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남동행, 수 님을 만나다!

(하고 싶으면 일단 고!)

인터뷰 제공: 수
진행: 주영현
신새미
(25 하계 실무수습생)

25. 7. 22.

동행과 다시 맞닿게 된 수 님을 환영하며!

동행 목포지부에서

Q1. 수 님께서 바라보시는 동행 구성원들이 궁금합니다! 한 단어로 표현해주신다면?

🦉 수: 모두 개별적인 장점과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에요. 함께 일하게 되어 새삼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본격적으로 동행과 함께하면서 저희끼리는 '드디어 독수리 오형제 출격'! 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먼저 위 님은 '착한 오지랖'. 본인이 항상 바쁘심에도, 누가 뭘 물어보거나 이야기를 하면 먼저 도와주세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그렇게 대해주시니, 존중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너무 잘 챙겨주셔서 제 버릇이 나빠질까 봐 걱정될 정도예요.


소아 님은 '과감함'. 광주의 동행은 울산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을 제외하면 전국 유일의 공익변호사 단체였어요. 그런 곳을 10년 넘게 유지해 오신 끈기, 그리고 지금도 이슈나 사안에 과감하게 치고 나가시는 모습은 정말 배우고 싶은 점이에요.


기림 님은 '공감 능력'.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정말 뛰어나세요. 신안 염전 장애인 근로자 사건 당시에도 직접 탈출을 도우셨고, 이후에도 후견인으로서 3년 넘게 함께하고 계시죠. 스트레스 받으시면서도 "가족에게도, 사업장에서도 버림받았는데, 나까지 외면해 또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가끔은 '살아 있는 부처님인가?' 싶을 때도 있어요.


석현 님은 '조용하고 엉뚱한 매력'. 친해지시면 아시겠지만 말이 적으신데 엉뚱한 매력이 있어요. 조용히 옆에 계시면서 슬쩍 필요한 일을 도와주시곤 하죠. 본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늘 곁에 계신 느낌을 주시는 분으로 정말 매력적인 분입니다.

Q2. 그렇다면, 동행에서 수님이 채워준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수: 저는 제가 어떤 부분을 채워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 햄변: 대신 답변을 드리자면, '제 편 들어주는 사람'. 신중한 스타일로 추진력 있게 일하시는 분이 많은 동행에서 돌다리를 두드려 봐주셔서요. 규정과 절차를 꼼꼼히 검토하고 속도 조절을 함께 해주시며 "으쌰으쌰"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역할을 하시고 있다고 생각해요.

Q3. 동행에서의 시간은 수님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왔나요?

🦉 수: 변화라기보다는,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국제 인권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 초보 활동가였을 때 '좋은 활동가는 어떤 사람일까' 많이 고민했거든요. 존경하는 활동가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게 compassion, 공감이었어요. 언어나 사무 능력은 배우면 되지만,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고요. 그때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체득하며, 인권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면서 그런 감각들이 무뎌졌던 것 같아요. 동행에 들어오고 그 야성, 현장성, 사람에 대한 마음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이 일을 좋아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요.

Q4. 인생 모토는 '끌리는 대로 살고 후회하지 말자'라고 하셨는데, 이번 결정은 어땠나요?

🦉 수: 젊었을 때는 '일단 고!'였어요. 준비가 안 돼 있어도 부딪쳐보면 얻는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어요. 경제적 안정이나 노후 준비에 대한 우려가 신경 쓰이더라고요. 한 달 넘게 고민도 했고, 주변의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결국은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내가 조금 변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 저질러 보기로 했습니다.

Q5. 지역에 남아 계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수: 서울엔 공익변호사 단체가 많지만, 지역엔 거의 없어요. 전남은 시군이 22개나 되고, 섬도 많고, 병원이 없는 지역도 많아요. 배가 못 떠 병원에 못 가는 분들도 있죠. 사회적 약자들은 이런 사각지대에 더 취약하고요. 그런 지역에서 지부를 두는 건 법률 접근성과 구제 가능성을 높이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법무부에서 일할 때, 속이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술자가 되어간다는 위기감이 있었죠. 현장에서 떨어져 있으면 껍데기만 남는 것 같았거든요.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제가 광주 출신이라 고향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많은 분이 "서울 가야 제대로 활동할 수 있지 않냐"고 했지만, 그 말도 듣기 싫었어요. 저는 서울이나 대도시 생활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요. 지역에도 분명히 인권 이슈는 존재하고,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6. 국제 인권에서 국내로 돌아오신 이후, 가장 몰랐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 수: 한국은 법적 제도는 잘 갖춰져 있지만, 차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해요. 제도는 있어도 해석이나 운영이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제가 주로 일했던 다른 나라들은 제도 자체가 없거나, 고문·살인 같은 기본 인권침해가 여전히 많아요.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발전했지만, 그만큼 제도 개선이나 차별 해소 같은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예컨대, 계절 이주노동자 문제는 특히 농축수산업에서 인신매매나 강제노동 성격을 띠기도 해요. 전남 지역은 그런 노동자들이 더 많으므로, 전남 동행에서 이 이슈를 발굴하고 제기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7. 최근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 수: 전남대에서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세대 차이를 실감했어요.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의 발전사를 이야기하면 학생들 눈빛에서 "이게 무슨 얘기지?"라는 반응이 느껴졌거든요. 저희 세대에겐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젠 그 기억조차도 공유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와 선배 세대들이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 세대가 당연히 누리는 자유나 인권이 사실은 그렇게 싸워서 얻은 결과니까요. 인권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껴요. 그래서 더더욱,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 해요. 한 걸음이라도 더 가보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Q8. 마지막으로, 이제 막 이 길을 걸으려는 예비 공익변호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수: 하고 싶다면 머릿속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시도해 보세요. 해보고 나서 맞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으면 돼요. 다만 일정 기간은 꼭 버텨보세요. 6개월에서 1년은 힘들어도 해보는 것. 그래야 후회가 없어요. 이쪽 일을 당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미 있는 일이니까 해야 해'보다는, '내가 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꼭 이 일이 아니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법적인 조력자를 넘어 세상을 향한 첫걸음에 함께하는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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