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기원과 신호>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저마다의 무늬로 빛나기를
* 인터뷰이: 이기원, 강신호 
* 인터뷰어: 그리니, 소똥
* 인터뷰 편집: 그리니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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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얼마 전에 문학 평론가인 후배가 그러더라고요. “인문적 삶은 무엇인가. 인문은 ‘사람 인(人)’자에 ‘글월 문(文)’자가 아니라 ‘무늬 문(紋)’자예요.” 사람한테도 이 무늬가 있다는 거야. 동물의 무늬는 바깥에 있고, 사람의 무늬는 내면에 쌓인다는 거죠. 자기를 성찰하고, 타인의 삶을 받아들였을 때 내 안에 무늬가 한 줄씩 새겨지는 거예요.    -인터뷰 중 기원의 말-


무늬를 숨겨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칭찬받기 좋아했던 어린 날의 나는 무늬 없는 세계의 규칙에 빠르게 적응했다. 정답만 맞히면 되는 단순하고 비정한 세계. 어른들은 몇 점, 몇 등 인지만 궁금해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밥 한 끼 대접해야 하지 않겠냐며 식당으로 가는 길에, 기원은 물었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나요?” 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흠칫했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아,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세계에 있구나. 


다섯 달 동안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다양한 무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곱씹으며 나에게도 한 줄의 무늬가 새겨지지 않았을까. 세상은 녹록지 않더라도 우리는 저마다의 무늬로 빛이 나기를. 기원의 꿈처럼 말이다. 

                                                                                                                                                -그리니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만능공작소에서 만난 달팽이> 

기원

저는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교장을 22년째 맡고 있는 이기원입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어요. 사진을 찍고 가끔 산문도 쓰고요, 지금은 공공미술, 도시 디자인 기획도 하면서 살아가는 다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신호

저는 강신호이고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제가 통과한 세대가 그렇듯 저 또한 형편이 무척 어려웠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이공계를 선택했고 그 후로 쭉 직장생활을 하다가 재작년에 은퇴를 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제가 마음 깊이 하고 싶었던 일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거 였어요. 제 노트를 블루노트라고 하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거기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형도가(기형도 시인) 그림을 그려놓고 시를 써둔 것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싶었던 신호>

신호

예술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은퇴하고 나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달팽이 학교의 사진 기행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지금은 문학, 사진 관련 프로젝트에서 선생님과 같이 협업을 하고 있어요. 협업이라기보다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건데, 하하하. 그래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까 너무 신나요. 늘 즐겁고요.

 

소똥

그 긴 직장생활 동안 예술에 대한 열망을 어떻게 해소하셨나요?

 

신호

입사하고 회사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따로 자취방을 얻었어요. 이젤, 캔버스, 유화물감, 스케치북을 두고 퇴근하고서나 쉬는 날에는 그림을 그렸어요. 이후에는 사진을 찍는 룸메이트를 만나면서 사진 작업도 하게 됐고요. 그 친구와 같이 밤새 현상도 하고 인화도 하면서 지냈죠. 또 직장에서 사진에 취미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게 했어요. 전문적으로는 못 하고 취미에 그쳤지만, 단순히 취미라고 하기에는 또 깊이가 있었기 때문에 저를 조금 달리 봐주는 시선도 있었어요. 문학도 좋아하니까 책도 계속 읽었고요. 그렇게 회사 생활을 했었어요.

 

기원

강 선생이 나하고 만난 지가 7~8년이 넘었는데, 저도 그랬어요. 저 양반이 이런 걸 하고 싶어서 어떻게 직장생활을 견뎠을까? 회사 다니면서도 사진 전시회를 세 번이나 했어요. 그리고 촬영을 같이 다녀보면, 다른 작가들과 표정이 너무 다른 거예요. 너무 즐거워하는 그 표정을 내가 봤죠.

 

소똥

그래서 저도 궁금했어요. (웃음) 다음으로 달팽이 소개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원

2000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교육 공동체의 형태로 대안문화학교 달팽이가 개교를 했어요. 서울에서 안성으로 이사와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공교육의 문화예술교육은 삼십 년 전과 변한 게 없더라고요. 여전히 정답 맞추기를 위한, 입시를 위한 교육만 있는 거죠. 그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화예술교육의 장을 ‘우리가 만들어보자’가 되었고, 이에 뜻을 같이한 분들이 여럿 모였어요. 지역의 예술가들, 교사, 시민분들이 모여서 발기인 100여 명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소똥

어우, 발기인 100명이면 그 당시에 상당한 규모였을 것 같은데요.

 

신호

그 100명에 저희가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예술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임팩트가 더 컸어요.

 

기원

그분들의 힘이 컸죠. 실제로 정태춘, 박은옥 같은 선생님을 발기인으로 모셔서 돈은 안 받을 테니 개교할 때 노래를 불러 다오, 했어요. 

 

소똥, 그리니

(놀람)

 

기원

좋은 뜻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시작했던 학교였으니까 저도 책임이 무거웠죠.

 

그리니

달팽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기원

디지털 아이콘 골뱅이의 대척점에 있는 게 달팽이가 아닐까 했어요. 느리고 자연 친화적인 것, 그것이 또 우리의 사색, 성찰과 이어지죠. 기존 문화예술교육의 대안을 고민하고자 ‘대안문화 학교’라는 말을 붙이게 되었고요. 아이들이 예술교육을 통해서 좀 더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미술, 음악이 자연과 만나고, 사진, 영상이 시와 만나고, 공학이 철학과 역사와 만나는 통섭 교육을 통해 문화예술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잘 놀고 즐기면서 무엇을 느끼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천재 작가를 키워내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기량 위주의 교육을 할 게 아니라 이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도록 해야 하는 거죠.

✨ 달팽이가 처음 만들어진 2000년대와 지금의 시대는 꽤나 달라졌을텐데요.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달팽이를 둘러 싼 문화예술교육의 장은 어떻게 변화해 왔다고 느끼시나요?

<달라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기원

20년 전이면 경기문화재단이 출범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예요. 그때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도 없었어요. 재단도 문화예술 활동을 주로 지원할 때였고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까 교육이란 걸 해보자는 단체들이 나오더라고요. 예술을 통해서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인 거죠. 예를 들어 연극이라면, 연극을 잘하게 하는 게 아니고, 연극이라는 오브제를 사용해서 삶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교육이요. 그런 단체들이 그때는 열 개도 안 됐어요. 그 후에 우리만의 문화예술교육을 만들기 위한 고민의 자리들이 많이 있었고, 저 또한 3년 정도 운영위원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위한 지역의 거점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어요. 예술 활동만 할 게 아니라 예술 교육도 해보자, 그 뜻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 그리고 예술 교육까지도 담지할 수 있는 젊은 단체들이 이렇게 커가는 걸 보면요. 지난 화요일에 제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젊은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 깜짝 놀랐어요. 내 나이는 역시 못 속인다. 저는 늘 무겁고, 진지하고, 교훈적인 것을 하려고 했는데, 그들의 활동을 보니까 아주 기발하고 새롭더라고요. 또 전과는 다르게 공공을 위한 활동도 많아졌다고 느껴요. 시대에 걸맞은 그런 기획들이 이제는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달팽이를 통해 모여 관계를 맺게 되었을 텐데요. 교육 프로그램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달팽이가 지역주민들과 벌이는 재미는 일이 있나요? 달팽이라는 교육공동체에서 어떻게 함께 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기원

달팽이 학교에 다양한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인적 자원을 어떻게 지역과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해요. 재능기부는 아니고 꼭 자금을 마련해서 어느 마을과 이런 프로젝트를 해 보라고 제안을 하죠. 직접 마을에 들어가서 주민들과 재밌는 일을 벌여보라고요. 또 마을 학교를 꼭 하나씩 만들어요. 주민들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작가들이 강사로 수업을 할 수 있게. 마을에는 재밌는 일들이 생겨서 좋고, 작가들은 안정적이고 즐겁게 작업 활동들을 할 수 있어서 좋죠.

<어느 마을, 어느 골목> 

소똥

곳곳에 달팽이가 만든 마을 학교가 꽤 있겠네요.

 

기원

그렇죠. 요즘에는 노인 프로그램이 많이 중심이 돼요. 또 지역 문화탐방을 하면서 한 지역의 마을 지도를 만들어 보기도 해요. 골목 구석구석을 주민들과 함께 다니면서 실핏줄 같은 지도가 만들어지죠. 돈만 들어오면 작가들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해요.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게.

📚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기원

안성이라는 땅에서 난 시를 소개해요. 이 땅에서 태어났거나, 여기로 이주해서 창작을 했던 여러 시인들의 시를요. 그리고 그 시어가 주는 느낌,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자기 안에서 재해석해서 영상으로 펼쳐내는 거예요. 난해한 시들은 전문가들이 해설을 해주기도 하고요. 너무 어렵지 않겠냐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었는데, 어려운 것도 할 줄 알아야죠. 어떻게 늘 쉽고 재밌는 것만 하겠어요. 사람이 좀 적게 모이면 또 어때요. 이 교육을 통해 자기 내면에 뭔가 변화하는 것이 있다면, 변화한 자신과 타인이 만나서 어떤 일들을 함께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저는 그게 교육의 힘이라고 봐요. 

<이 땅에서 자란 시> 

신호

박두진 작가의 ‘하늘’이라는 시가 있잖아요. 박두진의 시보다는 양희은, 서유석의 노래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대부분은 전형적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하늘로 이 시를 이해하죠. 근데 여기서는 그 시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 보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 하늘이 맑은 하늘이 아니라 새벽에 동이 트는 어두침침한 하늘, 무언가 새로 태어나면서 밝아오는 하늘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이 시에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이 얽혀 있다고 해석을 했고요. 음악으로는 비올라 연주를 사용하고, 시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넣어서 영상을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샘플을 참여자분들께 보여드렸는데, 상당히 놀라워하셨어요. 내가 알고 있던 이 시가 이렇게도 해석이 될 수 있구나, 하시면서 제가 사용한 이미지, 시어나 시의 해석에 대해 질문도 많이 하셨고요. 새로운 걸 알고 즐거워하시는, 그 표정에서 오는 느낌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영상을 만들면서 흔히 얘기하는 ‘하늘’이라는 시에 대한 남들의 해석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 시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시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가져도 된다. 시 평론가가 얘기하는 시보다는 내가 느끼는 시가 더 중요하다. 이런 교육을 했었어요. 상당히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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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느끼는 시간> 

그리니

실제로 참여자분들께서 많이 어려워하셨나요?

 

기원

시는 백 퍼센트 이해하고 갈 수는 없지요. 1기수를 마치신 분들이 너무 어렵다, 복기를 좀 하고 싶다 하셔서 2기수에서 다시 참여하신 분들도 있어요. 시적인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단기간에 시를 이해한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재단에 장기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기획자는 천재가 아니거든요. 한 번으로 끝내기 아쉬운 프로그램들은 장기적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타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도 해보자, 그런 것들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예요.

 

그리니

그 아쉬움을 말하는 단체들이 정말 많았어요.

 

기원

그렇죠. 그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한 번으로 끝나기엔 너무 아깝잖아.

<시와 시 사이에서> 

 소똥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시적인 삶 혹은 시가 있는 삶은 어떤 삶인가요?

 

기원

시적인 삶도 인문학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문학 평론가인 후배가 그러더라고요. “인문적 삶은 무엇인가. 인문은 ‘사람 인()’자에 ‘글월 문()’자가 아니라 ‘무늬 문()’자예요.” 사람한테도 이 무늬가 있다는 거야. 동물의 무늬는 바깥에 있고, 사람의 무늬는 내면에 쌓인다는 거죠. 자기를 성찰하고, 타인의 삶을 받아들였을 때 내 안에 무늬가 한 줄씩 새겨지는 거예요. 그 타인은 옆 사람이 될 수도, 예술가가 될 수도, 과학자가 될 수도 있겠죠. 그들의 삶에서 무언가를 받아들여서 내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이들은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지 못해요.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 천착해서 하루하루를 살고, 학교 밖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요. 시적인 삶이란, 폼 나는 인간으로 한번 살아보자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빛내려고 좋은 옷도 사 입고, 비싼 차도 사고, 멋진 집도 사지만 그런 것보다는 자기 내면에 빛나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되자. 누구를 만나더라도 내 안에 새겨진 무늬를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 한번 살아보자.

 

신호

말씀을 아주 잘해주셨는데요. (웃음) 정말 하고 싶은 것들, 꿈꿔왔던 것들을 해내는 거. 조금씩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나가는 데서 오는 기쁨과 만족감이 크더라고요. 어딘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유유히 즐기면서요. 그런 게 결국 시적으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달팽이의 프로그램은 참여자의 경험이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사회와 연결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기원

달팽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모였어요. 오롯이 자기만 만족시키는 예술에서 나아가 자기를 성찰하게 하고, 그것을 옆 사람에게 전이시키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면서 내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하자. 내 행위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배려와 포용이 왜 필요한지, 그러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배웠으면 해요. 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것에서 탈피해야 하는 거죠. 예술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한 개인의 성과가 그 사람만의 성취나 명예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보거든요. 요즘 젊을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운데,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있잖아요. 많은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조지 오웰 하면 『동물농장』이나 『1984』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르포르타주로 쓰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책이 있었기에 오웰이 사회적인 시각을 갖고 폭넓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탄광, 공장 생활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알게 된 거죠. 산업발전 이후 세계가 앓는 빈부 격차의 문제가,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가 왜 일어나는 건지. 산업주의의 폐해를 직시하게 했던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서 오웰이 무엇을 쓸지, 어떤 이야기를 전파할 것인지 결심하게 한 거죠. 저는 예술가들이 그리 살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순수예술? 예술에서 순수하지 않은 게 어딨어. 현실주의, 비현실주의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폼나는 기원과 신호> 

기원

앞치마만 걸치면 작업을 할 수 있고, 털고 나가면 외출복이 되는 옷이 나다운 복장이 아닌가 싶어요. 늘 양쪽에서 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을 구입해요. 그렇다고 싸거나 누추한 건 아니고요. 대학 시절 운동가였던 저를 후원해줬던 누나, 형들이 옷을 아무렇게 입고 다니면 뭐라고 그랬어요. 없을수록 잘 입어야 한다고 비싼 옷을 막 사줬죠. 이게 나이 들어서도 변하지 않아요. 나 자신이 폼이 좀 나야 해. 그렇잖아요? 자기 형편에서 최대한 꾸미고 사는 게 자신다운 복장인 거예요.

 

신호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선생님의 옷은 트레디셔널한 양복이에요.

 

기원

아니, 양복은 나한테 안 어울려요. (웃음)

 

신호

실질적으로 입으시는 옷은 양복은 아니지만, 저희가 보기에는 넥타이, 조끼, 구두까지 맞춰 입는 양복인 거죠. 선생님은 어쭙잖은 거를 안 하시거든요. 임팩트가 있고 어느 정도의 전파력이 있다,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고 판단될 때 온전히 수용하시죠. 양복은 아무 때나 입지 않고, 아무렇게나 입을 수 없잖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의와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선생님께선 무슨 일이든 제대로 갖추어졌을 때 움직이세요.

 

기원

그게 아마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 때문인 것 같아요. 작품도 이만큼이라도 완성되지 않으면 내놓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도 어쭙잖은 재료는 쓰지않아요. 재료가 좋으면 아이들도 진지해지거든요. 아이들도 그걸 느끼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내 형편에 맞게, 만족하면서 하자. 그리고 폼도 좀 내자. 이게 제 자신다운 복장인 것 같아요.

 

그리니

신호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신호

저는 뭐랄까, 정체성이 없어요. 이것도 입고 저것도 입고, 사람들이 입는 것은 한 번씩 다 입어보는 거죠.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그러다 보니 네 색깔은 뭐야, 라고 했을 때 저만의 명확한 컬러가 없는 거죠. 대신 이것도, 저것도 잘 수용해서 혼합을 잘해요. 선생님께서 완벽한 화이트라면 저는 화이트도, 블랙도 아닌 그레이인 거죠. 어떤 때는 화이트에 가깝고 어떤 때는 블랙에 가까운 그레이요. 계속 이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나를 잘 유지하는 게 오히려 편해요. 무엇이든 대립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제 나름의 색으로 녹여내는 거요. 정체성이 없다는 걸 단점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다른 색과 조화를 이루어내고 싶어요.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기원

식이라는 게 난 재물이라는 단어로 들려요. 먹고 살기 어려웠던 7, 80년대에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써내는 작가들을 많이 봤거든요. 마땅한 작업실도 없이 시끄러운 다방에서, 아이와 아내가 자고 있는 단칸방 책상에서 글을 썼죠. 저는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는 오롯이 작업에 몰두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뒤가 든든해야, 뒷배가 충분해야 일도 잘되더라고요. 그렇다고 돈을 막 쓰는 건 아니에요. 저한테 식은 내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힘, 파워인 거예요. 하나의 든든한 경제적인 토대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제 뒷배가 되어주어서 단체도 만들고, 일을 해도 폼나게 해올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후배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고 싶어요. 너희가 해봐라, 필요하면 돈은 내가 끌어 올게. 뒷배가 또 여기(신호 선생님) 있으니까.


일동

(웃음)

 

기원

주변에 든든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떤 일을 해도 겁이 안 나는 거예요. 실제로 지원사업을 하더라도, 딱 그 지원금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이랑 촬영도 하고, 조사도 하려면 밥 한 끼는 잘 먹여야죠. 그럼 제 카드를 줘요. 그래야 사람도 모이고, 성과도 좋아지는 거예요. 거기서의 내 식은 풍부하고 화려해야 된다는 거죠.

<든든한 뒷배가 되고 싶은> 

신호

최근에 선생님과 작업을 하면서도 많이 느껴요. 거대한 누군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은 예술계 인프라가 현재로서는 상당히 열악하다는 거죠. 요만한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대형 카메라, 조명부터 시작해서 여러 설비가 투입된다면 아웃풋이 더 훌륭하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은 어마어마하게 고가거든요. 어떤 아이디어나 창조적인 감성이 있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가 구축되었으면 좋겠어요. 투자가 필요한 거죠. 누구든지 예술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가들부터 그런 인프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원

지금의 BTS, 블랙핑크도 소규모 기획사에 있었다면 어림도 없겠죠. 그들을 받쳐준 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궈낸 하나의 성과거든요. 앞으로 그 성과를 이어갈 또 다른 누군가가 나오겠죠. 이제는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많은 실험을 해보고, 좋은 것들을 가지고 만들어야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 최고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게 예술이든, 과학이든, 의학이든. 그런 뒷받침 없이 개인의 능력에만 기대고, 좋은 열매를 맺으면 취하려고만 하는 거,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소똥

말씀을 들으면서 뒷배가 되어주려고 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런 것들을 사실 개개인의 능력으로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게 개인에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좀 더 영향력 있는 집단이나 사회 시스템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생기는 것 같아요.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대상 또는 순간이 있나요?

신호

저는 집을 좀 더 큰 광역의 의미로 보거든요. 그러니까 예술, 문화에 대한 Policy(광의의 정책)를 집으로 보는 거죠. 그 Policy를 결정짓는 사람들이 지금은 너무 정형화 되어 있고 고착화 되어 있어요. 틀이 움직이지를 않죠. 세계에서 우리 문화를 꽃피우려면, 더 멀리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앞으로의 흐름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고민을 해야하고, 그 토대 위에 우리 문화의 기둥을 세워나가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그 기둥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올드해요. 이전에 해왔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만 하니까 발전도 없고요. 집이 오래되어서 낡고 허물어지기 직전인 거예요. 지금 한국 예술계에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낡은 집에 계속해서 안주하고 있는 게, 그게 난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옷이나 먹는 것보다도 집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멈춰있거나 고여있지 않으려면, 물이 계속 흐르게 만들어줘야 해요. 그런 Policy 위에서 집을 만들어 나가야 하고요.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튼튼한 기둥을 세우려면> 

기원

개인적인 집이라면 제가 주거하고, 공부도 하는 곳이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집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배우고, 즐기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제가 도시 디자인을 15~16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벽화 그리고 벤치 만든다고 문화 예술적인 공간 되는 거,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화투를 치든, 술을 마시든 간에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게 중요한 거죠. 그 모이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마을이든, 공공의 장소든, 유형의 건물이든 빈 곳만 보면 어떻게 사람들이 모이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제안도 많이 하고요. 얼마 전에도 농축산부, 지역 농협과 힘을 합쳐서 농협의 빈 창고에 청년 카페를 하나 만들어줬어요. 청년들이 창업도 하고, 복합 문화공간으로 쓸 수 있게. 또 여기에 향교가 많거든요.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 한옥들. 그런 것들도 매일 비어 있고, 문도 잠가놔서 들어가지도 못해요. 그걸 이야기해서 향교, 서원, 객사를 문화예술교육 장으로 쓸 수 있도록 했어요. 닫혀 있던 문을 여니까, 사람들의 호응이 좋거든. 놀고 있는 공간들이 참 많은데, 그런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죠.

<닫혀 있던 문을 여는 일> 

소똥

집이 엄청 넓으시네요.

 

그리니

온 세상이 모두 집이신 것 같아요.

 

기원

그래서 나에게 집은 개인적인 삶을 사는 곳보다는 사회적인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본부와 같아요. 대외적인 집은 사회에 널브러져 있는 유무형의 공간들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호

나오시마 가보셨어요?

 

소똥, 그리니

아니요.

 

신호

예전에 금속 공장들이 많았던 일본의 섬인데, 금속 사용량이 떨어지면서 공장들이 문을 닫아서 별 볼 일 없는 섬이 됐어요. 그러다가 한 건축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그 섬에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유명해졌죠. 섬 곳곳에 예술 작품들이 있는데 정말 기가 막혀요.

 

기원

그러니까, 한 지역이 예술가에 의해서도 변한다니까요. 여기 시에서 나한테도 상 하나 안 주나, 공로상 하나 받아야 하는데. (웃음)

🏝 여러분의 쉼, 휴식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기원

저는 휴식 시간의 반 정도는 산책을 해요. 여기에 천을 따라서 산책길이 있거든요. 예전에도 산책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때는 멍하니 걷고는 했는데, 십여 년 전부터는 풍경은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새로 생각하는 기획, 오늘 했던 일에 대한 반성들, 누군가에 대한 걱정, 남은 생을 어떻게 해야 폼나게 살다 갈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한 시간이 금방 가요. 3km, 3km 해서 딱 왕복 6km를 걸어요. 혼자 걷는 게 좋은데, 딸이나 아들이 같이 가자고 할 때가 있어요. 근데 그건 산책이 아니야, 정말. 그래서 같이 가면 웬만하면 말 걸지 말라 그래요. 따로 이렇게 떨어져서 걷자고.

 

신호

짜증이 나죠. (웃음)

<산책할 땐 말 걸지 마세요> 

기원

그 시간은 오롯이 내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나머지 반은 집에서 옛날 책들을 봐요. 쉴 때는 집 밖을 잘 안 나가요. 나를 충전하는 시간은 철저하게 나를 위해 쓰고, 다른 일을 위한 준비를 하거나 지난 일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요. 일기를 매일 써요, 거의. 오늘 했던 대표적인 일을 잊지 않기 위해 간단하게 적기도 하고, 쓸 게 많을 때는 원고지 몇 장을 넘기기도 하고요. 또 어떤 때는 페이스북에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도 해요. 하루를 정리하면서. 그 정도입니다.

 

그리니

선생님은 어떻게 쉬고 계시나요?

 

신호

저는 그냥 멍때리기. 커피 한 잔 들고 마당에 나가서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을 해요. 영화를 한 편 보더라도, 영화가 막 끝난 순간의 생각과 나중에 멍때리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불현듯 새롭게 드는 생각들이 많아요.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이 요즘은 굉장히 많은데, 집사람이 볼 때는 갑갑한가 봐요. (웃음)

 

기원

그게 정말 쉬는 거예요.

 

신호

저 인간이 왜 저러고 있나, 하겠죠. 직장 다닐 때는 누구보다 치열했거든요. 멍때리는 시간이 지금은 너무 좋아요. 특히 요즘 같은 가을빛에는 더 좋죠.

💬 달팽이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기원

우리 학교의 슬로건은 ‘남과 다른 나,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만들어 간다.’에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 남과 다르지만, 나만의 색깔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거.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달팽이 학교를 거쳐 갔던 이들이 자라서 문화예술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들은 이미 겪어 봤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자꾸 전이되고 전염되면서 세상은 좀 빡빡하더라도 개인의 삶은 좀 화려하고 폼 나기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갔으면 하는 게 저의 장기적인 꿈이에요. 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고, 개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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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이 언젠가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른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 보고 싶나요?

기원

예술을, 또는 예술 교육을 왜 하는가? 이거 하나 딱 물어보고 싶어요. 그 이유를 듣는 순간 가슴에 확 와닿는 게 있어야겠죠. 그 질문은 해 볼만한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왜?>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인터뷰: 저마다의 무늬로 빛나기를 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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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소똥,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 녹취록 작성: 김도연
  • 장소: 안성시 만능공작소
  • 인터뷰 발행일: 202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