사람이 되는 거더라고요. 그러면서 회사에서 갈등이 생기고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고 딴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는 그런 패턴이 있었어요.
 
현희
쉴 때는 해보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지냈는데 그러니까 당연히 돈이 떨어지죠. 제가 하는 일이 위계질서가 있어서 나이가 있으면 일을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플랫폼 노동이라고 외주 알바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자유롭고 좋아요.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요. 그런데 결국 내가 할 수 없는 스케줄로 일이 나오더라고요. 저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거죠. 납품 기간은 항상 촉박하고 결국 몸을 버리게 되고요. 더 억울한 건 나에게 돌아오는 것보다 업주에게 가는 게 비현실적으로 많다는 걸 깨닫는 순간, 또 하기 싫어지는 거죠. 왜 내가 한 걸 이 사람이 다 가져가지? 그러면서 또 일이 떨어지면, 손을 비벼야 하는 거예요. 삶의 질이 떨어지더라고요. 직장생활도 프리랜서도 둘 다 삶의 질이 떨어졌어요.

<아트팟의 디자인 작업.>
소똥
그러다가 다시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군요. 대학원을 들어가니 어떠셨나요?
 
현희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삶의 모든 요소가 다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게 삶의 자세에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좀 덜 두려워하게 된다고 그래야 되나? 원래 항상 두려웠거든요. 근데 맘이 좀 열린 것 같아요.
 
소똥
대학원에서 수업의 영향이었나요? 아니면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영향이었을까요? 아니면 복합적일까요?
 
현희
복합적으로 그렇고, 고민을 하다가 얻은 결론인 것 같아요. 대학원을 갔는데 또 좌절을 했어요. 프로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시스템이 존재해서 보수적인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않는 한 작가의 타이틀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이름을 내세우면서 살아가는 게 정말 어려워요. 특히 저는 다른 전공을 하다가 왔기 때문에 더 불가능했고, 난데없이 바람에 불어온 풀잎 하나가 뭘 할 수 없구나. 그러면서 좌절을 했어요. 근데 그렇게 좌절을 하고 고민을 하고 저 같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뭐라도 작업을 하고 창작을 할 수 있으면 작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죠. 사실 저 같은 아이들이 훨씬 많거든요. 작업을 멈추지 않으면 작가다. 라는 가치관을 받아들였어요.
 
소똥
그 라인에 들어가서 악착같이 버티고 성공하는 삶이 사실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변에도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어요. 5년을 넘게 준비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경쟁 속에서 합격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상한 가능성, 이상한 확률이더라고요. 그럼에도 그 안에서 악착같이 하는 게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정리되진 않지만요.
 
현희
좌절을 극복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게 또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소똥
사실 이번 주에 인터뷰 서문 쓰면서도 좌절했거든요. 서문 쓰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다음 주엔 정말 잘 써야지. (웃음) 좌절을 극복하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현희
좌절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너무 잘 쓰고 계세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 대가를 잘 받고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더라고요. 경기문화재단에서 많이 주셔야 할 텐데.
 
소똥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충현
이렇게 열심히 하면 다음번에는 좀 더 잘 챙겨주시지 않을까... (웃음)
 
현희
그런 노력이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욕심을 내고, 더 달라고 말을 하고.
 
소똥
상황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웃음)
💭 모두 그렇지만 특히 문화예술계는 코로나의 타격을 직격으로 맞았어요. 여전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있고, 두 분도 코로나 시기에 정말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겪어오셨을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현희
극한체험에서 얻어진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됐는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찾고 좋아하게 되고 이런 경우가 있잖아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문화예술교육에 접근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꿈지에 참여하지 않았을 테고 나의 경험 자체가 열리지 않았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어떤 극단의 순간에, 바닥을 치는 순간에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고 전환을 하면서 진짜 실낱의 희망이라도 잡고 올라올 수 있는 능력을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도 망가지고. 작은 희망이라도 전환시키기.
 
보노
워낙에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만 있다 보니 매체가 디저털화 되잖아요. 모든 미디어가 개인 미디어 안에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연극영화과 입장에서 보면, 예전에는 예술영화가 사라지고 큰 상영관, 대중적인 영화만 생겼는데 요즘은 상영관마저 필요 없고 핸드폰에서 미디어들이 유통되고 점점 개인화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원래는 영화나 예술이었다가 그다음 단계가 미디어 교육을 어떻게 할 거냐는 걸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갑작스럽게 파편화되고 개인화되는 국면에서 어떻게 디지털 매체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예술교육을 할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상황에 매몰되지 않아야죠.
 
현희
예전에는 대자본 영화에 밀려서 개봉하지 못했을 영화들이 지금은 상영관이 넘쳐나서 개봉할 수 있는 것도 역설적이고 하나의 기회가 되는 거죠. 어벤져스 같은 거대 산업들의 개봉이 미뤄지고 OTT 산업이 너무 발전하면서 컨텐츠가 부족해지고, 그래서 새로운 작품 제작이 너무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 거예요. 물량이 엄청나게 증폭되고 일손이 모자라고 이런 상황이거든요. 굉장히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소똥
모두가 처음 맞이하는 이 코로나 상황에 어떤 시도를 해봐도 괜찮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처음이라서 실패해도 시도만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되는 때가 있어요. 그게 또 이 시기를 보내면서 겪으면서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희님 말씀처럼 작은 희망, 작은 실마리라도 잡고 시도하고 해보는 게 중요하겠어요.
 
현희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독일 나치 시절에 학대받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들 있잖아요. 힘든 순간에 상상을 통해서 헤쳐나가는 영화들이 꽤 있었어요.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순간이 떠올랐어요. 안네의 일기처럼 일기를 쓰고. 소통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집에 혼자 너무 오래 있다가 줌이라도 하면 너무 기쁘더라고요.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어떤 거를 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열심히 개발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보면 봉화를 들고 열심히 달리잖아요. 그렇게요.
 
충현
저희가 달리고 있는 거죠. 라잎스페이퍼가 그런 의미에요.
 
소똥
요리조리 달리고 있죠. (웃음)
💭 잘 먹고 산다는 것은 비단 뭘 먹고 어디서 자느냐의 기능적인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취미를 찾고 누리는 것 또한 잘 살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두 분이 빠져있거나 덕질하고 있는 취미가 있나요?
소똥
축구를 되게 좋아하는데 마스크 끼고 뛰는 게 여간 쉽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아예 못하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운동을 못 한다는 것 자체가 그걸 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오는 무력감은 있어요. 취미를 못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요새는 산책을 많이 하려고 해요. 집에 있는 상황이 많고 집에 있으면 대부분 컴퓨터를 하니까 너무 찌뿌둥한 거죠. 낮에는 너무 더워서 주로 밤에 산책을 하는 게 요즘 가장 큰 취미에요.
 
현희
의왕시는 산책할 공간이 많아요? 한 번도 안 가봐서.
 
소똥
다행히 제가 사는 곳 뒤에 산책로가 있어요. 두 분의 취미도 궁금합니다.
 
보노
작은 사이즈의 피규어를 수집했었어요. 큰 사이즈는 둘 곳이 없어서 작은 걸 보통 수집하고 작은 피규어는 뽑기에서 나오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서 가격이 저렴해요. 요즘은 또 이런 것마저도 둘 곳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보는 수준에 멈춰있죠.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상업적으로 많이 안 팔리는 것들이거든요. 유명한 가수들이 수집하는 피규어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피규어고 제가 모으는 피규어는 아랫 단계의 마이너한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것들이죠. 이건 모리책이라는 디자이너의 작품이구요. 글루미 베어라는 유명한 캐릭터에요.
 
현희
쟤 되게 잔인한 곰이에요. 사람을 잡아먹어요. 지금 보시면 피를 흘리고 있거든요.
 
소똥
아 저게 사람이구나. 뭔가 했는데 사람이었어. (웃음)
 
보노
일본스러운 스토리에요. 피규어의 핵심은 평면 캐릭터를 조형적인 입체로 얼마나 잘 만드느냐. 그런데에 이제 있는 거죠. 그런 게 덕질이고요. 그림으로 있는 아주 평면적인 캐릭터가 입체로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지. 그걸 보는 그런 재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형사의 역할이 큰 거죠. 이게 입체를...
 
현희
그만 얘기해도 될 것 같아. (웃음)
 
충현
진짜 좋아하셨던 게 느껴져요. 여러 번 말씀하시니까 더 느껴져요.

<글루미베어와 보노. 글루미베어는 보노의 손 위에서 사람을 먹는 중이다.>
현희
보노가 피규어가 엄청 많은데, 먼지 쌓일까 봐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더라고요. 원래 전시를 해야 하는데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깊숙한 장 속에 있어요. 최애장품들은 포장한 상태로 어딘가에 숨겨놨을 거예요.
 
소똥
약간, 신발 사도 박스 안에 계속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죠.
 
보노
그쵸.
 
충현
가장 애정하시는 피규어가 뭔지 궁금하네요.
 
보노
가상밴드 중에 고릴라즈라는 밴드가 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 만드는. 그게 좀 큰 사이즈인데 가장 애정하는 피규어죠. (웃음) 한국에서 잘 팔리지도 않아요. 잘 몰라요. 비싸기만 하고.
 
현희
저는 오타쿠질을 열심히 하진 않아요. 그것도 진짜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요. 언뜻 든 생각은 어릴 때부터 스티커 모으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모아서 항아리 어딘가 숨겨놨는데 7살 때인가 엄마가 버렸어요. 그때부터 앙금이 자라났거든요. 암튼 그런 거 모으는 거 좋아해서 문구점 가서 요즘도 사고 그래요.
 
현희
그다음으로는 예술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영화관은 안 가고 집에서 봐요. 해외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에 안 들어온 영화는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봐요. 재작년에 본 것 중에 '행복한 라짜로'랑 '경계선'을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제 작업이나 정신세계에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충현
저는 소똥이랑 오래된 친구여서 그런지 취미가 많이 겹쳐요. 축구를 자주 같이하고, 게임 요새 많이 하고 하는데요. 특히 코로나가 시작되고 각자 집에서 게임으로 만나는 경우가 되게 많고요. 저는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 되게 좋아해요. 요즘은 다양하게 만나진 못하지만,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합니다. 또 취미가 뭐가 있지? 근데 요즘은 라잎스페이퍼 만드느라 많이 바빠요. (웃음)
 
현희 
진짜 바쁘실 것 같아요. 일주일에 두 팀 정도 인터뷰하시는 거예요?
 
충현
맞아요. 두 팀이나 세 팀?
 
현희
헷갈리실 것 같아요. 이 사람 인터뷰하고 저 사람 인터뷰하고.
 
충현
조금 헷갈리긴 해요. 근데 워낙 사람들하고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니까, 일이긴 한데 이 정도면 즐거운 일이죠.
💭 가장 당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현희
원래 오랫동안 블랙을 좋아했는데요. 어느 순간 제가 블랙만 입으면 남들은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똥
왜요?
 
현희
밝은 옷을 봐야 기분이 밝아지지 않을까요? 특히 아이들을 만날 때 밝은 옷을 보면 더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질리기도 한 것 같아요. 질려서 화려하고 밝은 옷을 입고 싶어지더라구요. 원래는 블랙을 좋아하긴 했었어요. 시각적인 일을 하니까 색깔에 되게 예민해지면 옷에 있는 색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거슬리는 거예요. 블랙은 그런 현상이 안 일어나니까 계속 블랙만 입게 됐었죠.
 
보노
검정색 청바지 검정색 피켓티, 여름에는 반팔티, 겨울에는 긴팔티. (웃음) 그렇게 한 5벌씩 사고요. 2년씩 입고 버리고 또 똑같은 5벌씩 사고, 회사를 다니다 보니 월화수목금 똑같이 보이도록 해요. 하지만 다 다른 옷이죠.

<줌으로 진행한 아트팟 인터뷰. 현희와 보노는 역시나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소똥
좀 꾸몄다고 생각하는 옷이나 특별한 날 입게 되는 옷은 뭔가요?
 
보노
지금은 그런 옷이 없어요. 직장의 일이 비슷하다 보니까 특별한 날에는 그냥 위에다 자켓 걸치고 나가는 수준이에요. 갈수록 옷에 신경 쓸 일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현희
피부가 민감해서 집에서는 대개 순면으로 된 옷을 입고 있거든요. 입다 보면 순면은 금방 닳아서 떨어져요. 1년 입으면 늘어나고 빵꾸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늘어나니까 오히려 내 몸에 딱 맞게 됐어요. 딴사람들은 왜 그런 빵꾸난 옷을 입고 있냐고 물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각자의 신체 체형, 형태에 맞는 옷이 제일 좋은 옷인 것 같아요.
 
충현
저는 품이 넓은 셔츠를 구제 옷집에서 되게 잘 사서 입거든요. 일단 구제가 싸구요. 구제샵에 있는 옷 종류 중에 셔츠가 주로 깨끗하거나 많고요. 품이 넓은 셔츠는 편하고 제 몸이 드러나지 않아서 주로 그렇게 입습니다. 저도 편한 옷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웬만하면 고무줄로 된 바지 입고.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먹고 살 만 하신가요?
보노
고등학교 때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서 고기를 못 먹게 됐어요. 알고 보니 담낭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결국 담석 때문에 담낭을 제거했고 이제 육고기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됐는데, 워낙 안 먹다 보니 그 이후로도 안 먹죠. 늘 회식 때 육고기를 안 먹는 것이 화제가 되다 보니까 일부러 고기를 열심히 먹는 척하면서 야채만 먹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채식이라는 게 금기시되는 용어의 수준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니지 않아요. 고기 먹는 자리에 가면 일부러 마다하지 않고 가서 고기 먹는 척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소똥
맞아요. 저의 경우에도 항상 채식한다고 하면 되게 유별나고 갑자기 멋진 사람이 되더라고요. 오히려 채식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야 해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일이 소개하고 설명하고 그런 데서 오는 피로가 있어요. 그래도 최근에는 채식하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전보다는 덜 소모적인 것 같아요. 반갑기도 하고요.
 
현희
두 분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세요.
 
소똥
좋아하는 게 많은데 일단 술을 좋아해요. 맛있는 술을 좋아해요. 전통주나 그런 술들 많이 찾아 마시는 편이에요. 청주, 약주, 소곡주, 막걸리 많이 찾아 먹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면 종류도 되게 좋아하고 일본요리들을 되게 좋아해요. 타꼬야끼 오꼬노미야끼 간장베이스 덮밥들이나 소바, 메밀 좋아해요.
 
현희
보노랑 식성이 비슷하시네요. 두부도 좋아하세요?
 
소똥
안 가리는데 충현과 같이 먹으면 두부를 못 먹어요.
 
충현
싫어하는 메뉴가 거의 없는 편인데 진짜 두부만 안 먹어요. (웃음)
 
현희
나랑 똑같네. 저도 두부를 안 먹어요. 근데 보노님이 두부가 주식이거든요.
 
충현
어릴 때부터 두부의 식감이 너무 싫었어요. 저는 어떤 요리를 딱 좋아하기보다는 어떤 요리가 있으면, 굉장히 맛있게 하는 집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먹는다고 해도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어야 하는, 그런 집착이 좀 있어요. 요즘 인터뷰를 많이 다니니까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잖아요. 그러면 인터뷰로 만난 분들에게 항상 물어봐요. 이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 어디냐고. 근데 두부는 안 먹어요. 두부는 싫어해요.
 
현희
미식가신 것 같아요. 판별하는 능력이 있나요?
 
충현
근데 음식을 먹고 식감이 어떻고, 온도가 완벽하고 이런 건 전혀 없구요. , 이것 좀 맛있다. 내 입맛에 맞다.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최근엔 혜화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소똥과 먹은 생선튀김이 맛있었어요.
 
현희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서 밥을 대충 먹고 살았어요.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시간이 많아져서 직접 해서 먹다 보니까 음식의 가치를 느끼게 됐어요. 맛있는 걸 먹으면 이렇게 기분이 좋구나. 그 사실을 몰랐거든요.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안 됐겠구나. 불쌍한 삶이었다. 생각했고 맛있는 걸 먹을 줄 아는 삶이 좋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똥
최근에 가장 맛있게 드신 음식이 있었나요?
 
현희
해산물을 좋아해요. 낙지볶음, 전복 이런 거요. 치킨도 좋아하고. 한식 좋아해요. 근데 가장 좋아하는 건 호밀빵 좋아해요. 빵을 잘 안 먹는데 호밀 함량이 많은 향긋한 호밀빵은 좋더라고요.
 
소똥
잼 발라서 먹으면 진짜 맛있죠. 생각보다 호밀빵은 포만감이 큰 것 같아요.
 
현희
시간이 많아서 천천히 먹다 보니까 맛이 느껴지더라고요. 음식도 집중해서 느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소똥
저와 충현도 맛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인터뷰 나누다 보면 다들 시간 쓰는 게 아까워서 대충 때운다는 느낌으로 먹는 분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되게 놀랐어요. 우리만 맛있는 거 중요하게 생각하나 싶더라고요. (웃음)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구나 했어요. 질문에 대답 들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현희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포식 행위잖아요. 그걸 포기하는 순간 채식주의자가 돼서 숨어 살아야 되는 건데. (웃음) 근데 플랫폼 노동하면서 포식자가 되지 않으면 피식자가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소똥
주변에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알바를 하면서 채소를 씻는데, 빨리 씻으면 빨리 쉴 수 있을 줄 알고 일을 진짜 열심히 했는데 일감을 더 주는 거죠. 오히려 일이 더 많게 되는, 하는 일은 똑같은데.
 
현희
호구가 되면 끝장이에요. 근데 보노는 인간이 포식자인 동물이기 때문에 채식을 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동물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한때 수의사를 꿈꿨다가 수의사가 되면 동물을 학대해야 할까봐 갑자기 그만뒀어요. 정말 고기를 먹는 행위를 싫어하더라고요. 사람들 때문에 티는 안내지만.

<아트팟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바나나 껍질 위에 풀 비스무리한 것이 자라고 있다.>
💭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을 겪고 잠에 들지 못하고 있어요. 잠을 잘 자고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삶의 중요한 영역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잠을 잘 들 수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나눠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소똥
유튜브 보면서 많이 자요. 영상 보면 자연스럽게 곯아떨어지고 팟캐스트나 라디오 틀고 자면 3분 만에 자요.
 
현희
저도 음악이 좋아요. 라디오. 남이 말하는 소리 들으면 잠이 오더라고요. 근데 육체적으로 일이 많고 힘들면 잘 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안 힘들면 못 자더라고요. 생각을 많이 하면 못 잔다는 걸 알았고, 근데 생각을 안 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하면 끝장인 거죠. 생각을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똥
그걸 또 생각하시고. (웃음) 보노님은 어떠세요?
 
보노
정말 잘 자는 스타일이어서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많아요. 별 노하우가 없는 것 같아요. 전혀 못 자는 데에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현희
보노는 누우면 5분 안에 자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삶에 불평불만이 많지 않더라고요. 저는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불평불만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잠 하나로 이렇게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요. 
 💭 마지막으로 난생처음꿈지 사업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현희
코로나만 아니면 다른 팀 수업하는 걸 보는 시간을 꿈꿨는데 그런 거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 맞추기가 어렵겠죠.
 
소똥
다른 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건가요?
 
현희
네네. 전부는 아니더라도 잠깐이라도 구경하면 재밌을 것 같고, 또 나중에 게시판 같은 걸 만들어서 강사들 필요할 때 서로가 서로를 섭외하면 좋겠다 싶어요. 장르가 다 다르니까 내가 못하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때 섭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뒷북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제가 쓰일 수 있으면 강사로 섭외해 주셔도 좋겠어요. (웃음)
 
소똥
부담 없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트팟 인터뷰: 고전에는 늘 극단적인 비극과 극단적인 웃음이 공존하거든요. 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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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장현희, 보노
  • 장소: Zoom
  • 인터뷰 발행일: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