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완두콩 스무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  아니, 벌써 12월이라니
사실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날씨와 숫자는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는데 저 혼자 느릿느릿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와중에 그나마 결심해 보는 것은 이 계절 안에서는 특히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것입니다.
겨울잠을 잘 수도, 추운 날씨와 맞서 싸울 수도 없지만, 든든하게 대비는 해야 하니까요.

며칠 전에는 양다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살고 싶은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풍요가 우리 집에는 있었다. 나는 다음 날, 다음 해도 아닌, 당장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침이면 일어나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한강을 달린 후 집 안 가득 들어온 햇빛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매일 나를 위한 끼니를 정성스럽게 차렸다. 나는 행주에서 찌든 냄새가 나기 전에 팔팔 삶아낼 줄 알았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창문마다 야무지게 뽁뽁이를 바를 줄 알았으며, 식물의 뿌리가 화분 아래로 나올 때쯤 새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줄 줄 알았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의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냉장고는 제철에 맞는 먹을거리로 가득했으며, 살림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들이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참 잘 산다"고 할 만했다. 마치 그곳이 나의 우주인 듯 그 안에서 완벽히 순환했다.
-양다솔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놀, 44p

작가님의 '살고 싶은 하루' 안에는 당장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 나와 있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정성스레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과 야무짐을 발휘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산다면 12월이 왔다 해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제 기분이 이상한 것은 허무와 후회가 뒤섞여 아쉬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노트를 보다가 올해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키워드로만 적어놓은 메모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뭉뚱그려 써놓은 단어만큼이나 결과는 애매하고 흐릿했습니다.
늘 그렇게 지낸 것 같은 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고요. 이런 악순환의 생각을 하고 있자면 제가 너무 작아져요.
이 고리의 생각은 제게 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이럴 때의 각성과 반성은 짧은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때에 살뜰히 일상을 보살피는 글을 만나면 저는 반짝 힘을 얻습니다.

저 또한 정성스레 끼니를 차릴 줄 알고, 햇볕 좋은 날엔 빨래를 팡팡 털어 널고,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잘 정리 정돈하며 지내고, 안팎으로 좋은 자극을 받으려 읽고 쓰고 보고 움직이며, 그림을 잘 그려보려고 거의 매일 무언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면 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잠깐 그런 나에 취해 안도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찌든 행주 냄새를 얼른 알아 차리고 팔팔 삶아내야 할 것 같은 확실한 인과, 명확한 목표와 행동 계획이 더 필요한 듯 보입니다.
계획을 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어떤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은 저를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갈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곳이 엉뚱한 곳이라도 그곳은 그곳 대로의 매력이 있을 것이라 믿어요.

잠깐 안도했다가도 다시 몸을 일으켜 꼼지락거리는 것의 반복.
저는 그런 패턴의 인간인가 봅니다.
내년에는 어떤 계획을 세울까요.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천천히 꼼꼼히 더 생각해 보려고요.

조금만 다그치고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 줄 수 있는 한 해로 마무리하기 위해(아직 2021년은 끝나지 않았다...) 일단은 잘 자고 잘 먹고 잘 꼼지락거리면서 하루하루 충실히 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어봅니다.

🎬  이 겨울에 보면 좋을 영화 1
제 맘대로 고른 영화 두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다음 주에도 영화 소개가 이어질 예정이에요!)
집에서 세상 제일 편한 티셔츠에 따뜻한 수면바지 입고 좋아하는 과자 품에 딱 끼고 즐겁게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좋아하는 윌 스미스만 보고 고른 영화는 대부분 성공적(!)이었습니다. 위 영화도 그 이유가 큰데요. 그 외에 낯익은 배우들도 많이 나와 반갑게 보았어요. 대략적인 줄거리는 한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아픔을 치유해가는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줄거리만으로 다 알 수 없죠 :)  
▪️밤에 우리 영혼은

위 영화는 도서 원작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 반려자를 잃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왔던 두 사람은 정신적인 교감을 하며 가까워지는데요. 서로의 관계를 통해 각자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잔잔한 서사로 보여줍니다. 매력적이며 섬세한 이 영화를 추천해 봅니다.

🎨  이번 주의 아티스트

출처: http://www.oamul.com/season/
여러 예술가들을 탐구하고 여러 이미지를 보는 것은 제게 루틴 같은 것이에요.
핀터레스트 또한 제가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 중 하나인데요, 이 사이트도 AI의 알고리즘으로 어떤 이미지를 저장하거나 좋아해서 자주 보면 그와 비슷한 이미지들을 접속 때마다 다르게 보여줍니다.
그곳에서 제게 자주 보였던 계절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는 익숙했어도 누구의 작업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오아물 루(Oamul Lu)라는 작가였어요. 
그는 자연적인 요소와 인물이 한 화면에 조화롭게 담긴 구성의 그림들을 따뜻하게 보여주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포근함이 담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집니다 :)
작업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작품을 구경해 보세요. 
(오아물 루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외워버리고 싶은 곡

ADELE - Make you Feel My love

중학교 영어시간에 팝송을 배웠어요.
배웠다기보다는 가사를 익혔다는 것에 가깝지만 저는 그 시간을 꽤 좋아했습니다. 입에 붙을 때까지 같은 곡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 불러서 끝내 한 곡을 외워버리는 결과를 내기도 했지요.
그때 익혔던 노래는 풀스 가든의 레몬 트리, 웨스트라이프의 마이 러브 같은 곡이었지요.
너무너무 유명한 노래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때 배웠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여전히 잘 흥얼거리는 제가 재미있어요.

그때처럼 같은 곡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외워버리고 싶은 곡이 있습니다.
아델의 곡 중 너무 좋아하는 곡이에요.
웬 더 레인~~ 하며 멋지게 따라 부르고 싶어요. 😌

P.S.
이번 레터도 잘 읽으셨나요,
완두콩 레터는 매미가 우는 아주 더운 여름에 시작했는데요,
이제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당부의 인사를 건넬 만큼 날이 추워졌네요.

편지를 읽어주시는 여러분, 언제나 고맙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따뜻하게 지내시길 :)

* 주변 친구에게 추천해 주신다면 저는 더 힘이 날 거예요 💪

mind_ry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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