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에서 무심코 한 말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방송 용어로는 ‘이펙트'가 들어갔다고 하지요. 영상을 찍고 있는데 카메라에 달린 마이크로 당사자의 음성이 일부 들어간 것입니다.  

대통령의 공개 행보에는 어김없이 수행취재진이 따라붙습니다. 출입기자단이 순번을 정해 취재기자, 사진기자, 영상기자 몇 명씩만 풀 취재를 합니다. 대통령실 전속 사진사와 영상 카메라맨도 참여합니다. 이번처럼 여러 나라 정상들이 모이고 일정이 분 단위로 빠듯하게 잡혀 있는 경우에는 취재진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의 모든 발언을 녹취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언행을 취재하는 것은 공식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습니다. 행사와 행사 사이를 걸어가면서 하는 말, 혼자 다른 정상을 기다리다가 하는 행동, 이런 것들이 모두 취재대상이 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당시에 했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나중에 정치적인 의미를 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려고 복도를 걸어가는 데 표정이 이례적으로 어둡다면 그건 ‘공개는 안 하지만 한미 정상 간의 대화에서 뭔가 잘 안 풀린 게 있었나 보다’고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기자들은 곧바로 양국의 공식 발표 이면에 있는 내용에 대한 취재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대통령을 따라다니면서 영상을 찍다 보니 서울 본사로 송출하는 영상의 양은 엄청납니다. 과거에는 위성송출 장비를 이용해 영상을 보냈는데 10분에 몇 백 만원씩 하는 위성송출계약을 아예 24시간 통으로 잡아서 풀기자가 취재해오는 영상을 송출하기도 했습니다. 위성송출 비용으로만 하루에 수천만원씩 쓴 셈이지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위성 대신 인터넷망을 쓰니까 비용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니까 영상을 유출한 사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풀 기자가 촬영한 영상은 각 방송사로 전송되는데 엠바고 해제 시각인 오전 9시 이전에 SNS에 영상이 돌았다는 건 누군가가 송출 전이나 송출 후에 해당 영상을 복사해 유출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의도가 뭐였든 영상 유출은 약속위반입니다. 법적 처벌로까지 번질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차원에서 징계가 불가피합니다.  

그럼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의 ‘이xx들이’와 ‘바이든 (또는) 날리면' 표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행과 걸어가면서 한 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비난의 대상이 바이든 대통령이었든 우리나라 야당이었든 적절치 못한 건 마찬가지라는 게 다수의 생각입니다.  

이른바 ‘핫마이크 Hot Mic’라고 하지요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걸 뜻합니다. 국가 정상이면 한 번쯤은 겪는 일입니다. 바이든은 불편한 질문을 한 기자에게 ‘멍청한 개XX’라고 했다가 사과했고,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리셉션장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꼬았다가 들통나기도 했습니다.  

서방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의 핫마이크 실수를 그리 무게 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뉴스를 좋아하는 황색 언론이 대서특필하기도 하고, 야당이 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며칠 못가 수그러들기 마련입니다. 말 실수를 한 당사자가 쿨하게 사과하면 대부분 그걸로 끝입니다.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야당이 총공세에 나서 심지어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건의안까지 추진하는 모습은 조금 과해 보입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영상 유출 책임자를 색출하자고 맞불을 놓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외교 참사라는 야당의 주장이나 대통령순방 영상 유출사건이라는 여권의 주장 모두 소모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쨌든 비속어를 쓰는 모습이 공개됐으니 앞으로 말조심하겠다고 유감을 표시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당도 어차피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답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교참사로 몰아붙이기 보다는 “대통령이 말 좀 조심하라"고 점잖게 꼬집고 마무리 하는 게 맞아 보입니다. 

따질 건 따져야지 무슨 소리냐고요? 글쎄요.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이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경제위기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틈만 나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영변 핵시설에서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들은 시급한 대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속어 논란 이전에 대통령과 여야가 따져야 할게 한 두 가지가 아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