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업장 보건관리체계 왜 이리 허술한가?
2009년에 산업보건지에 제가 기고한 글 제목인데, 아직도 국내사업장 보건관리체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근로자 300인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보건관리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했는데, 이 중 의사는 2020년 10월 기준으로 1.4%에 불과합니다. 산업의의 배치가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별조치법"으로 무력화된 후,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업의 배치에 대한 법적 근거 조항이 복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 같습니다.
국내 사업장 보건관리체계 왜 이리 허술한가?. 2009년 산업보건
사업장의 보건관리에서 통합적 정보관리의 중요성
사업장은 산업보건활동의 기반이며 가장 중요도가 높은 곳입니다. 사업장에는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 측정결과 등 많은 자료들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산업보건전문기관이 보건관리업무를 수행하면서 근로자 개인정보부터 사업장 작업환경정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로자의 효율적인 건강관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지 않을까요? 저는 산업보건관리체계와 일반건강관리체계가 이원화되고 분절화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장 근로자 건강관리의 질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료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 보건관리대행체계에서 보건관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
다수의 사람들은 현 보건관리대행체계 하의 근로자의 건강관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며, 상당수는 부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지만, 첫 단추는 근로자 개인에 대한 건강상태, 질병발생, 유해물질노출에 대한 정보관리의 부족에 있습니다.
첫째, 정보가 지속적으로 수집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정보가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근로자 개인의 직업병 발생정보 수집과 건강위험 평가가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넷째, 새로운 공정이나 유해인자등의 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건강보호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방문횟수로만 평가되는 보건관리 대행의 취약성
사업장 건강정보의 수집-관리-평가-대책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현 보건관리대행이 단지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사의 사업장 방문횟수로 시행여부를 판단하는 규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산업보건관리체계를 취약하는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1997년 IMF 이후 25년이 지난 이후에도 이런 부실한 산업보건관리체계가 유지되고 있어서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자괴감이 들 정도입니다.
정보관리체계의 부족으로 심층적인 분석이 어려워
직업성질환의 발생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감시에 참여하는 인력과 감시를 위한 의료정보관리체계가 중요합니다. 감시에 참여하는 인력은 어떤 상태일까요? 우선, 산업의 선임은 자율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보건관리자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선임되어 있으나, 50-300인 사업장은 보건관리전문기관에 위탁됩니다. 감시에 활용되어지는 산업보건정보관리체계는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제한적이나마 감시에 참여하는 인력들이 있지만, 정보의 제한으로 각 근로자의 건강위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사의 정기방문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다수의 근로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위해 근로자건강센터가 있지만, 예산과 인력 배치가 미미한 수준이라 사실상 영세사업장 대부분이 산업보건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방-치료-보상-재활-의 순환고리가 연결되어야
직업성질환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정보관리체계와 함께 산업보건의 기본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근로자들이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산업보건체계에 들어오더라도 산업보건체계 내에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근로자의 산업보건서비스를 용이하게 하는 절차상의 개선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산업보건체계 안의 순환고리를 만들어 산업보건 자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산업보건사업체계는 예방, 치료, 보상, 재활이 서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 떄문에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산업재해보험의 효율적인 이용이 어렵습니다. 현재의 3분형 산업보건체계*는 산업보건사업내 예방과 재활, 보상과의 연계를 만들어주는 2분형 산업보건체계*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 산업보건 전문기관을 설치하고, 2)기존 산업보건기관 사이에 유기적인 의뢰관계를 구축하고, 3) 일반의료체계와도 연계망을 확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소견자의 추적관리 및 치료, 건강증진, 질병 보상 상담, 작업현장 개선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3분형 산업보건체계와 2분형 산업보건체계는 <문옥륜 외: 산업보건서비스체계의 효율적 관리 방안에 관한 연구(보건행정학회지, 1994)>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3분형은 산업보건체계, 일반보건의료체계, 산재보험이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분형은 산재보험과 산업보건서비스를 통합되어 있고, 일반보건의료체계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체계입니다. 2분형 산업보건체계의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상호재해보험연합회(Berufsgenossenschaften)입니다.
일차보건의료를 통해 산업보건서비스를 확대해야
더 많은 근로인구에게 산업보건 서비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차보건의료를 이용한 사업이 여러 국가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백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현재의 산업보건서비스체계를 통해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받는 인구가 아주 적습니다. 미접근 대상 인구(underserved population)가 소규모 영세공장,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중에 많습니다.
둘째, 근로와 건강의 관계는 전문화된 기술로 알 수 있는 면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그렇지 않고 일차의료를 통하여 관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보건의료는 값이 비싼 상품이므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건강취약그룹의 만성질환 관리 강화가 중요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속에, 일차의료서비스의 질 하락,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현재의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2022년에 우리나라의 의료비가 전체 GDP의 10%를 상회하였습니다. 이는 OECD 의료비 부담 수치를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이런 추세라면 건강보험이 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취약그룹의 만성질환 관리를 강화하는 노력은 현재의 건강보험도 지속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일차의료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고, 환자중심의료 구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등록관리가 가능한 혼합형 수가제로 지불제도가 개편될 예정입니다. 이는 사업장 주치의제가 시행될 수 있는 기반이 되는데,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사업장 보건관리에도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사업장 보건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사업장보건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근로자 2,000명 이상 사업장은 산업의 선임을 의무화하고, 300이상 사업장과 보건관리대행이 이루어지는 50인-300인 사업장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들이 사업장 주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은 지역의 일차의료 의사들이 사업장 주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추진하는 표준일차의료모델 중 하나로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장 주치의 모델도 가능합니다. 사업장보건관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간호사, 산업위생사등과 함꼐 주치의팀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산업정보관리체계가 구축되고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등록관리가 결합된 지불제도 개편이 이루어지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지금의 방문횟수 정도의 과정 지표 뿐만 아니라, 주요 만성질환의 유병률, 조절률, 직업성질환 발생률, 소요된 의료비 등을 성과지표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장 보건관리체계의 효율성 분석을 시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산업보건의 발전수준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산업보건분야에도 의료전달체계를 새롭게 구축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역사회에서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위해 일차의료의사가 사업장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사업장 주치의에 대한 교육이 중요해집니다.
이제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대한가정의학회,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와 손잡고, 지역사회 일차의료의사 대상으로 영세사업장 주치의 교육을 시작하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이 변화를 주도해 나가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환자중심의료, 가치기반의료에 관한 최근 논의에 대해서는 위의 기사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연구보고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글쓴이: 임종한 (인하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님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