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걸까요

오리진   "듀오링고로 열심히 언어를 배우고 있는 요즘."

안녕하세요. 에디터 오리진입니다.


올해 초 상하이에 다녀왔어요. 중국어를 배운 지 오래라 많이 잊어버린 데다, 중국은 현지 앱을 많이 써야 하는 곳이라 출발 전부터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불편함이 거의 없어서 놀랐어요. 현지 앱의 번역 기능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서비스를 쓰는 데 별 지장이 없었거든요. 분명 7년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술의 발전으로 언어의 장벽이 많이 내려갔다고 느꼈어요.


그 뒤로 플랫폼의 번역 기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의 번역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번역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소통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해졌거든요.

1. 번역에서 더빙까지, 장벽을 낮추다 

2.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3. 번역되지 않는 것들

번역에서 더빙까지, 장벽을 낮추다

언어를 모르면 다른 언어로 작성된 게시글이나 댓글을 읽지 못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점점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번역 기능을 제공하면서, 이용자가 별도의 번역 기능을 가진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외국어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플랫폼의 번역 기능은 꽤 오래된 이야기예요. 유튜브는 2008~2009년부터 자동 번역을 제공했고, X의 전신인 트위터는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 기술로 게시글 번역을 도입했습니다. 인스타그램도 2016년부터 게시글, 댓글, 프로필 소개를 번역해 왔고요. 다만 정확도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을 넘어, 글의 문맥을 고려해 보다 자연스러운 번역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번역 품질의 개선으로, 플랫폼에서는 번역 기능을 부가 기능이 아니라 서비스의 기본적인 경험처럼 제공하기 시작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X입니다. X는 2026년 4월, 자체 AI 모델인 그록(Grok)을 활용한 자동 번역 기능을 전 세계로 확대했거든요. 예전에는 외국어 게시글을 읽으려면 번역 버튼을 직접 눌러야 했고, 언어가 인식되지 않아 버튼이 뜨지 않을 땐 다른 번역 서비스를 써야 했어요. 이제는 아무 조작 없이도 내 언어로 번역된 게시글이 바로 보입니다.

자동 번역 확대 직후 이용자 반응 © X

영상 번역의 영역에서는 텍스트 번역에서 더빙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번역을 통해 '자막'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해당 언어로 더빙을 제공함으로써 마치 그 언어로 제작된 콘텐츠처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요.


인스타그램은 2025년부터 메타 AI(Meta AI)를 활용해 릴스 영상의 음성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더빙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성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래 화자의 목소리와 억양을 재현하고 번역된 음성에 맞춰 입술 움직임까지 조정한다고 해요. 2026년 7월부터 한국어와 일본어 등으로 지원 언어를 확대했기 때문에 여러분의 타임라인에서도 한 번쯤 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유튜브도 비슷합니다. 2026년 2월 자동 더빙을 27개 언어로 넓혔고, 화자의 감정과 억양을 살리는 기능도 선보였어요. 유튜브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자동 더빙 영상을 하루 10분 이상 본 이용자가 일평균 6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 대한 유저의 반응 (스페인어로 더빙해주네요) © @kelsyAlfred
그렇다면 플랫폼들은 왜 번역에 힘을 쏟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콘텐츠가 닿는 범위가 넓어집니다. 이용자가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늘면 추천할 수 있는 콘텐츠도 늘고, 체류 시간과 소비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요.

둘째, 크리에이터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따로 번역이나 현지화를 하지 않아도 해외 이용자에게 닿고 글로벌 팬층도 키울 수 있으니, 플랫폼에는 크리에이터를 유치하고 머물게 하는 경쟁력이 됩니다.


번역은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원래라면 만날 일 없었을 언어권의 이용자와 커뮤니티를 이어 주기도 해요.


그래서 이 기능은 '디지털 바벨탑'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말이 통하기 시작한 이 탑 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동 번역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쉽게 다른 언어권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번역 기능이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소통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심심할 때마다 X를 들여다보는 편인데요. 자동 번역이 적용된 뒤로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아시아권 이용자끼리, 혹은 다른 문화권 이용자와 논쟁하는 모습을 정말 자주(정말…자주…💀) 보게 됩니다. 때로는 게시글 하나가 언어권을 넘나들며 큰 논쟁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제 타임라인 기준이긴 하지만요.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브라질의 한 유저가 '원래 피부색이 예쁜데, 왜 하얗게 되는 것에 집착하냐'라는 식으로 한국 미백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게시글이 발단이었죠. 이에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이용자들까지 가세해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흰 피부를 미의 기준으로 여겨왔으며, 이를 무조건 '백인 동경'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만하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아시아인의 피부는 원래 노랗다'는 인식 자체가 편견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고요. 

제가 본 것 중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 (영어 번역인 이유는 제 설정 때문입니다) © X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문화권에서 우리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고, 알게 되더라도 직접 반박하거나 설명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요. 이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의견을 나누며 편견에 직접 반박하고 자기 문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처럼, 기존의 인식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반가웠어요.


반면 이러한 교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부분도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게 되었지만, 정작 논쟁이 벌어지면 각자가 자신의 국가나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개인의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지만, 어느새 국가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고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국가를 방어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장벽이 낮아져 서로의 차이를 더 직접 마주하게 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류가 늘수록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번역되지 않는 것들

생각해 보면 자동 번역의 보편화는 꽤 큰 변화입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게 되었고, 글로벌 플랫폼의 성장으로 서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이게 되었어요. 여기에 자동 번역 기술까지 발전하면서 이제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언어로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인터넷이 약속했던 '연결'의 마지막 빈칸을 채우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여기서 짚어 볼 부분은 번역의 정확성과 문화적 맥락의 전달 문제입니다. 앞서 소개한 피부색 논쟁과는 별개로,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 중에는 자동 번역이 잘못되어 오해가 발생하거나, 번역된 표현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기술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번역된 문장과 원문이 전달하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꽤 많거든요. (사실 이게 너무 짜증납니다...💀) 심지어 인스타그램 릴스의 AI 더빙에서는 영상 속 주변 소음이나 배경음악까지 번역 대상으로 인식해 엉뚱한 더빙이 생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오류는 콘텐츠의 원래 의미를 왜곡하거나 유저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줄 수 있겠죠.


물론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는 AI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점차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금은 이상하게 번역된 영상이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나타났던 해프닝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번역이 기술적으로 정확해지는 것과 그 언어가 가진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문법, 표현을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적 배경을 접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자동 번역을 이용하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른 언어로 작성된 글을 읽고, 그 글을 작성한 사람과 직접 소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술이 가져온 큰 장점이에요. 하지만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 문장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특정 문화권에서 통하는 농담이나 반어는 맥락을 모른 채 번역문만 읽으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쉬워요.


다만 최근 X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언어는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넘어야 할 여러 장벽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가치관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흔하니까요. 언어의 장벽이 낮아졌다고 해서 이러한 차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동 번역이 보여주는 것은 '말이 달라서 통하지 못하던 세계'가 아니라 '말이 통해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서로 부딪히는 일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기회조차 없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주장에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언어를 배우면서 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해 나가듯, 자동 번역을 통해 시작된 소통과 때로는 갈등이 서로를 알아가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 번역은 우리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언어의 장벽을 낮춰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기술이 대신해 줄 수는 없겠죠. 앞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겠지만, 서로의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해 오해하거나 뜻하지 않은 갈등을 겪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깊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부딪히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알아갈 수도 있겠죠. 결국 이렇게 연결된 공간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어갈지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집/윤문 | 구현모
에디터 <오리진>의 코멘트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Visual Studio Code)에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연결해 쓰는 분들, 많을 거예요. 최근 이와 관련한 기사를 보고 저는 좀 놀랐습니다. 악성코드 감염이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가능성이긴 한데요.)


AI의 발달로 보안 사고가 많이 터지는 요즈음인데요. 기업의 보안사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개인 단위의 보안 사고는 생각을 덜 해 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니 조심하세요!'와 같은 말로 끝맺고 싶지만 사실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요즘은 제 개인정보는 하도 유출이 많이 되어서 공공재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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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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