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때론 '무모한 도전'에 나섰던 이유
홍자병법 No. 85

'관리의 삼성'을 만든 이병철의 리스크 관리법 3가지

19549월의 어느 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집무실로 미국의 모직기계 설비업체인 화이팅사의 영업 담당 임원이 찾아옵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국내 최초의 모직(양털로 만든 천) 생산 업체인 제일모직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생산설비 발주와 공장 설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요.
 
한국의 제일모직이란 회사가 대규모 생산설비를 구매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한 미국 대사관의 소개를 받아 이병철 회장을 찾아온 것이었죠.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요. 앞서 만남에서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화이팅사 설비 대신 유럽 업체들의 제품을 들여와 스스로 조립해 사용하려 한다는 거절의 말을 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온 것이죠.
 
대화가 이어지던 중 갑자기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띤 화이팅사의 임원이 두 팔을 퍼덕거리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흉내 냅니다. 다음처럼 말하면서요.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건설한 공장에서 3년 이내에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된다면 제가 하늘을 날아보겠습니다.”
 
외국에서 기계를 들여오더라도 기계의 조립과 설치, 공장 건설, 생산 공정은 제일모직이 스스로 담당할 계획이라는 이병철 회장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죠. 상대의 이 같은 무례한 행동에 이병철 회장은 조용히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제당공장을 지을 때에도 일본인들이 같은 말을 했지만 건설에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도 제조기술만 도입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우리 손으로 건설해서 당신들을 놀라게 만들어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화이팅사의 임원은 다시 한번 이병철 회장을 찾아옵니다. 모직 생산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임을 충분히 설명한 만큼 이 회장이 마음을 바꿨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자 이병철 회장이 책상 뒤로 돌아가 서랍에서 깨알 같은 메모가 빼곡한 서류 다발을 꺼내 들었는데요.
 
온도‧습도와 같은 기상조건과 전력‧노동력‧용수 등 자원의 조달 방안, 직원들에 대한 기술지도‧훈련 방안 등 공장 건설과 모직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48개 항목마다 각각의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을 정리한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를 본 화이팅사의 임원은 얼굴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병철 회장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완벽주의와 극도의 신중함.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인데요

이 말처럼 그는 어떤 사업이 됐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매우 철저한 사전 계획을 세운 뒤100%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몸을 움직이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돌다리도 두들겨본 뒤 다른 사람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 건너간다.’고 표현하는 말이 있을 정도죠. ‘관리의 삼성으로 표현되는 삼성의 조직문화에도 창업자의 이 같은 성향이 깊게 배어있고요.
 
하지만 그를 이처럼 모든 걸 사전에 계획한 뒤 100%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업에만 도전한 인물로 여기는 건 그의 반쪽만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고 할 지라도 이 세상에 ‘100%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방금 말씀드린 제일모직만 하더라도 처음엔 ‘400년의 전통을 가진 영국 모직과 경쟁한다는 발상부터가 어리석다’, ‘제일제당으로 운 좋게 성공하더니 세상만사를 너무 손쉽게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조롱과 함께 시작됐죠.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불안을 품은 채 착수하면 주저하여 전력투구를 못하게 된다. 배수진을 치고 백척간두에서 단호히 결행해도 예기치 못한 장애에 부딪히거늘, 하물며 출발부터 의심하고 망설이면 될 일로 안 되는 법이다.” 

그가 자신을 이미 만들어진 성공에만 도전하는 안정 추구의 완벽주의자로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답한 말인데요.
 
이 말을 보면 그가 그토록이나 사전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새로운 사업으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밀어붙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도전의 규모만큼 리스크도 커진다면, 그 리스크를 최대한 미리 줄여놓는 것이야말로 승리를 갈구하는 승부사가 갖춰야만 자세니까요.
 
이번 글에서는 승부사 이병철이 자신 앞에 놓였던 리스크를 최소화시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던 3가지 비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재를 얻는 것보다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인재제일은 나의 신조이며, 인사정책은 언제나 삼성의 경영정책 중에서 최우선의 위치를 차지한다.”
 
사원 교육을 중시하고, 용인자연농원 안에 1천 명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형 연수시설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는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 가지 덕목인데요. 이중에서도 인재제일의 철학은 그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을 거쳐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는 삼성그룹의 핵심 경영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인재를 얻어야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만들어낸 주요 배경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텐데요.
 
하지만 이렇게 인재를 확보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인재제일 철학의 정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인재를 제대로 키우는 것이야 말로 우수한 인재를 얻는 것보다 그가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일이기 때문이죠.

앞서 그가 제일모직 공장을 설립할 때 외국 엔지니어들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공장 건설부터 기계의 조립과 설치, 생산 공정 관리 등 대부분의 과정을 회사 직원들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그가 1년여 전 제일제당을 설립하며 처음으로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배웠던 교훈 덕분이었습니다. 625 전쟁 정전협정을 한 달가량 앞뒀던 19536월 그는 부산에서 제일제당 설립에 나섰는데요.
 
당시 한국에는 대형 생산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할 능력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장비는 일본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다나카 기계에서 제작한 기계를 수입해 들여왔죠.
 
그런데 주문한 기계 장비들이 모두 부산항에 들어왔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배일(排日‧일본을 배척함) 정책 탓에 일본인 기술자들의 입국이 불허됐던 건데요

돈을 들여 기계를 수입해놓고도 조립할 인력이 없어 손 놓고 있어야만 하는 처지가 됐죠.
 
이때 일본 기계회사를 비롯해 그의 부하 직원들 중 다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 엔지니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기계에 대한 지식도 기계를 조립해본 경험도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삼성이 무턱대고 설비 조립에 나섰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의견이었죠.
 
하지만 이병철은 이 같은 합리적인 의견을 따르는 대신 얼핏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섭니다. 삼성 직원들이 직접 기계를 조립하는 선택을 내린 건데요. ‘국내 기술진만으로도 공장을 완성할 수 있다는 김재명 공장장 등 소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일본 기술진의 파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의 기술로 제당공장의 건설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말로도 들렸으므로,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국인 기술진으로 꼭 해보이고 싶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자신과 용기가 솟아났다. 나는 하루도 건설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국제전화로 다나카 기계에 문의했다. 당시의 국제전화 사정은 아침에 신청하면 오후 혹은 다음날 아침에나 간신히 연결이 되었고, 감도도 아주 나빠서 싸움이라도 하듯 고함을 지르기 일쑤였다.”
 
전문적인 기술용어가 많아 더욱 성가셨다. 서신 문의는 왕복에 2주일이나 걸렸으므로, 작업을 중단한 채 기다리는 일도 허다했다.”
 
그리고 이런 악전고투 끝에 이병철과 직원들은 6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하는 데 성공합니다. 애초에 예정됐던 공기보다 두 달가량 일찍 공사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공장이 완공된 후에도 넘어야 할 장애물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는데요. 시운전 때는 설탕의 원료인 원당을 성분별로 분리하는 원심분리기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3일 동안 문제 해결에 매달린 끝에 한 용접공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런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은 뒤에야 마침내 제당 기계에서 순백의 설탕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한 첫 번째 설탕이었습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다른 곳에 숨어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병철은 평생에 걸쳐 실천하게 되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얻게 되는데요. 공장 건설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자체적인 기술력과 경험, 노하우를 보유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외국에서 좋은 장비를 들여온다고 해도 결코 핵심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공장은 불타 없어질 수 있어도 직원들의 머릿속에 스며든 지식과 경험, 그들의 손 끝에서 발현되는 노하우만큼은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는 사실도요.
 
그리고 직원들의 기술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장 건설 단계부터 최대한 스스로의 힘으로 일을 추진해나감으로써 제품 생산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직원들의 교육‧훈련 과정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1년 뒤 대구 침산동 7만 평 부지에 당시로선 국내 최대의 규모의 공장인 제일모직 공장을 지을 때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라는 모토를 내걸고 공장 건설 과정의 대부분을 삼성그룹 직원들의 힘으로 스스로 담당했던 것도 이 같은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당공장 건설보다 더 크고, 복잡한 건설 사업이었던 데다 생산 설비들도 일본보다 훨씬 더 먼 독일에서 들여왔어야 했는데요. 당초 독일 설비업체에서는 60명의 독일 기술진을 1년간 파견해야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병철은 제사, 염색, 가공, 공조 분야마다 각각 한 명씩 네 명의 기술자만 파견해주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공사와 기계 조립 작업을 진행해나갔습니다.
 
공장이 완공된 이후 제품이 사양대로 나오지 않아도 독일 설비업체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시작된 공사였죠.
 
이 경우에도 처음엔 생산된 제품의 질감이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자체적인 점검과 연구개발을 통해 얼마 뒤부턴 기준에 맞는 우수한 품질의 옷감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살펴본 제일제당, 제일모직 건설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그의 첫 번째 교훈은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회사에 들어온 인재들을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다." 

"경영자의 역할은 사업의 과정 자체가 직원들의 핵심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트레이닝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입니다.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치밀한 전략가로 불리는 그가 해외 기술진의 조력을 최소화한 채 제대로 된 경험과 기술력도 갖추지 못했던 회사 임직원들의 힘만으로 공장 건설과 설비 조립에 나서는 모험을 단행했던 것은 

핵심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 다른 두 가지 비결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본문 읽기 버튼이나 사진을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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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입니다!

안녕하세요. 홍선표입니다. 어느덧 벌써 울긋불긋한 낙엽의 터널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 초가을에 접어들었네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지난주에는 제가 뉴스레터를 보내드리지 못했네요. ‘일이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뉴스레터는 꼭 한 번씩 보내자고 생각했는데 지난주에는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에도 비슷한 일정들이 이어졌지만 이번 주도 빼먹으면 안 될 거 같아 이렇게 금요일에 찾아뵙네요.
 
이런저런 업체들에 납품할 콘텐츠도 제작하고, 스타트업을 위한 PR/콘텐츠 마케팅 업무도 해나가고

본격적인 교육업 진출을 위한 준비 단계로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며 국내 금융권,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금융 문해력을 주제로 줌 강의도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나가는 와중에 조금씩 일들의 성과가 나타날 때면 기분도 참 좋네요.
 
클라이언트 분들이 좋은 콘텐츠를 기고해줘서 사이트 유입 수가 늘었다고 말씀해주시거나, PR 업무를 돕고 있는 스타트업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거나 할 때면 바쁘게 지낸 만큼 보람이 찾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저녁 오랜만에 친구, 후배와 함께 회 한 접시를 하면서 소맥잔을 시원하게 들이키기로 약속했는데, 친구, 후배와 만나서 재밌게 놀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제가 이 글을 쓴 건 어제인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기분이 신나는 거 같습니다. :)
 
독자님들께서도 모두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힘찬 하루 보내시고, 이번 주말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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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출간 이후 교보문고 북모닝 CEO 선정 도서 등  벌써 다섯 차례에 걸쳐 CEO 추천 도서로 선정된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를 만나보세요. 우리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5가지 놀라운 효과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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