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사람들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자기 자리를 잘 찾을까.

혼자 동떨어지지는 않을까.

공부는 그렇다 치고, 사회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이건 성적처럼 점수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가늠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제주에서,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리고 그게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모습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번 주에 혜린이와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러닝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간 길이었어요.

화요일에 도착해서 여러 가지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토요일에 있었던 모임이 저한테도, 혜린이한테도 가장 오래 남았어요.


숲속에 자리한 어느 웰니스 공간에서 열린, 어른들을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요가를 하고, 함께 달리고, 차를 마시고, 책을 나누는 자리였어요.

아침에는 다 같이 모여 달렸고, 달린 후에는 둘러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다양했어요.

한국 사람도 있고 외국 사람도 많았고, 무엇보다 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자리를 만든 대표를 봤는데, 제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대표'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어요.

정말 젊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자기가 믿는 걸 그대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이었어요.


이 세대에게는 자기만의 건강한 가치관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그 자리에서 새삼 느꼈습니다.

모임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네 가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첫 번째, 다들 혼자 왔더라고요.

무리 지어 온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각자 비행기를 타고, 각자 제주까지 와서, 각자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쓸쓸해 보이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단단해 보였어요.

혼자 오는 게 당연하고, 혼자서도 자기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렇게 혼자 왔는데 어느새 함께였어요.

누가 조를 짜준 것도, 친해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어울려 웃고 있더라고요.

친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요.

같이 달리고 같이 읽다 보니 관계가 그냥 따라온 거였습니다.


세 번째, 서로 돕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손을 보태고, 서로를 챙겼어요.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걸 먼저 내미는 사람들이었어요.

그게 이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이었습니다.


네 번째, 이들을 묶는 건 소속이 아니라 가치관이었어요.

같은 회사라서, 같은 학교라서, 같은 동네라서 모인 게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걸 좋아하고, 비슷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서 모인 거였어요.

그러니까 국적이 어디든, 나이가 몇이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명함도 나이도 묻지 않았어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지, 그거 하나면 됐어요.

처음엔 제주의 어느 특별한 공간이라,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지금 전 세계의 젊은 세대가 이미 이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은 퇴근하고 술집에 모였어요.

그런데 요즘 이 세대는 아침에 모여서 같이 달립니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함께 몸을 움직여요.

같이 달리는 모임이 예전의 화려한 클럽을 대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실제로 이런 모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배로 늘었습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함께 경험하는 걸 더 귀하게 여겨요.

그리고 그 모임을 회사나 학교 같은 울타리로 묶지 않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가치관으로 연결돼요.

그래서 국경도 언어도 그렇게 큰 벽이 아니에요.


제가 제주에서 본 게 딱 그거였습니다.

잠깐 유행하다 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었어요.

여기서 제가 좀 멍해졌습니다.

우리 세대는 좀 달랐잖아요.

한 직장에 오래 다니고, 한 동네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학교 동창이 평생 친구였어요.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이 아이들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자기랑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아냅니다.

출신이나 나이가 아니라 가치관으로 연결되고요.

그렇게 자기들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며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하는 걱정, 혼자 다니면 어쩌나 친구 못 사귀면 어쩌나 하는 그 걱정은, 어쩌면 우리 세대의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바라봐서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혜린이는 그 옆에서, 아이들과 키즈러닝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랑 같이 달렸는데, 처음엔 어색해했어요.

모르는 사이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한참을 같이 뛰고 나니까 어느새 부쩍 가까워져 있었어요.

달린 뒤에는 그 친구들이랑 둘러앉아 같이 책도 읽었고요.

그러다 어른들이 요가하고 달리고 어울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신나 하고, 설레 했어요.

저 속에 자기도 섞이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다 보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알았어요.

제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구나.

이런 자리에 데려다 놓으면 아이는 알아서 배우는구나.

결국 사람은 사람 속에서 자랍니다.

성적으로 줄 세워진 자리가 아니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요.


그날 돌아오는 길에, 그러면 우리 아이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봤어요.

네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먼저, 어느 정도의 영어 회화예요.

유창할 필요까진 없어요.

어느 나라에 가도 사람들과 섞일 수 있을 만큼이면 충분해요.

발음이 완벽한지 문법이 맞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낯선 사람 앞에서 입을 떼고 내 생각을 건넬 수 있느냐, 그게 중요하죠.

시험 점수를 위한 영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영어요.


그리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에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세상이 어떤 길을 거쳐 지금에 왔는지 아는 아이라야,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휘둘리지 않아요.

다른 나라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서로의 뿌리를 묻게 되거든요.

그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이것도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으로서의 역사예요.


또, 나와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지 않는 태도예요.

국적도 자란 환경도 믿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이게 없으면 안 되더라고요.

다르다는 게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아는 아이.

그 다름 앞에서 벽을 세우는 대신 궁금해하는 아이.

그런 아이 곁에는 사람이 모이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가치관이에요.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 것인가.

이게 단단해야, 나와 결이 맞는 사람도 알아보고 그들과 연결도 돼요.

기준이 없으면 누굴 만나도 휩쓸리기 쉬워요.

좋다는 데로 몰려갔다가 아니라는 말에 또 빠져나오고요.

반대로 자기 기준이 분명한 아이는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자기 사람을 알아봐요.


제가 제주에서 본 사람들이 그랬어요.

이런 건 점수로 매겨지지도 않고, 학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아요.

오직 아이가 놓인 환경 안에서,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천천히 자라는 것들이에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