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걱정이 많은 사람, 아우구스티누스

#116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사고방식

#117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118 나 자신이라는 용어는 복음에 없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편집자 B입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 너머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교회를 개척했던 아버지는 어느 교인에게 심방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보험을 해지하고 그 돈으로 심방을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어머니는 보험은 해지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다툼은 결국 신앙의 문제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인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안위를 파괴하면서까지 희생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어디까지 자신의 안위나 가정을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소개하는 신학자 윌리엄 틴들은, 복음에는 ‘나 자신,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척’이라는 용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존재를 사랑의 빚진 자로 비유합니다. 이 땅을 사는 우리 모두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물건을 맡은 청지기임을 일깨워 줍니다. 청지기의 본분은 맡은 물건을 잘 보관해야 하고, 때로는 주인이 요청한다면 내어놓을 수도 있어야 하겠지요.

#118 나 자신이라는 용어는 복음에 없다

위대한 성경 번역자이자 개혁파 신학자였던 윌리엄 틴들은 신학자로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를 번역자로, 영어로 된 신앙 언어에 최고의 중세 초기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상어 느낌을 되살려 낸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으니 요셉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틴들이 번역한 창세기의 훌륭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흠정역, 곧 킹제임스 역본을 살펴보면 영어를 다소 자제된 표현으로 바꾸려는 대단히 일관된 틴들의 작업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틴들은 재능 있고 간결하고 재미있는 번역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회 질서에 관한 심오하고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틴들이 보기에 하나님은 특정한 사회관계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교회는 서로를 하나님처럼 대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에 빚진 것에 감격한 나머지 서로에게 즐겁고 감사하게 빚진 상태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빚과 빚진 상태의 이미지는 틴들의 관심을 크게 사로잡았고, 그는 신약성경의 가장 어려운 비유 중 하나인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다룬 논문에서 이 이미지에 대한 내용을 아주 유창하게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목은 아주 짧습니다. 그는 그 비유를 발판 삼아, 하나님을 우리에게 빚진 분으로 만들려는 그리스도교적 또는 종교적 관행과 사고방식들을 제시합니다. 그에게 이런 행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종의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는 종교 활동과 생각의 체계 일체, 곧 “나는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일을 한순간도 거부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그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다”는 식의 태도는 참된 믿음에 독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태도는 틴들이 일종의 종교적 전문주의로 여기는 행태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러 범위에서 전문가적 활동들을 전개하고 탐구하는데 이런 활동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빚진 분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상태를 보존할 목적으로 종교 기관들을 설계하여 만들고, 그 와중에 우리가 보살펴야 마땅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 형태의 빚은 대체로 무시합니다.

 

물론 틴들은 이것을 직설적이고 실제적인 용어로 표현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을 왜 영정미사 성당chantry chapel(미사 기금을 남기고 죽은 연령을 위해 미사를 지내는 소성당—옮긴이)에 기부하여 허비하는가? 자신이 속한 자연적 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 소명인데 왜 수도공동체에서 일생을 보내는가? 이런 영정미사 성당과 수도회들은 하나님께 빚을 지우려는 종교적 전문가주의의 사례에 불과하지 않은가?

 

영정미사 성당이나 수도회에 대한 틴들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나는 지금 그가 그것들에 그토록 분노한 이유를 알아내려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틴들은 ‘종교’에 대해 항의했고, 종교라는 영역을 인간 활동의 다른 영역들과 분리하는 것에 항의한 것입니다. 여기, 틴들이 『성경으로 가는 길』A Pathway Into the Holy Scripture에서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틴들은 여기서 마르틴 루터가 좋아하는 개념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에 틴들은 루터의 저작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하시고 관대하신 것은 하나님께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의 생명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가 선하고 관대하게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설득하여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선함과 관대함은 우리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선하고 관대하지 않은 존재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틴들의 또 다른 교리적 논문 『사악한 맘몬의 비유』The Parable of the Wicked Mammon에 나오는 빚진 상태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봅시다.

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하고 우선적으로 빚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틴들의 책을 편집한 초기 개신교 신자들은 이 부분을 괄호에 넣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받기에는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문체에 담긴 엄청난 에너지에서 느껴지듯, 틴들은 여기서 크게 흥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빚진 상태라면,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는 의미이므로 이런 결론이 따라오게 됩니다. 상대가 투르크족이든 교황주의자들이든 개의치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빚진 것을 그들에게도 빚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듯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것의 당연한 귀결은 우리의 관대함과 선함이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나온다는 것과, 그것이 모두에게 영구적이고 즐거운 빚을 졌다는 태도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필요가 있는 곳에는 사랑의 빚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