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사용자성 회피 매뉴얼을 폐기하고,

추미애 도지사는 공공부문 모범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하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의 취지는 분명하다. 직접 고용관계라는 형식 뒤에 숨어 원청과 실질 사용자에게 면책을 부여해 온 낡은 노사관계를 바로잡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가 교섭의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은 법 개정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영역이다.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은 민간위탁, 용역, 출자·출연, 보조사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예산, 사업계획, 인력운영, 평가, 계약갱신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이야말로 우리는 직접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형식논리가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에 따른 책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경기도 노동국의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생협력 매뉴얼은 이러한 법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20264, 김동연 지사 재임 당시 산하기관 등에 해당 매뉴얼을 제작·배포했다. 이 문건은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현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한 교육자료라는 명목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 내용 상당 부분은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유의사항에 집중되어 있었다. 위탁계약서에 수탁기관의 독자적 노무관리 책임을 명시하라는 내용, 모든 과업 지시를 수탁기관 책임자에게만 전달하라는 내용, 수탁기관 노동자의 사무공간 배치와 단체교섭 당사자를 수탁기관 책임으로 분리하라는 내용 등은 상생협력의 기준이 아니라 책임회피의 기술에 가깝다.

 

이는 단순한 실무상 착오가 아니다. 경기도는 이미 정부가 도급·비정규직 관련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공공부문에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모범사용자성이 강조되는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공공부문이 법 정착의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상황에서,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이끄는 경기도 노동국이 사용자성 회피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하다. 노동존중을 말해 온 지방정부가 실제 행정 현장에서는 원청 사용자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산하기관에 안내했다면, 이는 노동정책의 후퇴이자 공공부문 책임성의 훼손이다.

 

사용자성은 계약서 문구로 지워지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누가 예산을 통제하는지, 누가 사업내용과 업무수행 방식을 정하는지, 누가 평가와 계약갱신 권한을 갖는지, 누가 현장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핵심이다. 위탁계약서에 수탁기관이 독자적 노무관리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고 적는다고 해서 경기도와 산하기관의 실질적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문구를 굳이 매뉴얼로 안내했다는 사실은 경기도 스스로 원청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공공부문은 법 적용을 회피할 권한이 없다. 공공서비스를 위탁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사업을 관리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지위에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교섭 책임도 져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의 민간위탁·용역·보조사업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의 최일선에서 시민을 만나고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을 외면하면서 공공서비스의 질을 말할 수 없고, 원청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면서 상생협력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경기도가 해당 매뉴얼을 즉각 공개·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경기도와 산하기관의 민간위탁, 용역, 보조사업, 출자·출연 사업 전반에 대해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교섭책임 실태를 전면 점검해야 한다. 기존의 회피 중심 매뉴얼을 폐기하고, 개정 노조법의 취지에 맞게 원청 교섭, 공동교섭, 자료제공, 분쟁조정 절차를 포함한 새로운 공공부문 상생교섭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반드시 노동조합이 참여해야 한다.

 

향후 추미애 지사는 이 문제를 전임 도정의 실무자료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김동연 지사 시절 경기도 노동국이 만든 사용자성 회피 매뉴얼은 경기도 행정 전체의 노동인식과 공공부문 책임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추미애 지사는 경기도가 노동존중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원청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온 점을 분명히 반성하고, 경기도를 개정 노조법의 모범 적용 지자체로 전환해야 한다.

 

추미애 지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사용자성 회피 매뉴얼을 폐기하고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 둘째, 경기도 및 산하기관의 위탁·용역·보조사업 전반에 대한 노동권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셋째,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경기도 공공부문 상생교섭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넷째, 위탁계약서와 사업지침에 원청 사용자 책임과 노동권 보장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 다섯째,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와의 교섭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모범사용자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노동조합법 개정은 책임을 피하라는 신호가 아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자가 실질적 책임을 지라는 사회적 명령이다. 경기도가 진정으로 노동존중을 말한다면, 이제는 회피의 문건이 아니라 책임의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추미애 지사는 경기도를 사용자성 회피의 사례가 아니라 공공부문 모범사용자성 실현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2026년 6월 11일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