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법한, 그러나 당연하지 않은 현상의 디테일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기나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고 있습니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최근 저의 마음을 계속 일렁이게 한 뉴스가 있는데요.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향후 10년 내 모든 채널을 온라인 앱으로 통합하겠다발표한 소식입니다. 그간 ‘TV의 종식’은 모두가 쉽게 말하면서도 쉽게 점칠 수 없는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왜인지 ‘이제 10년 안에 진짜 사라진다’와 같은 경고장으로 느껴졌어요. 

👋 오늘의 에디터 : 나나
두 달 내내 PT(not Personal Training)만 하다 보니 봄🌷이 되었네요
오늘의 이야기
1.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상파(feat.나 PD)
2. KBS : MZ세대 따라잡기
3. MBC : 콘텐츠로 승부하기
4. SBS : OTT와 닮아가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상파(feat.나 PD)

꼬꼬마 사원 시절, 업무의 일환으로 나영석 PD의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나영석 예능’이라고 하면 tvN 예능 뿐만 아니라 출장 십오야와 같은 웹 예능을 떠올리는 분들도 꽤 많으실 텐데요. 제가 나 PD를 만났을 무렵엔 TV 콘텐츠가 여전히 대세였어요. 연예인들이 유튜브로 몰려간다고는 하지만, 방송계와 낯을 가리는 시기였습니다.

 

나영석 PD는 강연에서 ‘디지털 시대의 생존에 위기감을 느낀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 그의 행보들은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유튜브 확장판 보지 뭐’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가지만, 당시에는 5분 TV 예고편 + 1시간 유튜브 본편 방송이라는 발상 자체가 파격적이었죠. 시간이 지나 업계에 더 깊숙이 들어와 보니 그의 고민이 저의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5분 TV 티저 후 진행한 <신서유기:외전 '아간세'> 유튜브 영상 (출처 : 채널 십오야)

그런데 생업이 달린 저부터도 TV를 잘 보지 않아요. TV를 많이 보던 때는 관심 없는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이라도 관성적으로 보거나, 좋아하는 예능 프로의 재방송을 굳이 찾아서 보기도 했었는데요. 요즘은 좋아하는 스트리머들의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거나, 추천받는 쇼츠나 릴스를 보는 걸 제법 즐기고 있습니다. 그다지 젠지-알파 세대와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저의 컨텐츠 소비 성향이 이렇다면 전반적인 대중은 어떨까요.

 

굳이 말이 필요 없는 현상입니다만, TV 시청률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업계의 지표를 몸으로 증명하듯 많은 방송국 PD들이 JTBC, tvN 산하 제작사뿐만 아니라 게임 회사, 샌드박스 등 다양한 영상 분야로 이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스타 PD들은 직접 제작사를 차릴 수 있는 사정이라 해도, 신입 PD들은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역량마저 요구받고 있어 부담이 커 보입니다.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데, TV는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요. 스마트TV가 없는 지방 숙소에 가면 으레 TV를 보며 향수를 느끼게 될 정도입니다. 방송시장, 특히 지상파는 덩치와 규제 때문인지 특유의 항상성이 유지되는 느낌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들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KBS : MZ세대 따라잡기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다소 안전한 콘텐츠들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채널입니다. 인기 시간대의 편성표를 살펴보면 올드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많아요. 특별히 공략하고 만든 건 아니겠지만 의도치 않게 시니어 타겟 채널의 이미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TV를 많이 보는 세대에게만 어필이 되어서는 방송사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점을 KBS에서도 의식하고 있다는 듯, ‘MZ세대 공략’이라는 포부를 갖고 최근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공략을 시도한 프로그램들이 그간 MZ세대들에게 크게 화제성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90년대생들이 도서 90년대생이 온다를 읽고 공감하기보다는 윗세대가 MZ세대라는 이미지를 학습하게 되었던 상황과 비슷해 보였어요.


그런데 최근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기 콘텐츠 중 하나는 바로 KBS의 새 음악 예능입니다. 바로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인데요. 박재범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음악 토크쇼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박재범이 단독으로 MC를, 그것도 토크쇼를 잘할 수 있을까? 게스트는 누가 나올까? 이 프로그램 잘 될까?

저의 의심이 무색하게도, KBS는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캐스팅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게스트들이기는 했습니다. 첫 방송에 이찬혁, 양희은, 이영지가 등장한 점부터 흥미로웠습니다. 거기에 박재범 특유의 개성과 퍼포먼스가 더해졌으니 화제가 되지 않는 게 더 어렵겠죠. 다나카가 출연한 쇼츠 영상의 조회수는 300만이 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방송사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시청률이겠습니다만, 아쉽게도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상위권에 위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의 타 방송사 예능들이 워낙 쟁쟁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뮤직뱅크와 같은 음악방송 외에, 영타겟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나온 것은 고무적입니다. 포맷은 올드할지언정 그 내용물이 박재범과 게스트들이다 보니 화제성은 계속 이끌 수 있겠습니다.

MBC : 콘텐츠로 승부하기

지난 해 MBC뉴스 유튜브 채널이 전 세계 뉴스 채널 중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기억에 남는데요. MBC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먼저 유튜브에 진출한 채널이기도 합니다. 이런 '짬바'가 쌓여서일까요. MBC 예능 채널의 구독자 수는 3사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지상파 3사 유튜브 예능 채널 구독자 수 (출처 : 각 채널 홈페이지)

네이버TV 공급으로 잠시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MBC의 인기 콘텐츠들은 그 모습 그대로 ‘다시보기’ 콘텐츠로 돌아오고 있죠. TV 재방송 시간을 맞춰 켜두고 기다릴 필요 없이 재미있었던 부분만 편집해서 방송사 채널에서 보는 형태는 MBC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상파 방송이지만, 콘텐츠에 매력이 있으면 유튜브로 다시 찾아본다는 문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유튜브에서 얻는 광고 수익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듯, MBC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소개된 ⟪피지컬: 100⟫처럼, 공중파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제작사’로서 만들고 이를 ‘경쟁자’ 넷플릭스에 내놓은 시도는 그 성공만큼이나 크게 이슈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방영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OTT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하는 형태다보니, OTT 플랫폼에게만 이득이 되는 구조라는 우려도 있고요.

그러나 이런 변화는 시작일 뿐입니다. MBC는 2021년 사내에 OTT 프로그램 개발 관련 부서를 신설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외부 플랫폼과의 협업, 그에 연관한 콘텐츠 제작을 적극 장려하는 모습으로 해석됩니다. 이를 증명하듯 MBC 산하에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OTT를 통해 계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티빙에서는 1월부터 침착맨이 등장하는 ⟪만찢남⟫을 공개해 호응을 얻고 있고요. 상반기 중에는 웨이브에서 ⟪피의 게임 시즌2⟫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MBC를 기대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SBS : OTT와 닮아가기

한편, TV 방송의 포맷 자체가 OTT와 비슷해지는 모습도 짚어볼 만합니다. 최근 TV에서 SBS 모범택시2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요. 드라마 화면과 함께 자막이 송출되고 있었습니다. TV 콘텐츠, 특히 드라마에서 자막은 연출에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잘 활용되지 않는 편이죠. 


한국 드라마의 한국어 자막에 대한 니즈는 사실 꾸준히 있었습니다. 배리어프리 이슈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시청자의 이해도 측면에서도 한국어 자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존재해왔어요. 이런 니즈가 먼저 반영된 건 역시 OTT 플랫폼입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 플랫폼도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고 있죠.

SBS ⟪모범택시 2⟫ 재방송 캡쳐 화면 (출처 : 한국경제TV)

아직 본방송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지만, SBS 드라마들의 재방송에 적용된 한국어 자막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효과음 사이에 가려진 대사 이해가 쉬워졌다는 것이 우선이고, 늦은 시간 볼륨을 줄이고 시청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고요. 물론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자막 설정이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요. 앞으로는 지상파 드라마를 자막과 함께 시청하는 일이 당연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시즌제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는 것도 유의미한 변화로 보이는데요. 시즌제 드라마는 ‘미드’나 OTT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케이블 채널(특히 tvN)에서 계속 시도해오고 있었지만, 지상파에서의 시즌제 드라마는 다소 드문 편이었어요.


SBS의 시즌제 드라마 제작은 타 지상파 방송사 대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올해 4월 ⟪낭만닥터 김사부 3⟫이 방영 예정입니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방영 중인 ⟪모범택시 2⟫도 시즌 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 2가 나올 수 있었죠. 김남길 주연의 ⟪열혈사제⟫와 김래원 주연의 ⟪소방서 옆 경찰서⟫도 시즌 2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SBS는 당분간 시즌제 드라마를 계속 만들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UNSPLASH  

그래서, 지상파 TV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요. 방송사가 노력한 만큼 시청자의 곁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은 디지털 플랫폼에 완전히 대체될까요. 


냉정히 말해 큰 흐름은 바꿀 수 없습니다. 멋들어진 콘텐츠를 만들어도 TV에서 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같은 콘텐츠여도 시청률보다는 조회수를 따지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여력이 된다면 큰 화면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시청하고 싶은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TV 자체가 집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지상파 채널은 그저 시청자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사들이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TV가 친숙하지 않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주 시청자층도 점점 다른 콘텐츠들을 찾아 떠날 겁니다. 시청자는 영원히 TV 앞에 모여있지 않으니까요. 사실 그건 넷플릭스에도, 유튜브에도, 또 많은 방송미디어 사업자들에게도 같은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레터에서 짚어드린 내용은 비단 지상파 방송사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라기보다는, 유관 서비스들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겨나는 변화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상파TV를 ‘올드 미디어’라고 부르지만, 사실 모두들 어떤 방식으로든 지상파 콘텐츠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AI가 등장해도 인력을 모두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운용할 인간이 필요하다고 하죠. 이처럼 변혁은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이 완벽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으니까요. 너무 불안해하기보다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돌파구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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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막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입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일어나는 사회적인 변화를 다루는 가사들이 지금 상황에서 새롭게 들리네요. 내년 초 한국어 공연도 예정이 되어있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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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구운김 • 식스틴 •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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