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탐험지: 임스 가구의 세계

🍄오늘의 탐험지: 임스 가구의 세계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디자인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Recognizing the need is the primary condition for design.)*

*찰스 임스(Charles Eames)

바르셀로나의 보른 지구라는 곳에 몇 달을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집 앞 마트를 갈 때마다 지나치는 가구점이 있었는데, 높은 층고로 탁 트인 쇼윈도에 의자가 층층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로지 의자만, 그리드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 채요. 그때 받은 시각적인 인상이 강렬해서 몇 번이나 “우리 집 앞에 엄청난 가구점이 있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비트라의 쇼룸이었습니다.

모를 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20세기부터 이어져 온 가구 디자이너와 생산 브랜드를 공부하다 보면 깊고 흥미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느낍니다. 가구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재밌습니다. 건축가들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응축해 의자를 만든다는 점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가구가 알고 보면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는 점도요. (대부분은 카피 제품이지만요) '미드센추리모던'이 유행하는 등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에 대한 인식도 커지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임스’를 중심으로 가구 탐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 임스 부부의 디자인 세계

플라스틱 사이드체어 ⓒ Eames Office

‘임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임스체어’입니다. 비비드한 컬러와 단순하지만 트렌디한 형태로 사랑받는 의자죠. 하지만 ‘임스체어’란 일종의 별칭인데요. 찰스&레이 임스 부부가 만들어서 흔히 임스체어라 불리고, 정식 이름은 ‘플라스틱 사이드체어(Plastic Side Chair)’입니다. 정말이지 실용적인 이름이죠. 공대생이 만들었을 것만 같고요. 디자인 과정을 살펴보면 공대생 못지않은 기술력과 실용정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실제로 임스 부부는 "혁신보다는 거듭된 실험을 통해 축적된 지혜를", "개성의 표현보다는 사람들의 니즈를" 중요시했습니다. 혁신적이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 사실 그걸 강조하지 않았다니 이상한가요?

마술 같은 기계, The Kazam!

카잠! 기계, 기계를 그린 낙서 ⓒ Eames Office

시작은 '카잠!(The Kazam!)' 기계입니다. '알라 카잠'이라는 마술적인 주문에서 이름을 따온 이 기계는 나무 합판을 압착해 구부러진 형태로 만드는 용도로 제작되었는데요. 젊은 임스 부부는 카잠! 기계를 통해 온갖 기술적, 예술적인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그 기술력으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다친 군인들을 위한 부목을 제작하기도 했고요. 전쟁이 끝난 1945년, 합판 기술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높은 퀄리티의 가구를 대량생산하는 데 쓰입니다. 아마 디자인을 보면 아실 듯한 LCW(Lounge Chair Wood, 이름이 역시 투박하죠? 사진은 아래에 있습니다.)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고요.

독특한 개성보다,

일상적인 필요에 맞는 디자인

합판 라운지체어 LCW, 라 셰즈(La Chaise) ⓒ Eames Office, Vitra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임스 가구의 프로토타입을 전시한 일은 이후 허먼밀러와 함께 가구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 전시를 통해 임스를 발견한 조지 넬슨(허먼밀러의 디자인 디렉터였던)이 임스의 생산권과 생산공장 인수를 강력히 추진하거든요. 1946년부터 허먼밀러에서 임스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허먼밀러와 비트라는 임스 가구를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가구 생산 브랜드입니다.

1948년에는 MoMA에서 '국제 저비용 가구 디자인대회'에 참여합니다. 유리섬유로 제작한 '라 셰즈(La Chaise)'를 선보이는데요. 아름답지만 생산하기엔 비쌌습니다. 대신 라 셰즈의 유리섬유 쉘을 발전시켜 가장 처음 보았던 형태의 '사이드체어'와 '암체어'를 제작하게 됩니다. 유리섬유보다 저렴한 새로운 소재, 플라스틱으로 체어를 만들기 시작했고요.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더 적은 부품으로, 더 좋은 품질의 의자를,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었는데요. 위 사진만 보아도 가구의 구성이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임스는 의자가 앉을 수 있는 '쉘'과 이를 지탱하는 다리인 '베이스', 단 두 가지로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단순한 구성으로 소재와 디테일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만 교체할 수 있다는 점도 경제적이고요.

'디자인'이라고 해서 심미적인 활동으로만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임스 부부는 보기 좋게,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디자인을 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과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디자인을 했습니다. 합판과 플라스틱, 유리섬유, 철제 같은 소재로 저렴하게 대량의 가정용 가구를 생산하는 디자인 실험을 반복했거든요.

➊저렴하게 대량생산하는 새로운 소재와 기술의 발달, ➋전쟁 이후 일상을 빠르게 복구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미드센추리모던' 가구를 만든 핵심적인 배경입니다.

✍️ 새로 얻은 어휘 : 알라 카잠, 조지 넬슨, 미드센추리모던

🤸 케이스스터디 : 현대에서 임스 가구 만나기

본격적인 '임스 오피스'의 시작은 1943년, 활발하게 새로운 제품이 디자인되었던 것은 1940~50년대예요. 현대에는 임스 가구를 어떻게 만나볼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위주로 소개합니다.

빈티지 임스의 천국,

오드플랫

📍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 5길 8, 4층

ⓒ 오드플랫

오드플랫은 빈티지 가구와 오디오를 판매하는 가구샵이면서, 임스 전문 리스토어샵입니다. 쇼룸이 성수에 위치해있는데요. 오래전부터 생산된 빈티지 임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생산연도에 따라 무궁무진 다양한 쉘과 베이스의 임스 체어를 만나보고 싶다면 오드플랫을 추천합니다! 당연하게도 대표 역시 빈티지 임스의 '덕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요. 아래 인터뷰 링크를 첨부하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오드플랫 박지호 대표의 인터뷰 (링크)

콘란경의 수집품

더 콘란샵

📍 서울 강남구 도곡로 401 더콘란샵

ⓒ The Conran Shop

영국의 디자인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사 작위까지 받은 '콘란 경', 특유의 큐레이션 능력으로 만든 라이프스타일샵이 바로 '더 콘란샵'인데요.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각국에 매장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티역 인근에서 더 콘란샵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2개 층 규모로 임스를 비롯해 르 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팬톤 등의 디자인 가구를 전시해 마치 디자인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임스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재출시한 유리섬유(파이버 글라스)체어를 판매한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상처 난 듯 거친 질감이 플라스틱보다 매력적이거든요.

허먼밀러 모아보기

인노바드

📍 서울 강남구 역삼로 557 제니스타워 6층

ⓒ 인노바드

인노바드는 허먼밀러의 국내 공식 딜러사입니다. 사실은 허먼밀러의 오피스 체어인 '에어론 체어'를 판매하는 것으로 더 유명한데요. "네이버 직원들은 100만 원짜리 의자를 쓴대" 라는 소문과 함께 더 유명해진 의자기도 하죠. 역삼에 위치한 인노바드 쇼룸에서 임스 오리지널 역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허먼밀러의 디자인 가구를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 새로 얻은 어휘 : 빈티지 임스, 쉘, 베이스, 콘란샵, 유리섬유

💫 영감의 이미지

오늘은 직접 찍은 사진을 소개할게요. 아날로그한 감성의 논현동 이자카야입니다. 최근에는 일본 현지의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한 이자카야가 많더라고요. 오래된 가정집 분위기의 이곳에서 두 가지 포인트의 '진짜'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매시 정각 인형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시계, 또 하나는 포스기를 대체한 CASIO 계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