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de tour, 우리의 열한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현대 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뮤지컬이나 발레 등 많은 현대 무용 작품을 보다 보면, 과한 분장이나 연출 그리고 연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요. 사실 이러한 당혹감은 무용뿐 아니라, 현대 예술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마치 행위예술가들이 몰입해 예술을 표현하는 것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그만큼 대중들과 예술가 사이의 거리가 분명히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는데요.

 영화 <블랙스완>(2011)은 예술의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 이러한 거리감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무용수의 완벽을 위한 집착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며, 대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예술의 세계를 소개하는데요. 오늘은 그러한 영화 <블랙스완>의 비결에 대해 흥미롭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환자들의 꿈을 분석하던 중 융은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집니다. 환자들의 꿈속에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던 이미지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러한 유사성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어떠한 공통된 정신적 특성을 보이는데, 이는 어느 문화에나 퍼져 있는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띈다’라며, 그는 이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지정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구조를 자아,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나누었죠.

 또한 융은 인간은 특정 성숙기에 다다르면, 온전한 그대로의 자기가 되는 '개성화 과정’을 겪는다고 말했습니다. 자아를 외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서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는 것, 즉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아에서 개인 무의식으로, 끝내는 집단 무의식에 닿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아니무스’ 과정을 통해 ‘자기 원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죠.

 어머니로부터 남성과의 접근이 전무했던 니나에게 토마스 단장은 그녀의 아니무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 융은 여성 속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생각’이나 ‘의견’과 같은 이성적 능력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니나에게 단장은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즉 지독한 현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토마스 단장은 그녀의 능력을 끌어올리도록 일종의 멘토 역할을 자처합니다. 마치 아버지처럼 말이죠. 때때로는 무서운 채찍을 들며, 차갑게 그녀의 한계와 현실을 관철시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토마스 단장은 그녀를 지독히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 배경에는 ‘흑조’스러운 연기를 끌어올리기 위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디즘적인 성적 어필에 가깝습니다. 그가 완벽한 연기를 이뤄낸 여성 무용수들에게 “My little princess”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죠. 영화 결말에서 니나는 자신의 아니무스를 수용하기로 합니다. 흑조 연기를 마치고 즉흥적으로 토마스 단장에게 입을 맞춘 것인데요. 이로써 니나는 자신이 가진 남성에 대한 욕망을 분출하게 됩니다. 앞서 릴리와의 스킨십이 그림자와의 화해를 의미했던 것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백조의 호수’에서는 끝내 백조가 흑조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백조의 죽음은 어딘가 숙명적인 감상을 줍니다. 소녀로서 자신이 가진 순수함은 이제 완전히 폐기되는 것이며, 흑조의 발현을 긍정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조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이었다면, 흑조는 모든 무의식을 수용한 끝에 성장한 니나에 가깝습니다. 성장은 필수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이렇게 돋아난 날개는 자기실현의 영화적 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은 님과 우리 모두가 성장기 때 경험했던 것과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몸의 곳곳에서 털이 자라나고 목소리는 더욱 여성-남성스러워지는 2차 성장기.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때의 당혹감은 곧 사춘기로 이어질 정도로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렇듯 어린 나로부터 탈피하고 어른의 몸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은 여러모로 경악스럽습니다. <블랙스완>은 이러한 성장기 그리고 자아실현 과정에 맞닥뜨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와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잊고 있던 어릴 적의 공포를 직접 체감하게 만든 영화의 힘이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님은 어떤가요? 님은 니나가 느낀 공포에 공감하실 수 있으신가요?

 님이 생각하시는 <블랙스완>의 명대사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극중 마지막 대사인 “나는 완벽했어요”가 가장 인상 깊으실 텐데요. 여기서 말하는 ‘완벽’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흑조로 재탄생한 니나가 자신을 긍정하는 대사처럼 들리셨을 텐데요. 하지만 해당 대사는 흑조 연기 이후에 나온 대사가 아니라, 최종장인 ‘백조의 죽음’ 이후에 니나가 피를 흘리며 내뱉은 대사입니다. 극중 ‘백조의 호수’ 또한 클라이맥스 장면을 흑조의 결말이 아닌 백조의 죽음 장면으로 설정하였는데요. 이러한 극과 대사의 순서를 고려해 보면, ‘완벽’에 대한 해석은 보다 심상치 않아질 수 있습니다. 고전으로 잘 알려진 ‘백조의 호수’의 본래 결말은 <블랙스완>과 사실 조금 다릅니다. 원본의 결말에서 승리자는 사실 흑조가 아닌 백조인데요. 왕자는 흑조에게 흔들리지만 결국 백조와의 사랑을 택하고, 그녀와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떠나게 되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블랙스완>의 ‘백조의 호수’는 다소 객색된 것이죠. 왜 영화는 각색을 하면서까지 이러한 결말을 가지고 있을까요?

 칼 융은 앞서 설명드린 ‘개성화 과정’을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에게 예술이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형 이미지들이 예술적 재료가 되어 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즉 창조적 충동에 사로잡힌 예술가는 ‘개성화 과정’을 겪으며 집단 무의식의 도구가 될 뿐이지, 그 안에서 의지를 행사하는 것은 자기가 아닌 예술 작품인 것이죠. 기본적으로 예술가에게 있어서 예술 활동은 몰아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자아의 자리에는 집단 무의식에서 파생된 '원형’이 대체하게 되는 것이죠.

• Darren Aronofsky, <Black Swan>(2010)  

• Directed by: Darren Aronofsky
• Written by: Darren Aronofsky, Andres Heinz
• Distributed by: Cross Creek Pictures
• Cast: 나탈리 포트만,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등
• Running Time: 1h 48m
• OTT Service: D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