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습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밸런타인데이’와 ‘무말랭이’가 궁금해서 펼쳐보니 오래전 2월 14일 저녁나절에 ‘무말랭이 조림’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무말랭이 조림을 맛있게 만들어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인데, 그런 날 저녁에 왜 ‘나’는 제 손으로 만든 된장국을 마시고, 또 ‘내’가 만든 무말랭이 조림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해요. 옛날에는 ‘나’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고등학교 때는 세 명의 여자아이에게 초콜릿을 받았고, 대학 시절에도 심심찮게 초콜릿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밸런타인데이 저녁에 무말랭이 조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조금은 시시껄렁한(!) 이야기였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이야기에 무척 공감이 되어, 훗! 하고 웃게 되더라고요.
공교롭게도 이번 <계절공방>의 레터 발송일이 밸런타인데이의 아침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누구에게 초콜릿을 선물할지 고민하며며칠 전부터 설레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와도 고백할 사람이 한 명도 없더니, 이제는 고독하게 북 큐레이션 글을 쓰며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이 되었네요(씁쓸~).
<계절공방> 회의 때, 밸런타인데이를 핑계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슬쩍 의견을 냈는데 그게 채택이 되었어요. 사랑에 관한 책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큐레이션을 하려고 보니 떠오르는 책마다 가지가지의 이유로 제외하게 되더군요. 흥미롭지만 슬픈 결말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해피 밸런타인데이’에 고통스러운 문장이 가득한 소설은 안 된다고 빼버리니, 소개할 책이 여러 번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머릿속에서 스치듯 떠오른 책들이 있었죠. 한때 나의 바이블처럼 여겼던 소설부터 요즘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까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중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책은 거의 없겠지만 그 책 중에서 제가 고르고 고른 다섯 권의 사랑에 관한 책을 소개해보려 해요. 비록 이제는 무말랭이 조림이나 만들어 먹는 하루키처럼 사랑에 관한 북큐레이션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한때는 저도 밸런타인데이를 즐기며 설레기도 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