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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제주에는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
매주 월요일 JEMI가 제주의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들려줄게요 🧚🏻

이번주 JEMI
1. 두 시장 후보자의 운명은?
2. 광복 77주년 제주에서는 어떤 항일운동이 있었을까? (2)
자료화면 출처: 제주도의회
시장 후보자의 운명은?

 지난 19일 제주도의회 행정시장 인사청문 특별위원회의 청문 결론으로 강병삼 제주시장 후보자 '부적격'. 이종우 서귀포시장 후보자 '적격’으로 판단됐어요. 오영훈 도지사가 청문회 결론을 반영하여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는데요. 오늘은 양행정시장 후보자의 논란에 대해서 살펴볼게요.
제주에서는 왜 행정시장을 직접 뽑지 않을까?👉🏻(이전화보기)

두 후보자는 어떤 사람이야❓
 두 후보자의 공통점은 오영훈 도지사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에요. 강병삼 제주시장 후보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인수위원으로 활동했고, 이종우 서귀포시장 후보자는 전 남제주군의회 의장 출신으로 인수위 비서실장을 하며 오영훈 도지사를 보좌했는데요. 국민의 힘 제주도당 측에서는 약속한 협치는 지키지 않고 자기 사람 챙기기식의 도정운영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며 도의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강력한 검증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후보자들 논란이 있었다며🤔
 강병삼 제주시장 후보자의 경우 아라동 7000여㎡ 농지,  애월읍 광령리 2100여㎡ 농지를 지인들과 매입한 뒤 해당 농지를 실제 경작하지 않아 농지법을 위반하였고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됐어요. 이에 강 후보자는 스스로도 부끄럽게 생각했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이종우 서귀포시장 후보자도 강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농지법 위반으로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가족이름으로 안덕면 일대 1만여㎡의 농지를 갖고 있지만 자경을 하지 않았는데, 농업 공익직불금을 타간 사실에 도의회에서 거센 질타가 이어졌어요. 이 후보자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배우자가 경작하고 있어 가족공동체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어요. 

*자경: 자신 스스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지음
*공익직불금: 농업활동을 통해 식품안전, 환경보전, 농촌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도록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

부적격인 사람은 낙마하는거야 ⭕️❌
 행정시장의 경우 인사청문의 결론이 낙마를 좌우하지 않아(일종의 권고 수준, 강제성 x) 오영훈 도지사의의 선택에따라 임명이 강행될 수도 있는데요. 2 원희룡 도정도 음주운전 이력으로 물의를 빚은 김태엽 후보자를 도의회가 부적격 결론을 내렸지만 서귀포시장에 임명을 강행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돼요.
by.묵묵

자료화면 출처: Sun
광복 77주년 제주에서는 어떤 항일운동이 있었을까?
(2) 제주해녀항일운동

  님 올해는 일제로부터 조국의 광복을 맞이한 77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빼앗긴 들에도 봄날은 온다! ’선조들은 일제에 의해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36년의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각지에서 항일운동을 진행했어요. 제주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제주항일운동의 번째 시간으로제주해녀항일운동 대해 알려드릴게요!

제주해녀항일운동이란?🇰🇷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세화, 하도, 종달, 성산, 시흥, 오조, 우도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8개월간 1만 7천여 명의 제주 해녀들이 참가해 일본인들의 수탈에 대항해 238번이나 시위를 벌였던 항일운동이에요. 어부, 해녀 등 어민항쟁으로 보면 전국 최대규모였죠.

*여기서 잠깐! 해녀들에게 무슨 일 있었어?
당시 제주 해녀들은 일제에 불만이 많았는데요. 일제가 해녀들이 채집한 해산물을 헐값에 사가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세금과 불합리한 조치로 많은 불이익을 줬기 때문이죠.

제주해녀항일운동 어떻게 진행된?
 일제의 수탈에 해녀들은 가만있지 않았는데요.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1920년 제주도 해녀어업조합이 조직했고, 1930년에는 해녀조합을 결성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일본인 상인들과 결탁해 해녀들의 권익을 지속해서 침해했어요. 해녀들로부터 각종 수수료를 지불하게 했고 생산자인 해녀들은 자신들이 채집한 해산물임에도 불구하고 20%의 이익밖에 가져가지 못했어요. 결국 1932년, 불만을 느낀 300여 명의 해녀가 호미와 빗창을 들고 제주도사를 만나게 해달라며 1차 시위를 진행했어요. 당황한 일제경찰들은 불만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제주도사를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급하게 시위를 해산시켰어요.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고, 5일 뒤에 2차 시위가 일어났어요. 신임 제주도 사가 도 일주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해녀복을 입은 1000여명의 해녀들이 신임제주도사가 있는 곳으로 가 그를 포위했어요. 경찰들이 칼질과 발길질을 하며 무력으로 해산을 시도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해녀들은 물러나지 않았고요, 결국 제주도사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시위를 해산시켰어요. 하지만 경찰은 시위의 해산을 넘어 2차 시위의 주동자였던 20여 명을 구속하게 돼요. 이에 분노한 해녀 500여 명이 다시 시위를 진행하지만 경찰에 진압당함으로써 약 1년간의 해녀항일운동은 종료됐어요.

*빗창: 전복을 따는 도구
*제주도사: 오늘날의 제주도지사

제주해녀항일운동 평가는 어때?🤿
  해녀항일운동은 순수하게 여성집단에 의해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제주를 넘어 한반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데요. 또한 1930년대 국내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 의의가 남다르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제주의 역사이자 소중한 유산인 해녀, 생존권을 넘어 경제권까지 찾고자 했던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기 위해 해녀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을 어떨까요?

찾아가는길👉🏻제주해녀박물관(클릭)
 by.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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