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인식하는 세상

이야기로 인식하는 세상


초등학생 시절, 저는 세계 명작 동화를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제가 읽었던 세계 명작 동화 전집은 한 권에 한 나라씩 동화들이 실려 있었는데, 책들 앞에서 ‘오늘은 어떤 나라를 선택할까’ 기분 좋은 고민을 했던 추억이 있어요. 벨기에, 이탈리아, 브라질,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미국…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도 흔치 않았던 때여서, 동화책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죠.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 낯선 이야기에 대한 이끌림으로 책에 빠져들곤 했어요.


각 나라의 동화들은 큰 주제나 구성은 비슷해 보여도 분명하게 구별되는 질감과 색감이 있었어요. 상상의 존재라도 심술궂지만 친근한 도깨비와 신비하고 아름다운 님프는 너무나 달랐고, 다른 나라의 꽃과 나무들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았죠. 왕자나 공주가 등장하는 동화들도 많았는데 나라별로 그들의 외모, 성격, 그들이 만나는 시련과 해결 방식 또한 제각각이었어요. 돌아보면, 넓고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 한편으로 다른 나라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익숙한 가치와 세계관은 우리들의 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경험이기도 했어요.


이번 뉴스레터에서 소개해드리는 SSIR 글로벌 시리즈는 6개 나라의 이야기에요. 저는 이 글로벌 시리즈 아티클이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세계 명작 동화처럼 느껴졌어요.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서로 다른 문화에서 펼쳐지는 개성 있는 서사들이 다양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일 거예요. 글로벌 시리즈는 SSIR을 발행하는 6개국(미국, 중국, 멕시코, 일본, 한국, 브라질, UAE)이 ‘불평등’을 주제로 함께 기획하고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6개국의 편집자들이 1년 동안 함께 대화하며 우리가 얼마나 공통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얼마나 다른 토양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독자 여러분도 이번 아티클들을 통해 불평등이라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각 나라에서 어떤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는지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SSIR 한국어판 편집장 서현선

불평등이라는 난제


불평등은 전 세계 어디서나 예외 없이 존재합니다. 인종, 성별, 신체 능력뿐 아니라, 교육, 고용, 기술, 안전 등에 있어서도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불평등의 기원과 형성 과정, 정의하는 방식은 그것이 발생하는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번 글로벌 시리즈 ‘평등을 향한 도전'을 통해 각 나라와 문화 속에서 무엇이 불평등을 지속하거나 고착화시키는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길 권합니다. 노예제도의 잔재, 성차별적 문화, 장애에 대한 편견, 교육 기회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 고립과 은둔, 기술 격차 등 불평등을 야기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각 나라의 시도들을 소개합니다.

가까운 나라의 낯선 이야기


일본. 오키나와는 한국인 관광객이 연간 54만 명에 이르는 친숙한 지역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름다운 바다와 온화한 기후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아티클은 오키나와의 어두운 역사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드러냅니다. 안보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오키나와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정부, 차별로 인한 구조적 빈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오키나와의 이야기입니다.  

 

오키나와: 식민주의는

어떻게 사회경제적 격차를 발생시켰나?



중국. 하루라도 중국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중국은 한국과 밀접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중국 인구의 6.5%인 8천 5백만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나, 15~29세 장애인 중 20%가 문해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데이터는 낯설기만 합니다. 이번 아티클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장애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과 비영리기관이 어떤 혁신적인 시도를 함께하고 있는지 소개합니다.

장애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먼 나라, 그러나 우리와 같은 고민들


멕시코. 라틴 아메리카에는 남성적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마치스모(machismo)’ 문화가 있는데, 이 문화는 성차별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스모 문화 속에서 젠더 기반 폭력은 묵인되고, 여성은 동일한 직무를 수행해도 17% 낮은 급여를 받는 현실이 유지됩니다. 이런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은 어찌 보면 한국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이 심각한 한국도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아티클은 ‘보라색 안경'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사회 문화를 바꾸고 있는 유연하고 혁신적인 조직, 올위민쿠(All Women Coo)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보라색 안경'으로 바라본 현실:

어떻게 성평등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할까?



미국. “데이터는 하나의 권력이다. 슬프게도 이 권력은 정의롭고 지속가능하며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는 단체들이 아니라, 상업 부문에게로 점점 더 많이 넘어가고 있다." (크리스 데이글마이어) 미국의 비영리단체들은 그동안 기술혁신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AI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며 비영리 영역만이 담당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공정성을 고려해 AI를 설계하고, 데이터 격차를 해소하며, 편견을 줄이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미국 소셜섹터의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 소셜 섹터가 가야 할 길에도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불평등의 구조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기


미국. 불평등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은 사람들을 교육하고 제도를 바꾸는 일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과거의 약탈과 착취로 인한 피해를 올바르게 복구하는 일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노예제의 영향과 인종 차별적 정책에 대한 복구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위한 소셜섹터의 역할을 제시합니다.


 배상 없이는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브라질. 오랜 노예제 역사를 가진 브라질에서는 인종차별이 여전히 영향을 미칩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직장 내 불평등과 같은 형태로 인종차별은 구조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일터에서 인종차별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데이터 기반의 시도를 소개합니다. 기업 내 인종차별 현황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브라질 ESG 인종평등지수는 기업이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래 세대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들


중동과 북아프리카.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아동들의 교육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의 학습빈곤율(10세 기준으로 간단한 문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동 비율)은 코로나19 이후 70%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교육 기회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스쿨 사례를 소개합니다.


 디지털 스쿨, 교육의 접근성을 확장하다



한국. 청년들의 고립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배제하는 ‘극단적인 사회적 고립 Extreme Social Withdrawal(ESW)’ 은 한국 청년들에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19~39세 청년 중  5%가 ESW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청년 시기의 고립은 당사자에게 길고 오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고립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계 중심, 참여자 주도의 시도들을 소개합니다.

글로벌 시리즈, 어떻게 읽으셨나요?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를 찾고, 새로운 아티클을 기획하고, 다른 나라의 아티클을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는 글을 읽을 여러분의 생각이 늘 궁금합니다.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는 현장을 변화시키는 이들을 위한 매거진이기에, 독자들의 현장도 아티클 속의 사례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불평등을 주제로 다룬 이번 글로벌 시리즈의 이야기를 읽은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아티클에 대한 의견, 당신의 현장 이야기, 고민 이야기, SSIR이 다루어 주길 기대하는 주제 등 어느 것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더 좋은 이야기로 또 인사드릴게요.

한양대 SSIR Korea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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