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이성현 인턴기자가 재미와 의미를 둘 다 잡은 문화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제 세대에는 원더걸스 예은으로 더 익숙할 아티스트 핫펠트의 앨범 <1719>와 동명의 책에 관한 서사를 소개합니다.
핫펠트, <1719-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보다 인생이 구리다는 말에 마음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룹 원더걸스에서 ‘예은’으로 활동했던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는 <1719>의 첫 번째 트랙 ‘Life Sucks’에서 그 문장을 시원하게 외치는데요.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분노를 직설적인 가사로 표현합니다.
이 앨범은 핫펠트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겪은 일을 토대로 만들어졌어요. 불안하고 우울했던 감정이 솔직하게 녹아 있습니다. 동명의 에세이도 함께 출간됐는데요. 부제는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입니다.
저 역시 ‘인생이 구리다’고 느껴지던 때, 타로와 사주를 번갈아 보러 다녔어요. 인생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궁금했거든요. 핫펠트가 이 앨범에서 타로카드 이미지를 사용하더라고요. ‘타로 과몰입자’로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아래는 책에 실린 ‘여덟 개의 칼’이라는 시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여덟 개의 칼을 바닥에 꽂고
손발을 묶었다
두 눈을 가렸다
타로카드 중 소드 8번 카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 카드는 흰 천으로 눈을 가린 여인이 여덟 개의 칼에 둘러싸여 있는 그림인데요. (실제로 핫펠트가 ‘Life Sucks’ 뮤직비디오에서 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등장해요!) 이 카드는 구속된 상황, 두려움과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배경에 두 가지 소재가 더 있습니다. (타로는 디테일이 생명!) 멀리 성이 보이고, 발밑에는 얕은 물이 흐릅니다. 성은 회복을, 물은 감정과 잠재의식을 의미합니다. 회복은 멀어 보이지만 사라지지는 않고요, 감정은 이미 흐르고 있었네요.
<1719>는 핫펠트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꺼내고, 다시 쓴 기록입니다. ‘잠겨 있던 시간’은 감정을 지긋이 바라본 시간이지 않았을까요. 성으로 가려면 물을 지나가야 하니까요.
지난 19일은 성년의 날이었어요. 핫펠트는 <1719>가 늦은 사춘기와도 같은 감정을 담은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 표현이 좋았습니다. 사춘기는 청소년기에만 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든, 어딘가에 잠겨 있는 입주자님을 응원합니다.
참고로 핫펠트는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을 만큼 꾸준히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온 아티스트입니다. 그의 음악 세계에도 🧵페미니스트로서의 시선이 녹아 있어, 입주자님께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