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원 크루원님, 고양이 복막염에 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복막염 환묘를 돌본 적 있는 분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러나 직접 환묘를 만난 적 없는 분들은 ‘치명적인 질병’ 정도로만 알고 계신 경우가 많죠.

저도 작년 4월 초까지, 3년 넘게 미호 집사로 살면서도 복막염에 대해 잘 몰랐어요. 미호를 처음 구조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복막염은 아니네요”라고 해서 그후로는 복막염을 잊고 살았죠.

그런데 작년 4월 초, 아래 사진의 ‘창덕이’라는 아이를 집 앞에서 구조하면서 저는 복막염 관련 실태를 알고 깜짝 놀랐어요. 오늘은 여러분이 구조하는 길냥이가 만에 하나 복막염 환묘인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동네에서 꽤 자주 마주치던 길냥이 '창덕이'

창덕이는 동네에서 꽤 자주 보던 길냥이였어요. 가끔 주택가를 배회하며 밥을 달라는 듯 울었고, 저도 몇 번 밥을 준 적 있었죠.

그런데 작년 3월쯤부터 이 아이가 주택가에서 울기만 하고, 밥을 먹질 않는 거예요. 근처 빌라에 사는 할머니도 “요새 저 아이가 밥을 안 먹는다”며 걱정했는데요. 이때 이 할머니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보다 배가 부른 거 같아.”

할머니는 아이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갈 여력은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다음에 만나면 꼭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던 4월 초 어느 주말, 날씨가 참 좋아서 창덕궁에 놀러가려고 예매해놓은 날이었는데요, 이날 창덕이가 집 앞에 나타나 또 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와 친구는 창덕궁 가기를 포기하고 이 아이를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죠.(그래서 저희만의 이름을 ‘창덕이’로 붙였어요.)

병원에 데려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요.

“복막염인 거 같아요. 그것도 습식 같네요. 살기 힘들 거 같아요.”

구조하기 직전 창덕이 모습

고양이 복막염에는 습식과 건식이 있는데, 습식 복막염에 걸리면 몸 안에 누런 복수가 차올라서 내장을 압박해요. 숨 쉬기도 어려워지고 밥도 안 먹게 되죠.

밥을 안 먹게 되는 게 큰 문제예요. 뭐라도 약을 쓰려면 상태가 어느 정도 괜찮아야 하는데, 밥을 안 먹어서 건강 전반이 악화되니 복수도 더 빨리 차고, 결국 호흡 곤란으로 위독해지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고양이 복막염은 현재 공식적으로 약이 없는 불치병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의사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됐어요.

“사실은, 약이 있는데요. 이게…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약이 아니다보니 제가 대놓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그러나 약이 비공식적으로 유통됩니다. 여기… 카페를 들어가보세요.”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곳은 고양이 복막염 환묘 커뮤니티 온라인 카페였어요. 이 카페를 통해 저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고양이 복막염의 세계를 알게 됐죠.

의사 선생님이 말한 약은 ‘GS-441524’라는 주사제예요.

고양이 복막염은 모종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인데, 타미플루와 램데시비르를 만든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에서 코로나 치료제를 연구하다가 고양이 복막염에 엄청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이 주사제는 아직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한 약품이에요.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고양이 복막염에 고통받는 환묘와 보호자들이 많다보니, 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비공식 약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인도･중국 회사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쨌든 내가 구조한 고양이가 눈앞에서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복잡한 문제는 차치하게 되잖아요.

저희는 고양이 복막염 환묘 커뮤니티를 통해 GS-441524를 구하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GS-441524 바이알 

문제는 가격이에요. 사실상 전 세계적인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약품이다보니 상당히 비싼 가격이 형성돼 있는데요.

현재 판매되는 약은 대체로 20mg/ml, 7ml 용량인데 이 바이알(유리병) 한 병을 온라인 업체에서 구매하면 15만원 정도예요.

환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보통 하루에 3ml 정도를 투약합니다. 그러면 평균 2.5일에 1병을 써야 하죠. 그러면 일주일에 3병을 사야 하니 주당 45만원이 들어요.

복막염에 ‘완치'는 없다고 하지만, 약을 쓰면 차도는 있겠죠. 그런데 일회성 투약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상태가 완전히 호전되었다고 볼 정도가 되려면 3개월은 꾸준히 투약해야 한다고 해요.

즉 복막염 환묘를 완치에 가까운 상태까지 돌보는 데에 단순 약값만 어림잡아 500~600만원이 드는 셈이죠.

그런데 이 약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중국 업체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팔기도 하고, 자체 사이트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약이 중국에서 오는 배송비도 들죠.

복막염 환묘 커뮤니티의 힘이 여기서 발휘됩니다.

환묘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상황을 설명한 뒤 약을 구하기 시작하면, 남은 약을 합리적인 가격에 양도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약을 구매했다가 환묘가 고양이별로 떠나서 약이 남은 분들이 대부분이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1병에 3만~5만원 정도로 거래됩니다. 이 역시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중국 업체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보단 훨씬 낫죠.

어떤 경로로든 GS-441524를 확보했다면, 이제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환묘가 하루라도 더 버텨주길 바라면서, 약을 어떻게든 구해서 투약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창덕이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저와 친구는 약을 구매했는지, 어디서 구매해 어떻게 투약했는지 등이 궁금하실 거 같아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습니다. 복막염 환묘를 위해 GS-441524를 구매하거나 투약하는 사람들을 관련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죠.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저희는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하였고… 창덕이는 차분히 눈을 감았어요.

벌써 1년 전 일인데요, 아직도 그때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우리가 괜히 너의 생명을 더 오래 붙들어서 고통을 준 건 아닐까? 그래도 찬 길바닥에서 눈을 감는 것보다는 나았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고 창덕이는 고양이별로 떠났답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GS-441524 승인을 위해 국내외에서 노력하는 수의사분들과 제약업체들이 있다고 합니다. 머지 않아 복막염 치료제가 공식적으로 통과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관련하여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사실을 아래와 같이 한 번 더 정리해드리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 길고양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배가 불렀다면 복막염일 가능성이 있다.
• 복막염은 현재 공식적으로 약이 없는 불치병이다.
•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약이 있지만, 완치까지 약값만 최대 500만원 이상이 들 수 있다.
• 복막염 환묘 커뮤니티를 통해 조금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 +덧) 참고로 고양이 복막염 치료제는 주사제가 아닌 경구용 약도 있답니다. 주사제는 고양이가 많이 아파하고 부작용이 있다는 얘기도 있어서 경구용 약을 선택하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다만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길고양이에게 경구용 약을 급여하기 어려우니 길고양이의 경우 주사제를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덕이를 고양이별로 보내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