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나라에서 부쩍 많이 회자되는 단어다.
  
ADHD라는 이름

지하철을 탔다. 환승역인 왕십리역에서 내려서 5호선 환승을 하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순간 역을 확인해 보니 뚝섬역. 왕십리역에서 두 정거장을 지나친 것이다. ‘계단 운동 좀 하면 되지' 하고 감정을 추스르며 반대편 기차를 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왕십리역이다. 또 한 정거장을 지나친 것이다. 세 번째 도전으로 다시 반대편 기차를 탔는데, 눈을 들어보니 한양대역이었다. 


"정말 내가 지하철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조금 무서운 감정도 들더라고요. 잘 내리려고 정말 긴장하고 있었는데,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순간 지나쳐 버리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ADHD 당사자의 최근 경험담이다. 

© eutahm

ADHD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부쩍 많이 회자되는 단어다. 정확한 용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로,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충동적인 과잉행동을 나타내는 정신적 장애 중 하나로 분류된다.


ADHD는 대부분 유전적 요인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전두엽은 뇌에서 의사결정과 충동조절 주의력 유지와 같은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인데, ADHD는 이 부분의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개인의 집중력과 충동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저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신지수 님은 ADHD가 크게 두 가지 주의력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원하는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 선택주의력이라고도 하는데 예를 들어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럽더라도 나를 찾는 목소리를 듣고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할 주의력인데, 두 가지 이상의 정보에 집중하는 것이다. 운전으로 따지면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전방 주시를 함께 하며 운전한다던가, 레시피를 들으며 요리를 바로바로 하는 것과 같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저자인 신지수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MSV <집중력>호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릴 예정이다.   
일상 생활과 업무, ADHD의 상관 관계

ADHD 당사자의 상당수는 일상생활과 업무에 있어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생산성과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보고서를 10개 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치자. 2시간 안에는 이 일을 다 끝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6시간 동안 1개의 보고서를 검토했다. 절망적이다. 신지수 작가는 "일에서 생기는 구멍을 메우고 약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을 다 쓰다 보니 주말이나 주중 밤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복이 있을지언정 결과물은 때때로 높은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ADHD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ADHD를 고려한 디자인은 이들이 일, 생활, 관계에서 더욱 몰입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표가 있다. 이는 단순히 작업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서, ADHD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더 큰 만족과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확장된 논의로, 장애를 고려한 디자인 전반의 목표는 비장애인의 생활 방식을 표준으로 보고 그 기준에 맞추고자 하는 ‘비장애 중심주의’의 접근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행동과 목표를 자유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을 지향한다. 이런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ADHD를 고려한 디자인을 바라보자.

ADHD와 디자인

1)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주는 트리거

ADHD를 고려한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트리거 trigger다. 장시간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가 다른 중요한 일들을 놓치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장치다. 알람은 그런 의미에서 유용한 도구다.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 한다. 예를 들어 포모도로 기법을 활용해 25분마다 설정된 알람이 울리면, 이는 사용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넛지 역할을 한다. 신지수 작가는 ADHD 당사자는 자발적으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누군가 옆에서 한 마디만 해준다면 언제든지 작업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는 흐름을 끊어줄 수 있으므로, 뽀모도로 타이머는 꽤나 유용한 트리거가 된다. 

기술이나 디자인적 요소를 통해 이러한 트리거를 제공할 수 있지만, 앞선 뉴스레터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지인이나 커뮤니티의 존재 자체도 긍정적인 넛지로 작용할 수 있다. 약한 감시의 형태로 지인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독서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에 비해 쉽게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 청소기나 식기세척기 같은 자동화 도구들 역시 일상생활에서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ADHD 당사자 중에는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려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보면서 숏츠의 무한 루프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집안일 사이의 사이의 작은 틈새에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자 제품들은 사용자가 직접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업을 완료해 주므로, 일상에서의 산만함을 절대적으로 낮춰준다. 세탁건조기와 같이 사용자가 진행해야 할 작업의 단계와 수를 줄여주는 제품들이 계속 출시되고 있는데, 이는 확실히 유용한 방향이다. 

신지수 작가는 자신이 혼자서 몰두할 때는 시간과 싸우는 듯이 60분을 셋팅한다고 한다. 일이 어렵더라도 알람이 울렸을 때, 임무 완수의 큰 보상을 느낀다. 

서비스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특히 학습과 관련된 서비스라면 ADHD 당사자들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한 번만 더"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메시지나 "잘하고 있어요"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자신의 진행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접근은 ADHD 당사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고, 학습과 업무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2) 시각화된 정보의 중요성 

신지수 작가는 “눈앞에 시각화되지 않은 정보는 마치 땅에 파묻어 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떤 과업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시각화된 정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읽어야 할 책의 챕터들을 미리 책 표지에 붙여 놓고 체크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어떤 부분을 이미 읽었고, 어떤 부분이 남았는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외부로 분명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카톡방의 이름을 '11시 30분 회의'로 바꿔놓고, 카톡 도중에 회의 참석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기도 한다. 

 책의 가장 앞부분에 챕터 번호를 적어놓고, 챕터 읽은 부분을 체크한다. 정보를 최대한 시각화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하고 있는 작업과 완료한 작업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한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해야 할 일, 진행 중인 일, 완료한 일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폴더를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시각적 구분은 ADHD 당사자들이 각각의 작업 상태를 더 명확히 인식하고,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3) 색상에 대한 전략적인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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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ADHD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신지수 작가는 포스트잇의 색상을 규칙적으로 사용하여 정보를 구분한다. 예를 들어, 핑크색은 나중에 다시 읽을 부분, 보라색은 타인에게 물어볼 부분, 파란색은 옮겨 적을 내용을 나타낸다. 계획을 세우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주의력을 유지하고 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색깔펜도 유용하다. 선을 그을 때마다 색상이 랜덤하게 변하는 펜이다. ADHD는 도파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자극이 충분하지 않으면 뇌가 잠자는 것처럼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랜덤 색깔펜은 일종의 뇌를 깨우는 도구다. 색상이 일정 시간 뒤에 증발하는 기화펜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펜을 사용하면 글을 읽을 때 지속적으로 밑줄을 치면서 집중을 유지할 수 있고, 30분 후에는 색상이 사라져서 문서를 깨끗한 상태로 다시 볼 수 있다. 밑줄을 계속 치는 활동과 함께 색으로 자극을 제공하여 뇌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만든다.

마치며 : 포괄적 디자인과 사용자화 
주의 집중력을 위해 가급적 큰 글씨를 선호하는 신지수님의 E-book  

MSV를 만들면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도구다. 여기서 도구란 ‘나만의 방식’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흰 지팡이를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정말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신의 방법과 행동이 나온다.


오늘 뉴스레터에서 이야기 한 신지수 작가의 도구도 다양하다. 그는 ‘시각적 단서’를 최대한 활용한다. ADHD의 특징인 주의 지속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상생활과 업무를 위해 스마트 워치의 10분 타이머를 활용하기도 하고, 포스트잇도 색깔마다 정확하게 의미를 붙여 사용한다.  E-book도 자신이 몰입하기에 좋은 크기와 줄 간격 세팅을 필수적으로 한다. 너무 글씨가 작거나 오밀조밀하면 주의 집중력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할 때 포괄적인 디자인이란 결국사용자화 얼마나 가능한지에 달려있지 않을까? 각 사람의 필요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는 더 넓은 자율성과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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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미션잇 대표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인의 가치는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고의 툴이라고 믿는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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