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그리고 남은 2년
장용혁(협의회 감사, 법무법인 서초 변호사)

마침내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며 입법의 문턱을 넘었다. 지난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 이후 40여 년간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근간을 형성해 온 시혜적이고 보호 중심적인 체계가, 당사자의 온전한 인권과 주권적 권리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권리 기반 체계로 전면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 법의 가장 본질적인 의의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에 있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정의하면서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손상이라는 의학적 결함으로 파악하였고, 장애인은 의료적 치료와 복지 급여의 수혜자에 머물렀다. 이 관점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개인의 ‘결함’ 탓이지 사회의 책임이 아니다.

이에 반하여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를 “사회의 문화적·물리적 및 제도적 장벽 등의 환경적 요인과 신체적·정신적 특성 등 개인적 요인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일상생활 또는 사회 참여에 제약이 있는 상태”로 정의하면서, 장애의 원인을 개인 내부가 아닌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찾는 ‘사회적 모델’을 법적으로 명문화하였다. 휠체어 이용자가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다리가 불편한 개인의 신체적 손상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회의 물리적 제약으로 인한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어야 한다는 것을 입법적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제9조부터 제26조에서 기본권 영역(존엄권·평등권·자기 결정권), 정치 참여(참정권·정책 결정 참여권), 생활 자립(생활 안정·직업·건강·재활·자립 생활), 사회·문화 접근(이동·정보·문화·체육·관광·사법) 등 18개 영역에 걸쳐 장애인의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였다. 종래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권리 보장의 근거를 하나의 기본법 체계로 통합하고, 권리의 외연을 정치·문화·여가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만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위와 같은 입법의 취지에 부합하게 시행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재정 확보를 담보할 특별 기금 조항이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수단이 함께 마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권리 보장을 위한 구체적 수단과 재정을 확보하지 않은 선언만으로는 결국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위험이 적지 않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제 2년의 유예 및 준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이 2년은 단순한 대기 시간이 아니라 이 법의 성패를 가를 절대적인 골든 타임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2년 동안 사활을 걸고 이행 과제를 완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재정 확보 조항과 위법에 대한 벌칙 조항 등의 후속 입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2년 뒤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시대가 허울 좋은 빈 껍데기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의 꾸준한 감시와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만의 속도로 걷는 자립의 길: 현미의 건강하고 당당한 홀로서기
권현미, 김국향(마실주간보호센터장), 오희진(협의회 이사, 대구가톨릭대 교수)

(주: 39세 발달 장애인 권현미 씨가 지역 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하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 소중한 기록을 에세이 형태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자립 생활 주택을 떠나 지역 사회에서 나만의 공간을 꾸리고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른아홉, 남들은 익숙해질 나이라고 하지만 저에게 혼자 사는 삶은 여전히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을 치우고 가계부를 쓰며 돈 관리를 하는 일들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막막함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다행히 제가 일하는 ‘한사랑’ 식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곳은 제 직장이자, 세상을 연결해 주는 고마운 통로입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은건강입니다. 식사 시간을 놓치기도 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다 보니 부쩍 늘어난 체중이 걱정됩니다. 사실 저는 조금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몸이거든요. 베체트병과 모야모야병이라는,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몸에 멍이 들고 손이 부어올랐을 때, 직장 동료들의 권유로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던 날이 떠오릅니다. 큰 병원인 동산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나서야 제 몸 상태를 정확히 알게 되었죠.


하지만 병원에 가는 길은 여전히 제게 높은 벽처럼 느껴집니다. 커다란 병원 안에서 길을 찾는 것도 복잡하고, 무엇보다 차가운 기계(키오스크) 앞에서 무인 발매기를 다루는 일은 늘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왜 그리 어렵고 복잡한지, 설명을 들어도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직장 동료나 제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곤 합니다. 같은 발달 장애를 가진 남자 친구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만, 그 친구에게만 온전히 기댈 수는 없다는 걸 잘 압니다.


특히 저희 집에서 병원이 너무 멀어 새벽 일찍 서둘러야 할 때면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누군가 병원 길에 동행해 주고, 의사 선생님의 어려운 말씀을 나에게 맞게 ‘쉬운 설명’으로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잊지 않게 챙겨 주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줄 든든한 파트너가 있다면 자립 생활이 훨씬 자신 있을 것 같아요.


지원 센터 선생님들은 말씀하십니다. 자립한 이후에도 건강이나 금전 관리 같은 부분에는 지속적인 관심과 점검이 필요하다고요. 사실 저도 제 몸의 통증을 느끼긴 하지만, 이게 얼마나 아픈 건지, 상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건 참 어렵거든요. 치과 치료처럼 무서운 진료는 자꾸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저는 저만의 속도로 이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건강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저와 마음을 나누며 꾸준히 도와줄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저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만의 자립’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오늘은 조금 서툴더라도, 내일은 조금 더 건강해질 저의 자립 생활을 응원해 주세요.

장애인 단체 실무의 A to Z, 성장을 위한 이틀간의 여정
이문영(협의회 사무국 팀원)

지난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전국 장애인 단체 실무자 80여 명이 모여 뜨거운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이 주관한 이번 ‘2026 업스쿨(UpSchool) 기초과정’은 「2026 장애인 단체 실무자 매뉴얼」을 바탕으로, 현장에 갓 발을 내디딘 실무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번 교육은 특히 매뉴얼 집필진이 직접 강사로 나서 이론과 실무 사례를 입체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틀간 진행된 집약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실무자가 가져야 할 ‘전문성’과 ‘관점’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날: 관점의 정립과 조직 관리의 기초
교육의 첫날은 실무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내부 조직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강의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 홍보의 기초와 글쓰기: 변화를 만드는 메시지
조성민 사무총장(한국장애인재활협회 더인디고 발행인)은 홍보가 단순히 단체의 활동을 알리는 부수적인 업무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장애인 단체의 모든 활동은 결국 정책의 변화나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변화’를 목표로 하며, 그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글’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언론과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단체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략을 배우며, 실무자의 글쓰기가 곧 사회적 실천임을 깨달았습니다. 

2. 장애 제대로 이해하기: 인권적 접근과 실무자의 역할
이동석 교수(대구대학교)의 강의는 실무자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보는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 사회적 장벽과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모델’ 및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관점을 학습했습니다. 실무자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당사자의 권리를 사회와 연결하는 주체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3. 노무 관리: 건강한 조직을 위한 법적 토대
김정순 노무사(노무법인 천지)는 통상 임금, 연차 휴가, 출산 및 육아 지원 제도 등 실무자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노동 관계 법령을 꼼꼼히 짚어주었습니다. 변화하는 제도에 맞춰 기관의 취업 규칙을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배우며, 내부 구성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곧 단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임을 확인했습니다.
둘째 날: 행정 실무의 완성, 투명성과 논리력
둘째 날은 단체의 대외적 신뢰도를 결정짓는 재무 행정과 문서 작성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1. 재무·회계: 숫자로 증명하는 단체의 신뢰
정순문 회계사(법무법인 더함)는 사회복지 재무·회계의 기본 원칙과 예산 편성 과정을 강의했습니다. 회계는 단순히 장부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관의 재무 정보를 체계화하여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소통의 과정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복잡한 회계 구분을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행정의 실수를 줄이고 단체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 공문서 및 보고서(사업 계획서) 작성법: 설득의 기술
신문주 원장(한국공공기관연구원)은 실무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공문서와 보고서 작성법을 교육했습니다. 흔히 발생하는 문서 작성의 오류 사례를 대조하며 작성 원리를 익혔고, 특히 사업 계획서와 보고서에서 목차 구성과 구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학습했습니다. 결론 중심의 논리 전개가 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파트너를 설득하는 핵심 무기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을 마치며: 성장을 향한 연결의 시작
이번 교육은 ‘확실히 배워 현장에 즉시 적용하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한 만큼, 실무 역량을 한 단계 높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평소 까다로웠던 노무 관리와 재무·회계 파트의 명확한 기준을 배울 수 있어 유익했으며, 공문서 작성 시 자주 틀리는 실무 팁을 얻은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강의를 거듭하며 제가 작성하는 문서 한 장과 예산 한 줄이 단순히 행정 업무를 넘어,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든든한 가교가 된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실무자들과 현장의 고충을 나누며 얻은 에너지는 앞으로의 활동에 큰 동력이 될 것입니다.
참가자들 역시 실무 지식과 현장의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다며 높은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저 또한 이번 교육을 통해 실무의 ‘기술’은 물론, 장애인 단체 실무자로서의 ‘전문가적 마음가짐’을 다시금 단단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초과정을 시작으로 오는 11월까지 이어질 성장과정과 심화과정을 통해, 우리 실무자들이 장애인 권익 증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외부 기고 · 인터뷰
지난 한 달간 발표된 장애인 건강과 보건의료에 관한 협의회 회원의 기고나 인터뷰를 선별하여 싣습니다. 회원과 독자의 제보 환영합니다. (kahcpd@gmail.com)

서인환의 회초리
서인환 님은 장애인인권센터 대표 이사로 우리 협의회 부회장입니다.

조주희의 포용교육 현장노트 
조주희 님은 총신대학교 교수로 우리 협의회 교육이사입니다.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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