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Vo3.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난주 디자이너 친구의 힘을 빌려 일글레 로고를 만들어보았어요. 첫 주에 보내드렸던 제가 만든 로고보다 백배, 천 배, 만 배는 나은 것 같지 않나요?😬

오늘의 일글레는 저에게 깊은 울림을 준 2023 서울대 졸업식 최재천 교수의 축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최재천 교수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양심'
- 출처 :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
"저는 모름지기 서울대인이라면, 치졸한 공평 수준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29일, 최재천 교수가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을 위해 축사를 진행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제가 존경하는 어른 중 한 분이라, 과연 곧 사회로 나갈 서울대 졸업생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었을지 귀 기울여 들어 보았는데요. 


최 교수가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의 핵심은 '양심'이었습니다. 그는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된다"며,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밀어붙이는 불공정한 공평이 아닌,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어요.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는 약 15분 분량의 축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축사 전문을 텍스트로 받아적으며(*축사 전문) 그가 '양심'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매우 전략적으로 축사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최 교수의 축사를 통해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전하면서 울림을 주는 스피치 작성 방법 3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2023 서울대 졸업식 축사 영상은 레터 가장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업적 나열에 숨은 의도 


최 교수는 축사 앞 부분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업적들을 쭉 나열해요. 이를 테면,


✅ 김대중 대통령에 호소하는 신문 기고문을 써서 동강댐 건설 직전 백지화 하는 데 성공하며 졸지에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가 된 일.

✅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4대강 사업에 항거하다 온갖 불공정한 핍박을 당한 일.

✅ 어쩌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가담해 헌법 재판소에 불려가 과학자의 의견을 변론했는데 한 달 만에 헌법 위헌 판정이 내려지며 남성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일.

✅ 2012년,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제돌이와 그의 친구 돌고래들을 고향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일.

✅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아 K-방역이 세계의 칭송을 얻는 데 힘을 보탠 일. 

✅ 노무현 정부를 설득해 동양 최대 규모의 생태학 연구소인 국립생태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서 봉사한 일 등등...


어떤 이는 '자기 자랑'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자기 자랑이면 어떤가요? '자랑'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지만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성장 동기 부여를 줄 수 있는 건강한 자랑이라면 널리 공유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최 교수가 이 많은 업적들을 나열한 진짜 이유는 진정성을 더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연구와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부름에 종종 자신의 목까지 내걸며 참여한 이유를 혼자만 잘 살 수 없었던 '그놈의 양심'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입으로만 번드레하게 양심을 논하는 어른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의 존재는 무척 귀합니다. 최 교수는 자신의 양심적인 행동들을 나열함으로써 후배들에게 '양심을 가져라'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양심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2. 리포트를 베낀 서울대 학생들의 일화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양심'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최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겪었던 일화를 하나의 예시로 소개하는데요. 그는 숙제 검사를 하다 상당수의 학생이 누군가의 리포트를 그대로 베낀 걸 발견했고, 총 여덟 명의 학생을 찾아내어 개별 면담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최고의 능력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면 가진 것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적은 저 바깥에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앞으로 의사가 되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직 정도만을 걷겠다고 나와 약속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다."

자신이 가진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 자는, 양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합니다. 최 교수는 위 일화를 통해 그 지점을 꼬집은 것이죠. 
"가진 자들은 별 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최 교수는 진정한 공정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의자'에 빗대어 설명해요. 이 땅에서 가장 축복받은 서울대 졸업생들이 그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보다 높은 의자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3. "살아보니 인생 참 길더군요"를 3번 반복한 이유 

축사에는 한 문장이 3번 반복됩니다. 바로 "살아보니 인생 참 길더군요"인데요. 

살면서 '인생 참 짧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인생 참 길다'는 말은 많이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시간은 화살과 같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젊음도 찰나와 같이 지나간다고 하니 빨리 무언가를 해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죠. 

마음이 조급하면 어떨까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사라지죠. 학교에 지각했을 때 혹은 시험 벼락치기를 할 때 오직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느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마도 최 교수는 서울대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가 빨리 자리 잡고,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좀 더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보며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살아보니 인생 참 길더군요"라는 말로 대신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심지어 3번이나 반복한 점에서, 그가 이 부분을 얼마나 강조하고 싶었는지 3배 이상으로 충분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농민 사상가 고 전우익 선생님이 남기신 말씀을 통해 부디 혼자만 잘 살지 말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 달라는 당부로 축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의 일글레는 이 말로 마무리하고 싶네요.
"혼자만 일글레 알면 무슨 재민겨?"
주변에 일글레 많은 공유 부탁드려요🫰
2023 서울대 졸업식 최재천 교수 축사 영상 보기
일글레 발행인 유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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