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슬아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의 글로 연재 마지막 주를 시작하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슬아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의 글로 연재 마지막 주를 시작하려 합니다.

오늘 친구 코너에서 소개할 작가는 담입니다. 담은 저의 동료이자 전(前) 동거인이자 몸과 마음이 남루한 날에도 전화 걸 수 있는 벗입니다. 친구가 된 지 13년쯤 지났는데 긴 편지를 주고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글이 업인 사람들인데도 그랬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글이 업인 사람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군요. 오늘 낮에는 담에게서 처음으로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담이 제게 써준 글을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내일은 제가 담에게 쓴 답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담에게, 그리고 구독자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할까 즐겁게 궁리 중입니다. 이어지는 글들도 잘 써볼 텐데요. 오늘 아침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확진자 수 21만 명 시대에 저도 감염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번 주를 끙끙 앓으며 시작하면서 이 연재를 걱정했습니다. 연재 중에 코로나 확진이 된 것은 천재지변과 인재지변 모두에 해당될 것입니다. 연재 안내 메일에서 말씀 드렸듯 몸이 많이 아플 경우 쉬었다가 다시 연재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담에게 쓰는 서간문 한 편과 가녀장 특집 원고 세 편. 이렇게 4회의 글 발송이 남아있습니다. 코로나로부터 제 몸이 회복되는 선에서 천천히 써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원래는 3월 11일 금요일에 연재가 끝날 예정이었지만 천천히 쓴다면 아마 3월 셋째 주 중에 연재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이어질 네 편을 건강한 상태에서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그러이 기다려주실 독자님들께 미리 감사 인사 전합니다. 독자님들 부디 아픈 곳 없이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원고는 시각 장애인 독자를 위한 낭독과 함께 합니다. 담이 직접 자신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녹음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담의 음성이 재생됩니다. 즐겁게 읽거나 들어주시기를 바라며 발송합니다. 저는 몸이 나아지면 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슬아 드림 





슬아에게



글: 담



슬아야, 기억나?


고단했던 몇 주 전 아침,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어. 통화를 끝내면서 우린 말했어.


스리야, 고마워. 나 알아서 할게? 너두 알아서 해?


웅, 담이야. 우리 알아서 하자? 사랑해?


그리곤 서로 알아서 하루를 살았지. 


얼마 전에는 아현동 근처를 지나면서 슬아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다르지 않던 때를 생각했어. 드물게 아현을 지나야 할 때면 나는 눈을 질끈 감거나 딴청을 피워. 아직 거기 살고 있을까 봐 무서운가 봐. 그 여자애들이. 


내가 용기 내 눈을 뜨고 북아현으로 가보잖아? 한참 언덕을 오르고 다시 계단을 한 층 내려가서 그 집의 문을 열면 아마도 네가 나와. 네 방에서 흘러나온 미러볼 불빛이 신발장 하나 정도 크기밖에 안되는 거실 내지 현관 바닥을 지그시 쓸며 돌아가고 있어. 마중 나온 너는 따뜻한 인절미처럼 야들해 보여.


슬아, 좋은 시간 보낸 것 같네?


웅…


나는 며칠 후 너의 딜도를 빌려서 너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


어느 날 밤 우리는 변기에 죽은 채로 떠오른 쥐를 봐. 죽은 건 쥐인데 우리는 그 죽음이 우리의 비극인 양 겁에 질려. 그래도 아침이 오면 우리는 엊저녁에 만든 강된장, 청포묵 무침, 티라미수가 든 락앤락을 각자의 가방에 넣고 하나는 신림으로 하나는 온수로 가지. 


어느 날 캔 옥수수를 갈아 넣은 달콤짭짤한 크림파스타를 실컷 해 먹고 나는 설거지를 안 해. 너는 참고 참다가 울면서 내가 설거지를 안 해서 속상하다고, 근데 그것보다 더 속상한 건 저 크림파스타를 너는 한 입도 못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고 문자를 보내. 


어느 날 너는 네 방을 빨갛게, 나는 내 방을 파랗게 칠해. 너의 빨간 방에서 우리는 빨가벗고 사진을 찍지. 너는 지체없이 그걸 현상하러 가. 내게 선물하려고. 너는 머지않아 첫 원고료를 받게 되고, 그때도 아름다운 편지와 선물을 줘. 둘뿐인 어떤 날에 우리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임신테스트기에 오줌을 누고 두 오줌 줄기가 합쳐지는 것을 봐. 이만 눈물을 닦고 컵 강정을 먹으러 가. 오늘은 강정집 사장님이 꼬마 해쉬브라운을 세 개 얹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하지. 빨갛고 파란 방에서 나란히, 악착같이 그날그날의 오르가즘을 챙기면서 우리는 살아. 앞으로는 희고 곧은 벽을 좋아하게 될 줄 모르고. 


너의 첫 번째 단행본에 추천사를 쓰면서 생각했어.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고 그라고 적으면서. 우리에서 이제 그만 걸어 나가기를 우리가 바랐음에도, 나는 우리가 좀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하지만 짜샤, 이 이후에도 너랑 나는 잘 지냈지. 그런 감상에 빠져있기엔 생은 길고 우리는 종종 전화를 하니까. 다음 통화에서는 내가 같이 살고 싶은 개를 또 소개하도록 하지. 개한테는 우리라고 불러도 되는지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너의 고양이 남희와 숙희는 너하고 우리가 된 것을 어떻게 느끼는 것처럼 보여?


*


지난주에는 잘 모르는 여자의 장례식에 다녀왔어. 잘 모르는 여자의 친구가 걱정돼서. 진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서울역에 가는데 그러느라 취소해야 했던 친구와의 약속이 마음에 계속 걸렸어. 친구가 더이상은 힘낼 수 없는 하루를 보낸 뒤라는 걸 알고 있었어. 진주에 다녀오는 동안 내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진주에 가지 않는다면 잘 모르는 여자의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시집 『울프 노트』의 서문을 정한아 시인은 이렇게 시작하지.


언니, 배고파?

……아니.

졸려?

……아니.

그럼 내가 만화책 빌려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자살하지 말고 있어!


자살하지 말고 있어! 요즘에는 앞을 향해서도 뒤를 향해서도 이렇게 소리치며 달리는 기분이 들어. 


그냥 좀 살면 안 되나? 틈만 나면 우리라는 대오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이기적인 애들이 미워서 잠이 안 와. 뜬눈으로 생각하지. 이 개인주의자들의 아찔한 유머 감각을, 서슬 퍼런 지성을, 가공할 창조성을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우리 같이 갑시다, 라고 말하면 그 우리에 나도 끼워주는 건지 잊지않고 물어봐야 했던 사람들의 무기를. 이런 사람들은 쌍욕을 들으면 어머, 그게 나예요, 하는 방식으로 싸우라고 내게 알려주었어. 부정성을 기반으로 자아를 구축하며 살아남은 이들에게 의리를 기대하는 것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라니, 무슨 말씀을. 


그래도 딱 한 번, 이 오합지졸들과 우리가 되려고 해본 적이 있었어.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때였지. 광화문은 박근혜와 최순실을 욕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비천한 존재의 존엄이든 약탈해서 써도 좋다는 지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거침없는 혐오 표현으로 넘쳤어. ‘쓰레기 잡년’, ‘닭년’, ‘최초의 LGBT 대통령’, ‘병신년의 국가 수치’


우리는 스티커가 가득 든 박스를 가지고 광화문으로 나갔어. 우리가 만든 스티커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어. ‘나라 바꾸는 계집’, ‘나라 바꾸는 호모’, ‘나라 바꾸는 가난뱅이’, ‘나라 바꾸는 장애인’, … 그 집회엔 나의 엄마 계향도 함께였어. 듀이, 빈, 원, 결, 담, 그리고 계향. 드랙을 한 우리와 선크림만 바른 계향은 11월의 추위 속에서 함께 행진했어. 아마도 확실히 여자인 계향은 남자 비슷한 애, 여자 비슷한 애들이 스티커를 다 배포하고 돌아올 때마다 귤이나 김밥을 입에 쏙쏙 넣어주었어.

집회를 마치고 우리 손에 남은 스티커는 몇 장 되지 않았고, 나는 가슴이 벅차서 자꾸 웃었어. 술이 달아서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서 뒤풀이를 했지. 새벽이 되고, 거하게 취한 듀이가 고개를 푹 꺾으며 이렇게 말했어.


우리가 이렇게 해봤자, 안 돼.


듀이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어.


너희가 이렇게 해봤자, 안 돼.


결이와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어. 쟤 저럴 때 꼴도 보기 싫지, 응. 


시간은 흘러 17년 4월 25일, 촛불 정국이 만든 19대 대선후보 토론이 열리던 날이지.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이렇게 물은 날이기도 해.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지.


반대하지요.


그 날 밤에 나는 계향에게 전화를 걸었어. 어떤 호모와도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어. 남자면 남자고 여자면 여자지, 그 중간 어드메에 있는 애들의 소식은 모르고 싶었어. 동성애며 반대며, 그런 건 자기 이야기는 아니라서 절망하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어.


엄마 내가. 그날 듀이한테 뭐라고 했거든. 듀이가 아무것도 안 바뀐대서. 막 뭐라 했거든…잘난 척하지 말라고 했거든…


박근혜의 나라에서도 문재인의 나라에서도 우리는 알아서 살았어. 듀이는 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약속이나 한 듯 비건이 되었지. 듀이는 어느새 요리에 재미를 붙이더니 이제는 거의 매 끼니마다 그 귀찮은 국과 나물을 해서 밥을 먹고, 동물권과 생태학을 공부해. 고-오얀 년. 아무것도 안 바뀐댔으면서. 


*


슬아야, 연애 얘기나 할까?


너와 나의 오랜 친구인 송은 말이다. 너무 많은 정치인의 이름을 아는 것 같지 않니? 아무리 정치부 기자래도 말이야. 수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군집을 한 인물이 대표하는 세계, 욕망이 의제로 정련되는 세계, 사람이 장기 말처럼 움직이는 세계에 송이 중독될까 봐 나는 송에게 틈틈이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게 해.


그럴 때 송은 새삼 자신이 처음에 왜 기자가 되기로 했었는지 기억났다는 눈치야. 사실 나는 한 번 이겨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정의당의 행보든, 차별금지법이나 N번방방지법, 생활동반자법에 얽힌 투쟁의 역사든, 때로는 너의 근황마저도 송이 더 잘 안다는 게 부아가 나서. 뉴스가 될 수 있는 것에 관해서라면 송은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어. 어떤 달에 송은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깨어있는 시간은 온통 윤석열을 생각하는 데 써. 그게 송의 직업이니까. 반면 송은 내 이름을 넣은 말은 몇 개 할 줄 몰라. 담이 밥…? 담이 잠…? 그 정도에 나는 만족하며 산단다. 이건 송의 직업이 아니니까.


양철 나무꾼 중에는 가장 따뜻할 이 사람이 나의 무엇이라는 것이 이번 주의 낭만이었다. 안철수와 윤석열의 단일화 소식을 듣고 송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이런 카톡이 왔어.


나는 단일화 효과는 없다고 생각한댜ㅎㅎ


로맨틱하지? -다를 -댜로 바꾸는 말투는 꼭 나한테만 쓰거든. 너무 좋아서 이 메시지에 하트도 찍어줬어.


어제는 송한테 화를 냈어. 우리는 3번이지 뭐, 평소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대화를 하던 중이었어. 송은 밝은 표정으로 길게 보아야 한다고, 3번에 모인 표는 앞으로의 정치 개혁에 중요할 거라고 말했고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 나. 우느라. 놀란 송에게 나는 쏘아붙였어. 얼마나 길게 봐? 우리가 심을 찍으면 안 죽어? 심을 찍어도 죽긴 죽잖아?


송은 침착하게 말했어. 양당제 정치에서 다당제 연합 정치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표는 계산되며 해석된다는 원칙을. 틀린 말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송이 미워서 뛰쳐나가고 싶었어. 언제부터 대선이 이렇게 중요했지? 왜 이번에야말로 다 죽을 것처럼 비장하지? 언제는 안 죽었어? 다 살 수도 있기는 해? 횡설수설하는 나를 보고 송은 이게 다 정치가 후져서 그런 거라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정치로 바꾸는 일이 필요하대. 나는 내 장례식에 와서도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빨리 제정되어야 한다고 곡을 할 거냐면서 엉엉 울었어. 송은 나를 안아주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어. 선거 이전에도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알지 않느냐고.


내 표는 이변 없이 3번에 갈 거야. 이 소신이 송의 것과 같이 선구적인 희망과 정의를 향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면 참 좋으련만. 나는 이것이 일종의 냉담함에서 자생한 마음이라는 걸 알아. 의회 정치에 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심으로 상징되기를 선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정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는 이곳이 우리의 나라였냐는 패배주의적인 농담을 달고 살 거야. 이것이 결코 냉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삶의 방식임을 알고서도 말이야. 어떤 삶도 1번, 2번, 3번 같은 번호로 수렴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 하은빈, 한유리, 이슬아, 김도연, 장푸른, 황지은, 양다솔, 이다울, 김현아, 김민아, 안단, 안영빈, 이계향, 나온유, 염경석, 이혜인, 현승의, 김서하, 권형준, 김영상, 이한빛, 백종륜, 이해빈, 송이원, 김한결, 배선희, 김은한, 김진아, 신강수, 곽예인, 이연숙, 송창한, 반보영, 여름, 듀공, …이런 이름들의 삶이 내게는 중요하므로. 이름들을 부르며 자살하지 말고 있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하루하루가 나의 정치이므로.


사랑하는 슬아야.


가끔은 이렇게 알아서 살다가 우리가 새삼 얼마나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는 중인지를 생각해.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를 찾아내는 너, 지치지 않고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는 너, 작은 몸 안에 수많은 “얼굴”을 초대하며 매일같이 깊고 넓고 커지는 너, 내가 아는 한 가장 칭찬에 뛰어난 인물인 너, 그런 네가 거기에 있어. 잊을 만 하면 내게 겸허함과 용기를 가르쳐주는 네가, 구체적인 인물의 이야기로 가득 찬 너의 풍요로운 마음씨가 좋아. 이런 차이가 좋아. 질문을 좋아하는 너, 농담을 좋아하는 나. 


어떤 침통한 새벽, 나는 사뿐히 달리는 슬아말고 나하고 같이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기 하던 슬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네. 오늘 꼭 그런 마음으로 써. 이번 편지에서 나는 질문하고 슬아는 농담하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주겠어? 사랑도 앎도 아름다움도 없는 농담을 해주겠어? 목요일부턴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야. 


2022.3.7.

슬아에게,

담.





글: 담

무늬글방 운영자. 최근엔 일기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 이번 원고를 검수해준 하은빈과 한유리에게 고맙습니다. 좋은 부분이 있다면 이들의 공입니다.


@moonysalon

blog.naver.com/everyother_d





2022.03.07
 
일간 이슬아
日刊 李瑟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