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에서 더 험한 것을 기대했다면

자고 일어나면 <파묘>가 'O백만'을 갱신하는 요즘, <파묘>보다 더 험한 것을 영업하러 온 슬입니다. 극장에 가기 전 스포일러 당하지 않기 위해 SNS를 할 때 몇 번이고 흐린 눈을 했던 만큼, 예매해 두신 분들을 위해 <파묘>의 내용을 이야기하진 않을게요. (이미 수많은 해석 & 리뷰 콘텐츠가 쏟아지기도 했고요!) 다만, 저처럼 더 하드하고 미스테리한 오컬트물을 기대했던 분들도 꽤 많은듯해서 준비했습니다. 명실상부 '드덕'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 '박일도'를 배출한 용두용미 오컬트 드라마 <손 the guest>입니다. 

이제는 받아들일 때
드라마 <손 the guest>

이사를 할 때 '손 없는 날'에 해야 좋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손 없는 날을 길일로 여겨 이사 비용이 조금 더 비싸게 책정되기도 하죠. '손'은 '동서남북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방해하는 귀신'을 뜻합니다. <손 the guest>는 '손' 중에서도 아주 지독한 귀신, 작은 귀신들을 부려 사람들을 해치는 큰 귀신 '박일도'의 정체를 쫓는 영매, 사제, 형사의 이야기예요. 

 

<파묘>에선 무당과 장의사, 지관이 함께 일을 하죠?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난 영매인 '화평', 구마사제 '윤', 형사 '길영'의 조합도 꽤 훌륭한 협업을 보여줍니다. 어릴 적 박일도에게 한 번 빙의된 적 있었던 화평은, 누군가 박일도에게 씌이면 그에게 감응해 부마자(신들린 사람)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 가장 먼저 알게 됩니다. 화평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 달려간 길영은 강력계 형사답게 물리 구마로 범인을 붙잡죠. 마지막으로 윤이 범인의 몸에 씐 귀신에게 구마 의식을 행합니다. 물론 20년 넘게 사라지지 않았던 귀신인 만큼 박일도를 잡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부마자들은 뒷목을 쉴 새 없이 긁고 물을 미치도록 갈구하다가, 약속이나 한 듯 한쪽 눈을 찔러 자살해 버립니다. "박일도!"라는 이름만 외친 채요.

 

<손 the guest>는 이 일련의 과정들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몰입감 넘치는 연출을 자랑합니다. 눈 한쪽을 찌르는 행위를 박일도의 시그니처로 설정해 첫 화부터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고(제 주변에서도 이 장면에서 비명을 지르며 이탈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마자를 쫓는 빠른 템포의 장면에서도, 인물들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정적인 장면에서도 불길한 무드를 잘 유지해 루즈해지는 것을 막습니다. 호러와 오컬트가 무조건 잔인하거나 자극적일 필요는 없지만, 장르를 선택했을 때 기대했을 긴장감은 제공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음악입니다. 국악을 베이스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사운드트랙이 많은데요. 추격신을 보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화면 위로 흐르는 꽹과리 소리에 압도당했음을 깨달은 적도 있습니다. 사실 <손 the guest>에서 실질적 구마는 가톨릭의 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도 이 드라마의 엑소시즘이 한국적이라고 기억되는 이유는 OST 덕분일 거예요. <파묘>와 <검은 사제들>의 김태성 음악감독이 작업했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화에 등장합니다. 한국 오컬트 작품 역사상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신이 펼쳐지니 꼭 16화까지 달려주세요. 놀랍게도 마지막 화를 제외하곤 15세 관람 등급이라 잠을 못 잘 정도로 무섭진 않습니다. <파묘>로 오컬트 장르에 관심이 생기셨나요? 아님 <파묘>의 무서움 농도가 사알짝 아쉬우셨나요? 그렇다면 몸에 힘을 푸세요. 이제는 박일도를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미친 오컬트 영화 <유전>
이 영화를 보고 그날 밤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박일도가 손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기'의 소유자가 분명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애니의 가족에게 기이하고 불행한 일들이 줄지어 일어나는데요. 이 모든 일들은 흔한 서양 공포 영화처럼 집을 잘 못 사서 벌어진 우연이 아니라, 가족의 피를 타고 흐르는 저주입니다. <유전>은 저주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자, 비로소 모든 것이 누군가가 예비한 대로 제자리를 찾는 이야기예요. 그 여정에 명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인과를 알 수 없어서 느끼는 공포. 그 꺼림칙함이 시작부터 끝까지 심장을 조여올 거예요. 공교롭게도 <유전>의 포스터에도 이런 카피가 쓰여있네요. "그냥 받아들여."
무속 에세이 <고양이 물그릇에 빌게>
<파묘>로 무속에 대한 흥미가 하늘을 찌르는 요즘, '민속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쓴 무속 에세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습니까. 책에는 저자가 무속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직접 무당들을 만나고 굿을 채록하며 보고 느끼고 읽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데요.
저는 특히 이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무속의 세계에선 굿을 해야 진짜 무당으로 인정받는대요. 그런데 '요즘 무당'들은 '신부모'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다 뛰쳐나오는 경우가 많아 내림굿을 받지 못하고 떠도는 '내림굿 유목민'들이 탄생했다는 거예요. 컨버스 신고 굿하는 'MZ 무당'이 <파묘>의 흥행 포인트였던 점을 떠올리면 두 배로 재밌는 지점입니다. '신밥' 먹는 사람들의 이면이 궁금하다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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