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새우깡 좀 얻어먹어야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것. 그러니까 무병장수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일 겁니다. 저 멀리 진시황까지 안 가더라도 널리고 깔린 예시가 많죠. (하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아들의 피를 수혈 받았다는 백만장자 이야기가 진시황보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그만큼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지금 당장 죽고 싶어!가 아니라 하 뭐 사람이 120살 200살까지 살 필요가 있나…? 백 년 넘게 사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정도의 소극적인 장수-거부자들이요.

저도 장수-거부자에 속합니다. 정확한 나이를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70살, 80살 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요. 물론 몇 살까지 살든 아프고 병든 채로 살고 싶지는 않으니 건강 행동들도 열심히 합니다.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되도록이면 건강식을 챙겨먹으려고 해요. 일가 친척 및 조상님들까지 대체로 건강한, 타고난 건강 체질이기도 합니다. 잠을 잘 자고 소식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입맛 같은 것도 보너스로 가지고 있고요. 덕분에 10년 전부터 “넌 나중에 알콜성 치매가 와도 몸뚱이는 건강할 거다” “오래 살기 싫다고 하지만 니가 우리 다 보내고(?) 올 거다” 같은 저주일지 칭찬일지 모를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죽어야지 늙으면 주그야지…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미래가 크게 궁금하지 않아요. 세상은 (아마) 악화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 참 축하할 일이지만 제가 꼭 그 모습을 봐야 하는 건 아니겠죠. 딴 소리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도 이겁니다. 스스로 기대하지 않는 미래에 너 알아서 살라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단지 이 세상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발전 좀 해보겠다는데 발목 잡는 놈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요~!

이런저런 이야기 다 핑계고 사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것도 맞습니다. 아무도 안 시켰지만 나름의 유난을 떨며 사는 건 제법 귀찮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정도는 다들 하고 사나? 어쨌든 저는 이 한 몸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어르고 달래는 데 참 많은 기력을 씁니다. 그건 꽤 번거로운 일이에요. 지금 당장 때려치고 싶은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몇십 년을 더 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을 만큼, 딱 그만큼이요. 그렇다고 누군가 나타나서 ‘이제부터 귀찮은 일은 내가 다 해줄 테니 너는 놀고 먹고 즐거운 일만 하렴’ 한대도 싫을 것 같습니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그래서 가끔은 궁금합니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인생이 대체로 행복해서일까요? 이런 생각 애초에 하지 않아야 오래 살고 싶을 수 있는 걸까요? 사람은 다 죽기 싫어하고 살고 싶어 한다…는 말로는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 그런 궁금증이 가끔씩 코리안 진시황들을 만날 때마다 불쑥 치고 올라옵니다. 저는 가끔 (매우 드물게)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이렇게 꾸준히 복을 쌓으면 이번 생에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고 성불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자칫(?) 오래 살게 되더라도 이번 생이 확실히 마지막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그나마 나을 것 같거든요.


세상을 발전시키는 부류가 정해져 있다면 그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일 겁니다. 생에 대한 의지와 행복과 희망으로, 앞으로 나 자신이 100년이고 200년이고 더 살아갈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죠.

하지만 소극적 장수-거부자로서 변명해보자면 우리(?)만큼 세상의 후퇴에 예민한 이들도 또 없습니다. 길게 살고 싶지 않을 뿐 지금 당장 사라져버리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잠시나마 쾌적하고 행복한 상태로 존재하고 싶기 때문에 세상이 후퇴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지금도 별로인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뒷걸음질쳤다가는 단번에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어서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나아가는 게 아닐까요.

서로를 인정하고 축하하면서…

저는 오늘 월요병 저리 비켜를 외치며(이 메일은 화요일에 발송되겠지만 오늘은 월요일이에요!) 열심히 일했고 집에 와서는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해 집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렸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나름 건강한 저녁을 챙겨 먹었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고 정신건강까지 챙겨주기 위해 이렇게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오래 안 살고 싶니 어쩌니 길게 주절거린 것 치고는 제법 장수 행동을 해버렸죠?

누가 알겠습니까. 가는 데는 순서 없고 인생은 예측불허이니 이러다 내일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200살까지 살아서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왕 태어난 거, 주어진 시간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게 오늘의 결론입니다. 일단 새우깡을 좀 얻어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갈매기 같은 결론이라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 나라는 존재… 등등에 휩쓸리다 결국 살고 싶지 않아지는 걸요.

새를 무서워해서 이 짤은 작게 넣었습니다  

새우깡이나 좀 얻어먹고, 내일은 또 일찍 일어나서 씩씩하게 일하러 가고, 저녁이면 어느새 선선해진 바람에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어요. 어차피 살아야 하는데(어떻게 살든 산다는 건 얼마간 고통인데) 누군가 세상을 더 못난 곳으로 만들어서 그 고통에 고통을 더하려고 한다? 어차피 다들 힘든 거 뻔히 아는데 누가 안 그래도 힘든 옆 사람을 괴롭히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주먹질도 퍽 하고 같이 소리 높여 싸워요. 그러다 보면 ‘이백살까지 살 거야’ 사람이든 ‘대충 살다 적당히 죽자’ 사람이든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겁니다. 한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행복한 게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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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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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02-6461-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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