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하, 퇴출만이 답일까?

폴라리스 Vol.63

폴라리스 항해도

지난 8일과 9일 서울·인천·경기와 강원 등 중부지방에 물폭탄이 쏟아졌습니다. 무려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였는데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내리면서 침수와 정전 피해가 잇달았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가 안타까웠던 점은, 주거불평등이 재난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난 8일 발생한 사망자 6명 중 4명이 반지하 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울시는 폭우 피해 후속 조치를 내놨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반지하 제로 정책’인데요. 앞으로는 반지하 주거 시설을 전면 없애겠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정작 반지하에 사는 당사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가 내놓은 반지하 제로 정책은?과 빗물 쏟아지고 곰팡이 가득한 집, 그럼에도 떠날 수 없는 이유는?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이어졌지만, 매번 지지부진하게 끝났습니다. 어쩌다 반지하에 사람이 살게 됐나에서는 반지하의 탄생 배경부터 규제 실패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재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반지하 폐지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반지하에 필요한 ‘진짜’ 대책은?에 담았습니다.

🎬오프닝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안전대책 발표 中

ⓒ서울시청

1. 서울시가 내놓은 반지하 제로 정책은?

반지하 폭우 침수 사례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지난 10일 ‘반지하 제로 정책’을 내놨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요. 주요 골자는 앞으로는 지하·반지하 주거 시설을 만들 수 없고, 기존에 있던 지하·반지하도 모두 없애겠다는 겁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당장 지하·반지하를 없애기보다는 10~20년 유예를 두고 순차적으로 없애겠다는 겁니다.

현재 건축법 11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면' 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이러한 조항이 시행된 뒤에도 반지하 주택이 4만호 이상 건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시는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불문하고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윤보람, <연합뉴스>, 폭우 취약한 반지하 주택, 서울서 사라진다…"건축 전면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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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서울시에만 20만호가 넘는 지하·반지하가 존재하는데요. 관건은 이들의 대체 주거지 마련입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고시원, 비닐하우스, 반지하를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개조하거나, 공공임대주택 입주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가구 수를 감당하기에는 공공임대주택 물량이 부족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일정 금액의 월세를 제공하는 주거 바우처 제도에 관해서도 서울시는 투입할 예산 규모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입니다.

에디터 시원🌊

2. 빗물 쏟아지고 곰팡이 가득한 집, 그럼에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정작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서울시와 정부 발표에 회의적인 반응입니다. 반지하를 벗어나 지상의 공공임대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상으로 주거를 이동하면 바우처 형식으로 금전적 지원도 하겠다는데 그들은 왜 이러한 정책들을 믿지 못하는 걸까요?

사람들이 반지하에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비 부담’입니다. 서울의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지만 서울을 떠날 수도 없는 가구들이 반지하에 주로 거주합니다. 지하 거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0만4천원으로 전체 가구(317만5천원)보다 100만원 이상 적습니다. 지하·반지하 가구의 21.6%는 노동이 어려운 장애인가구입니다. 정부가 주거비를 지원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은 크게 주거급여나 전세임대 같은 주거비 지원과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 공간 지원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주거비 지원은 실제 사는 공간의 품질과 연계되지 않는다. ‘지옥고’ 보고서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지옥고에서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주거급여가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주거 품질과 연계되지 않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적었다.

-방준호, 장필수, 서혜미, 이창곤, <한겨레>, 폭우 때 그 사투 겪고도…10평 곰팡이집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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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지원이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지하 거주민들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곰팡이가 피고 형광등이 켜지지 않는 집이지만, 반지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습니다.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하리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사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가치를 지켜줘야 합니다. 정책이 아래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디터 부기🐢

지하를 비롯한 취약 주거 환경 실태 ⓒ한국도시연구소

3. 어쩌다 반지하에 사람이 살게 됐나

60년 전으로 거슬러 가볼까요. 건축법이 만들어졌던 1962년만 해도 지하에 사람이 살 순 없었습니다. 아예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죠. 변화의 계기는 뜬금없이 찾아옵니다. 1970년, 남북 관계가 나빠지고 전쟁 위험이 커지자 주택에도 지하 대피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진 겁니다. 이때 '주택 지하층 설치 의무화' 규정이 생기고 5년 뒤에는 지하층에 거실 설치를 금지하는 조항까지 삭제되면서, 원래 방공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지하층이 자연스레 주거 목적의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1984년에는 다세대주택과 단독주택에서 지하층이 지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높이를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완화했다. 지하층 거주자의 거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규정이었지만, 그야말로 2분의 1, 즉 '반'지하가 된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인현우, <한국일보>, 22년 전에도 나왔던 그 말 "저지대에서 반지하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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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재에 이르러 전국에는 약 32만 7천 가구가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2020 기준) 이 중 95.9%가 수도권에 위치하고요.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반지하는 집중호우가 찾아올 때마다 상습적으로 침수 피해를 겪어왔습니다. 1998년, 2001년, 2010년, 그리고 2022년까지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고 나면 침수 피해의 70~90%는 반지하 가구의 몫이 되곤 했죠.

정부의 대책은 간명했습니다. 침수 피해가 잦은 재해위험지역에는 반지하 주택을 못 짓게 하는 거였죠. 2010년에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한창 흥행했던 2020년에는 국토부가 '주거복지로드맵 2.0'을 발표하고 반지하 가구를 여건에 관계없이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대상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죠. 코로나19로 전수조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했지만요.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방향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지만,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에디터 무지🌈

영화 <기생충> 스틸컷 ⓒ네이버 영화

4. 반지하에 필요한 ‘진짜’ 대책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실현된 바 없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미래의 해법을 논하기 전에 당장의 피해를 막을 현재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허리케인 폭우로 13명이 사망하자 뉴욕주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던 반지하 합법화를 추진했습니다. 폭우로 인한 사망자 13명 중 11명이 반지하 거주자였기 때문입니다. 반지하 거주자들을 퇴거시킬 수 없다면 반지하를 양성화하는 것이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은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 또한 반지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서울시는 지상으로 이주하는 지하 가구에 대해 특정 바우처로 월 20만원을 2년 동안 지급하겠다는데, 몇가구에 지급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어 예산 규모를 알 수 없다. 서울시는 정부에 주거급여 개선을 건의하겠다고만 하고, 정부는 주거급여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대책으로 내놓았다. 아무도 지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예산 투입을 약속하지 않는다.

-최은영, <주간경향>, ‘기재부 나라’에 생명권으로서의 주거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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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수해 피해에 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부의 대책을 실현할 구체적인 예산 계획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르지 않는 대책은 허울에 불과할 뿐입니다.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바이타🍑

3줄 요약

📌지난 8일 수도권과 중부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는 ‘반지하 제로 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반지하 거주민들은 대한민국 주거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허울뿐인 말보다는 당장 반지하에서도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 1년 단위로 돌아오는 방 배정 시즌이 되면 온 건물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방의 조건이 동일했다면 무작위로 배정해도 별 탈이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방의 규모부터, 층 수, 공용 샤워실·세탁실과의 거리, 창이 난 위치 등 방마다 조건이 천차만별이었죠. 그러니 좋은 방을 노리는 눈치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요. 피하고 싶은 선택지가 너무 분명했던 탓도 컸습니다. 열거한 모든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방이 하나 있었거든요. 대낮에도 깜깜할뿐더러 이층 침대 하나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방이었죠. 1층 중에서도 지대가 낮은 곳에 있어 장마 때면 비가 들이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누구든 원치 않는 공간이었기에 그 방은 매년 벌점이 제일 많이 쌓인 자에게 돌아갔죠. 그 방에 살던 한 친구는 차라리 근처 자취방이 낫겠다며 아예 기숙사를 나가버리기도 했어요. 친구의 결정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저 방이 선택지에 없었다면 친구가 기숙사를 나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고요.

친구는 누구나 원할 만큼 번듯하고 좋은 방을 바랐던 게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살만한 공간을 원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살만한 집’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내놓을 수 있는 답도 여러 가지겠지요. 아직 정리된 생각은 없지만, 저는 집이라면 최소한 안전이 보장된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이란 본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요. 비바람이나 혹시 모를 외부 위협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긴장을 늦출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재난 상황마다 오히려 위협적인 공간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8년,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올해 4월에도 비슷한 사고로 2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고가 난 고시원에는 화재 시 작동하는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방에 창문이 없거나 너무 작아 탈출에도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통로와 방이 좁아 불이 나면 삽시간에 번지기 쉬운 구조죠. 이번 수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상에 내부가 공개된 반지하 특성상 방범창이 필수인데, 그것이 오히려 탈출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할지 누가 알았을까요.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죽음을 맞는 일만큼 큰 비극은 없을 겁니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서 몸을 피해야 할까요.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불안에 떨다 임시대피소로 향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반지하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요. 결국 반지하는 주거비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고를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내놓은 ‘반지하 제로’ 정책은 주거 선택지에서 반지하를 제외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모든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할 수도 없고 예산도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장기계획은 유지하되, 당장 필요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더 이상 집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2022. 08. 29.

에디터 무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