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밀스런,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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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tter Hill Ventures - 1,500배의 추억
  
1962년 설립된 가장 오래된, 가장 비밀스런,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Sutter Hill Ventures 이야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왠만해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 홈페이지에 주소만 달랑 적어놓고 공식 언론 인터뷰조차 찾아볼 수 없는 벤처캐피탈,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이야기하는 곳, 바로 Sutter Hill Ventures 입니다.
 
Sutter Hill Ventures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사건은 2020년 9월 스노우플레이크의 상장입니다. 소프트웨어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끌어모으며 90조 원의 기업가치로 상장에 성공한 스노우플레이크는 상장 전 워렌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까지 유치하며 팬데믹 당시 기술주 IPO 열풍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대표 기업입니다.

스노우플레이크 상장 당시 최대주주는 20%의 지분을 보유한 Sutter Hill Ventures 였습니다. 공모가 기준으로 보유 주식의 가치는 7조 원, 상장일 당일에만 주가가 2배 가까이 치솟으며 당시 보유 지분의 가치는 무려 14조 원을 육박하였습니다. 단일 투자 건으로 벤처캐피탈이 기록한 수익 규모로는 페이스북 시리즈A를 리드한 Accel의 9조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의 벤처 투자 성공 사례였습니다. 2012년 시드 투자 당시 투자 단가가 0.17달러이었고 IPO 당일 종가가 245달러였으니 산술적으로 8년만에 1,500배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Sutter Hill Ventures가 이렇게 많은 지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스노우플레이크의 시드 단계부터 매 라운드 투자금을 늘리며 무려 8년에 걸쳐 회사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12년 설립 당시의 시드라운드, 설립 후 6개월만에 60억 원 규모로 진행된 시리즈A 라운드는 Sutter Hill Ventures가 유일하게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며 초기 지분을 독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장까지 희석이 이어짐에도 불구, 8년 동안 상당한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운이 좋았던 걸까요? 아님 혜안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실 Sutter Hill Ventures의 이야기를 좀 더 파헤쳐보면 스노우플레이크의 성공에는 단순한 '벤처캐피탈의 투자'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노우플레이크는 2012년 벤처캐피탈 Sutter Hill Ventures의 사무실에서 탄생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탈이 만든 회사, 스노우플레이크

실리콘밸리에서는 10년마다 시대를 관통하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이 탄생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처럼 누구나 아는 이름은 아니지만 인터넷 생태계의 길목을 쥐고 독점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숨은 강자들이죠.

2000년대를 대표하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로 인터넷 업계를 평정했던 오라클입니다. 2010년대는 SaaS의 시초로 불리며 M&A로 몸집을 불린 CRM 소프트웨어 강자 세일즈포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이후 최대 기대주는 '데이터클라우드' 시장을 이끌고 있는 스노우플레이크입니다.
앞선 두 회사인 오라클과 세일즈포스의 성공에서 카리스마있는 창업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라클의 래리앨리슨과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이죠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오른쪽)은 개인 자산 100조 원 이상을 보유한 숨은 거부로 유명합니다. 세일즈포스의 마크베니오프(왼쪽)는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향력있는 CEO이죠. 또한 래리앨리슨은 공화당, 마크베니오프는 민주당에 상당한 기부를 하는 큰손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스노우플레이크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카리스마있는 창업자가 없습니다. 물론 현재 스노우플레이크를 이끄는 프랭크 슬루트만은 2007년 데이터 도메인, 2012년 서비스나우, 2020년 스노우플레이크까지 3번의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IPO를 이끈 엔터프라이즈 분야 최고의 경영자 중 한 명 입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2019년 스노우플레이크에 영입된 전문 경영자이지 창업자는 아닙니다.


스노우플레이크는 2012년 Sutter Hill Ventures의 사무실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때문에 회사를 상징하는 카리스마있는 창업자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스노우플레이크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스노우플레이크의 공동창업자이자 초대 CEO인 Sutter Hill Ventures의 수장 마이크 스파이저(Mike Speiser)의 이야기를 따라가봐야 합니다.
Sutter Hill Ventures의 수장 마이크 스파이저
마이스 스파이저 = 어벤져스를 만드는 닉 퓨리

2008년 야후에서 VP of Product를 역임했던 마이크가 2009년 Sutter Hill Ventures에 합류한 후 처음 집중한 분야는 데이터 스토리지입니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의 저장 방식이 회전식 디스크에서 플래시 드라이브로 전환되는 흐름을 발견한 마이크는 시맨텍의 스토리지 전문가 존 콘글로브와 야후의 아키텍처를 담당한 존 헤이즈를 영입하여 플래시어레이 기반 대용량 스토리지 기업 '퓨어 스토리지 (Pure Storage)'를 공동창업하고 초기 투자를 주도합니다.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와 데이터 아키텍처에 집중하던 마이크는 퓨어스토리지를 만들어가면서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 고객의 니즈가 변해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초창기에는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클라우드 기업 서비스 한 곳을 이용하는 '단일클라우드'가 일반적이었지만 향후에는 다수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병행하여 사용하는 '멀티클라우드'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간파한 것이죠. 마이크는 여러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웨어하우스 기업인 '스노우플레이크'를 구상합니다. 마치 구름(클라우드)위에 눈꽃(스노우플레이크)층을 하나 올리는것처럼 말이죠.

마이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서비스를 만들기위해 오라클에서 데이터 아키텍처를 총괄하던 비노이트와 티에리를 영입합니다. 또한 네덜란드에 위치한 데이터베이스 관리 기업 벡터와이즈를 창업한 마르신 또한 공동창업자로 합류합니다. 마이크는 이렇게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데려와 Sutter Hill Ventures의 사무실에서 곧바로 제품 개발에 돌입합니다. 또한 마이크 자신도 스노우플레이크의 CEO를 맡아 인재 영입 및 고객 영업에 나섭니다. 초기 투자는 모두 Sutter Hill Ventures가 도맡았습니다. 마치 실험실 프로젝트처럼 전문가들을 영입해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창업해가는 방식으로 탄생한 곳이 바로 스노우플레이크인 것입니다.
마이크스파이저의 투자 포트폴리오 - 회사의 설립을 주도하는 설립파트너이자 투자자의 역할을 맡음 
퓨어스토리지와 스노우플레이크 두 사례만 보더라도 Sutter Hill Ventures, 그리고 그 곳의 수장인 마이크 스파이저의 투자 접근 방식은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탈이 시장의 기회를 발견하여 사업을 일궈가는 창업자를 만나 그의 회사에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로켓에 올라탄다면, Sutter Hill Ventures는 인재들을 데려와 회사를 직접 만드는 소위 'NASA'의 역할을 하는 곳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마이크의 역할은 어벤져스를 만드는 '닉 퓨리'를 연상시킵니다. 지구에 위협이 되는 적에 대항하기 위해 출중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를 찾아나서는 쉴드의 수장처럼 마이크 또한 회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미래에 필요한 회사를 파악하고 자신의 비전에 부합하는 회사를 만들기위해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 회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비범한 20대 초반 창업자'와 'Product-Market Fit'이 지배하는 현재의 스타트업 신을 생각해보면 사실 Sutter Hill Ventures의 접근법은 현재 실리콘밸리에서도 비주류 중의 비주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벤처스튜디오와 Entrepreneur-in-Residence (EIR)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Sutter Hill Ventures의 접근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80 - 90년 대 실리콘밸리를 풍미했던 소위 '벤처스튜디오' 모델이 그 근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래 시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벤처캐피탈의 역할은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창업자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데려와 회사를 만드는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벤처캐피탈' 이론에 기반을 둔 접근법입니다.

지금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을 살펴보면 'Entrepreneur-in-Residence (EIR)'란 타이틀을 사용하는 인력들을 가끔 접할 수 있습니다. 보통 회사를 창업하여 매각에 성공한 창업자들이 벤처캐피탈에 적을 두고 6개월에서 1년 간 다음 사업 아이디어를 찾을 때 사용하는 타이틀입니다. 벤처캐피탈은 능력이 검증된 뛰어난 창업자의 다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독점권을 가져갈 수 있고 연쇄창업자는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다양한 리소스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창업리스크를 줄이는 일종의 협업 모델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벤처스튜디오와 EIR 모델은 닷컴버블을 지나며 인기를 잃게 됩니다. 1)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2) 뛰어난 인재가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면서 스타트업 수도 급증하였고 3) 구글과 페이스북처럼 전혀 창업 경험이 없는 20대 초중반 창업자의 회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조단위 기업을 만들어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과연 벤처캐피탈이 창업에 있어 '경쟁우위'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탈의 성공방정식이 '미래를 보는 혜안'이 아닌, '대어가 될 회사를 찾아 어떻게든 빨리 투자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마이크스파이저의 인큐베이션 성공방정식 - 설립 단계부터 CEO를 맡아 인재영입과 운영촐괄 역할을 수행함
Sutter Hill Ventures의 마이크는 '기술 연구와 개발'이 중요한 분야에서 여전히 벤처스튜디오 모델이 유효하다고 봅니다. 랜덤하게 찾아오는 창업자들의 '결심'에 미래를 걸 수 없다는 것이죠.

Sutter Hill Ventures는 인큐베이팅 단계에서 크게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합니다.

1️⃣ 거대한 매크로 트렌드 
2️⃣ 오랜 기간 해결되지않는 문제점
3️⃣ 기술적인 난관이 존재함
4️⃣ 수십조 원 규모의 잠재 시장

그리고 창업 팀을 꾸린 후 최소 2 - 3년 간 스텔스모드로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집중합니다. 기술적인 난이도가 있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기 때문에 그만큼 장기적인 시각으로 초기 연구 및 개발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해당 기간동안 어떤 제품을 누가 개발하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 수월합니다. 대부분 Sutter Hill Ventures가 단독으로 투자를 하며 타 VC의 접근도 차단합니다.

스노우플레이크는 설립 후 2년이 지난 2014년 10월 처음으로 대중에게 서비스를 공개합니다. 2년의 인큐베이팅 기간 동안 CEO를 맡은 마이크는 서비스 공개 시점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영업의 신'으로 불렸던 밥 무글리아를 CEO로 영입하며 자신은 이사회 역할로 물러납니다. 그리고 초기 제품 개발이 완료된 2014년부터 스노우플레이크는 본격적인 B2B 영업에 나서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합니다.

Sutter Hill Ventures의 또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가 있습니다. 베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실리콘 음극재 소재를 개발하는 기업인데, 2011년 Sutter Hill Ventures의 인큐베이션을 통해 설립된 이후 무려 10년 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21년 첫 상업 제품을 출시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으며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어가고 있는 세미파이브(SemiFive)는 2015년 미국에서 반도체 설계 오픈소스 플랫폼 '리스크파이브(RISC-V)'를 개발한 사이파이브(SiFive)의 관계사입니다. 그런데 사이파이브의 기원을 따라가보면 또다시 Sutter Hill Ventures를 만나게 됩니다. 2015년 사이파이브의 설립부터 단독으로 투자를 집행한 곳 또한 바로 Sutter Hill Ventures이기 때문이죠.


당시 투자를 주도하고 현재도 이사회에 참여하고있는 Sutter Hill Ventures의 스테판 다이커호프는 시스코와 주니퍼네트워크 출신의 시스템 아키텍처 전문가이며, 평소 알고지내던 UC버클리의 반도체 교수 크르스테 아사노빅이 창업에 나서자 시리즈A를 단독으로 집행하며 지금까지도 최대주주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Sutter Hill Ventures의 투자 영역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넘어 배터리 소재에서 반도체 설계까지 다양합니다. 게다가 어려운 기술 문제에 도전하는 회사를 설립 단계에서부터 투자하거나 인큐베이팅한다는 점에서 국가 연구 기관에 버금갈 정도로 관심 범위가 깊고 넓습니다.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Sutter Hill Ventures는 세콰이어캐피탈이나 a16z와 같은 유명 VC들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투자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 Sutter Hill Ventures는 가능한가?

50년 이상 축적된 벤처 인큐베이션 경험, 스노우플레이크와 같은 초대형 성공 사례 등 Sutter Hill Ventures의 성공방정식은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모델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십 곳의 회사에 투자하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여느 벤처캐피탈과 달리, 인큐베이션 단계부터 단일 회사에 10년 씩 장기투자하는 모델이 여타 벤처 펀드 대비 리스크도 훨씬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Sutter Hill Ventures가 뛰어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Deep Technology Root - "우리는 투자자 집단이 아닌, 연구자 집단"

Sutter Hill Ventures의 인력들을 살펴보면 소위 '투자자'의 커리어를 가진 인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경험을 축적한 창업자 또는 기술 기업 경영진이 Sutter Hill Ventures를 구성하는 핵심 인력입니다.

  • 마이크 스파이저: 에피니온스 공동창업자 ('99-'01), 시맨텍 VP ('01-'06), 야후 VP ('06 - '08)
  • 빌 불: 애플 디자이너 ('06-'08), 야후 프로덕트 디자인 ('08-'12), 퀘이크랩스 창업자 ('12-'15)
  • 스테판 다이커호프: 주니퍼네트워크 ('97-'04, '09-'12) 시스코 VP ('04-'09)
  • 샘 풀라라: 야후 아키텍트 총괄 ('06-'10), 트위터 ('11-'14)
  • 빅 밀러: 루미나랩 ('13-'15), 애플 ('15-'17), 테슬라 ('17-'18), 시크옵스 VP ('18-'20)

"We architect, build, and amplify the success of advanced technology companies."

Sutter Hill Ventures의 모토를 가장 잘 설명한 표현입니다. 보다 발전된 기술 기업을 설계하고, 만들고, 성공시키는 역할이 투자사의 본업이라는 표현이죠. 실제로 Sutter Hill Ventures는 과학자들을 직접 데려와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문헌정보학 분야 박사 연구원을 찾는 Sutter Hill Ventures의 채용 공고
"Computer architecture, operating systems, languages, compilers, distributed systems, databases, analytic processing, formal methods, machine learning, cloud-native applications, system security, and the user interface ecosystem are all highly relevant to the systems and companies we build here at Sutter Hill Ventures."
Sutter Hill Ventures에서 창업자가 중심이고 투자자는 서포터라는 관계설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려운 기술 문제에 도전하여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에서 모두가 제 역할을 하는 실험실의 문화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창업자 뿐 아니라 최고의 연구 인재를 데려와 공동창업자의 타이틀을 부여하고 초기 사업 개발 단계를 맡깁니다. 연구가 연구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대학실험실의 인재들이 Sutter Hill Ventures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2) Talent Density - 넘보기 어려운 두터운 인재 네트워크

회사를 시드부터 IPO 단계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재를 영입하고, 이렇게 Sutter Hill Ventures의 네트워크에 들어온 인재가 또다시 Entrepreneur-in-Residence로 투자사의 지원을 받아 창업에 나서는 선순환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거미줄같은 네트워크는 Sutter Hill Ventures만의 강점입니다. 

⏱️ 장면 1 2000년부터 Sutter Hill Ventures를 이끌어온 짐 화이트는 2006년 마이크 스파이저의 두 번째 창업회사인 Bix.com의 시리즈A 투자를 주도합니다. 그리고 투자 6개월만에 Bix.com이 야후에 인수되면서 야후의 커뮤니티 프로덕트 헤드로 근무하게된 마이크를 2008년 Sutter Hill Ventures로 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마이크와 Sutter Hill Ventures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 장면 2 존 헤이즈는 2006년 Bix.com 창업 시 초기 엔지니어로 합류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합니다. Bix.com이 야후에 인수되며 자연스럽게 야후에 합류한 존은 2009년 마이크가 Sutter Hill Ventures에서 퓨어스토리지를 창업하자 아키텍처 총괄이자 공동창업자로 퓨어스토리지에 합류하게 됩니다. 2015년 퓨어스토리이지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존은 2017년 Sutter Hill Ventures의 EIR로 합류하여 1년 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당시 Sutter Hill Ventures의 인큐베이팅으로 탄생한 고스트 오토노미(Ghost Authnomy)의 공동창업자이자 CE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장면 3 테슬라의 '7번째 직원'으로 유명한 진 베르디체브스키는 2004년부터 4년 간 테슬라의 초창기 베터리 아키텍처 설계를 도맡은 엔지니어입니다. 그리고 차세대 베터리를 좀 더 연구하기위해 2008년 스탠포드로 돌아온 진은 2010년 Sutter Hill Ventures의 EIR로 합류하여 연구를 이어간 후 2011년 실리콘음극재 개발 기업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합니다. 현재도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를 이끌고있는 진은 2017년 존 헤이즈가 고스트 오토노미를 창업하던 단계부터 마이크와 함께 이사회에 참여하여 Sutter Hill Ventures의 모빌리티 포트폴리오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John Hayes 링크드인 프로필  
Gene Berdichevsky 링크드인 프로필  
Sutter Hill Ventures를 거쳐간 창업자들을 따라가다보면 서로 얽혀있는 수없이 많은 네트워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와 고스트 오토노미가 모빌리티 기업들의 한 축이라면, Sutter Hill Ventures의 성공사례인 스노우플레이크에서도 여러 스타트업들이 파생되어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SaaS Observability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Observe Inc.입니다. 델 컴퓨터의 CMO로 근무하던 제레미 버튼은 예전 시맨텍에서 마이크 스파이저와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2015년 스노우플레이크의 이사회 멤버로 합류합니다. 그리고 2018년 Sutter Hill Ventures에서 EIR로 6개월동안 인큐베이팅을 통해 Observe를 창업하여 지금도 CEO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Sutter Hill Ventures의 네트워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넘나드는 능력있는 베테랑 엔지니어와 임원진들이 중심에 있고, 이들을 통해 파생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다시 Sutter Hill Ventures의 생태계로 데려와 창업을 지원하고 투자자로 나서는 프로세스를 꾸준히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포트폴리오 기업간에도 초기 세일즈 및 사업개발을 지원하며 '축적된 경험'을 공유하는 협업 모델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3) Evergreen Fund - 펀드레이징이 필요없는 벤처캐피탈

Sutter Hill Ventures는 펀드레이징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단일 형태의 개방형 펀드를 운용하기때문에 펀드에 만기가 없으며, 그 결과 기간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펀드레이징 자체가 없습니다. 기존 LP가 계속 회수와 재투자를 반복하는 형태로 펀드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팔로우온펀드나 그로쓰펀드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고, 근무하는 파트너들이 출자한 금액도 상당하기 때문에 LP들의 눈치를 보며 펀드를 운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펀드에 만기가 없기 때문에 실라나노테크놀로지스와 같이 상업화에 10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도 회수에 대한 압박 없이 투자가 가능합니다.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시드 단계부터 IPO까지 꾸준히 팔로우온 투자를 진행하는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개방형 펀드는 운용 전략에서 '백지 위임'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스노우플레이크의 시드부터 프리IPO까지 모든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던 유연함 또한 Sutter Hill Ventures의 독특한 펀드 구조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회수 및 미투자 | 재투자 리스크가 없는 개방형 펀드 vs. 매번 투자와 회수를 반복해야하는 폐쇄형 블라인드펀드
에버그린펀드는 실리콘밸리의 모든 내노라하는 벤처펀드들이 선망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가깝습니다. 주기적으로 펀드레이징에 나설 필요가 없고, 자신들의 투자 역량에 대해 무한대의 신뢰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 때문입니다.

세콰이어캐피탈의 새로운 수장 롤로프 보타가 리더쉽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세콰이어의 50년 숙원사업이던 개방형 펀드를 전격적으로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벤처 전략으로 에버그린펀드를 운영하는 기관은 제너럴 애틀랜틱, 매버릭 벤처스와 같은 극소수 운용사에 불과합니다.


Sutter Hill Ventures는 에버그린펀드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또한 스노우플레이크와 같은 초대형 성공 사례까지 나오면서 단일 개방형 펀드만으로도 기업 당 수천억 원의 투자금을 집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지금도 다수의 스텔스 단계 스타트업을 육성 중인 Sutter Hill Ventures의 인큐베이션 전략 (출처: Jeff Burke)
이러한 차별화된 펀드 구조는 1) 어려운 기술 과제에 도전하고, 2) 과학자들을 직접 데려와 연구개발을 맡기며, 3) 시드 투자 후 2 - 3년 씩 스텔스 개발 기간을 거치고, 4) 10년 이상 비상장 단계에서 재투자를 가능하게하는 Sutter Hill Ventures만의 대체불가한 경쟁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Sutter Hill Ventures - 대체불가한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투자사

실리콘밸리하면 떠오르는 대중적인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페이팔 마피아, 일론 머스크, 와이콤비네이터, 구글, 페이스북, 안데르센호로위츠,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있는 OpenAI와 샘 알트만까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미디어의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이제는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받는 기업과 인물들이죠.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전 세계에서 대체불가능한 지역으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경쟁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Sutter Hill Ventures와 같은 숨은 기관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은 언론에서도 한물 간 기업으로 치부하는 야후, 델, 시스코, 시맨텍, 오라클과 같은 기업의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집중력, 그리고 이런 인재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50년 역사의 Sutter Hill Ventures와 같은 투자사의 존재는 왜 미국 내에서도 뉴욕이나 보스턴, 오스틴이나 플로리다와 같은 지역이 실리콘밸리를 대체하기 어려운 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탈이 유명하지 않고 성공적일 수 있을까? (출처: Kevin Kwok의 블로그)
지난 50년 간 실리콘밸리에서만 활동해온 Sutter Hill Ventures는 2021년 처음으로 영국 사무소를 열고 본격적으로 유럽에서도 투자 및 벤처인큐베이션을 시작하였습니다. 규모의 성장을 추구하던 세콰이어캐피탈이나 라이트스피드와 같은 대형 VC가 이머징 마켓으로 진출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사뭇 다른 선택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기술 아키텍트를 찾아나서는 Sutter Hill Ventures의 접근법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입니다. 특히 그동안 퓨어스토리지, 스노우플레이크, 레이스워크와 같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업의 탄생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 출신의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마이크에게는 기초과학 연구가 여전히 활발한 유럽 시장으로의 진출이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언론인터뷰도 하지 않고 트위터 계정도 닫아버린 마이크 스파이저가 링크드인에 올린 유일한 포스팅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Time Value of Time' 입니다. 금융투자의 복리 효과처럼 시간투자의 복리 효과도 중요하다는 글입니다.
"금융 투자의 복리 효과가 중요한 것처럼 업무 투자의 복리 효과 또한 중요합니다. 경력 초기에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면서 오랜 시간 일한다면 비슷한 투자를 하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과 삶의 균형을 논의하는 방식은 비생산적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시간 가치가 있는 유한한 자원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경력 초기에 업무에 시간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높아질 자산에 투자하지 않고 유흥비로 지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조언가들은 사람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재정적으로 투자하도록 조언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마법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조언하면서 인지적 부조화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업무에 시간을 투자하는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잘못된 믿음을 널리 퍼뜨립니다.

자신이 깊이 흥미를 느끼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런 다음 지금 그 일에 투자하는 시간의 질과 양에 집중 투자한다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스타트업이라는 회사를 만드는 과정도 틱톡 영상처럼 즉각적인 반응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런 기술적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벤처 없는 케피탈'이 벤처캐피탈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수천억원을 펀딩받아 페이스북 마케팅비용으로 써버리면서 모은 유저수를 자랑하는 뷰티콘테스트가 스타트업의 다른 표현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하여 위대한 기업이 탄생하는 과정이 자판기처럼 즉각적으로 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인류가 닥친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Sutter Hill Ventures처럼 시간과 생산성의 복리 효과를 믿고 장기적인 투자를 추구하는 '기본'이 더욱 중요해진 시간은 아닐 지 고민해보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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