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읽는법 #롤러걸 #주말에뭐읽지 #신간 💌 2022년 5월5일 103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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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 바퀴 돌아
그림책으로 “안녕!”
✍🏼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보고타 국제도서전(Feria Internacional del Libro de Bogotá·FILBo) 참석을 위해 엘도라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고도 3152m의 몬세라테산이었다. 콜롬비아 보고타는 그 아래 해발 2640m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도시다. 이 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60년 전 외교관계를 맺었고 올해는 그동안의 우의를 기념해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남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이 나라는 거의 모든 기후대를 포함하고 있다. 생명 다양성 세계 2위이며 나비의 다양성은 1위다. 출장을 준비하다가 나는 책과 나비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비와 책은 둘 다 크기가 크지 않고, 국경을 넘어서 날아가며, 작고 아름다운 것부터 아득히 무서운 것까지 수없이 종류가 많다는 유사성이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영혼을 담는다는 점에서 나비는 한 권의 책이다. 이번 출장은 나비의 나라에 우리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나비들을 보여주러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고타 국제도서전 역사는 상당히 길다. 35년째인데 방문객이 매년 평균 50만명에 이른다. 아동청소년 방문객이 많고 기간은 열흘이나 된다. 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한국 그림책관에서 일했다. 올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를 비롯해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자인 박연철·정진호 작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김효은 작가, 한국 그림책 역사의 증인이기도 한 김서정 평론가가 함께 왔다.
우리 작가와 평론가들은 현지 작가와 날마다 대담을 진행하고 현지 독자와 워크숍을 열며 보고타 곳곳의 문화적 거점을 방문해 어린이책 전문가·작가·독자들을 만났다. 은희경 작가는 이번 도서전 개막식 연설에서 “책은 반문명과 폭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는 강력한 친구”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 때까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세대의 책인 그림책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그림책은 최근 백희나 작가의 알마(ALMA)상 수상과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HCAA)상 수상을 계기로 각국의 출판 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는 중이다. 이번 도서전에서 대담을 통해 만난 자베리아나 대학의 훌리아나 카파소는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그의 그림책은 완전한 격차를 두고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수지를 비롯한 한국 그림책의 인상적인 행보가 우리의 큰 관심이다”라고 격찬했다.
한국 그림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그림책관은 작년부터 전시 기획, 원고 집필, 디자인과 설치, 통번역 등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전문가들이 분주히 준비한 끝에 사상 최대의 면적(약 3000㎡)으로 이곳 주빈국관 안에 개관했다. 열기는 예상보다 대단했다. 북토크와 워크숍은 연일 만석이었고 남녀노소가 우리 그림책에 관심을 집중했다. 주말에 한국관에 들어오려면 한 시간가량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림책관과 전통놀이관, 멕시코 문화원의 한복 체험관이 가장 붐볐다.
우리 그림책 이미지가 담긴 종이 왕관을 쓴 독자들이 “안녕!”을 외치며 몰려들었다. 단지 호기심 차원의 열광이 아니었다. 빠짐없이 수준 높은 질문을 던졌고 책과 작가에 대한 정중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도서전에 참석하는 교육 환경에서 자란 것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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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 행보는 세계의 큰 관심
4월22일에 비르힐리오 바르코 공공도서관에서 이수지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사진). 1만6092m²의 면적에 물과 벽돌과 나무로 만든 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보고타시를 문화적으로 상징하는 가장 영예로운 장소다. 사회를 맡은 클라우디아 루에다는 안데르센상에 두 번이나 콜롬비아 측 후보로 올랐던 이곳의 대표 작가다. 이 도서관에 이수지 작가를 초대한 ‘비블리오 레드’는 130개가 넘는 보고타시 공공도서관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연합체인데 팬데믹 속에서도 단단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현대적인 장소에서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을 만났다.
클라우디아 루에다는 이수지 작가에게 “어린이는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왜 어른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수지 작가는 “어른들이 그 점에서 어린이에게 한 걸음 뒤져 있는 것은 맞지만, 어른은 환상을 즐기는 어린이를 보는 것과 동시에 어른으로서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라고 대답하면서 어린이와 동행하는 어른의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했다.
토론을 경청하던 한 교사는 자신이 동료 교사들과 〈파도야 놀자(La ola)〉를 읽고 만든 노래를 직접 들려주기도 했다. 학생들과 교실에서 책을 읽은 뒤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북토크 마지막 순서는 400석 규모의 공연장 불을 끈 뒤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비발디의 음악과 함께 〈여름이 온다〉를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었다.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경이로운 공감의 경험을 안겨주는 시간이었다.
보고타 시민들의 예술적 경험 공동체 ‘카사틴타(Casatinta)’에 초대받은 정진호·김효은 작가는 그들과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이야말로 그림책이 만드는 교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연철 작가의 마술 같은 워크숍은 콜롬비아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외계인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실제 그는 〈안녕! 외계인〉이라는 그림책을 펴냈다.
이번 보고타 국제도서전을 참관하면서 우리가 책을 같이 읽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계는 더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타의 여성 독자들은 수신지 작가에게 고부간의 관계를 그린 〈며느라기〉와 ‘낙태죄 합헌’ 이후 가상의 대한민국을 그린 〈곤〉의 내용을 듣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수신지 작가는 콜롬비아 여성들에게 낙태 비범죄화에 대해 축하를 보냈다. 책은 이렇게 서로를 연결하고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오는 6월1일 개막하는 2022 서울국제도서전의 슬로건은 ‘반걸음’이며 콜롬비아는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이다. 우리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만나는 사이이지만, 책으로 만나는 순간을 통해 또 이렇게 반걸음 더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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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
임진아 외 지음, 이봄 펴냄
“사랑하지만 꼴도 보기 싫고, 전부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혼란하다. 혼란해.”
자신의 일에 관해 솔직하게 말하기란 쉽지 않다. 일이 가져다준 성취감을 들여다보면 불안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고, 지나친 몰입은 때로 허탈함과 소외감을 몰고 올 때가 있다. 가끔은 돈을 번다는 사실 자체가 뜬금없는 위로를 준다.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필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과학자, 창업가 등 작가 7명이 일이 가져오는 시시각각의 마음에 대해 썼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쩌다 날 괴롭히게 되었는지, 불안할 줄 아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은 왜 중요한지 이들의 솔직담백한 고백 덕분에 스스로 ‘앓는 마음’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었다. 책 자세히 보기 >> |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풀빛 펴냄
“우리가 손에서 무심코 떨어뜨린 플라스틱 조각처럼 민주주의는 흩어져버렸다.”
소비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질문’을 돌려준다.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었는가. 재활용을 위해 쓰레기를 분류하고 세척한 사람은 누구인가. 재활용은 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의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저자가 8년간 현장 연구를 한 베트남 하노이 외곽 지역 민카이가 대표적 사례다. 민카이에는 전 세계 쓰레기가 모이고, 주민 대다수는 쓰레기 재활용 관련 일에 종사하며, 마을은 환경오염의 수렁에 빠져 있다. ‘쓰레기 마피아’가 재활용 사업으로 부와 권력을 챙기는 동안 ‘재활용 프롤레타리아’는 위험에 처한다. 전 세계 가난한 지역으로 흘러가는 쓰레기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책 자세히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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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용품의 사회사
다나카 히카루 지음,
류영진 옮김, 호밀밭 펴냄
“생리용품은 여성의 가장 가까운 서포터로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활약할 것이다.”
1909년 일본의 〈부인위생잡지〉에는 ‘고무 재질 반바지형 월경대’ 광고가 났다.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띈다. ‘부인들은 가랑이의 미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당시 여공들은 업무 중 소변을 보러 가는 횟수가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 그런 탓에 월경을 할 때는 종이나 탈지면을 질에 넣어 버티곤 했다. 그러자 이런 삽입형 생리용품이 ‘자위를 익히게 하기 때문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거대한 ‘반바지형 월경대’가 등장한 배경이다. 이 책은 여전히 금기로 여겨지는 생리혈과 생리용품을 실컷 말하고 떠든다. 흥미로운 생활사이자 유쾌한 해방서로 읽히는 이유다. 책 자세히 보기 >> |
부산지역 노동운동사
이광수 지음, 앨피 펴냄
“짐승의 시간을 헤쳐 나온 그들을 위해, ‘노동 밖에서’ 지금의 노동운동을 본다.”
한국 노동운동은 한때 눈물겹고 뜨거운 운동이었다. 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짐승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노동운동은 부활한다. 이후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역시 높아졌지만,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는 실패했고 고용불안이 심화되었다. 저자는 노동운동의 공과를 차분히 혹은 열정적으로 되짚으며 “그들이 꿈꾸던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이 온 것일까? 과연 지금의 노동은 어떤 역사를 거쳐 이리로 왔는가?”라고 묻는다. 이 책은, 운동 당사자들의 구술로 부산지역 노동운동 역사를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4년에 걸친 작업의 결실이다. 책 자세히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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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은 독서 경험이 좁고 얕은 어른에게도 책의 세계를 친절히 안내해주고 그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을 새로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중략) 어른들이 어린이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이 나는 늘 아쉬웠다. 〈어린이책 읽는 법〉김소영 지음, 유유 펴냄
어린 친구들에게 '그때가 좋은 때'라는 둥,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둥 떠드는 사람을 만나면 저는 자연스레 실눈을 뜨고 그이를 바라보곤 합니다. 저 사람은 절반쯤만 신뢰하자고 생각하면서요. 저는 웬만하면 지금이 제일 좋고, 앞으로가 더 좋을 거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수많은 밤 이불킥을 거듭하며 이제야 겨우 알게 됐는데 망나니 같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리가요. 물론 여전히 방황하고 실수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이제는 '최애' 책 중 한 권이 된 〈롤러 걸〉(비룡소)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어린이책 읽는 법〉(유유)의 저자 김소영씨를 만난 덕분이었습니다(네, 〈어린이라는 세계〉의 그 김소영 선생님이요!). 저처럼 어린이책을 많이 읽지 못하며 자란 김소영 선생님은 ‘어린이는 이런 거 못하지!’ 하는 마음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했습니다(‘독후감 쓰지 말고 말하게 하세요’ 기사 참조). 인터뷰 당시 ‘책맥’하기 좋은 어린이책 여러 권을 추천받았는데 〈롤러 걸〉은 그중 한 권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이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변하죠. 내가 달라지기도 하고, 친구가 떠나기도 합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한 뼘씩 자란다는 걸 청소년기에는 왜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요. 〈롤러 걸〉의 주인공 애스트리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니콜은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롤러스케이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른 친구들은 별명들도 근사한데 나는 그냥 ‘니콜의 친구’로 불린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은 또 얼마나 초라한지요. 외롭고 쓸쓸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옵니다. 모든 것이 하얗거나 까만 것처럼 간단치 않다는 걸 깨달으며 우리는 성장하죠. 애스트리드가 니콜을 의연하게 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조금 울었습니다. “역시 청소년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면서요. 그러나 또 압니다. 그 시절이 나를 키웠음을요.
📝 장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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