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안녕하세요. 오늘 오이레터는 김양호 교수님의 기고를 전해드립니다. 최근 업무상질병의 신청과 승인건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가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제도는 밝은 부분만 있었던 걸까요?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울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양호



업무상질병의 추정의 원칙제도 더 넓혀야 할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 모임에 가보면 업무상질병을 어떻게 하면 보다 신속하고, 보다 쉽게 인정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를 한 명이라도 더, 그리고 하루라도 더 빨리 산재로 인정받게 하여 그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제도가 2019년에 도입한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제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노동계에서는 추정의 원칙이 해당되는 직업과 질병 범위가 협소하고 해당되더라도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다며 추정의 원칙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 범위, 기준, 판정기간은 선진국에 비해 엄격하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과연 우리나라 업무상질병 범위와 기준이 선진국가들에 비해 협소하고 엄격하며, 판정까지 걸리는 시간도 특별히 긴 것인가에 대해 아는 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필자는 울산에서 산재자문의사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 때는 한국의 산재보상제도가 유독 까다로와 노동자들이 충분히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떨려 나와 재취업을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활동을 통해 선진 외국의 전문가들과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하면서 선진 외국의 산재보상제도에 비해 한국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너무 타이트하여 우리 노동자들이 업무상질병 인정을 매우 제한적으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한국의 직업병 인정 범위는 앞서 나가는 기준들을 거의 다 모아 놓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어떤 선진국의 인정기준보다 광범위합니다)과 직업병 판정을 위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판정까지의 시간과 관련하여, 당장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긴 힘들지만, 저자가 오랫동안 가까이서 살펴본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 판정까지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으며, 유럽 국가들은 업무상질병 판단을 되게 꼼꼼히 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이 그럴 수 있는 배경에는 상병수당제도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일반질환으로 쉬어야 하는 경우 휴업 수당을 주는 유급병가제도) 라고 하는, 향후 우리나라에도 제도 도입을 목표로 현재 시범사업 중인 제도가 진작부터 있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재보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노동자 규모가 상당하므로 모쪼록 상병수당제도 시범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어 우리나라에서도 2025년도에는 이 제도가 전국에서 계획대로 잘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상병수당제도를 바탕으로 업무상질병 인정제도도 균형있게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목격하고 있는 추정의 원칙제도의 폐해


또 이번에는 제가 울산지역에서 목격하고 있는 추정의 원칙제도 폐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울산에서는 한마디로 말해 추정의 원칙제도가 일부 노무사와 일부 병의원 카르텔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업종의 대표적 직종인 용접공, 사상공, 취부공, 배관공을 10년 이상 하였으면, 경추(추간판탈충증), 요추(요추추간판탈충증), 어깨(회전근걔증후군), 팔꿈치(상과염), 무릎(반달연골장애) 등의 질환이 모두 업무상질병으로 거의 자동으로 인정됩니다. 많은 노무사들이 현수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홍보하면서 현직 및 퇴직자들을 모집하여 개인이 부담할 비용은 없다고 하면서 일부 개인병의원으로 연결해줍니다. 그러면, 일부 의사는 증상과 관계없이 목부터 무릎까지 MRI로 훑고 있고, 그러면 퇴행성 변화가 적어도 어느 한 부위에서는 나타나게 되고, 그것을 신청하면 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판정이 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처음에는 일부 신체부위를 촬영하거나 좌우 어느 한쪽을 촬영하여 이상을 발견하여 신청하고 산재요양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나머지 부위 또는 반대쪽을 촬영하여 추가상병으로 신청하여 산재요양기간을 늘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의료기관들의 일부 의사가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많은 노동자가 그런 곳을 더 선호하여 그런 곳으로 산재환자가 집중되고 있고, 다른 병의원들도 경쟁적으로 그렇게 따라 하게 됩니다.



실제 업무부담과 개인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개입 여지를 좁혀


여기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전문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용접공이라도 수동용접 또는 자동용접에 따라 업무로 인한 신체적 부담이 다를 수 있고, 직종이 정해져 있어도 구체적으로 실제로 하는 업무는 다양하여 그에 따라 업무부담이 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도 고려할 필요도 있을 것인데, 이런 것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또, MRI를 촬영하면 이런 직종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에서 고령화에 따른 어느 정도의 자연적인 퇴행성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일반인에서도 MRI 이상 소견은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데, 증상과의 정합성 또는 자연적인 퇴행경과를 넘는 정도의 변화인가에 대한 고려가 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직업병 판정이 되고 있습니다.



업무상질병 승인 이후 으레 이어지는 수술 중심적 치료와 재활치료의 부족


업무상질병으로 승인받으면 거의 대부분 수술로 이어지고, 수술 후에는 통증완화를 중심으로 한 물리치료를 받을 뿐, 충분한 운동치료나 재활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므로, 근력 및 근육량은 수술이전보다 현저하게 감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태로 재발방지에 대한 스트레칭 또는 근력강화운동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복귀하면 종종 재발하여 재요양을 신청하거나 아파도 참고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수술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술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으며, 수술의 남용과 재활치료의 부재로 인하여 운동기능에 후유증이 남게 된 경우 과연 그들이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고 오래오래 노동현장에 남아 더 노동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차라리 산재로 수술 받게 두지 말고 조금 더 일찍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가르치고 근골격계의 피로가 회복할 시간을 보장받는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추정의 원칙은 노동자들의 건강유지와 직업환경의학의 전문성에 도움이 되었나?


물론 추정의 원칙 적용 이전에도 이런 부작용이 어느 정도는 있었으나 추정의 원칙 적용 이후 마치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확산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어 수술을 받은 것이 노동능력을 유지하여 오래 노동현장에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까를 자문해보면,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는 일부 노무사와 산재 환자를 주로 보는 일부 로컬 병의원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에게는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게 하니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노동할 수 있는 건강(Work Ability)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까에 대하여는 그들에게 물어봐야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로 이득과 폐해는 어떤 상태일까요? 업무상질병 추정의 원칙은 확대해야 할까요? 아니면 중지하고 재점검해야 할까요? 구독자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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