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질문하는 신학』 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마케터 P입니다.
독자님은 ‘조직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처음 조직신학이란 말을 접했을 때 무척 딱딱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직’이라는 단어와 ‘신학’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인의 편견이 만든 결과였죠. 그 편견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분명 조직신학은 중요하고 가볍지 않은 학문이지만, 알아갈수록 그 무게를 상쇄하는 영혼의 자유함을 선물해 줬습니다. 이제 저에게 ‘조직신학’ 이라는 말은 교회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울창한 나무처럼 느껴집니다.
조직신학의 딱딱한 인상을 부드러운 말로 풀어 주는 좋은 책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김진혁 교수의 『질문하는 신학』은 목회자와 신학생뿐 아니라 신학의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읽고 소화하기 쉽게 구성된 책입니다. 비그리스도인이나 새가족,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까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독교에 대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난해한 궁금증에 대해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언어로 답해 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질문하는 신학』 ‘1장, 하나님과 세계’에서 김진혁 교수는 ‘신학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에 대해 두 신학생 이야기를 빌려 화두를 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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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유학 시절 만난 한 열정적 신학생 이야기다.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등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당수의 학생이 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신학교 생활을 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 출신 신입생이 초기에 이런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학교 관계자를 찾아가 ‘왜 목회 소명이 없는 사람에게 입학 허가를 내줬냐’ 라는 질문을 했다. 이 학생의 질문에는 신학 공부는 목사나 신학자로서 소명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또 다른 신학생의 이야기다. 박사 과정 당시에 필자의 바로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나이가 많은 영국인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면서 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그 친구는 약간 주저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과거에 선교지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간 사이에 테러리스트가 사무실을 공격하여 그 자리에 있던 동료들은 다 목숨을 잃었다. 선교지를 떠나서 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심각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어색해하는 필자를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할 뿐이야.” 이 경우는 파편화된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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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신실한’ 신학생이 신학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이유는 이 독특한 학문의 본성과 사명을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신학을 ‘교회를 위한 학문’으로 보고 있다면, 후자는 신학을 하나님의 뜻을 충만히 반영하며 살도록 돕는 ‘삶의 기술’art of living로 파악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신학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기능인만큼,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은 다소 위험하고 폭력적인 요청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의 학문’으로서 신학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는데, ‘삶의 기술’로서 신학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완전히 만족할 만한 답변은 아니겠지만, 일상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상을 예로 삼아 생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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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건강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사실 텔레비전을 통해 건강정보를 얻기 전에도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 잘 살고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는 매사에 필요 이상으로 조심하게 하는 건강 염려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가 준 의학적 정보는 몸을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작은 노력으로도 더 건강해질 수 있는 운동법을 찾게 해줄 수도 있으며, 잘못된 생활이나 식습관을 교정하게도 한다. 게다가 적절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주변 사람의 건강도 챙겨줄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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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역할과 기능도 이와 유사하다. 몸에 대한 지식 없이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있듯, 신학을 모르고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다. 건강에 대해 넘치는 지식이 건강 염려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듯, 과다한 신학적 지식은 지루한 논쟁이나 추상적 사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肝)에 대한 지식 덕분에 우리가 간의 기능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간을 건강하게 관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듯, 하나님과 인간, 교회나 구원 등에 대한 적절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이 더 충만히 삼투된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학은 본질적으로 교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실천적 지식에 가깝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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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용과 토론을 위한 질문
- 이 책을 읽기 전 여러분은 신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본 장이 신학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에 변화를 주었는가?
- 신학을 학문으로 볼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반대로 신학을 학문이 아니라고 볼 때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신학은 꼭 교회의 학문이어야 하는가? 진리는 그 자체로 추구될 필요가 있다 면, 신학도 교회와 별개로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 신학을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라고 가볍게 정의하는 것에 만족하는가? 이 정의가 지니는 장점 혹은 단점이 있는가?
- 여러분은 신학이 여러 세부 전공으로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근대 이전처럼 통합적으로 보아야 할까?
- 신학을 하면 왜 신앙이 없어지거나 교회에 대한 애정이 약해진다고들 하는 것일까?
- 신학자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면, 진리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신학의 정체 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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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번째 <신학 수업>은 김진혁 교수의 『질문하는 신학』에서 발췌했습니다.
<신학 수업>은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독자님의 메일함에 유익한 조직 신학 뉴스레터를 발송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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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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