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VOL. 028  |  2024. 11. 06.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 0.72명.


한국이 직면한 저출생, 인구감소 위기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통계청은 현 추세라면 인구가 2024년 5175만명에서, 50년 정도 뒤인 2072년에는 3622만명으로 30%(1553만명) 급감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구감소가 경제 사회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죠. <총균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일부 학자들은 “AI 시대를 맞아 인구감소 위기는 극복 가능하고,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경제성장과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합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선진국클럽인 OECD 회원국 중 최저입니다. OECD 평균인 1.49명(2022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합계출산율이 1에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폴란드도 1.12명(2023년)입니다.


전문가들조차 한국의 0.72이라는 숫자는 “현실성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자연적으로는 존재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의미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하며 저출생 문제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 가동을 다짐한 배경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진작 했어야 할 일입니다.


한겨레가 지난달 24일 주최한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저출생 축소사회’를 주제로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감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겨레의 정중한 요청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언론사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린 다른 언론사 주최 행사에는 대부분 참석한 점, 포럼 주제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록 국정 지지율이 20%를 밑돌 정도로 인기 없는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의 참석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일본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어린이가정청의 나카하라 시게히토 종합정책담당 참사관이 9월3일 도쿄 중심가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아시아미래포럼 개최에 앞서 지난 9월초 일본의 저출생 상황과 정책 대응을 취재했습니다. 일본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어린이가정청을 인터뷰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을 알아보기 위해 도쿄 북쪽 군마현의 전원마을인 가와바촌을 방문했습니다. 인구와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도 만났죠. 한국과 일본은 서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유사한 사회·경제·문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출생 대응 경험은 한국에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9년의 ‘1.57 쇼크’입니다. 합계출산율이 종전까지 가장 낮았던 1966년의 1.58명보다 더 낮아진 데 대한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일본은 1994년 첫 종합대책인 ‘에인절플랜’을 수립했습니다. 한국이 2005년 ‘저출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한 것과 비교하면 최소한 10년 이상 빠른 것이죠. 이후 아베와 기시다 정부를 거치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을 더는 미뤄서는 안되고,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합니다.

최슬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은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저출생 현상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종합 결과”라고 표현했습니다. 각국의 저출생 정책이 매우 다양한 이유입니다. 결혼·출산·양육·돌봄 지원은 기본이고,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 일자리·주거·교육 등 사회구조 개선, 성평등 개선 또는 성차별 해소(윤석열 정부는 양성평등으로 표현) 등 사회와 기업의 환경 개선, 장시간노동 개선과 잔업 폐지 등 노동시장 개선을 망라합니다. 각국의 사정이나 조건이 다른 만큼 어느 정책에 우선점을 둬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같은 국가라도 해도 환경 변화에 따라 정책 변화도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 9월3일 도쿄에서 만난 나카하라 시게히토 일본 어린이가정청 종합정책담당 참사관에게 지난 30년간 일본 저출생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보육시설 확대가 핵심 키워드였다. 이후 남성의 육아 참여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0년 이후에는 결혼 장려 정책이 중요시되고 있다.” 일본 저출생 정책의 강조점이 보육시설 확대→남성의 육아 참여→결혼 장려로 변천했다는 답변입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도 일본 경험과 한국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어디에 우선점을 둬야 하는지가 계속 화두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일본 저출생 정책 흐름과 맥이 닿는 흥미로운 분석이 다뤄져 소개합니다.
카렌 에글스턴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실장이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동북아 저출생:아시아의 공통원인과 문제진단’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① 낮은 성평등이 낳은 동아시아의 저출생 위기
캐런 에글스턴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실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저출생 현상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0.72명) 뿐만 아니라 일본(1.2명), 중국(1.0명), 대만(0.87명) 등 모두 낮은 합계출산율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에글스턴 실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평등이 서구에 비해 낮은 것에 착안했습니다. 성차별이 출생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고, 출생률을 높이려면 성평등 개선이 긴요하다는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에글스턴 실장은 성평등과 출생률 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 실증분석을 보여줘 주목을 끌었습니다.

에글스턴 실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으로 낮은 합계출산율로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한 것과 관련 “남성의 가사와 육아분담 비율과 출생률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면서 실증분석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비율은 2012년 기준 17~18%에 그치고, 일본은 한국보다 더 낮은 16%에 불과합니다. 이는 출생률이 높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분담비율이 30% 이상인 것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합계출산율은 1.8~2.0명으로 한국의 2~3배에 이릅니다. 그는 또 “한국은 전체 가사노동 시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 89.2%에서 2019년 77.6%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서구에 비하면)높은 수준”이라면서 “한국의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가 2024년 기준 세계 146개국 중 94위에 그쳤고, 중국은 106위, 일본 118위로, 동아시아 국가 모두 세계 최하위권에 그쳤다”고 강조했습니다.
합계 출산율과 남성의 가사 및 육아 분담비율의 상관관계. 카렌 에글스턴 재인용
② 일본의 저출생 대책, 남성의 육아휴직 85%가 목표
일본이 지난해 12월 기시다 전 총리의 지시로 수립한 ‘어린이 미래전략’의 4가지 포인트 중 하나인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남녀 모두 보육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두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현재의 30%에서 2030년 8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죠. 최근에는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은 잔업시간과 육아휴직 사용률 공표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통과시켰습니다.

시게히토 참사관은 지난 30년간 일본 저출생 정책의 종합평가를 요청하자 “엔젤대책을 수립할 당시 어린이들이 보육원에 못들어가고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육아를 맡기는 문화가 바뀌지 않아. 여성이 결혼하면 커리어를 살리기 어렵고, 여성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일본 남성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은 육아와 가사는 여성이 할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출세를 위해 회사에 뼈를 갈아 넣으려면 시간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저출생 위기 극복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의 ‘일하는 방식의 개혁’에 대해 “여성에게 육아휴직을 주고, 일-가정이 양립하도록 혜택을 줘도, 남성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여유가 없으면 육아에 참여할 수 없다”면서 “현대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를 남성과 함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잔업 폐지, 남성들의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③ 성차별 지표로 본 한국의 현실, 12년째 OECD 꼴찌
그럼 한국의 성차별, 성평등 상황은 어떨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6.8%입니다. 2021년의 4.1%에 비하면 큰 폭(2.7%)으로 상승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30%에 비하면 아직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낮은 수준입니다. 아직도 상당수 직장에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한겨레가 지난 10월6일 여론조사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9살~44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월10~13일)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부부가 가사 분담이 공평하냐”는 질문에 ‘그렇다’(69.3%)는 답변이 ‘아니다’(30.7%)의 두배를 넘습니다. 또 “부부간 양육분담이 공평하냐”는 질문에도 그렇다(61.9%)는 답변이 ‘아니다’(38.1%)보다 많았습니다. 젊은 세대의 성평등이 부모세대보다는 진일보됐지만, 아직도 충분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에글스턴 실장의 발표에서도 나타났지만 한국의 극심한 성차별은 글로벌 사회에서도 악명이 높습니다.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유리천장지수’가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강조했습니다. 유리천장지수는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육아휴직 등 세부지표를 종합해 산출합니다. 한국은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1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의 남녀별 평균 임금격차는 지난해 12%입니다. 반면 한국의 임금격차는 31.1%로 두배를 넘습니다. 1996년 OECD 가입 이후 27년간 부동의 최하위입니다.
한국은 OECD 주요회원국 중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크며, 우리나라 여성은 남성보다 31.1% 정도 임금을 덜 받고 있음. e-나라지표
저출생, 축소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대로 가다간 공동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출산율 제고에 방점을 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생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추세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저출생 조건 하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민 확대, 이주노동자 확대 등이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됩니다. 두가지 의견 모두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은 출산율 제고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모두 핵심 요소라는 것이죠. 또 이 문제는 수단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정책의 3대 핵심분야로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지원을 제시했습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 꼭 필요한 정책들입니다. 하지만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을 전면적으로 내걸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물론 정부가 이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10월30일 제5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내년 3월부터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한 민간기업 2600여 곳을 대상으로 남녀 직원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의무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현재는 공공기관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은 이미 법으로 강제하는 사항입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이중근(가운데)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월5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쌍둥이 딸을 둔 오현석 주임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부영그룹 제공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도 저출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출생은 궁극적으로 기업경영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부영그룹이 올해 초 출산 직원에게 자녀 1명당 1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게 상징적입니다. 경제단체들도 앞다퉈 저출생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종의 주도권 다툼 양상을 띠기도 하죠. 얼마 전 경제단체의 한 간부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저출생 위기 극복의 핵심 과제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 제고를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노동유연성, 잔업 금지, 노동시간 단축 등과 같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정부와 기업 공동으로 추진합니다.
 
윤석열 정부도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2022년 6.8%에서 임기 안에 5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기업들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우리 기업들과 경제단체들도 일본처럼 ‘노동유연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주52시간 근로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본 이득 극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동유연성입니다. 일본이 남녀 모두 보육에 좀 더 충실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려고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는 것과 딴판이죠. 당연히 일본이 강조하는 잔업 폐지, 근로시간 단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이 입으로만 저출생 극복을 말하는 한 진정한 위기 극복은 힘들 것입니다. 기업들은 깜짝쇼보다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으로 허둥대지 말고 미리미리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스탠퍼드대 에글스턴 실장의 연구가 보여주듯, 성평등과 출산율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일본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2030년까지 85%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반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6.8%에 그치고, 유리천장지수는 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은 결국 성평등에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스피커스가 여러분들 곁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서 전해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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