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14회 (2021.07.21.)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최은영입니다
 
전례없는 전염병 사태로 인해 우리 모두 많이 힘든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신 분들, 일상과 마음을 예전처럼 유지하기 힘든 분들도 많이 계시지요. 저는 혼자 일하고 혼자 살다보니 코로나 이전보다 고립감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서 생활하고 운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조금은 평온했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시 두 편에 대한 감상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최은영 소설가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숲속의 집(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잠결에 물소리가 들렸다. 셋이었다. 아침에 한 사람은 내가 숨도 쉬지 않고 자더라고 했고, 또 한 사람은 내가 헛소리를 하더라고 했다. 꿈을 꾸었는데 낯선 사내가 우리가 자는 방문 앞에 서 있기에 경찰을 불렀더랬다. 기억이 선명해서 멍자국처럼 사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몸에 멍이 생긴다는 것은 예전에 없던 흙을 갖는다는 것이다. 흙은 어둡고 입속처럼 많은 것을 빨아들였다.
 
집에 돌아와 죽은 듯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나는 혀로 달을 만질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달은 선선하고 촉촉했으며 자꾸 커졌다. 사랑의 협약 따위에서 알게 된 건, 시간이든 마음이든 커지면 아프게 된다는 것이다. 달이 점점 커지자 밥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졌다. 내 혀는 달의 뒷면을 핥아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닿을 듯, 닿지 못했다. 뒷면은 뱃속의 태아처럼 신비하고 고요한 것, 영원히 꺼내지 않고 둔다면 평화는 지속된다.
 
시간이든 마음이든 멍이든 달이든 태아든 커지면 밖을 그리워하게 된다. 낙하를 꿈꾸고 고통을 껴안는 일. 산산조각나서 슬픔을 장악하는 일. 평화를 뚫고 밖으로 나온 것들은 다 그랬다. 그날 물을 찢고 나온 소리들이 숲속의 산막 한 채를 공중부양한 채 밤새 울었다. 이것이 내 혀가 달을 만질 수 있게 된 단서이다. 나는 꿈을 꾸면서 어딘가 먼 곳을 다녀왔다. 나는 너와 함께 최대한 멀리 가보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가의 감상💡  
영원히 꺼내지 않고 둔다면 평화는 지속된다라는 말과 평화를 뚫고 밖으로 나온 것들이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은 안락함, 편안함, 둔감함, 깨어보지 않으려는 것들의 이 아닐까 싶어요. 뭐든 커지면 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아요. 사람의 본성에는 그런 성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불확실하고 위험부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온함을 깨뜨리더라도 을 향하고 싶은 마음. ‘먼 곳으로가보고 싶은 마음이요.
요즘처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나날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마음도 갇히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먼 곳으로 가보고 싶고, 이 시간을 깨뜨리고 언젠가 밖으로 나가고 싶네요. 그게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것은 오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막간 우.시.사 소식: 
최은영 첫 장편소설 밝은 밤 출간!
오늘의 시믈리에 최은영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밝은 밤이 드디어 출간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최은영 소설가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의자(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헝겊 인형을 주워왔다
의자에 앉힌다
나는 1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인형이 사라지면, 사라지면
 
사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멀리 가는 게 아니다
 
인형이 의자에서 떨어져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건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절벽을 경험하겠지
 
나는 꽃병에 꽂을 부추꽃과 코스모스를 꺾으러 나간다
인형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이별의 절벽을 경험하겠지
 
사라진다는 것은 문을 열고 나가
문 뒤에 영원히 기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들의 차가운 심장
 
내가 꽃을 들고 올 때까지 인형은 의자에 앉아 있다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적이 있다는 것을
그 바로 옆이 꽃밭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헝겊 인형이
의자에 앉아 미소 짓고 있다
소설가의 감상💡
왜 인형들은 그렇게 불쌍해 보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인형들이 너무 불쌍해서 어쩔 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모습을 투사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얼마나 사랑을 받느냐, 관심을 받느냐 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쉽게 슬퍼지고 우울해지기도 했어요. 버려진 인형을 보면 가슴이 아팠던 건 나도 그런 심정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느낌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인형은 절벽을 경험하겠지”.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벽도 있고. 그렇지만 이제는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누군가의 감정적 변덕에 의해 사라질 수도, 훼손될 수도 없는 사람이죠. 버려질 수 없어요.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죠.
사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멀리 가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마음에 남네요.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존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을 전해주고 싶어요. 마음에, 기억에 남아 있다면 그보다 가까울 수는 없는 걸 테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박서영 시인의 마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와 이토록 가까이에 머물고 있네요
💖 다음주 시믈리에를 소개합니다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유희경 시인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분은 유희경 시인입니다.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서점지기이자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으로 독자들을 찾은 유희경 시인이 권하는 시는 무엇일지 기대해주세요. 그럼 모두,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오늘의 레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구체적이고 솔직한 의견으로 우.시.사는 성장합니다!
※정정합니다.
13회 레터 중 김희준 시인의 시 「안녕낯선 사람」 7연 2행을 다음과 같이 정정합니다. 
"백야를 끊임없이 앓았고요"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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