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라잎스페이퍼는 경기문화재단의 ‘난생처음꿈지’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18개 문화예술교육 단체의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18개 단체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7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매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뒷북 기지에 쳐들어온 요의 본창(정면 위쪽)과 뒷북의 소똥, 충현> 요: 여전히, 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준비를 위한 첫 회의에서 소똥과 가장 먼저 나눈 이야기는, “우리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라는 것이었다. 뒷북이 생긴 지도 어언 5년,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나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였다.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질문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고민이기도, 앞으로 살아갈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난생처음꿈지’ 사업에 참여하는 18개 단체는 신생 문화예술교육단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생'과 '문화 예술'이라니. 이들의 가장 큰 화두 또한 먹고 사는 문제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오늘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내가 지향하는 무언가에 닿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존재들과 함께 하기 위해 문화예술계에 뛰어든 18개의 문화예술교육 단체들. 문화라는 영역 속에 함께 발을 담그고 있는 동료로서 이들의 먹고 살아온, 먹고 사는, 먹고 살아갈 이야기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라잎스페이퍼의 마지막 편을 요의 본창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본창은 라잎스페이퍼를 위해 만났던 사람 중 가장 타인의 먹고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른 팀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팀원들을 두고 혼자 인터뷰에 참여하는 의도된 허술함을 보였고, 인터뷰어인 나와 소똥을 알고 싶다며 1시간 반 거리를 마다않고 뒷북 공간을 찾아왔으며, 라잎스페이퍼 구독자 중 가장 인터뷰를 열심히 읽고 호응하는 초열혈 구독자이기도 했다. 그의 진심 어린 행동들을 보며 여러모로 감동했고, 반성도 쬐꼼 했다. 2시간씩 18팀. 앞뒤로 준비와 정리의 시간까지 포함하면 꼬박 3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인터뷰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것이고, 수많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남기고 작게나마 연결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어도, 그 모름의 순간들을 나눌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다. 앞으로도 더 잘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나아갈 요를 비롯한 모두와 가끔씩이라도 만나 차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떻게 지내는지, 잘 먹고 살고 있는지 다시 이야기해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여전히, 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충현- 💭 본창님과 요를 소개해주세요. 다른 팀원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쩌다 혼자 오신 건가요? 본창 작곡가, DJ, 연주자 등등 음악 전반적으로 음악을 만지고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구본창입니다. 요의 구성원들은 활동 장르가 다양해요. 음악교사하시다가 정년퇴직하신 선생님도 계시고요. 드러머, 베이시스트, 이대 국악과 조교도 있고요. 노래 하다가 영상으로 바꾼 친구도 있고요. 두세 명 빼먹은 것 같긴 한데 상관없겠죠? (웃음) 대표로 있는데 대표라는 생각을 안 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구심점이긴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서로 돕고 조언을 받고 그러고 있네요. 본창 다른 단체들은 다 인터뷰를 두 명 이상씩 했더라고요. 부럽기도 하고 끈끈해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그 안에 들어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계를 맺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었고, 혼자 온 이유는 빈틈 있어 보이고 싶어서예요. 뒷북이랑도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고요. 어차피 단체 구성원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 줄 거라는 믿음 같은 것도 있었어요. 다른 단체와 연결될 때 허술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어 이렇게 혼자 왔습니다. <혈혈단신으로 뒷북에 침투해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본창> 소똥 그 빈틈을 잘 파헤쳐보겠습니다. 본창님이 구심점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본창 저를 중심으로 어떤 사운드가 필요하면 합쳐지는 느낌입니다. 교육적인 부분이 있으면 교사 선생님께 여쭤보고요. 팀이라고 하긴 뭐하고 저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톱니바퀴입니다. 너무 말을 막 하고 있나요? (웃음) 💭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당신의 첫 창작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창 출발점은 저희 집이 진짜 가난했었거든요. 어렸을 때 할 수 있는 게 TV를 보는 일밖에 없었어요. 학원에 간다든지 외부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음악 방송만 정말 하루 종일 봤던 것 같아요. 보면서 ‘음악은 참 좋은 거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중학교 때 밴드로 대회를 나가서 성적을 거두면 피자를 준다 했어요. 그 피자를 먹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소똥 중학교 때 처음으로 창작을 하신 건가요? 본창 첫 창작물이라 하면 사실 애매한 게, 제가 음악을 접한 뒤로 했던 모든 발자취가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예술교육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중고등학교 때 가장 창의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연결해서 말하자면 이번에 난생처음꿈지 대상은 연령대를 열 살부터 쉰 살까지 되게 넓게 잡았거든요. 제 창의력이 가장 빛났던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잡고 양쪽 타겟이 그 지점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충현 조금 이해가 안 됐는데,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잡고 양쪽 타겟이 그 지점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본창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회상하면서 아무거나 뱉고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고,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보면서 자제를 시키고 싶었어요. 어차피 아이들은 엄청 창의적이거든요. 아무거나 얘기해도 창의적일 때가 되게 많아요. 그건 긍정적인 요소인데, 누군가 자제를 시키거나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 순간에 “자리에 앉아라. 조용히 해라.” 하는 것보다 공간에 어른들이 있어서 그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아이들이 진중하게 창의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스무 살을 중간지점으로 두고 양쪽이 모였으면 좋겠다. 요정도입니다. 충현 서로가 서로의 보완점이 되어주는 건가요? 본창 좋게 말하면 그렇게 볼 수 있죠. 소똥 자제가 잘 되던가요? 본창 오, 네네. 노인 분들이 계시는데, 아이들이 어른들 눈치를 좀 보더라고요. 눈치라고 하면 좀 안 좋은 것 같긴 한데, 어른들은 되게 진지하게 기술적인 부분들을 연마하세요. 근데 그걸 보고 아이들도 되게 진중하게 같이 참여해요. 쉬는 시간 주면 참았다는 듯이 터지고 다시 시작하면 차분해지고 신기했어요.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난생처음꿈지를 통해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당신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본창 처음에 꿈지를 하겠다고 제출했을 때랑 많이 달라졌어요. 일기장이랑 음악을 섞어 수업을 만들어보겠다. 이 정도였는데, 꿈지 멘토이신 임체스님한테 박살이 났어요. “이 수업을 왜 해야 돼요?”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는데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사실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거든요. 박살이 나고 정말 처음부터 새로 기획해서 수정서류를 냈어요. 결과적으로 삶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 돌아볼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20대의 삶, 30대의 삶이 한국 안에서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참여자 중에 20대가 두 분 계셨는데 가장 기뻤던 순간이 둘 다 취업이었어요. 30대 남자분들은 전역할 때고 그 외에도 결혼, 출산 등 다양하지 않더라고요. <임체스 멘토에게 한껏 박살난 본창> 충현 삶에 관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 나누는 걸까요? 본창 기본적으로 작곡을 해보는 프로그램인데, 삶의 순간들을 교구로 표현해보는 거예요. 본인의 마음을 되뇌어 보고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푸는 과정이죠. 자신의 순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만들면 그게 자기의 곡인 건데, 막연히 곡을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쉬웠거든요. ‘난생처음꿈지’의 이름을 따와서 ‘난생처음작곡’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진행했고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했어요.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잘 없잖아요. 소똥 생각보다 그런 것 같아요. 본창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삶의 즐거운 것들을 찾으면서 취향이나 선호를 알고 가고, 어른들은 과거를 돌아보고요.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는 ‘실패의 경험을 하지 않게 하자.’였어요. 실패하는 경험 때문에 자제하게 되고, 자제하다 보면 자기 생각을 말로 할 때 정제되고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심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되는 수준까지 갈 때가 있거든요. 눈치 정말 많이 보잖아요. ‘내가 이거 맞게 하고 있는 건가?’ 뭘 만들어도 사실 상관이 없는데 만들어놓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일단 고치고 싶었어요. 자기의 작업물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 소똥 ‘난생처음꿈지’ 사업에 참여하신 경험은 어떠셨어요? 수업은 끝나신 거죠? 본창 수업은 전부 종료했고요. 코로나 때문에 원래 대관을 하려 했던 곳을 못 빌리게 됐었어요. 시에서 운영하는 곳은 다 닫더라고요. 어떻게 다른 곳을 찾긴 했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짜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래도 꿈지 자체는 되게 만족스러워요. 참여자분들이랑 친밀하게 지냈고요. 참여자분들이 먼저 살갑게 해주시고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 보면서 ‘수업이 참여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되었구나.’ 했어요. 단체원들이랑도 끈끈해질 수 있었고요. 혹시 두 분은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에 관련한 얘기 많이 하세요? 충현 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합니다. (웃음) 본창 저흰 그런 얘기 진짜 안 하거든요. 게임 얘기, 음악 얘기하면서 놀지. 예술이 어땠니. 교육이 어땠니. 이런 얘기하기 되게 어려워하는데, 이번에 꿈지를 통해 다양하게 얘기도 하고 피드백하고 그러면서 끈끈해졌어요. 재밌었습니다. 소똥 평소에는 왜 그런 얘기를 안 하셨어요? 본창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하는 거 어려워요. 진지해져야 하잖아요. 친구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예술가의 모습으로 보이는 게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수업을 진행하면 다른 강사들도 저를 쳐다보는데, 그게 너무 새삼스러웠어요. 끝나고 나서 친구들이 “이야, 너 선생님 같던데?” (웃음) 이런 얘기하는 거 들으면 엄청 부끄러웠죠. 소똥 저 같은 경우에도 뒷북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는 일하는 게 되게 익숙한데, 같이 일해본 적 없는 친구들하고는 그런 얘기하는 게 어색한 것 같아요. 본창 엄청 새삼스럽더라고요. 저는 심지어 어떤 음악 듣는지 얘기하는 것도 어려워요. 저흰 음악이 업이라 취향으로 성격을 판단하기도 하거든요. 💭 새삼스럽다는 표현을 해주셨는데, 본창님의 2021년 목표는 새삼스러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사전질문지를 통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새에 갇혀 있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도 하셨는데요. 2021년 만난 새삼스러운 감정들과 그 새삼스러운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경험이 궁금합니다. 본창 저는 새삼스러움이 불편해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집돌이인데 집밖에서 뭔가를 하는 건 다 새삼스러운 일이에요. 안락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걸 새삼스럽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수업할 때는 이 새삼스러움을 껍질이라고 표현했어요. 나를 감싸고 있는 어떤 것. 저는 예술가로서, 뮤지션으로서의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이었거든요. 처음 예술교육 씬에 들어왔을 때 음악가로서의 어법보다 훨씬 상냥하게 말해야 되는데, 그 말투를 쓰는 게 새삼스러웠어요.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포기하고 교육을 해야 했거든요. 나의 어떠한 부분을 부수고 나가는 것입니다. <부수고 나갈 의지가 충만해 보인다> 💭 수업에서 작곡을 통해 본인의 마음을 되뇌어 보고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푼다고 하셨습니다. 결국엔 온전한 자신을 나타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까지 본창님 혹은 요가 만든 음악 중 가장 당사자의 마음 혹은 당시 상황을 잘 나타낸 음악을 소개해주세요. 본창 올해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가라앉는다는 뜻의 'SINK'라는 음악이 이번에 발매되는데 그 노래가 가장 저답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오래전부터 작업을 한 곡이거든요. 근데 또 조금 애매한 게 곡을 만들었던 시점의 저랑 지금의 제가 달라졌거든요.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어떠한 작업물을 만들 때 그 곡에 맞춰 산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치면 그 감정을 담는 곡을 만들고 털어내요. 충현 그 당시의 본창님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 'SINK'인 거죠? 본창 'SINK'입니다. 충현 언제 발매되나요? 본창 계획은 항상 이번 계절인데... (웃음) 충현 왜 여쭤봤냐면, 'SINK'라는 노래가 이 인터뷰에 실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요. 어쩌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 음악을 듣는 것이 본창님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아닐까요? 본창 좋습니다. 지금 버전이 구버전이긴 하지만요. 본창 저는 이런 사람이었어요. 가라앉아있고 무겁고 날카로운 사람이었는데, 문화예술 하면서 좀 둥글둥글해졌어요. 제 인생 곡은 다프트펑크의 ‘something about us’라는 노래입니다. 정말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충현 다프트펑크 해체했을 때 슬프셨겠네요. 본창 맞아요. 그래서 한동안 카톡 배경화면이었어요. 쉬실 때 되긴 했죠. (웃음) 너무 힘들게 전자음악 하시는 분들이라. 요즘 전자음악 다 컴퓨터로 하는데 그분들은 아날로그로 녹음해서 다시 전자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서 작업을 하거든요, 진짜 고생하신다 했어요. 💭 예술가의 자아, 강사의 자아, 기획자의 자아, 구본창의 자아, 생존자의 자아, 리더의 자아 등 수많은 자아 속에서 여러 고민과 타협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본창님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계신가요? 본창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예술가로서의 프라이드가 되게 강했거든요. 다른 것들을 선택할 때의 부딪힘, 내적인 갈등이 많았죠. 사람들에게 저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예술가와 예술교육가로서 너무 부딪히는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냐.”고요. 근데 다들 별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예술교육을 기획하는 것 자체가 자기 작품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타협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는 작품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어디서 배운 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가르쳐 먹으려고 하고 있었구나. 나도 작품 활동을 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불균형은 해소가 됐죠. <냉장고에 이어 냉동실도 뒤져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본창 요로 같이 활동하고 있는 팀원이 제 성격을 모양으로 하면 별모양이라고 했어요. 모난 사람이어서, 예술가로서는 좋을 수 있지만 주변 사람을 찌를 때가 있다고요. 그래서 좀 둥글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제가 누군가를 찌르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어요. 작품 활동을 하거나 중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순간 같이 음악 관련해서 이끌어가야 할 때 날카로워지는 면이 생기더라고요. 변화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다시 돌아와요. 소똥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계신 거예요? 본창 네네. 밴드 반만 5개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소똥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즐겁나요? 본창 전혀 즐겁지 않고요. (웃음) 사명으로 하고 있어요. 제가 가난해서 밴드를 했다고 했잖아요. 학교 시절에 강사로 만났던 분이 정말 엉망진창으로 가르쳐줬어요. 거의 알아서 해야 하는 수준이어서 ‘나는 커서 음악을 하면 나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지.’ 해서 강사를 시작했고, 다행히 한 번 갔던 학교에서 계속 불러주셔서 계속 가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예쁘고 잘해주고 싶고 이런 마음과 별개로 그들과의 생활을 즐기진 않아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괴롭습니다. 기타도 잘 못 치면 시끄럽잖아요. 모두가 합쳐서 다 같이 소음을 만드는 순간이 즐겁진 않아요.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악기들도 사용법에 따라 소음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백색소음이 음악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요. 또 어떤 음악의 경우는 사람의 선호나 취향에 따라 소음이 되기도 하죠. 소리와 음악은 다른가요? 음악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본창 소리는 흩어져 있는 거잖아요. 어떠한 소리들을 갈무리해서 작품으로 만드는 게 예술가의 몫이죠. 그리고 당연히 각자의 취향이랑 선호가 다른 건데, 그건 사실 예술가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작품에 넣는 거만 생각하면 되죠. 음악을 결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자기 의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창작자가 음악이라고 만든 거면 음악이죠. 지금 들리는 에어컨 소리는 소음이지만 이걸 녹음하고 가공해서 올리면 음악이겠죠? 소똥 요즘 본창님이 즐겨듣는 소리 혹은 음악이 있나요? 본창 계속 좋아하는 음악이 변하지만, 요즘에는 재즈 되게 많이 들어요. 애플 뮤직에 공간 음향이란 카테고리가 생겼거든요. 스테레오의 개념을 아시나요? 양쪽이 다른 컬러로 소리가 나오는 형태고 채널이 늘어나면 많은 소리가 담기는데 애플뮤직에 그렇게 양쪽에서 다른 소리가 나는 음향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되게 재밌더라고요. 충현 소똥은 요즘 어떤 음악 들으세요? 소똥 저는 담백하고 음정이 불안한 보이스가 담긴 노래를 좋아해요. 김현철, 유재하, 브로콜리너마저, 언니네 이발관. 정렬하면 관통하는 목소리 톤이 있어요. 그런 걸 좋아해요. <담백하고 음정이 불안한 보이스를 좋아하는 소똥> 본창 궁금해지는 것이 방금 말씀하신 분들이 데뷔한 지 오래된 분들인데 요즘 다시 사람들이 많이 찾잖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김현철님이나 유재하님의 음악을 실제로 TV에서 본 세대도 아니잖아요. 심지어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힙하다는 카테고리로 엮이기도 하고요. 어째서 다시 돌아온 걸까요? 충현 음악만은 아니잖아요.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컨텐츠나 빈티지 옷들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의 것인데,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왜 살지도 않았던 88년도를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요? 힙한 분들을 따라가게 되는 건가? 본창 두 분이 문화기획을 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충현 저희가 트렌드를 예민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어서 잘 모릅니다. (웃음) 소똥 주변 사람의 영향이 제일 크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에도 초등학교 때는 음악방송 보고 그러면서 아이돌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중학교를 대안학교 들어오면서부터 김광석 노래를 듣게 되고 포크 노래를 접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말하는 옛날 노래를 많이 듣게 된 거죠. 본창 소똥의 경우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아예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을 동경하는 게 좀 신기해요. 분명 어떤 지점이 있을 텐데 ‘힙하다. 멋지다.’로 뭉뚱그려서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왜 멋진 건지 알고 싶어요. 이걸 알면 예술가로서나 문화기획자로서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잘 모르겠어요. 소똥 제가 그런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챙겨 듣는 편인데, 생각해보면 즐거운데 가사는 즐겁지 않은 내용들이거든요. 서로 약간 다른 느낌? 그렇게 신나지만은 않은데, 들썩들썩하게 되는 그런 포인트에서 저는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본창 제가 입고 있는 상의가 제가 가진 옷 중 가장 오래된 옷이고, 바지가 가장 최근에 산 옷이에요. 예전에 저다웠던 복장과 최근에 저다운 복장을 입었습니다. 겉모습을 꾸미거나 이런 데 관심이 없어요. 귀로 듣거나 글로 쓰는데 예민한 대신 눈으로 보는 건 진짜 못해요. 동생이 맨날 “오빠 눈 단추야?”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소똥 꿈지에 참여하는 어떤 분들은 대체로 편한 옷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자리나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다른 복장을 입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창님도 혹시 자리에 따라 복장이 달라지시나요? 본창 전혀요. 친구 결혼식에도 이렇게 갑니다. 오늘 수업도 하고 왔는데 이러고 왔잖아요. 장례식장 정도라면 다르겠지만, 보통은 이러고 다닙니다. <가장 오래된 상의와 가장 최근에 산 바지를 입고 온 본창> 💭 본창님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본창님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음악을 통해 먹고살 만하던가요? 본창 먹는 것보다는 만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사실 오늘도 두 분한테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6시가 넘어버려서요. 커피도 제가 사고 싶었는데 충현이 자꾸 안 된다고 하시고... 실제로 음식점을 찾거나 할 때도 상대방에 맞춰요. 집에서도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하거나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한 요리 만들어 주고 그런 식이에요. 본창 먹고살 만한가 하면 굉장히 먹고살 만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드신 분들이 많아 조심스럽긴 한데, 저는 엄청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을 느끼는 역치가 높거든요. TV에 나오는 단칸방에서 살았고, 기생충에 나오는 동네의 피자집이 실제로 저희 동네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해요. 암튼 오늘 두 분에게 꼭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었는데 충현이 자꾸 자기가 사겠다고 해서 못 샀어요. 소똥 아이스크림을 사 주시면 어떨까요? 본창 너무 좋네요. 지금 가시죠. <정말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소똥 요리하는 걸 좋아하세요? 본창 요리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음악 만드는 거랑 비슷해서 요거 넣고 저거 넣고 만들면 어떤 맛이 나올까 상상하면서 만드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소똥 자신 있거나 자주 하는 음식이 있으세요? 본창 보통은 그냥 가족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걸 맞춰 만들구요. 요즘은 진짜 파스타 많이 만들어요. 이젠 기본적인 베이스를 만들 수 있으니까 훨씬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더라고요. 머릿속에 얼추 그려져요. 그런 점에서 음악이랑 비슷해요. 이 사운드가 잘 맞을까? 💭 시흥을 거점으로 잡으신 이유가 있나요? 본창 동작구에 오래 살다가 시흥으로 이사 간지 3년 쯤 됐어요. 처음 봤을 때는 유배지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희 아파트만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근데 그때 ‘이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거예요. 시흥시에 문화재단이 생긴다면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시흥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살게 되었기 때문에 활동을 시작한 거죠. 꿈지 수업도 시흥에서 진행했는데 서울에서 오는 강사들이 좀 힘들어하긴 했지만 좋았어요. 시흥에 사는 분들이 목마름이 있었더라고요. 재밌는 거 많이 하고 싶어요. 소똥 시흥에서 만났던 다른 문화예술단체도 시흥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소개해주셨어요. 문화시설도 없고 활동할 만한 프로그램도 없어서 만들고 싶은 욕구가 많으시더라고요. 본창 요즘 시흥 시청 분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바꿔나가려는 열정이 있으셔서 곧 좋아지겠다 싶어요. 💭 요의 2021년 하반기 계획을 알려주세요. 본창 그냥 저 개인의 목표가 있다면, 항상 계절마다 시도되는 저의 앨범 발매가 있을 것이고요. 단체 인원들끼리 같이 활동하면 좋겠다 싶어요. 교육이든 공연이든 시작만 되면 뭔가를 만들 수 있거든요. 근데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2021년은 꿈지만으로도 벅차거든요. 꿈지 관련해서 하반기 계획은 다른 단체들이랑 끈끈해질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오늘 제가 엄청 많이 말하긴 했는데,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18팀의 인터뷰를 다 하고 나면 두 분의 일은 끝나는 건가요? 충현 네. 그렇습니다. 본창 아쉽네요. 라잎스페이퍼를 열심히 읽어 생긴 저의 내적 친밀이 아까워요. (웃음) 충현 그래서 공연이나 전시 같은 거 하면 초대해달라고 많이 말씀드려요. 사실 말은 안 하지만 알잖아요. 노력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게 될 거란 걸요. 저희도 많이 아쉽고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공연이나 전시 불러달라고 꼭 부탁하고, 불러주시면 무조건 가는 거예요. 이미 몇 팀 다녀오기도 했고요. 본창 그럼 저의 2021년 목표는 뒷북과 친해지는 걸로 할래요. 뒷북과 다른 꿈지 참여 단체들. <본창은 뒷북과 친해지고 싶다. 충현은 코를 파고 있는 게 아니다> 소똥 뒷북에서 본창님의 앨범으로 음감회를 해도 너무 좋을 것 같구요. 충현 같이 노래 부르면서 놀아요. 뒷북에서 하는 행사도 놀러 오시고요. 💭 마지막으로 난생처음꿈지 사업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본창 되게 아쉬웠던 부분이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었던 팀들과 달리 이름조차 모르던 팀들은 라잎스페이퍼에서 봤을 때도 텍스트 적으로만 이해하게 되는 게 아쉬웠어요. 이름 하나 아는 것만으로 훨씬 친밀감을 느꼈을 텐데 메일로 처음 본 이름들인 거니까요. 좋았던 점은, 다른 단체에서 저희한테 조언해주신 게 몇 개 있었어요.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멘토링도 좋지만, 단체와 단체가 한마디만 섞어도 느끼는 점이 많을 거라고 봐요. 본창 또 여기서 꼭 말하고 싶었던 게 난생처음꿈지 담당자 류희경님께 엄청 감사해요. 지원사업에 처음 참여해보는 단체들을 이끌어가고 계시는데 드러나지 않잖아요. 마지막에라도 무조건 언급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꽤 많아서 신세를 많이 졌어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공식적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연결해서 아쉬운 점은 제가 그쪽에 연락하지 않아도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꿈지 진행하려고 통장 만들 때도 엄청 고생했거든요. 처음에 “기업용 통장 만드세요. 신용 카드 만드세요.” 두 마디만 저한테 던져줬어요. 근데 그 두 개 해결하느라 진짜 오랜 기간이 걸렸어요. 애초에 가이드라인이 상세했다면 담당자님을 귀찮게 할 일도 없을 것이고, 단체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 안 주고 쭉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소똥 실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진짜 많이 해요. 뒷북도 지원사업 따내서 받는데 항상 힘들어요. 시간은 시간대로 쏟고 하라는 대로 해도 잘 안 되고, 연락해보면 대응이 별로고 그럴 때 허무함과 박탈감이 있죠. 본창 은행에서 앉아서 중간에서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튼 그 모든 걸 해결해주신 류희경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요: 여전히, 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끝. 님💃 뉴스레터를 읽고 요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작성해주세요! 응원의 메시지, 인터뷰를 보며 느낀 생각, 궁금한 점, 함께 해보고 싶은 일, 전하고 싶은 소식 등등 글의 내용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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