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최민서 인턴기자가 소설과 전시를 소개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작품들이라 의미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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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한 명> & 전시 <눈물의 행동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인 김숨의 장편소설 <한 명>은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026년 5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다섯 명뿐입니다. 소설이 그려 낸 시간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습니다.
10년 전인 2016년에 발표된 소설 <한 명>의 화자 ‘그녀’는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창피스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 위안부 신고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가 어쩌다가 만주 위안소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또 어떻게 살아남아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TV를 통해 위안부 생존자가 한 명 남았음을 알게 됩니다.
소설은 화자에게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고 ‘그녀’라고 칭합니다. “군인들이 지어준 이름들까지 합하면 그녀의 이름은 열 개가 넘었다. 그녀의 몸에 다녀갈 때 군인들은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 부르고는 했다.”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군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곤 했습니다. 여자친구 이름을 붙이거나 어린 소녀에게 ‘작은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찢기고 훼손된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을 다시 호명하기 위해 소설은 이름 대신 대명사 ‘그녀’를 사용합니다. 동시에 이는 특정한 한 명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름을 빼앗기고 지워져야 했던 수많은 존재를 함께 부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고, ‘처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흰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 그녀의 삶은 고통을 겪은 모두의 삶과 겹쳐지게 됩니다.
처절하고 참혹한 묘사 옆에는 각주가 붙었습니다. 316개나 되는 각주에는 ‘김복동’, ‘강무자’, ‘박두리’, ‘황선순’ 등의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 삶 위에 겹쳐 쓰인 것임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고 맨 뒤 페이지로 넘겨 이들의 이름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기록과 증언을 이어붙인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각주라는 장치로 이들이 겪은 고통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는 말과 “어떤 말로도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 과거에만 멈춰있지 않는 기억은 현재로 이어집니다. 전시 <눈물의 행동들>은 <한 명>을 비롯한 김숨의 위안부 증언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증언은 과거의 기록으로 고정되지 않고, 지금의 몸을 통과하며 다시 읽히고, 말해지고, 덧쓰인다.”는 전시 서문처럼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은 녹음, 드로잉, 연극, 비디오, 바느질 작업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내복에 혈자리를 새겨 넣은 <진짜 날 사랑했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떠날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한 할머니에게 답장하듯 주희 작가는 내의를 오래 어루만지며 억눌린 분노와 억울함을 풀어주는 혈자리, 마음을 안정시키는 혈자리 등을 실로 새겼습니다. 손끝으로 그 혈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몸의 감각으로 옮겨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은 전시장 내부의 작업물에 직접 손을 대고 만지고, 나무 상자 안에 누워 보석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증언과 문헌, 사진 등의 기록을 엮어 직접 각자의 진(Zine. Magazine에서 파생된 말로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담아내는 독립 출판물)을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직접 진을 만들고, 읽고, 붙이고, 덧쓰며 전시의 일부가 됩니다.
고요한 전시장에는 끊임없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눈물의 행동들>이라는 전시명 때문인지 이러한 소리가 눈물처럼 느껴졌는데요. 보통 떨어지는 눈물을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곳에서는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소리가 귓가에 남았던 것처럼 슬픔을 듣는 경험은 낯설고도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소설 <한 명>과 전시 <눈물의 행동들>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담아내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멈춰 있던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작동시키며 현재와 연결하게 만듭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자 지금도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폭력이기에, 이 고통에 더욱 더 공감하게 됩니다. <눈물의 행동들> 전시는 5월 23일까지 낙원악기상가 d/p에서 열립니다. 전시를 통해 기억을 공유하고 기록을 보존하며 함께 연루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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