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6일 월요일
님,

제 문학적 소양은 어릴 때 읽었던 ‘문고본’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린이용 문고본 책들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윌리엄 허드슨의 <녹색의 장원>,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푸시킨의 <대위의 딸> 따위를 봤습니다. 내용도, 어떤 출판사 책이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어린이용인데도 유난히 분량이 두터워서 ‘이걸 언제 다 읽어’ 툴툴대다 끝내 다 읽어낸 기억도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지 못한 책들에도 ‘어릴 때 읽었던 책이다’ 정도의 친밀감이 남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와나미쇼텐의 어린이용 문고본인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읽었다고 합니다. 메리 노턴의 동화 <마루 밑 바로어스>를 원작으로 삼은 미야자키의 작품 <마루 밑 아리에티>가 개봉했던 2010년은 때마침 이와나미소년문고의 창간 60년이었다죠. 이를 기념해 미야자키는 소년문고 가운데 50권을 꼽아서 소개하고 책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책으로 가는 문>(다우)은 이를 담은 책입니다. 재출간된 책인데, 은퇴 번복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과도 무관하진 않겠습니다.

 책을 많이 갖춰두고 어른들이 읽는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책을 읽을 거라고들 하지만, 미야자키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책에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효과 같은 것도 없고, 되레 “아이가 책만 읽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나한테는 역시 이거야’ 하는 무척 소중한 책 한 권을 만나는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어린 시절의 책 읽기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날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불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첨단 과학을 기반으로 산업형 축산 문제나 음식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대체식품 개발에 나선 기업가들이 있습니다. 닭 없이 만드는 달걀이나 세포를 배양해서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 착즙 주스 찌꺼기를 가져와 칩을 만드는 기업가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음식의 미래>는 음식·기술 전문기자로서 첨단식품 기술분야를 폭넓게 취재해온 라리사 짐버로프가 그런 첨단 식품기업들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결과를 정리한 책입니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인 그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거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저자는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 외에도 우리 몸으로 들어갈 음식이 과연 안전하고 건강에 무해한지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미래 식품’들을 진단합니다. '비건 버거' 등 미국의 마트 등에서 팔리고 있는 고기 대체 식품부터 곰팡이로 만드는 단백질이나 소 없이 만드는 우유,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고기 등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인 다양한 ‘실험실 식품’까지. 최근 국내에서도 채식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도가 올라가면서 대체육 등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 음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물성 고기니까 건강에 더 좋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깨고 우리가 놓인 현실에 대해 직시하고 책을 펼쳐보세요.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애플북스)는 육식 본능 때문에 완전 채식은 하기 힘들더라도, 고기 소비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대체육 등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보자며 '작은 실천'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실험실 음식'들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우리 식탁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낳습니다. <사라져 가는 음식들>(김영사)는 우리의 먹거리가 이윤만 추구하는 흐름 때문에 다양성이 사라져 점점 더 균질화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 가면, 사형수들이 처형장으로 갈 때 건넜던 '사형집행인의 다리'가 있습니다. 옛 시청사 건물 지하에는 감옥이 있는데, 옛날 범법자들은 여기서 심문(고문)을 받았겠죠. '사형집행인'은 당시 이 험한 일들을, 오늘날뿐 아니라 그 옛날에도 '잔인하고 끔찍하다' 여겼을지 모를 일들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엘 해링턴은 16세기 뉘른베르크에서 공직으로서 사형집행인이란 직업에 종사했던 프란츠 슈미트(1553~1634)가 남긴 일기를 좇으며 그의 삶과 내면, 시대상을 두루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이란 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사형집행인은 '불경스러운' 일을 한다는 이유로 온전한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했고, 성 밖에 살며 공공장소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등 뿌리깊은 사회적 모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법 체계가 정비되고 강화되던 시기를 살았던 프란츠는 숙련된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신과 집안의 명예를 다시 세우려 노력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모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자신을 갈고닦은 그는 인생 후반기에 끝내 시민권을 얻어냈고, 황제에게 올린 청원이 받아들여져 사형집행인이란 천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중세 끄트머리의 사법 체계와 삶의 풍경,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의 내면 등을 종합적으로 펼쳐보이는 책입니다. 과거를 '야만적'이라 여기는 현대인의 우월의식에도 물음표를 던져줍니다.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 프란츠 슈미트가 살았던 시기는 서양 중세의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중세 천 년 역사를 16가지 '사람들'의 이야기로 흥미롭게 정리한 <중세인들>(책과함께)을 함께 소개합니다.
일본 문학상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상은 수상작이 발표되면 뉴스 속보로도 전해집니다. 이 상을 받는 자체가 하나의 '이슈 메이킹'이 되므로, 이번 소개해드릴 작가가 오직 이 상을 겨냥해 작품을 썼다는 말은 퍽이나 와 닿습니다. 올 7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이치카와 사오의 소설 <헌치백> 이야기입니다. 소위 ‘꼽추’를 뜻하는 영어 제목(Hunchback)으로, 14살 때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아온 44살 중증 장애 여성이 내놓은 데뷔작입니다. 순문학과 거리를 둔 채 연애, 판타지, 에스에프 등 이른바 비주류 소설 공모에만 응모해오다, 작정하고 아쿠타가와상을 노려 썼다는 게 이 작품입니다.

 일본 문학계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주제, 존재하지 않았던 작가 범주를 직접 보공하겠단 것으로, 장애 당사자가 도발적으로 드러내는 장애인의 성 권리가 그 일부라 하겠습니다. 실제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문화 쪽에서 아쿠타가와상의 인지도가 가장 높고, 뉴스 속보로도 보도되는 건 이 상과 나오키상뿐”이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들을 연구했고 지금까지 쓰여지지 않은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무엇이 쓰여있는지 궁금하실 법합니다. 작가와 분간되지 않을 만큼 유사점이 많은, 주인공 샤카가 꿈을 말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는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한국 문학에선 아직 먼 이야기가 현해탄을 건너온 셈입니다.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서양 중세의 가을을 통과한 시인이라면, 한 세대 뒤에 태어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고전 부흥의 빛을 불러낸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초의 시인입니다. 페트라르카는 산문 작가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이 작가가 라틴어로 쓴 산문 작품 <나의 비밀>, <고독한 생활>, <종교적 여가>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돼 나왔습니다.  특히 이 세 편 가운데 시인의 내적 갈등을 고백한 <나의 비밀>은 페트라르카 산문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페트라르카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사건은 1327년 스물세 살 때 아비뇽의 성 클레르 성당에서 젊은 유부녀 라우라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영원한 뮤즈였듯이, 라우라는 이루지 못할 사랑의 쓰라림으로 젊은 페트라르카의 창작혼에 불을 지른 또 다른 뮤즈였습니다. 그 뮤즈에게 바치는 시집이 <칸초니에레>입니다. 이 시집을 써 나가던 때에 집필한 라틴어 산문이 <나의 비밀>입니다. 종교적 구원을 소망하면서도 세속의 기쁨과 영광을 포기하지 않는 이 분열된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이런 분열된 인격이야말로 근대적 인격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이 내적 모순이 페트라르카의 창작에 동력이 됐을 것입니다.

이소연 작가의 어릴적 꿈은 디자이너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문득 더는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한창 꾸미기 좋아할 이십 대 후반 나이의 여성이 말이죠. 그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지은이가 옷을 사지 않기로 한 결심의 배경을 알려주고, 옷을 사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멋을 가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온라인 중고 거래 업체에 근무하며 생태전환 잡지 편집위원이자 해양 환경 보호 활동가이기도 한 지은이가 옷을 사지 않기로 한 결정적인 까닭은 패션 산업이 생태에 끼치는 폐해에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물의 20퍼센트가 옷을 만드는 데 쓰이고, 지구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10퍼센트가 패션 분야에서 나온다죠. 특히 패스트패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합성섬유는 석유로 만드는데, 이 옷들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합니다. 싸고 쉽게 사서 입다가 빨리 버리는 메커니즘이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건강에도 위협이 되는 것이죠. 면이자 모직, 가죽 또는 이른바 명품 의류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은이는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는 옷을 오래 입는 것, 남들과 바꿔 입고 빌려 입거나 어머니 옷을 물려받아 입는 등의 대안으로 기후위기에 맞서자고 제안합니다.
🐟저자 이소연이 <스브스뉴스>에 출연해 '쇼핑하지 않는 20대의 옷장을 최초 공개'했던 영상을 공유합니다. 새 옷을 사지 않아도 얼마나 예쁘게 입을 수 있는지 직접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학교 체육관 뒤편에 움푹 파인 곳이 있습니다. 이 구덩이를 본 어른들은 당장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누가 다칠지도 몰라. 위험하잖아." 그러나 아이들은 어떨까요? 구덩이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림책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문학동네)은 구덩이 하나를 두고 이처럼 서로 갈리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상반된 태도를 보여줍니다. 구덩이 하나로도 즐길 수 있는 아이들에겐, 평범한 공간을 특별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상상력이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삶의 놀이터
시소책방

🏠경남 하동군 하동읍 남당길 50

🔗instagram.com/see.saw111


"지리산, 섬진강, 남해바다 그리고 송림…. 생명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하동이 내 고향이라는 게 늘 자랑스럽다. 지리산둘레길에서 활동가로 12여년 지내다 갑자기 난치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만나 거동이 힘들어진 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숨었지만, 결국 두 달을 못 버티고 책방을 열어 새로운 인연에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2021년 5월 하동 읍내에서 송림(천연기념물 솔숲) 가는 삼거리에 예쁜 시소를 마련했다. 서로의 무게를 맞추고 배려하면서 경쟁이 아닌 서로 간의 호흡이 맞을 때 오르락내리락 재미가 있는, 시소는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책방 이름을 ‘시소’라 지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쁜 날도, 땅이 꺼질 듯 슬픈 날도 있는 우리 인생 같은 시소. 그리고 나의 병과 닮은 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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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7도 높아요


 

작은 난로 한 대에
어른 셋
 
이 계절을 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난로 위에 귤은
일곱 개까지 올릴 수 있다
 
귤을 기준으로 보면 난로는
일곱 개용
 
우리도 수도가 얼었어요
물이 조금씩 흐르도록
틀어놨는데도 말이죠
 
모두 웃는다
이럴 때 어울리는 웃음이 있다
 
난로 위에 구운 귤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어제보다 7도 높아요
 
내가 오늘 본 유일한
온기 있는 말을 건넸던 것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문장이
가면서 얼어
무지개 모양


📖김은지의 시집 <여름 외투>(문학동네)에서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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