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전하는 글진 geulzine의 뉴스레터 02호
FEATURE STORY

너의 쓰디쓴 밤을 나는 알고 있다


: 아류라 불리던 것들의 뜨거운 반란


1. 나는 아류다 


나는 만년필의 아류다.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 또한 그 시선을 부정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내가 태어난 이유이자 숙명이었으니까.

내 고향은 일본. 내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진출했다는 건 그만큼 내 존재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의미겠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의 반응은 한결같아.

"넌 뭐냐?"

"만년필이냐? 펜이냐."

그렇게 묻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난 처음부터 만년필의 대체품으로 태어났으니까. 값비싼 만년필, 관리하기 까다로운 만년필, 일상적인 필기도구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만년필. 우리 세계의 최상위 레벨이자, 왕족인 그 녀석을 대신하는 게 내 역할이었어. 내 머리는 파이버 닙이라는 불리는 뾰족한 플라스틱 닙. 볼이 굴러가며 유성잉크를 서서히 밀어내는 아이들과는 피지컬부터가 달라. 내 몸엔 왕족의 피가 흘러. 단지 그들처럼 금·은·동을 두르지 못했을 뿐. 만년필보다 더 실용적이고 값싼, 아니 하이테크의 결정체라고 할까. 나는 만년필 보다 저렴하지만 관리하기 쉽고, 무엇보다 만년필 만의 매력적인 필기감을 가졌어. 때론 만년필의 대체품이라 업신여김을 당할 때도 있지만, 내 자부심은 남달라. 비록 역사는 짧아도 나는 종이 위의 르네상스를 이끈 혁명가야. 이건 나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이야기야. 

by 서사이_도구의 사생활

4등을 위하여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첫 만남 이후 일주일. 아이는 여전히 교실 구석에 앉아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누군가 말을 걸어주길 기대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모여 앉는다.  아이는 말 대신 주변 눈치만 살핀다.
결국, 아이는 책상에 엎드린다. ‘역시 나는 안돼.’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자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자리 아이가 말을 건다.
“화이트 좀 빌려줘.”
“어?어.”
당황한 아이는 화이트를 건넨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친구가 되는 사건도 아니고, 거창한 대화도 아니다. 그저 짧은 말 한마디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작이다. 

by 김지혜


세계 여성의 날_넌 무엇을 원하니?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의 상징은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노동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합니다.
그 상징이 외쳐진 이후,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성의 날에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가진 21세기, 그렇다면 이제 충분한 걸까요 ?

일과 양육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은 여전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저출산과 고령화를 이야기하는 정책 속에서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함께 다루어지고 있을까요.
영유아만 인구 정책의 대상은 아닐 거예요. 청소년을 키우는 가정, 돌봄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시간 역시 정책의 언어 안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변에서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 누군가는 결혼을, 또 누군가는 출산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by 이지선_햇살 좋은 창가


빠앙.
찰나에 핸들을 확 꺾은 해진과 옆 좌석의 인하에게 찢어지는 듯한 클락션이 울려왔다.

“미, 미친놈이…….”

정말로 간발의 차였다. 한 끗 차이로 사선을 넘나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미친, 맞은편에서 오던 화물 트럭과 충돌할 뻔했어…….

상대는 몇 톤짜리 트럭이고 질량 차가 압도적이니 부딪혔으면 이 차는 확실하게 찌그러졌을 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 다 납작해졌을 텐데.

“이번만이에요.”

헐떡이는 그녀를 보며 처음이라서 한 번만 봐주는 거라며 윙크를 날리는 놈이었다.
덕분에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이성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 인하는 속에 치미는 욕지거릴 삼켰다. 식은땀이 흘러내려 등 뒤가 축축했다.

“아무래도 우리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도로에는 흰 점선이 유리창 앞 도로 중간에 그어져 있었다. 속도가 빨라지자 하얀 막대기가 다가오는 것도 빨라졌다. 인하는 이를 악물었다.

by 가넷베리_가넷베리의 숏텐츠
MORE>>>

by 마침_명프로젝트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여성이다.
여성은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것을 돌보는 존재이다."
파니의 일기 中 (1836년)

결혼행진곡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많은 분에게 익숙한 이름일 듯합니다. 오늘은 그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니는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펠릭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두 남매의 재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철학자 괴퇴는 파니를 "펠릭스만큼 재능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문턱에서 시대는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지요.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에게는 그저 장식이어야 하고 결코 네 존재나 활동의 바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파니가 14살이 되던 생일,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이와 같은 편지를 딸에게 보냅니다. <더 보기>


by 윤명주_사적인 지각변동

다 큰 성인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고 있다. 아이처럼, 굳이 자기의 눈물을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순간, 이럴 때 주의를 기울이는 건 예의가 아닌 듯했다. 부인인 듯한 여성이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여성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묻어 있다. 나는 대학병원 유방센터 대기실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다. 암 환자만 만날 수 있는 교수의 진료를 진즉 끝내고,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받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초음파 검사와 진료를 받아왔던 터였다. 매년 한 번, 공교롭게도 생일 즈음에 생일파티 하듯 이 루틴을 치러 왔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 유방센터는 검사실과 진료실이 몰려 있어 여기를 드나드는 사람 대다수가 여성이다. 가끔 보이는 남성들은 환자의 보호자 자격으로 온 것일 테다. 사람들이 애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듯 보호자들이 보이는 위로 방식과 감정 표현 또한 제각각이다. 환자한테 화를 내듯 하는 남편들도 있고, 세상 살갑게 챙기는 아들도 보았다. 대개는 무뚝뚝 하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떨리는 목소리, 갈 곳을 잃은 손, 멍해진 눈동자가 이곳에 암 환자가 많다는 걸 상기시킨다. 오히려 환자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것이 특이할 뿐.  <더 보기>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다채로운 일상을 담은 종합 문예 웹진!
글진의 뉴스레터는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뉴스레터를 메일로 직접 받아보시려면 아래 구독 버튼을 눌러주세요!

글진(마루온X맺음)
yoonyka@hanmail.net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