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전공자들을 위한 주원 에디터의 항변💪

에디터 에세이

외국어 공부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냐?

글 / 사진 주원 테일러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방학을 이용해 해외 외국어 캠프를 다녀온 아이들이 반에 꼭 한 두 명씩 있었다. 주로 미국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서구 영어권 국가였다. 그들이 개학 첫날 우렁찬 목소리로 해외 무용담을 풀면서 가격을 달러로 언급하거나 미국의 지리를 동서남북 대신 주(State) 이름으로 설명하노라면 나는 그들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여기 미국 아니야, 쉽게 말해."


나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해외살이는 팔자 바깥에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아니, 해외에 나간다는 상상이나 동경조차 가져보지 않았던 아주 평범한 한국 학생이었다. 수능을 마친 뒤 별안간 한국외국어대학교로, 그것도 스페인어과로의 진학을 정한 열아홉 살의 주원은 그래서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미스터리였다.


"축하해. 희귀 언어를 전공으로 정하다니, 경쟁력이 있겠다."

나의 결정을 들은 한 친구가 싸이월드 방명록에 축하인사를 남겼다. 자신이 원하던 수능성적을 얻어 고등학교 시절 내내 원하던 전공,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된 라이벌 친구였다. 뭔 소리지? 이것이 날 멕이는건가? 이 똘똘한 아이는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쓰이는 이 언어가 소수민족의 언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무지와 애매한 축하인사를 딱히 나무랄 것도 없었다. 스페인을 아프리카 대륙 끝자락에 붙은 어느 작은 나라의 이름으로 착각했을지 모른다. 오늘날에야 스페인 성지순례며, 남미 탐방이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힐링 예능프로그램 덕분에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지만 당시에는 스페인어도, 스페인도, 남미도 대중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나의 대학 진학 소식을 들은 많은 친지들도 너무 무지해서 공격적으로 들리기까지 한 질문을 축하인사보다 먼저 건넸다. 


"제2외국어를 전공으로 하면... 설마 너 2년제 간 거냐?"

 "그거 스페인어해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참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의 기대대로 SKY 중 하나에 들어갔더라도 여전히 나의 전공에 대하여 딴지를 걸었을까? 왜 그 누구도 반갑고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나의 선택을 축하해주지 않는 걸까? 이 구닥다리 같은 반응들이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우던 라테시절의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불과 15년 전 일이었다. 불과 15년 전에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이 어디 있는지 몰랐던 것처럼 세계의 많은 사람들도 성공적 월드컵 개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을 처음 만나면 다짜고짜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나를 우직하게 믿어주었던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어른들도 나에게 나중에 무엇을 더 공부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봐준 적 없었다. 초중고시절 나름 똑똑하기 알려진 아이에게는 오로지 SKY로 함축되는 아주 특정한 기대치가 주어질 뿐이었다. 스페인어를, 그 언어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전공하기로 한 나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세계 위 한국의 정체성도, 한국에서 스페인어의 입지도, 모두 물음표 투성이었던 어느 미지의 세계에 나를 편입시킴으로써 가슴조이는 비교경쟁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Oaxaca, Mexico. Photo by Juwon 2011

Hola라는 인사말 외에는 스페인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이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백지처럼 기초지식도 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공부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특히 지난 3년 수능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하게 나를 괴롭혔던 그 어떤 지식도 과목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른다고 느리게 배운다고 누구도 구박을 받지 않았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과내 댄스 동아리에 들어 플라멩코를 배웠고, 라틴밴드 동아리도 기웃거리며 라밤바를 따라 불렀다. 스페인어로 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7살 때 처음 영어를 배울 때처럼 나만의 외국어 이름도 지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스페인어과 생활을 가장 특별하게 했던 것은, 돌이켜보건대, 학과의 친구들이었다.


학과 친구들은 세 종류의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첫 번째 그룹은 스페인이나 중남미 출신의 교포들이었다. 그들은 타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한국을 경험하고 싶다거나,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기 위해 대학을 기회로 잡았다. 한국말을 곧잘 했지만, 첫눈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걸음걸이나, 허물없이 인사를 건네오는 말투, 심지어 앉아있는 태도에서부터 '외국인'스러움이 느껴졌다. 서울의 한 동네에서 쭉 자라 대한민국의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철저하게 순응하고 성장한 나의 눈에 서울을 관광 중인 그 친구들은 마치 외계인과 같았다.


두 번째 그룹은 한국 방방 곳곳에 숨어 지냈던 비범한 청년들이었다. 수능성적을 받고 겸허히 진로를 재조정한 나와 달리 그들에게는 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가 이상이자 특정한 목표였고, 그 목표를 이루었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자부심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스페인어가 알려지기 이전에 스페인어를 뜻으로 둔 이들이 '평범'할리 없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들임에도 중남미에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거나, 스페인에서 문화통역가가 되고 싶다는 등의 아주 구체적인 꿈과 로드맵이 있었다. 그냥 스페인어의 노래하는 듯한 발음이 좋아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다는 낭만적인 아이도 있었다. 인정을 받기 위해 혹은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성급하게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보는 이들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 우리 과에 이런 애가 있었어?' 하는 식으로 조금씩 본인이 원하는 때에 특별함을 세상에 드러낼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나를 비롯,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과에 오게 된 전형적 한국학생들이었다. 인도를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이런저런 조건에 맞추어 항로를 조정하다가 얼떨결에 스페인어과에 도달한 것이었다. 신대륙 발견은 우연에 가까웠을지언정, 우리는 아주 빠르게 '스페인어과'라는 신세계에 동화되었다. 교포친구들이 한국의 규칙과 관습 앞에 "그거 왜 그래야 하는데?" 하고 순수하고 느린 말투로 나에게 질문을 해올 때마다, 나 역시 당연함 뒤에 숨어 있던 한국의 문화와 오래된 믿음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서서 비판적으로 고민해 보기 시작했고, 두 번째 그룹의 비범한 청년들이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미래를 캠퍼스 잔디밭 위에 그려낼 때마다 나도 가슴 설레하며 나만의 특별한 미래를 그려볼 용기를 내었다.


외대에서는 ‘언어 따라간다’라는 말이 있었다. 배우는 언어 전공에 따라 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스페인어과의 사람들은 남미 드라마처럼 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드라마틱한 성격으로 알려졌었다. 학과 연합 MT를 가면 스페인어과가 제일 시끄럽고 음주문화도 화끈했다. 나 또한 어느덧 스페인어를 통해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낯선 사람들은 내가 스페인어과를 전공한다고 자기소개를 하면 "아 어쩐지. 이국적이세요..."라고 말했다—스페인 한번 못 가본 한국 토박이한테 말이다!

  
photo by Juwon

꿈에 취해 살았던 돈키호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기를 시도했던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꿈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프리다 칼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꿈과 정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라틴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이들에게는 숨 막히게 몽환적이고 정열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겉으로는 매우 달라 보였던 우리 세 그룹을 하나의 동기로, 스페인어라는 '언어를 따라간' 다채로운 청년들로 만들어주었다.


~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찾은 대륙이 신대륙이 아니라 향신료의 고향 인도라고 믿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본인이 만든 기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현실을 왜곡해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이룬 성취가 암시하는 드넓은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평평한 바다 끝 절벽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라 배 위에서 보낸 동료들뿐 아니라 개인 귀중품까지 팔아가며 탐험을 후원해 준 스페인 여왕이 콜럼버스에게 거는 기대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가 되어 그의 시야를 흐렸던 것은 아닐까.


대학을 졸업해 제대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기대는 스페인어라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우리의 마음을 내내 짓눌렀다. "외국어 공부해서 뭐 먹고사냐"라는 그 냉소적인 질문은 단지 어느 고지식한 친척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많은 어른들의 질문, 당시 한국 사회의 질문, 그리고 그것을 내재화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외대 캠퍼스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겪다가 자아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시작했고, 모든 외국어 전공 학생들에게 상경계열을 부전공도 아닌 이중전공으로 (본전공과 똑같은 양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 택할 것을 강권했다. 인문학이 냉소적인 사회의 휴식처이자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는 새로운 열쇠로 재조명받기 직전의 시대였다.


마침내 취업 시즌이 가까워 오고 그 질문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신대륙이었던 스페인어가 인생을 확장시키는 열린 땅이 아니라, 취업이라는 목적지로 넘어가기에 꽤 불편한 울퉁불퉁 황무지 섬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외국어 특기전형으로 대기업의 해외무역부서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목표였고, 전공과 전혀 무관한 전형으로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은 더 큰 축하를 받았다. 나 역시 졸업을 하자마자 스페인어를 금방 내려놓았다. "그래 역시 언어로는 먹고살 수 없어. 내가 뭐 언어에 대단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고 자조하면서 말이다.


~


그러나 실은, 나는 한 번도 '스페인어'의 신대륙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취업의 문턱을 넘고, 공교롭게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에 이민 와 정착하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언어가 사고관을 형성한다'는 말은 굳이 죽은 학자들의 가설 (사피어-워프 가설)을 빌려오지 않아도 스페인어를 만난 이후의 나의 삶이 입증하고 있었다. 마치 가속도가 붙듯, 스페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3대의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닿을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외계인 같던 교포친구들과 조용히 담대한 꿈을 꾸던 동기들과 더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모험적인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겁 많고 부끄럼 많던 해외여행 무경험자는 전공 도중 혈혈단신으로 멕시코 시티 한가운데로 유학을 떠났고, 모험에 맛이 들려버려서는 유학을 끝내자마자 휴학신청을 하고선 관광비자만 들고 뉴욕에 가서 살았다. 마음잡고 두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도 했다. 그것은 단지 어느 외국 땅을 밟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호기심이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아예 미국에 정착을 해버렸다. 돈키호테처럼 꿈꿨지만 달리처럼 꿈을 돈으로 만들 궁리도 열심히 했다.


나는 이와 같은 내적 외적 변화를 동기들도 겪었으리라 믿는다. 스페인어는 나를, 그리고 동기들을 "글로벌 몽상가"로 길러주었다. 유난히도 대학 동기들을 만날 때면 꿈 얘기를 많이 한다. 현실의 거센 바람 앞에 말라버린 꿈을 함께 애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운 말랑말랑한 꿈에 대한 설렘을 나눈다. 서로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데도 그렇게 금방 시간과 공간의 갭을 메운다. 나는 그들의 순수함을 사랑하고, 그들을 통해 나 또한 내면의 순수함을 재발견한다.


이제 일상에서도 일에서도 스페인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스페인어가 가르쳐준 모험심과 꿈꾸는 용기는 내 삶의 태도와 의사결정 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오히려 영어보다도 더 드넓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 넓은 관점 위에서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배우며 겸손해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다양성을 관통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와 행동양식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과 깨달음이 오늘날 사람들의 욕구와 심리반응을 연구하는 사용자 경험 리서처라는 직업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


스페인어든, 영어든, 독일어든 그 어떤 외국어가 되었든 간에, 언어는 당신의 마음에 닿는 순간  새로운 길을 선사한다. 언어는 특정 사회와 문화가 함축된 알고리즘이다.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언어의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눈과 귀, 입으로 체화해 내는 그 일련의 활동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운명적인 만남과 기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언어는 처음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이미 당신의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모든 이들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20대 초반에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시기에 놓인 친구들은 더 천천히, 뜨거운 가슴으로 언어를 배웠으면 좋겠다. 그 언어를 멋지게 구사하는 원어민 배우나 예술가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져보고,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여행지를 꿈꿔보고, 그 여행지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정말 상상하는 대로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들을 그에게 하고 싶을지 적어보자.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단어와 문법들을 찾아보자.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배운 첫 문장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북극성이 되어 당신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에디터의 취향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언어와 관련된 투룸매거진 기사를 소개합니다.
<이 망할 놈의 영어>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 독자가 벌인 이 망할 놈의 영어와의 사투 이야기.
영어를 주야장천 쓰면서 살아온 지 어언 22년이 되어서야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가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에게 닿는 법: 영화 컨택트>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영화 <컨택트>를 보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소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지 애인을 만나야 외국어가 빨리 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글쓴이가 프랑스에서 쌓은 여러 관계들 안에서 '우리만의 언어'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닿아가는 경험을 나눕니다.
투룸 팟캐스트!
투룸라디오 [이상한 나라의 이방인]

해외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일상 이모저모를 담을 예정인 투룸라디오 <이상한 나라의 이방인> 시즌1에서는 투룸 DJ 전진과 재영이 유럽 지역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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