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일에 대해 써보자는 것은 내 제안이었는데, 막상 써보니 쉽지가 않다. 지난주 효재도 글에서 고백했지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무엇이라 뾰족하게 확언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 같다. 일과 나의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좋아하는 부분만큼 힘든 부분이 있고 아무리 오래 해도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이 일에 적성이 맞나? 재능이 있나? 이런 질문은 평생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일에 대해 써보려 한 것은 <잡지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고서다. 

5년차 에디터지만 에디터의 세계에 대해 잘 모른다. 매거진 하면 떠오르는 보그나 GQ 같은 종합지의 세계를 겪지 않았다는 의미다. 내가 겪은 잡지는 우리 잡지뿐이다. 제주에서 할 일을 찾다 눈여겨보던 로컬 매거진이 에디터를 뽑는다길래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류했다. 에디터란 일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 배운 것 없이 천둥벌거숭이처럼 일하다 황당한 실수도 여럿 했다. 5년 가까이 몸으로 부딪치며 깨친 덕에, 그리고 편집장님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이제 겨우 에디터 태가 나는 수준이다. 일에 대한 감은 생겼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정식 코스를 밟아 에디터가 된 게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다. 반면 편집장님과 대표님, 효재는 모두 서울의 잡지사 출신인데, 가끔 그들만 통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럴 때면 영원히 성골은 될 수 없는 진골의 심정이 된다. 

<잡지의 사생활>은 에스콰이어 에디터가 쓴 업에 관한 책이다. 에디터에 대한 오해며 자주 받는 공격에 대한 해명(문장이 왜 이렇게 외국어 범벅인가), 에디터를 꿈꾸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업무량에 비해 박한 급여, 빠른 정년), 그럼에도 존재하는 일의 기쁨 등을 두루 담았다. 어떤 부분에는 몹시 공감했다. 이를테면 교정사와 포토그래퍼, 디자이너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면은 에디터의 역량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제주에서나 서울에서나 공통된 진실이다. 에디터는 최초의 기획자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모두의 도움으로 기획을 완성시킨다. 한편, 어떤 대목에서는 서울의 에디터들은 이런 훈련을 받고 이런 역량으로 이런 프로젝트까지 아우르는구나 싶어 소외감이 더욱 강화되었다. (보그 디지털 팀은 매일 새벽 현지 시각으로 올라오는 해외 뉴스를 갈무리해 9시 출근 전까지 편집장에게 제출한다고 한다….) 마침 저자는 부제도 이렇게 뽑았다. <미감과 호기심, 대화와 물건으로 이루어진 매체를 서울에서 만드는 일에 대하여.> 아니 선생님, 거기 꼭 ‘서울에서’가 필요합니까? 읽다 보니 수긍은 갑니다만…. 

평소 에디터로서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이 있다. 에디터라면 모름지기 트렌드에 빠삭하고 자료 조사에 능하며 여러 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보는 눈이 좋아야 할 것 같다. (책을 보니 과연 사실이었다.) 나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버거워 세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서울을 떠났다. 호기심은 있는 분야에만 있고, 자료 조사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으며, 특히 이미지를 ‘보는 눈’이 없다. 지면에 얹을 사진을 고를 때 늘 편집장·디자이너 의견과 내 의견이 갈리는데, 대체로 그들의 판단이 맞다. 인쇄되어 온 잡지를 볼 때면 선배들 말이 맞았네 싶어 현타가 온다. 이게 중앙의 잡지사 출신과 비출신의 차이인가? 취재하고 기사 쓰는 데 문제가 없을 뿐이지, 나는 에디터와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더 근본적인 고민이 이어진다. 이렇게 부족해서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까? <급작스런 계기로 갑자기 서울에 가게 된다면 서울 잡지사에 취직할 수 있을까>부터 <제주에는 업의 선택지가 적은데, 에디터 경력을 살려 갈 수 있는 다른 자리가 있을까>까지, 한 번 불안의 나선을 타면 질문은 끝이 없다. 보통 답도 없고. 20대 땐 몰랐지. 진로에 대한 고민은 30대에도, 제주에서도 계속된다. 

잠시 분위기를 환기해보자. 세상 모든 일엔 명과 암이 공존하는데 나라고 암만 있겠는가. 로컬 매거진 에디터로서 내 강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로 한다. 나는 패션이나 예술처럼 ‘하이’한 세계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벅차지만, 내 주변 세계에서 감지되는 흐름을 분석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학 시절 학보사 문화부 기자였다. 그때도 나는 하이한 트렌드에는 관심이 적어 주로 생활 밀착형 아이템을 발굴했다. ‘룸 문화(?)’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대학가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반밀폐형 룸을 빌려주는 업체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DVD방을 양지로 끌어낸 듯도 하고, 새로운 놀이문화인가 싶기도 한 이 룸들을 관통하는 설명이 궁금했다.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건 결국 대학가의 공간들이란 일정 시간 동안 그곳을 점유할 권리를 판매하는 임대업의 속성을 띤다는 사실이었다. 시대에 따라 겉을 감싼 포장은 변해도 그 속성은 유지된다. 대학생이란 마음껏 점유할 자기 공간이 부재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근데 이게 문화면 기사인가? 그런 반응이 물론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내 일상을 더듬어 의미 있는 현상을 발견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이런 특성이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기획회의 때마다 꾸준히 노포 아이템을 내어 왔는데, 제주의 읍내를 다니다 보면 당췌 무엇을 하는 곳인지, 영업은 하는지, 연식은 얼마나 됐는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가게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것도 꼭, 고집 있는 장인이 이끄는 전통적인 노포 말고, 엥? 저것도 노폰가 싶은 곳들이 궁금하다. 이를테면 한림 읍내 버스 정류장 앞 시계방. 아직도 시계방이 남아 있다는 것부터 좀 놀랍지 않습니까? 40년 된 곳으로, 지금은 시계를 고치러 온 손님보다 읍내에 볼 일 보러 나온 어르신들이 괜히 슬쩍 들렀다 가는 사랑방이다. 또 모슬포에는 20년 된 여행사가 있다. 읍내의 작은 여행사는 대체 뭘로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비행기표 발권이나 여행도 맡지만, 놀랍게도 주 수입원은 제주로 오는 학회나 교회 수련회, 공연 다니는 관현악단 항공권 예약이었다(코로나19 이전). 경쟁이 심한 서울과 달리 제주 읍내의 노포들에 대단한 비결은 없다. 주로 어느 시점에 점포를 샀고(월세를 내지 않는다!), 자식들이 장성했다(돈 들어갈 데가 없고 외려 용돈을 받는다!)는 것이 장사가 시원찮아도 자리를 보전하는 비결이었다. 아무튼 시간의 흐름이 느린 읍내에는 화석 같은 가게들이 총총 박혀 있고, 그런 철 지난 공간의 내력을 듣는 일이 좋다.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이라 자주 쓸쓸해지지만, 모든 공간들이 각자의 전성기를 살뜰히 누렸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음, 그리고 에디터로서 나의 가장 큰 강점은 이 일을 좋아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나는 잡지를 만드는 전 과정 중에 취재가 제일 좋다. 당연히 다 그런 줄 알았더니 퇴사한 후배는 취재가 제일 스트레스라고 했다. 반면 기사를 쓰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나는 거꾸로 글 쓸 때가 되면 스트레스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인터뷰이에게 애착이라도 갖게 되었다면 더욱 힘들다. 막연한 독자보다도 나의 글을 기다릴 그들에게 흡족했으면 좋겠는데, 귀중한 시간 내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가장 멋진 방식으로 편집해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대체 어떤 형태일까 고민되어 작업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임박해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서야 결과물을 낸다. 머리 싸매고 고민한 시간이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그렇게 낸 결과물은 나쁘기보다 괜찮을 때가 많지만, 잘하고 싶어하느라 괴로워하는 과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주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취재를 좋아한다. 끙끙대며 기사를 쓰는 일도 사실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어 나는 행복한 편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나는 이 일을 잘하고 싶은 것이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잡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취재원인 경우가 있다. 정말 좋아하는 잡지예요, 하는 말을 들으며,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생각한다. 아, 더 잘하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들에 부끄럽지 않도록. 서울의 잡지사를 겪지 못했느니, 에디터로서의 역량이 충분하니 마니 했던 것은 모두 곁가지다. 에디터라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잘 맞는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워가 나중에 다른 무엇을 할지는 어차피 알 수 없다. 그 모든 질문의 답과 무관히, 이제 좀 알 것 같은 이 매력적인 일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가능한 오래오래 잘하고 싶다. 이 부단한 마음이 결국 불안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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