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33% 득표율로 1위에 오르자 프랑스 안팎에서는 충격과 분열 등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2차 투표(7일·현지시간)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프랑스 총선 결과가 향후 EU 정책에 미칠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랑스 내부에서는 이번 투표로 드러난 극우 지지층 규모에 놀라는 분위기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 근교 몽테슈에 사는 모니크 베르뉘수(73)는 프랑스 매체 르 몽드에 "인구 6000명의 우리 마을에서는 RN 후보가 45%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면서 "나와 매우 가까운 곳에 많은 RN 지지자가 있다는 의미인데, 내 지인 중에는 아무도 RN에 투표했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프랑스 북부 아르덴에 사는 41세 니콜라 드보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지만, 앞으로 고생은 내가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올리비에 포르 프랑스 사회당 대표는 "인권의 나라, 계몽의 나라 프랑스가 갑자기 극우 국가가 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면서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2차 투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마크롱 대통령은 후속 조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1차 투표가 이뤄진 지난달 30일 밤 서면 성명을 통해 극우에 맞설 민주 연합 구축을 촉구하고 내각 회의를 소집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르 피가로는 마크롱 진영에서 RN에 대한 태도를 놓고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한 채 분열을 보인다고 했다.

대책의 핵심은 중도와 좌파 간 연대인 '공화국 전선' 활성화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과 좌파 연합체 신민중전선(NFP)은 반(反)극우 연대 결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NFP에서도 극좌로 분류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등 테러 행위를 옹호하자 범여권에서 '연대 불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NFP와 범여권은 결선투표에서 2·3위 후보 간 표 분산을 막기 위해 3위 후보를 사퇴시키고 표를 몰아주겠다는 계획인데, 공동전선 구축이 무산되면 RN 후보가 이득을 볼 수 있다.

극우 정당의 총선 완승은 프랑스 정치뿐 아니라 EU 중심의 유럽 질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반이민과 반EU를 앞세운 RN이 제1당으로서 프랑스 국정운영에 참여하면 유럽 내 균열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RN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과 이민, 유럽 통합 문제에서 EU 정책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총선 이전부터 유럽 우경화의 흐름이 뚜렷했습니다. 지난달 초 치러진 유럽연합(EU)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약진했어요.

유럽 극우는 난민·이민자 문제, 고물가, 경제난이 지속되는 틈에서 자라났습니다. 2010년대 이후 유럽 극우의 출현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 유럽은 분명히 대비됐어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2015년 시리아 난민을 전격 수용하는 등 '인권 명문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후로 유럽은 끊임 없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새로 정착한 국가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고유의 문화·관습을 유지하려는 이민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질적인 이민자 사회를 향한 거부감이나 차별·혐오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과제가 됐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목소리를 키우는 극우 정치세력도 신경 써야 할 숙제였죠.

세월이 흘렀지만 정돈되지 않은 에너지는 점점 무질서해졌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이후 난민 문제가 심화됐고, 고물가·에너지난 장기화로 경제 여건도 개선되지 않았어요. 극우가 선전하기에 더욱 좋은 여건이 된 겁니다.

그런데 유럽의 우경화를 이런 여건 변화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유진 논설위원은 "결국 오랫동안 누적돼온 주류 정당의 실패로 볼 대목이 많다"고 지적해요. 극우 세력 성장의 이면에 어떤 사회적 요구가 있는 것인지 읽어내고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청년층에서 극우 지지가 높았다는 것이 단적인 예시입니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전 세계 주요국 청년세대를 이렇게 수식하는데요. 기존 정치가 코로나19 이후 줄곧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는 분석입니다. 프랑스의 RN 등 극우 정당은 이민자 유입 방지와 세금 인하 등 공약을 통해 이 지점을 파고들었고요.

집권 세력은 극우 정당 약진을 정치공학적으로만 다룬 측면이 있습니다. 극우 정책의 일부를 차용하거나 그들의 선명한 언어를 모방했다는 것이죠.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오히려 극우 진영에서 정제된 언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은 RN의 창설자이자 나치 지지자로 불렸던 장마리 르펜을 당에서 제명하는 등 거리를 두고, 반유대주의·동성애 혐오 발언을 자제합니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침착하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는 전략을 펼친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 결과 '샤이 르펜'들이 대거 투표에 나선 겁니다.

아직 2차 투표가 남긴 했지만 프랑스에서 RN이 입지를 공고히 다진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프랑스가 '극우의 나라'가 됐다는 선언이 앞으로 세계에 미칠 영향은 암울하죠. 프랑스 여성 단체들은 RN이 집권할 경우 임신중지권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합니다. 독일과 동유럽도 우경화의 흐름 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