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샤미나드 #플루트 협주곡 Op.107 ©️unplash
흔히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부르죠? 식민지가 많아 영국의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인데요. 이 시기 영국을 이끌었던 군주는 다름 아닌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이처럼 한 나라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빅토리아 여왕은 영토확장뿐만 아니라 여성 음악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 해요. 오늘의 작곡가인 세실 샤미나드는 프랑스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여왕의 장송곡을 의뢰했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오늘은 여왕이 사랑한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나의 작은 모차르트, 세실 샤미나드 ©️vulture 파리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세실 샤미나드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작곡가 비제의 눈에 띄게 됩니다. 비제는 샤미나드를 "나의 작은 모차르트"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고 해요. 그는 샤미나드의 부모님에게 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볼 것을 권유했지만, 아버지가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음악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샤미나드는 파리 음악원 교수들에게 직접 개인지도까지 받아 가면서 음악을 배웠다고 해요. 시간이 흘러 188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샤미나드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작곡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과는 달리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요😱 샤미나드의 곡 중 유독 피아노곡과 가곡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익성이 보장된 소규모곡을 작곡해야만 했던 것이죠. 제한된 상황에서도 세실 샤미나드는 살롱을 전전하며 자신의 실력을 알렸고, 이 젊고 유망한 작곡가의 소식은 빅토리아 여왕에게까지 닿게 됩니다. 샤미나드의 명성은 바다 건너 미국에도 상륙했는데요. 전성기 때는 미국 전역에 약 200개의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하네요! 레지옹 도뇌르 훈장 ©️wikimediacommons 샤미나드가 당대 여성 예술가로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는 그가 받은 수많은 훈장과 상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어요. 그중 1892년에 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으로, 프랑스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뛰어난 발전을 가져온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합니다🎖 '영광의 군단'이라는 뜻을 가진 만큼, 이 훈장을 찬 사람은 각종 국가행사에서 예우를 받는다고 해요. 샤미나드는 여성 작곡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상을 받은 또 다른 작곡가로는 카미유 생상스, 엑토르 베를리오즈 등이 있는데요. 전 삼성전자 회장이었던 이건희와 영화감독이자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었던 이창동도 이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성에게 무대가 되어 준 살롱 ©️teahub 최근 “고급스러운 실내공간”을 지칭하는 단어로 살롱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아요. 프랑스어이기도 하고, 과거 사교모임이 이루어졌던 공간이기에 우아한 이미지가 더욱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살롱은 단순히 고급스러운 실내공간을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에요. 살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살롱의 주 이용자였던 당대 부르주아에 관해 알아봐야겠죠? 당시 부르주아들은 딸을 '우아한' 여성으로 키워 좋은 가문과 혼인하도록 했고, 이 혼인으로써 신분 상승을 꾀했어요. 따라서 여성의 음악 교육 비율은 상당히 높았지만, 전문 음악가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습니다. 철저히 '혼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만 음악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음악에 큰 열정을 보인 여성들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고, 대외적인 활동이 어려웠기에 살롱에서 음악을 발표했어요. 그러니까 살롱은 당대 여성 음악가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였던 것이죠. 플루트 협주곡 (Flute Concerto Op.107) ©️flickr 음악대학의 실기시험 기간은 어떤 풍경일까요? 신기하게도 만석이던 도서관은 텅텅 비고, 연습실은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시험날의 연주 한 번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곡을 연습하기 위해 몇 주, 심지어는 몇 달을 매진하거든요. 세실 샤미나드의 <플루트 협주곡>은 플루트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 파리 음악원의 의뢰를 받아 작곡된 곡입니다. 음악대학의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샤미나드가 음악대학 학생들을 위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죠? 그런데 이 곡은 너~무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샤미나드가 음악원에 다닌 학생들이 부러워 고난도로 작곡한 거 아니냐고요? 정답은 바로 복수심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샤미나드는 플루티스트였던 전 애인과 헤어지고 한동안 실연의 슬픔과 분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플루티스트에게 악감정을 가지게 된 샤미나드는 마침 의뢰가 들어온 플루트 곡을 어렵게 쓰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애꿎은 파리 음악원 학생들은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되었죠. 이 곡은 플루티스트의 역량을 파악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음악대학에서 실기시험 곡으로 활용되곤 한답니다. ✈️ 친구에게 GLIT 뉴스레터를 소개하고 싶다면? ⇢ https://www.glit.pw/ 🚙 글릿 인스타그램 놀러가기©️ 2020. GLIT Co. all right reserved GL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