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8

MOMO, LETTER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시간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저는 피스모모 커뮤니티랩의 하늬입니다. 모모레터 구독자님께는 처음 인사 드리는 것 같아요. 2016년에 피스모모에서 활동을 시작해 올해 커뮤니티랩으로 오게 되었답니다. 뜸이 전하는 마지막 모모레터 이후 조금 숨을 고르면서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어요. 입추가 지나고 나니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제법 불어요, 덕분인지 밤 산책을 하는 분들도 부쩍 있으시더라고요. 오늘은 모모의 거북이 친구 카시오페아 대신 제가 인사 드려요. 

올해 초 캐나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 지야 퉁(Ziya Tong)이 쓴 <리얼리티 버블>이란 책을 읽었어요. 그는 과학이란 렌즈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보지 못한 것들로 인한 맹점을 짚어내며 인간이 지구에 있는 수많은 종 중에 하나로써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과학은 어렵고 때로는 냉정할 것이라는 저의 편견을 깨며, 그 어떤 책보다 세계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얼리티 버블>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를 구독자님과 공유해요.

"우리는 우리가 마시는 물이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과학자들은 물이 태양보다 오래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니 여러분이 다음에 물을 마신다면 그것이 한때는 구름이었고 빙산이었고 파도였음을, 해저 협곡을 따라 굽이쳤음을 생각하자. 여러분의 몸속에 들어오기 전에 그것은 평균 3,000년을 바다 속에 있었고, 비로 내리기 전에 하늘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빙하에 갇혀 보낸 세월은 그보다 더 오래여서 수천 년에서 수십 만 년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빙하가 녹으면서 물은 보름가량 개울과 강을 떠다니다가 바다로 흘러갔다. 이런 순환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45억 년 동안 수업이 되풀이되었다." 

물이 태양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셨나요? 이토록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래된 여행 끝에 제가 마시는 조그마한 컵에 물이 담긴다고 생각하니, 새삼 물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활용 되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지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소의 대략 3분의 2는 우리가 먹는 식물과 식물이 내쉬는 이산화탄소에서 나오며, 나머지 3분의 1은 수억 년 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석유와 가스에 갇혀 있었던 것이라고 해요. 오래된 존재들의 반복된 순환 덕분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의 숨이 되며 

제주도 삼나무 숲(출처: 국립산림과학원)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 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 
지금 이 순간 내가 자동으로, 불수의 운동으로 숨쉬는 공기가 예수나 무함마드나 클레오파트라가 숨쉬었던 옛 공기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 세대가 마실 공기인 것이다.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지구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아직 진화하지 않아 생기지 않은 생명체의 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의 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먼 미래이자 누군가의 오래된 과거이니까. 

사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코스모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의 최근 저서에는 아버지와의 추억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체득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여행의 방법으로 숨을 쉬며 어쩌면 이 공기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의 입자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지요. 퍼뜩 피부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태양보다 더 오래된 물이 늘 신선해 보이는 것처럼 무한으로 순환하고 있는 공기가 오래 전 누군가의 깊은 숨이었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올해 뜨거운 기온으로 전 세계 곳곳에 폭염과 그로 인한 산불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아침 저녁이면 선선해지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길로 고통 받는 곳도 있지요.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 폭염이 이어지고 북아프리카 국가인 알제리와 튀니지는 폭염으로 인한 산불이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렇게 수많은 존재가 무참히 사라져간다면, 지구가 계속 망가진다면, 무수히 이루어졌던 순환 역시 언젠가는 멈출지도 모릅니다. 꽤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지만 요즘 저는 좀 무서워집니다.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우리는 누군가의 먼 미래이자 누군가의 오래된 과거'라는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일정 정도의 책임을 부여합니다. 가끔 버거워서 모른 척 하고 싶을 때도 있고, 내가 만드는 변화의 크기가 너무 작아 크기조차 잴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몸이 수많은 존재들의 흔적으로 빚어졌다는 것을 자각하면 할수록 아직 만나지 못한 어떤 존재에게 도움이 되는 숨을 내쉬었으면 하는 바람도 듭니다. 내가 어떤 존재의 숨이 되어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여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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