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원두를 갈고 있는 한"
2020年 5月 11日
여덟 번째 주제: 언젠가 커피
Season1. May

지금 여기에서 과거의 언젠가와 미래의 언젠가를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졌던 기억들과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는 훗날의 어떤 시간들을 공유합니다.    - 셸리 - 
커피와 술
<아무튼 술>이라는 책까지 쓴 사람이 굳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떤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신이 나타나 이제부터 평생 술과 커피 중 단 하나만을 마실 수 있는 저주를 걸겠으니 무엇을 고르겠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하지만 좀 울면서) 커피를 택할 것이다. 술을 끊을 자신은 있지만 커피 없이 살 자신은 없다. 올해만 봐도 그렇다. 보름 가까이 술을 안 마신 적은 있어도 커피를 거른 적은 하루도 없다. 집에 술이 떨어진 적은 있어도 원두가 떨어진 적은 없는 것처럼.

나의 아침은 대개 원두를 갈며 시작된다. 요즘은 친구들이 마침 비슷한 시기에 좋은 원두를 선물로 잔뜩 보내줘서 세 종류의 원두 중에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커피호황기를 보내고 있다(십 년차 원두생활자의 경험에 비추면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말만큼이나 좋은 원두는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말도 진리에 가깝다). 신맛이 나며 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시카고 커피 브랜드인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ia)의 원두를 고른다. 브랜드 이름이 의역하면 (인터넷에서 드립으로 한창 쓰였던) 배우신 분이라는 점이 약간 비웃김 포인트인데, 커피 맛에 살짝 섞여있는 자두향이 입 안에서 우엉향으로 돌변하는 것도 코믹하게 느껴지는 유쾌한 커피다. 도드라지는 맛 없이 부드럽고 묵직한 커피가 필요할 때는 코로나 발발 직전에 가까스로 오스트리아에서 국경을 넘어온 유서 깊은(무려 1876년에 오픈한) 카페 첸트랄의 원두를, 쓴맛이 그리울 때는 일리원두를 꺼낸다. 고른 원두를 핸드밀에 넣고 가만히 갈고 있으면 자갈 밟는 소리와 함께 하루의 바퀴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커피 내려 마시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커피를 마시려고 하루를 시작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하긴 오직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운동도 다시 시작했으니 전혀 일리 커피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월부터 두 달 넘게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았다. 5년간 오직 축구와,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한 보조운동으로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요가를 번갈아 해왔는데, 이 운동루틴을 코로나가 완전히 해체해버렸다. 222일에 있었던 친구 결혼식 이후 58일인 현재까지 한 번의 팟캐스트 녹음, 한 번의 인터뷰, 한 번의 술자리 외에는 회사동료나 가족 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을 정도로 코로나를 조심하고 있다 보니(회사동료 중에 아직 말도 떼지 못한 어린 아이의 보호자들이 있는데 혹시라도 내가 감염되면 그들을 경유하여 그 아이들에게 전해질까봐 너무 두려워서 생긴 다소 강박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을지 모를 스물두 명이 살 부딪히고 땀 섞이는 축구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포기했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비말이 에어컨 바람의 환류로 멀리 확산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알고 나니 여름에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원 같은 실내에 갈 자신도 없어지면서 그동안 해왔던 운동들이 선택지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운동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의 안락함이 또 있기에 거기에 젖어 어영부영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커피가, 운동을 하고 땀에 푹 젖은 채로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마시는 시원한 디카페인 커피가 격렬하게 마시고 싶었다. 그 커피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오직 마시고 싶은 만큼 격렬하게 운동을 해야만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커피였다. 똑같은 성분일지라도 그냥 커피를 마실 때와는 맛의 차원이 다른 커피. 며칠 내내 그 맛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던 차에 길거리 곳곳에서 서울시에서 대여해주는 무인 공공자전거 따릉이가 눈에 들어왔고, 급기야는 마스크를 쓴 채 따릉이를 끌고 라이딩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9년 만에 타보는 자전거였고, 17년 만에 해보는 라이딩이었다. 30분이 채 안 되었을 무렵,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왜 그동안 별로 재미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해왔던 거지? 이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거였구나. 자전거의 재미에 잔뜩 고무된 나는 첫 라이딩에서 단숨에 20km를 달렸다. 정해진 따릉이반납시간만 아니었으면 더 달렸을 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커피를 마신 건 물론이다. 두 달 반 만에 마신 운동 직후의 커피는 끝내줬다! 그 어떤 최상급의 원두도, 최고 실력의 바리스타도 이겨낼 수 없는 맛이었다. 심지어 디카페인 커피인데도.

그 맛있는 커피를 요즘 매일 저녁마다 마시고 있다. 그날 이후 매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커피의 쓴맛을 보려다가 자전거의 단맛까지 알고 말았다. 최근에는 T와 함께 중고로 미니 스프린터와 미니 벨로를 하나씩 구입했다. 자전거는 자전거 몸체 길이 + 자전거간 유지하는 안전거리만큼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에 최적의 운동인 것 같다. 곧 폭염이 닥치겠지만 늘 폭염 속에서 축구도 두 시간씩 했으니 라이딩도 괜찮겠지! 매일 조금씩 강도를 높이며,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듯한 아픔을 즐기며, 올해 안에 90km 종주를 목표 삼아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집에서 스쿼트와 플랭크도 시작했다). 아주 가끔은 샤워를 하고 나와 커피 대신 T와 술을 마시기도 한다. 바로 어제가 그랬다. 그것은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다. ‘하루라는 음반에 숨겨진 보너스 트랙 같은.

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 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여행에서도 그랬다. 오로라를 보던 압도적인 순간이나 유빙에 둘러싸였던 꿈결 같은 순간에는 늘 한두 잔의 술이 함께 하며 그 시간들에 찬란한 빛을 더해주었지만, 그런 순간들 뒤에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이국의 낯선 공기를 좀 더 편안하고 친밀한 무엇으로 바꾸어주며 차분하게 하루의 모험을 계획하게 만들었던 한두 잔의 커피가 있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더라도 아침에 마실 맛있는 커피를 생각하면 그래도 내일을 다시 살아볼 조그만 기대가 생기고, 여전히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다가도 저녁에 자전거를 탄 뒤 마실 끝내주는 커피를 생각하면 아주 망한 날만은 아닐 것 같은 조그만 위안이 생긴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원두를 갈고 있는 한, 나는 괜찮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신 앞에서, 술과 커피 중 하나라는 일생일대의 질문 앞에서, 나의 대답은 역시 커피가 된다. 물론 비장의 카드 하나를 계산에 넣어두기는 했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넣는 아이리시 커피’. 제 아무리 신이라도 아이리시 커피가 커피가 아니라고 우기지는 못할 것이고, 나는 위스키를 아주 듬뿍 넣을 것이다.
김혼비 작가의 말
잽싸게 점심을 먹고 들어와 남은 점심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맥심 커피믹스를 마시고 있습니다. 잽싸게 퇴근하자마자 자전거를 탈 계획이었는데 저녁에 비예보가 있어서 조금 슬픕니다. 흑흑.

내 막사과 체류 시절의 일이외다. (고양이 나이 드는 징조 중 하나는 옛날의 이야기가 잦아진다는 것인데, 양해를 청하오.) 그때 나 셸리는 벗이 쓴 희곡의 상연을 보고자 막사과예술좌에 행차하였소. 초연이었고, 내 벗이야 더 유명했지마는 극을 연출하고 무대에 오른 이는 무려 천하의 스타니슬라프스키였던 바, 가히 놓칠 수 없는 대단한 구경이었소. 그런데 오호애재라, 그렇게나 대단했던 그날의 상연이 어떠하였는지 이제는 도통 떠오르지가 않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소.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은, 내 당시 들었던 대사 한 줄만은 똑똑히 외우고 있다는 것이오. 대사 한 줄뿐이겠소? 대사를 읊던 바실리 카찰로프의 얼굴 주름들마저 하나 하나 생생하오. 지금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한 순간뿐인데, 그때의 대사는 아래와 같았소.

Жили и лучше… да! Я… бывало… проснусь утром и, лежа в постели, кофе пью… кофе! – со сливками… да!  

이는 〈남작〉의 대사였소. 〈잘 살았더니라… 옳거니! 내  전에는 조천에 기상하여, 침상에 누워 커피를 들었느니라… 커피! –크림을 곁들여서… 옳거니!〉 새겨보자면 이 정도 될 것이오.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물론 김혼비 작가의 제재가 커피이기도 하지마는, 무엇보다 내 옛 벗의 이름이 〈막심〉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오. 그리고 그의 필명은 커피》처럼 쓰디쓴 것이었소이다.

훤조는 여기에서 줄이겠소. 금주의 주제 
커피》와 금일 김혼비 작가의 글이 그대 보기에 어떠하오? shelley@bookcrew.net이나 게시판으로 알려주시오. 나 셸리는 오늘 옛 생각이 그치지 않는 바, 아래에 내 막사과 시절의 벗과 관련된 것을 송부하며 이만 총총.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밑바닥에서>
막심 고리키
路上の霊魂

村田 實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고, 후기 혹은 작가님께 하고 싶은 말을 "셸리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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