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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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Great Ocean Road, Australia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최갑수

오랜만에 레터 보내드립니다.


그동안 다들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여행 다니고, 책 만들고, 술 마시고, 가끔 글을 씁니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있네요. 저는 곧 나올 새 에세이를 만드느라 조금 바쁩니다. 원고는 넘겼고, 사진을 고르고 있습니다. 이번 책에 사진이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요 며칠 외장하드를 뒤적이며 사진을 고르다가 문득 오십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저는 오십입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진들이 보이더라고요. ‘아이쿠, 이 사진을 지웠더라면 아까웠겠어’ 하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 몇 장 있었어요. 예전엔 그냥 지나쳤을 사진인데, 나이가 드니 비로소 보이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며 싱긋이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무튼, 사십 대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오십이 되고 난 후부터는 자주 ‘아, 오십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다가도, 신호등을 건너다가도,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다가도 문득 ‘어랏, 오십이 되었군'하는 걸 느끼곤 합니다.


처음엔 오십이 뜨거운 커피잔 같았어요. 커피잔을 잡으려다 앗 뜨거! 하며 놀라 손을 뗐는데, 이젠 그 따스하고 다정한 온기가 좋아서 손바닥으로 지그시 감싸게 됩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여기까지 잘 왔어. 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오십 같아요.


변한 것 같습니다. 자세하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분명 뭔가가 변했어요. 예전과 달라졌어요. 몸도 마음도요. 어쩌면 변한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오십 년이나 살아왔는데 변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테죠.


오십이 되어 변했다고 느끼는 건 그 누적과 궤적을 알아차릴 만큼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나이가 들면 더 예민해진답니다. 이는 어쩌면 주위를 둘러볼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지혜는 여유에서 나오는 법이니까요.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주위 환경도, 일도, 나와 관계를 맺으며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요. 모든 게 변했어요.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일도, 새로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들 - 나, 일, 사람 - 과 조금 더 즐겁게 살아보려 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글쓰기 리추얼을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글 쓰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만큼 살아 보니 인생에서 즐거움보다 더한 가치는 없는 같아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글쓰기가 싫다고, 지긋지긋하다고 투덜대지만, 솔직히 글 쓸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합니다. 만약 여행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여행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글을 쓴다고 더 좋은 인생을 사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글을 써오며 깨달은 것입니다. 좋은 인생은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음식 앞에, 좋은 날씨 아래에 있습니다. 이런 걸 알게 됐으니, 오십이 된 게 억울하지 않네요. 하하하.


가끔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즐길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고요. 저녁 산책길에, 파스타를 만드는 프라이팬 위에,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있더라고요. ✉️

최갑수는 작가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를 썼다. 인스타그램 @ssuchoi에서 더 많은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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